사람·직업·직책들과 어울려 그 ‘본디 구실’을 일컫는 말로 ‘노릇’이 있다.
아비노릇·자식노릇·사람노릇에 교사-·농사꾼-·외교관-·경영자-·기술자-·기자-·광대-·작가-·학자-·변호사-· …처럼 ‘노릇’을 붙여 못 만들 말이 없는데, 언뜻 속되게 들릴 때도 있으나, 본디 낮잡거나 높잡는 말이 아니다.
제대로 그 ‘노릇’을 하자면 공부가 깊어야 한다. 그 공부를 뭉뚱그린다면 ‘노릇론’이나 ‘구실론’이 될 터이다. 학자가 학자노릇을, 광대가 광대노릇을 못한다면 정말 ‘못할 노릇’ 아니겠는가. 분수·인성론, 윤리학을 넘어서는 공붓거리가 될 법하다.
얼마 전 청와대 쪽에서 ‘역할 분담론’이 나왔다. 대통령노릇이 너무 ‘제왕적’이어서 그 권한·노릇을 총리나 장관들에게 좀 나눠 일을 챙기자는 말 같다. 지난해 국어연구원이 교과서·소설·신문에서 자주 쓰는 말을 조사했더니 500번째 안에, 정확히는 443번째로 이 ‘역할’(役割=아쿠와리)이 자주 쓰였고, ‘입장’(立場=다치바)도 450번째였다고 했다. 이땅 사람들이 이 일제 수입말들을 쓰지 않으면 말이 안 될 정도라니! 여기서 새끼친 말이 “역할극·역할놀이·역할모델·교수역할·성역할·부부역할·가교역할·교육부역할·자문역할·역할조정·역할축소 …”처럼 무수한데, 죄다 ‘노릇·구실·일’로 바꿔 쓰면 제대로 된 자문·총리·교수 구실을 할 성싶다.
한편, 롤·파트·펑션·조브·듀티·미션·오피스·태스크(role·part·function·job·duty·mission·office·task) 따위 영어들을 모조리 ‘역할’로 뒤친다면 이는 큰 웃음거리다. 그 쓰임이 조금씩 다르니. 그런데 그런 불분명하고 막된 번역문도 적잖이 눈에 띈다. 이는 배운이노릇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