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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순신이 꿈꾸는 나라" 개벽의 아침 8회

[그린경제=유광남 직가]  김충선이 깊숙이 허리를 굽혔다.

“소생은 지금 대감의 혜안(慧眼)에 감탄만 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조선 제일의 재상(宰相)이시옵니다.”

서애 유성룡이 싱긋이 웃었다.

“그대야말로 삼국시대의 장수 관우(關羽)나 자룡의 헌신이 아니던가. 내가 보면 볼수록 자네에 대해서 감탄하고 있는 것을 아는가?”

김충선은 몸을 더욱 조아렸다.

“대감께서는 과연 신(神)의 기운을 지니고 계시옵니다. 그걸 어찌 아셨는지요? 관운장과 조자룡은 소생이 가장 흠모하는 장수들이옵니다.”

그 대화를 듣고 있던 유진은 내심 실소를 머금었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관우와 조운이 가당키나 하는 것입니까? 아버님이 평소와는 다르게 감언(甘言)이 대단하시구나. 후훗’

그러나 부친 유성룡은 결코 농담을 건네는 표정이 아니었다.

“만일 자네와 같은 장수 한 명 만 더 얻을 수 있다면 그건 참으로 조선의 기쁨이 될 것일세.”

김충선의 입가에 안타까운 미소가 머무르다가 홀연 부드러운 표정이 적막해졌다.

“김덕령! 그가 있었다면 능히 그러고도 남았지요.”

의병장 김덕령은 왕세자 광해군이 직접 익호장군이란 칭호를 내려줬던 장수였다. 분조 무군사(無軍司) 시절에 광해군의 측근으로 활동했으며 용맹하기 그지없는 장수중에 장수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반란에 가담 하였다는 죄목으로 선조에 의해서 참형 당하였다. 당시 그는 한 번 탈출에 성공하였으나 스스로 다시 감옥으로 되돌아갔다. 능히 달아날 수 있음에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선조는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왕권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었던 광해군의 최측근을 제거하기 위하여 모함하여 때려죽인 것이다. 그 사건의 진상을 서애 유성룡도 알고 있었다.

“그래, 맞아! 익호장군 김덕령은 익덕 장비(張飛)라고 할 수 있지.”

유성룡의 탄식을 들으면서 이순신은 기억했다. 김충선이 통곡(慟哭)하며 조선의 왕 선조가 저질렀던 만행을 토로하지 않았던가.
 

-지난 해 이몽학의 난을 기억하십니까? 반란은 개가 일으켰는데 죽기는 호랑이가 죽었습니다. 개를 때려잡는다는 핑계로 호랑이를 잡아 죽인 것입니다.-
 

김덕령의 죽음은 매우 허망했다. 조선 왕의 음모는 더럽고 잔인하고 치졸했다. 오직 왕권만을 유지하기 위한 파렴치한 행위였다. 자신에게 미칠 조그마한 파장일지라도 왕 선조는 용납하지 않았다. 비록 아들이기는 하지만 점차 왕위를 이어 받을 광해군에 대한 견제를 심하게 하고 있었다. 선조는 죽는 그 순간까지 권력에 대한 욕망에 집착하고 있었기에 왕권에 대하여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는 성장한 광해군보다도 더 어린 왕자에게 보위를 물려줄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야만 자신의 권력을 더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광해군의 오른 팔이라 할 수 있는 장수 김덕령을 일찌감치 제거하여 광해군을 고립시켰으며 또한 광해군으로 하여금 왕의 권력에 대한 도전을 쉽게 생각할 수 없도록 조치한 것이었다. 실로 비정한 처사였다.


** 유 광 남 :

   
 
서울 생으로 대중성 있는 문화콘텐츠 분야에 관심이 있으며 특히 역사와 팩션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학에서 스토리텔링을 5년 간 강의 했으며 조일인(朝日人) ‘사야가 김충선(전3권)’ 팩션소설 ‘이순신의 반역(1부)’ 등을 출간 했다. 현재 '스토리 바오밥'이란 전문 작가창작 집단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