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윤지영 기자] 조선시대 축조된 청주읍성은 청주시의 최고 최대의 역사유적지 가운데 하나이다. 청주의 역사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지금도 그 흔적을 시내 중심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유서 깊은 청주읍성도 도도한 역사 앞에 갖은 수난을 겪어야 했다.
1790년대에 상당한 규모로 수축된 청주읍성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쇠락하는 가운데 20세기에 들어와 새로운 운명을 맞이하였다. 1906년 8월 26일부터 9월 5일에 걸친 장마 비는 무심천(無心川)을 넘어 성 안까지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2년 뒤인 1908년 6월 5일 충청북도 관찰부가 충주에서 청주로 옮겨 옴에 따라, 청주읍성은 충청북도의 부성(府城)이 되었고 동헌인 청녕각이 청사로 사용되었다.
그 무렵 청주읍성은 퇴락하였지만, 의연히 자기 모습을 지켜내고 있었다. 성벽은 성벽 위의 여장만 무너진 부분이 많았을 뿐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었다. 남문인 청남문의 문루도 견고하게 서 있었다. 성 안에 있던 관아와 병영의 여러 건물도 감옥만 사라졌을 뿐 거의 그대로 있었다. 8개의 우물도 많은 물이 샘솟고 있었다.
그러다가 1910년 충청북도장관으로 임명된 일본인 스즈키(鈴木隆)는 읍성 안의 시가지 도시정비계획을 1911년 4월부터 시행하였다. 먼저 읍성을 철거하고 성돌을 이용하여 새롭게 하수구를 만들었다. 도로는 남석교-남문-북문으로 이어지는 직선도로를 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성안길인 본정통(本町通)이다. 땅이름까지 일본식으로 바꾸어 본정(本町), 욱정(旭町), 상생정(相生町) 등의 이름을 붙이고 일정목(一丁目), 이정목(二町目) 등으로 나누었다. 이렇게 읍성은 1911년부터 철거되기 시작하여 1915년에 일본식의 새로운 신도시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물론 현재의 모습도 모습이려니와 임진왜란 때의 상황도 심각한 것이었다. 이번 청주읍성 큰 잔치는 청주성탈환 칠갑주기를 맞아 임진왜란 당시 읍성 단위 이상의 육전에서 최초의 승전지인 서문 터에서 긴박했던 전투 상황을 극 형식으로 재현할 계획이다. 이번 큰잔치는 임진왜란 당시 청주성 탈환의 역사를 ‘청주의 정신’으로 계승 발전하여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큰잔치의 주요 내용은 본행사로서 읍성돌기, 성탈환 재현, 읍성알기-역사체험극이 있으며 부대행사로는 읍성발굴현장 관람, 청주장날 장똘뱅이로드쇼, 성안길 100년 풍경 기록사진전, ‘차없는도로-토요예술난장’, 읍성 달빛여행, 100인의 기타리스트, 의승병 추모대제, 주먹밥 시식체험이 마련되어 있으며 연계행사로는 축하음악회, 거리아티스트공연 등이 참가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문의 : 043-200-2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