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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도 등급이 있을까?

[서울문화 이야기 9]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지난번에 이어서 이번에 사람 관계에 쓰는 토박이말을 알아보자


1. 부부 대신 가시버시를 쓰면 좋다 


정식으로 결혼을 하지 않고 우연히 만나서 어울려 사는 남녀 곧 동거하는 남녀를 ‘뜨게부부’라고 하는데 ‘뜨게’는 ‘흉내 내어 그와 똑같게 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뜨게부부’는 ‘가시버시’가 아니다. ‘가시버시’는 부부를 낮추어 부르는 말인데 혼인 청첩장에서 ‘저희는 부부가….’라는 말을 쓰기보다는 ‘저희는 가시버시가….’라는 말을 쓰면 더 멋지지 않을까?

 

2. 너나들이보다는 옴살이 더 가까운 사이 


사람관계를 이르는 말로 ‘남진아비’, ‘자치동갑’, ‘풋낯’, ‘너나들이’, ‘옴살’ 따위가 있다. ‘남진아비’. ‘핫아비’는 ‘유부남’, ‘남진어미’, ‘핫어미’는 ‘유부녀’를 말한다. 핫아비·핫어미는 홀아비·홀어미의 반대이다.


‘자치동갑’은 나이 차가 조금 나지만 서로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를 뜻한다. 또 ‘풋낯’은 서로 겨우 낯을 아는 정도의 사이이고, ‘너나들이’는 나이 차이는 좀 나지만 서로 ‘너’, ‘나’하고 부르며, 터놓고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이며, ‘옴살’은 마치 한 몸같이 친하고 가까운 사이를 말하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객지 벗 십 년’이란 말이 있는데 나이가 십 년 차이 나도 벗으로 지낼 수 있다는 뜻인데 바로 ‘너나들이’가 아닐까? 너너들이나 옴살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꾼다.
 

3. 말과 행동이 싱거운 사람 고드름장아찌 


고드름장아찌’라는 말도 있는데 말과 행동이 싱거운 사람이다. 장아찌는 간장에 절이거나 담근 것으로 고드름을 간장에 절였다는 것에 비유하여 맹물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검정새치’는 새치이면서 마치 검은 머리카락인 척하는 것처럼 같은 편인 체하면서 남의 염탐꾼 노릇을 하는 사람 곧 간첩을 말한다. 또 ‘윤똑똑이’란 말이 있는데 음력의 윤달처럼 가짜로 만들어진 것을 빗댄 것으로 저 혼자만 잘난 체하는 사람을 홀하게 이르는 말이다.


‘치마양반’이란 말도 있는데 이는 출신이나 능력이 별로인 남자가 지체 높은 집안과 혼인하여 덩달아 행세하는 사람이고, 거리낌 없이 상말을 마구 하는 입이 더러운 사람은 ‘사복개천’이라고 한다. 사복개천은 조선시대 궁중의 가마나 말에 관한 일을 하던 사복시(司僕寺)란 관청이 있었는데 그 옆을 지나는 개천이 말똥 따위로 매우 더러웠던 데서 생긴 것으로 상말을 해서 입이 더러운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4.  내가 주위에 솔개그늘이 되면 좋을 일 


   

▲ 잔소리를 귀찮게 늘어놓는 사람이나 바가지를 자주 긁어대는 여자는 ‘긁쟁이’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또 토박이말에는 ‘껄떡쇠’가 있는데 이는 ‘먹을 것을 몹시 탐하는 사람’이다. 또 잔소리를 귀찮게 늘어놓는 사람이나 바가지를 자주 긁어대는 여자는 ‘긁쟁이’이고, 근심거리가 되는 일 또는 사람을 ‘근심가마리’로 부른다. 요즘 나라에는 권세 있는 사람의 주위에서 총기를 어지럽히는 사람이 많은데 그를 ‘해가림’으로 불러주면 좋겠다. 이런 사람은 더불어 사는 세상에 근심가마리이다.

 

 

세상에는 ‘말살에 쇠살’도 있다. ‘말살에 쇠살’은 푸줏간에 고기를 사러 갔는데 벌건 말고기를 쇠고기라고 내놓는다. 누가 보아도 가짜여서 따지면 주인은 쇠고기라고 벅벅 우긴다. 번연히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우기거나,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말을 할 때 쓰는 말이다.


또 ‘솔개그늘’이라는 말은 솔개가 날 때 땅에 생기는 작은 그림자처럼 아주 작게 지는 구름의 그늘을 말한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날, 들판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다 보면 솔개그늘이라도 정말 고마운 것이다. 생색나는 일만 하려 들지 말고 뭔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내가 먼저 해보는 나부터 남에게 솔개그늘이 되어보면 어떨까?

 

   
▲ 솔개가 날 때 땅에 생기는 작은 그림자처럼 아주 작게 지는 구름의 그늘 ‘솔개그늘’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5.  밥의 등급도 등급이 있다. 수라․진지․밥․입시․젯메 


토박이말로 보면 밥에도 등급이 있다. 임금이 밥을 드시면 ‘수라’, 어른이 드시면 ‘진지’, 보통 사람이 먹으면 ‘밥’, 하인이 먹으면 ‘입시’이고, 죽은 사람에게 제사지내는 밥은 ‘젯메’라고 했다. 밥도 수라가 되면 영광스럽고, 입시가 되면 천해질까?


예전 농부들은 그릇 위까지 수북이 담은 ‘감투밥’을 먹었는데 고봉밥이라고도 한다. 하인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소금으로 반찬을 차린 ‘소금엣밥’, 국이나 반찬도 없이 강다짐으로 먹는 ‘강밥’ 또는 ‘매나니’는 물론 남이 먹다 남긴 ‘대궁밥’도 먹는다. 그런가 하면 세상에는 마땅한 값을 치르지 않거나 당연히 할 일을 하지 않고 ‘공밥’을 먹는 시림도 있다.


그밖에 논밭에서 김을 맬 때 집에서 가져다주는 ‘기승밥’, 일부러 한쪽은 질게 한쪽은 되게 지은 ‘언덕밥’, 찬밥에 물을 부어 다시 지은 ‘되지기’, 밑에는 다른 밥을 담고, 위에는 쌀밥을 담은 ‘고깔밥’, 밑에는 접시 같은 것을 깔고 많이 보이게 담은 ‘뚜껑밥’도 있다. 속에 반찬감을 넣어 손에 들고 먹을 수 있게 쐐기를 지은 ‘쐐기밥’도 있는데 김밥이나 햄버거가 바로 ‘쐐기밥’의 하나가 아닐까?

                                      * 참고 :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출이사전》, 박남일,  서해문집

 

   
▲ 나이 먹을수록 없고 쓰잘 데 없는 사람을 ‘곤쇠아비’라 한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또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 젊은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도 있으니 그 가운데 하나가 ‘곧은목 성질’인데 융통성 없이 외곬으로만 나아가는 성질이다.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은 듣기에 매우 거북한데 그럴 때 ‘귀 거칠다.’라고 말한다. 또 ‘글컹거림’ 곧, 말을 함부로 하여 남의 심사를 뒤틀리게 하거나, 나이 먹을수록 없고 쓰잘 데 없는 ‘곤쇠아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 사람들 대신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공을 세우는 사람 ‘굄돌’, 곰처럼 순하고 듬직한 사람, 곧 ‘곰손이’가 많았으면 좋겠다. 또 나이 들면서 오히려 젊은이에게 상냥하고 부드럽고 속 너르다는 뜻의 ‘곰살갑다(곰살궂다, 곰살맞다)’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되어야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