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0. 무궁화 보기 어려운 '사쿠라' 천지의 4월을 보내며 올해는 일본말로 사쿠라라고 부르는 벚꽃 피는 시기가 일주일 정도가 늦었습니다. 그래서 4월 마지막 주인데도 온 나라는 흩날리는 눈보라 아니 벚꽃보라로 난리입니다. 해마다 밑으로는 진해부터 위로는 서울 여의도까지 벚꽃길을 조성해놓고 이를 보려는 사람과 차들로 몸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봄날 벚꽃에 파묻혀 사는 것이 괜찮은 일인지 살펴볼 일입니다. 한국의 나라꽃 무궁화는 눈 씻고 볼래야 볼 수 없는 반면 아파트 입구는 물론 도심의 가로수와 꽃길 명소 만들기에 바쁜 지방자치단체와 궁합이 맞아떨어져 곳곳마다 사쿠라꽃이 지천입니다. 벚꽃은 일본 사람들이 무척이나 좋아하는 꽃으로 그들의 나라꽃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결혼식장에서 으레 벚꽃차나 더운물에 소금절임 벚꽃잎을 넣는 탕을 대접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미(花見)” 곧 “벚꽃놀이”란 말이 따로 있을 정도이고 봄날 일기예보 시간엔 당연히 “벚꽃이 어디쯤 피었나?” 하는 예보를 합니다. 그리고 “밤 벚꽃놀이(요자쿠라)”에 온 국민이 열광할 만큼 벚꽃놀이는 일본 사람들의 삶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습니다. 그런 벚꽃에 열광하는 것은 문제다라고 하면 어떤 사
1819. 제주도 살칵불을 아십니까? 예전 전깃불이 없을 때 우리 겨레는 “등잔(燈盞)”이란 것을 써서 불을 밝혔습니다. 등잔은 동물성 ·식물성 기름, 석유 따위를 연료로 등불을 켜는 그릇이지요. 재료에 따라 나무로 만든 것제, 흙으로 구워서 만든 것은 물론 대리석, 백자, 사기, 놋, 철제 등잔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한지 ·솜 ·노끈 따위로 3발 심지를 만들어 기름을 먹여 불을 켭니다. 그런데 제주도에 가면 등잔의 원시형인 “살칵불”이란 것이 있습니다. 살칵불은 나무판대기에 위를 평평하게 다듬은 돌을 세워 그 위에 관솔불을 태워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살칵불을 다른 말로는 “돌코냉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살칵불은 한번 피워 놓으면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좀처럼 꺼지는 일이 없이 잘 탄다고 하지요. 그런가 하면 제삿날은 접시에 심지를 만들어 넣고 참기름이나 유채기름으로 불을 켰습니다. 때로는 “구린지름[魚油, 생선기름]”이나 “갯멀지름(들깨기름)”으로 불을 켜는 곳도 있었지요. 이러한 접시불은 제방(祭房)에나 켜고 마루방이나 부엌에는 살칵불을 피운다지요. 이 살칵불 곁에는 식구들이 지켜 앉아 계속 불을 피웠다니 무척 힘들었을 것입니다.
1818. 한국의 바람, 쥘부채를 만나러 가실까요? 벌써 여름이 되었는지 한낮에는 덥다고들 난리입니다. 이 여름 우리 겨레에겐 부채라는 소중한 도구가 있었지요. “부채”는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의 '부' 자와 가는 대나무 또는 도구라는 뜻인 '채'자가 어우러져 이루어진 토박이말로써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키는 채'라는 뜻입니다. 부채를 한자로는 '선(扇)'이라 하는데 집이나 문을 뜻하는 호(戶) 자에 날개를 뜻하는 '깃 우(羽)'를 합하여 이루어진 글자가 바로 '부채 선(扇)' 자입니다. 곧 집안에 있는 날개라는 뜻이지요. 이것은 종이나 비단이 아직 쓰이지 않았던 옛날엔 새의 깃털로 부채를 만들었음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예전 신라 때 그림이 들어 있는 신라 사람들의 쥘부채(접부채, 합죽선)가 중국 사신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쥘부채를 선물 받는 걸 좋아했다고 하지요. 그 이후 쥘부채가 유행했는데 이것이 실크로드를 통해서 서양에까지 전달되어 요즘은 세상의 많은 사람이 쥘부채를 좋아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어제 서울 세종문화회관 전시실에서 “2010 한국의 바람전” 개막식이 있었습니다. 이 한국의 바람전은 지난해부터 종로미술협회(회장 강장원
1817. 토종 앉은뱅이밀, 미국에서 녹색혁명을 일으킨 소노라가 되어 지금 우리가 먹는 밀가루는 대부분 서양에서 수입된 것들입니다. 토종 우리밀이라고 해봤자 우리 국민의 소비량 1%가 될까 말까 한 정도입니다. 1970년대만 해도 농촌에 가면 보리와 함께 밀이 자라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미국산 잉여농산물이 물밀듯 들어오면서 우리밀은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지요. 그러던 것이 1989년 농민 12명이 종자 1가마로 시작한 우리밀 운동이 결실을 보면서 조금씩 생산량이 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원래 우리 토종밀은 키가 50~80센티미터로 앉은뱅이밀이라고 하지요. 1933년에 펴낸 이란 책에는 이 앉은뱅이밀이 지방에 따라 밀양·자소맥·난쟁이밀 등 10여 가지나 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 앉은뱅이밀은 키가 작고 줄기가 굵어 바람에 잘 쓰러지지 않는 장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 서양밀에 견주어 고소한 것이 일품이라고 하지요. 이 앉은뱅이밀을 1905년 즈음 일본인들이 가져가 달마라는 이름으로 개량하고 1936년에는 농림 10호를 탄생시켰습니다. 이를 미국의 생물학자인 사몬 박사가 1945년 미국으로 가져가 녹색혁명의 바람을 일으킨 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현
1816. 오늘은 나무에 물이 오르는 곡우(穀雨) 입니다 오늘은 24절기의 여섯째, 봄의 마지막 절기로, 양력으로 4월 20이나 21일에 옵니다. 곡우는 청명과 입하(立夏) 사이에 들며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한다 하여 붙여진 이지요. 그래서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 자가 마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곡우 무렵에 못자리할 준비로 볍씨를 담그는데 볍씨를 담은 가마니는 솔가지로 덮어둡니다. 밖에 나가 부정한 일을 당했거나 부정한 것을 본 사람은 잡 앞에 와서 불을 놓아 악귀를 몰아낸 다음에 집안에 들어오고, 들어와서도 볍씨를 볼 수 없게 하였지요. 만일 부정한 사람이 볍씨를 보게 되면 싹이 트지 않고 농사를 망치게 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곡우 무렵엔 나무에 물이 많이 오릅니다. 곡우 물은 주로 산 다래, 자작나무, 박달나무 등에 상처 내서 흘러내리는 수액인데 몸에 좋다고 해서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등에서는 깊은 산 속으로 곡우물을 마시러 가는 풍속이 있습니다. 경칩의 고로쇠 물은 여자 물이라 해서 남자에게 좋고, 곡우물은 남자 물이어서 여자들에게 더 좋다고 하지요. 자작나무 수액인 거자수는 특히 지리산 밑 구례 등지에서 많이 나
1815. 오늘은 4·19혁명기념일, 더불어 살기 위한 몸부림 오늘은 50년 전 당시 자유당 정권의 부정부패와 독재, 3·15 부정선거에 항거해 전국의 학생들이 일어나 자유와 정의를 쟁취한 것을 기념하는 4·19혁명기념일입니다. 노도의 물결처럼 온몸을 던진 학생들의 투쟁은 온 나라를 뒤덮고 드디어 독재권력을 몰아냈지요. 그것은 단군께서 말씀하신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사상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만일 학생들이 자신의 행복과 안녕을 위했다면 그렇게 온몸을 던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겨레는 예부터 이렇게 온몸을 던져 모두를 위하는 곧 더불어 사는 행동을 하는 것에 익숙했습니다. 수없는 외세의 침략에 절대로 순응할 수 없는 겨레였죠. 임진·정유 양란에서의 의병투쟁은 물론 일제강점기 동안의 목숨 건 독립투쟁은 그 대표적인 사례일 것입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자신의 안녕이나 식구들의 행복은 아랑곳없이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 남의 땅 중국에서 27년간 유랑생활을 하며 투쟁했던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은 그래서 우리 겨레의 사표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사적지연구회 이윤옥 부회장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존재했고 투쟁했던 27년은 일
1814. 판소리는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탁하면서도 맑은 소리 판소리에서 소리꾼이 내는 소리를 크게 수리성과 천구성으로 나눕니다. 수리성은 좀 더 탁하고 거친 소리를 말하고, 천구성은 보다 맑고 깨끗한 소리를 말합니다. 그런데 판소리를 하는 데는 우선 거칠고 탁한 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성대를 무리하게 쓰는 수련을 하게 되고 그래서 수없이 목이 붓고 피를 토하기도 합니다. 청중이 들을만한 소리를 내려면 초인적인 노력을 해야 하는데, 최소한 몇 년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하지요. 하지만, 판소리가 거칠고 탁한 소리를 기본으로 한다 해서 너무 거칠기만 하면 안 됩니다. 그런 소리는 “떡목”이라 하여 좋지 않은 소리로 칩니다. 반면에 맑은소리만 가지고 있는 것도 “양성”이라 해서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곧 좋은 소리는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탁하면서도 맑은 데가 있어야 하지요. 다시 말하면 밝은 대낮이 있음으로 그믐밤의 깊고 그윽함이 더욱 크게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겨레가 가진 음양철학이 판소리에서도 적용되는 것이지요. 그런 소리를 가진 소리꾼을 꼽으라면 단연 임방울 선생입니다. 그는 수리성과 천구성을 같이 가진 한 세기에 한 명 날까 말
1813. 사람의 온기와 숨결로 되살아나는 궁궐 요즘 시골에 가면 사람이 살지 않아 허물어져 가는 집들을 종종 봅니다. 흔히 집은 사람의 온기와 숨소리를 듣고 버틴다고 하지요. 그래서 이젠 문화유산의 보존도 자물쇠를 채워 놓고 보존하기보다는 사람의 온기와 숨결을 넣자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문화재 보존 방식은 완전개방이거나 완전폐쇄 두 가지 중 하나였습니다. 완전개방은 마구잡이로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문화재의 훼손은 불 보듯 뻔하고, 완전폐쇄도 역시 시골 빈집처럼 문화재 훼손이 빨리 진행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따라서 이 둘을 절충보완한 제한적 개방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 갑니다. 그 좋은 예가 지난 2004년부터 시행하는 창덕궁 옥류천 제한개방으로 시간, 장소, 인원을 적당히 조정하여 개방하는 것이지요. 또한, 2004년부터 시작한 경회루 “누마루 길들이기”도 그 하나입니다. 누마루 길들이기는 약 290평인 누마루 바닥을 묵은 때를 벗기고 걸레질을 함으로써 사람의 온기를 불어 넣는 것이지요. 문화재청은 이제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본격적인 궁궐 제한개방에 나섭니다. 오는 4월 15일부터 10월 31일까지 궁궐별 1개의 전각(殿閣)을 지정해서 내부를
1812. 임진왜란 때 조선군이 바다에서 연전연승한 까닭 1592년 임진왜란 초기에 조선군은 왜군과의 육상전투에서 맥없이 무너져 연패를 거듭하였습니다. 그 까닭은 당시 일본군이 썼던 조총의 성능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조총을 이용한 전술을 처음 경험한 조선군이 우왕좌왕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해전에서는 조선군이 연전연승을 거두었습니다. 조선 수군은 천지현황자총통 등 우수한 큰 화포를 거북선과 판옥선에 붙여 싸웠는데 조선의 큰 화포는 큰 화살[箭]과 많은 탄알을 쏘아 먼 거리에서 적선을 격파할 수 있는 뛰어난 성능의 무기였지요. 그래서 배를 붙이지 않고도 적을 공격할 수 있었기에 우리 군의 피해는 줄이고 효과적인 싸움을 벌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수군은 작은 배와 조총을 중심으로 뱃전을 붙이고 백병전을 폈는데 조선 수군의 거북선과 전함의 앞뒤 좌우에 각종 화포를 실어 공격하는 바람에 맥을 못 춘 것입니다. 그 덕분에 조선 수군은 뭍에서의 싸움과 달리 절대적인 우위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며 여기에 이순신이라는 뛰어난 장수가 더해져 최강의 군대가 될 수 있었지요.
1811. 임시정부 생일도 모르는 대한민국 대한민국헌법 전문에는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고 있는 거지요. 그런데 임시정부의 생일은 언제일까요? 정부는 물론 대다수 사람이 4월 13일을 꼽습니다. 하지만, 이날은 공포일(알린날)일뿐 실제로 임시정부의 첫 삽을 뜬 날인 4월 11일이어야 한다고 “대한민국임시정부사적지연구회(회장 이봉원)은 말합니다. 1919년 4월 11일 상하이 프랑스 조계 김신부로(金神父路, 현주소 瑞金2路)에 모인 각 지방 대표 29명은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으로 정했으며,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한 뒤 국무원을 꾸렸습니다. 어려운 상황 아래에서 비로소 “대한민국”이 태어났음을 세상에 알린 것이지요. 이날은 조선을 강제침략한 일제에 대항하여 조선이 자주독립국임을 세계만방에 알린 매우 뜻 깊은 날입니다. 이렇게 임시정부 생일은 분명히 4월 11일이 맞건만 여전히 4월 13일에 기념식을 하는 정부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사람이 태어나 호적신고를 하러 가면 태어난 날을 생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