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4. 토박이 숫자말 공부하기 우리는 숫자를 말할 때 보통 일, 십, 백, 천, 만, 억으로 씁니다. 그런데 원래 그 숫자에도 토박이말이 있습니다. 일은 하나, 십은 열, 백은 온, 천은 즈믄, 만은 골 또는 거믄, 억은 잘입니다. 우리가 쓰는 말 중에 “골백번”이란 말은 백 번을 다시 만 번이나 되풀이한다는 뜻으로 '매우 여러 번'을 강조하여 이르는 말이지요. 특히 백은 “온”인데 온나라, 온몸, 온갖처럼 많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한 앞가지(접두어)로 쓰입니다. 또 어제, 오늘, 글피는 토박이말인데 내일(來日)은 한자말을 씁니다. 그런데 분명히 내일도 토박이말이 있지요. 바로 “올제”가 그것입니다. “올제”의 맨 처음 기록은 고려 때의 문헌인 에 나타나는 '明日曰轄載'인데 이중 “轄載”는 올제의 한자말 취음으로 봅니다. 학자에 따라서는 “올제”가 아니라 “하제” 또는 “후제”였다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
1573. 뒤늦은 첫날밤을 맞이한 정부인소나무 속리산 들머리에는 정이품 벼슬을 받은 소나무 곧 “정이품송”이 있죠. 그런데 정이품송은 이제 늙은 데다가 눈 피해 때문에 그 웅장한 모습을 잃어갑니다. 그래서 국립산림과학원은 그 후손을 얻으려고 지난 2001년 이 나무와 강원도 삼척 준경릉(濬慶陵. 조선 태조 5대 조의 묘)의 나이 95살 된 소나무를 인공교배시켜 정이품송의 자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이품송의 원래 정실부인인 이웃 마을 서원리의 정부인소나무를 놔두고 첩실을 얻었다는 비난이 일었죠. 그래서 충북산림환경연구원은 뒤늦게 2002년 정부인소나무와 지각결혼식을 치러 후손 나무를 만들었습니다. 소나무는 땅 위에서 크게 두 갈래로 갈라져 자란 것이면 암소나무로 불리는데 정부인소나무는 땅위 80cm에서 갈라졌습니다. 또 가지가 낮고 풍성하게 퍼져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조선 여인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정부인소나무입니다.
1572. 매화 꽃잎을 눈녹은 물로 끓여먹는 매죽 조선 후기의 농촌경제 정책서 임원십육지에 보면 “떨어진 매화 꽃잎을 깨끗이 씻어서 설수(雪水) 곧 눈 녹은 물에 삶는다. 흰죽이 익는 것을 기다려 한데 삶는다.”라고 소개하는 매죽(梅粥)이 나옵니다. 매화 꽃잎을 눈 녹은 물에 삶는 것은 또 하나의 참 아름다운 시입니다. 이밖에 임원십육지를 보면 무죽, 당근죽, 쇠비름죽, 근대죽, 시금치죽, 냉이죽, 아욱죽과 흑임자죽, 행인죽, 잣죽, 호두죽, 참깨죽, 마죽, 복령죽, 백합죽, 연밥죽, 방풍죽 따위가 보입니다. 이렇게 우리 겨레는 야생 푸성귀들을 잘 알고 다양한 죽을 해먹었습니다. 죽은 열량이 낮기도 하지만, 흑임자죽이나, 잣죽, 호두죽, 참깨죽은 열량이 높은 음식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죽들은 소화기능이 약하거나 고열량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입니다. 특히 쌀 등 곡식가루를 밥물에 타서 끓인 암죽은 어린아이, 노인, 환자들에게 좋은 음식입니다.
1571. 일본 아스카 예술의 대표 옥충주자는 백제인의 솜씨 7세기 일본 아스카시대의 유물인 옥충(비단벌레)주자는 2,563장의 비단벌레 날개를 깔아 만든 작품입니다. 탑 모양 나무 조각품인 232.7cm 높이의 옥충주자(玉蟲廚子)는 기단과 2층으로 된 탑신, 주불을 모신 조그만 감실과 지붕의 4부분으로 구성돼있는데 아스카 예술품 가운데 가장 섬세하고 복합적인 것으로 '일본예술'을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돼왔습니다. 이 옥충주자는 백제로부터의 수입품인데 지금 남아있는 600년경 유물 중 가장 귀한 것이어서 일본은 옥충주자가 원래 백제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기 싫어한다고 하지요. 그래서 벽면이 나전으로 된 일본 장인의 훌륭한 작품이라고 내세우거나 중국수입품이라고 얼버무립니다. 하지만, 옥충주자에는 일본에 없는 호랑이 그림이 있고, 사천왕상이 있는 등 한국인이 만들었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고 일본과 한국 미술사를 깊이 연구한 미술사학자 존 코벨은 강조합니다. 참고 :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존 카터 코벨, 글을 읽다
1570. 궁궐 지붕 위의 잡상을 아시나요? 경복궁이나 창덕궁 등 궁전과 남대문 지붕에서 가장 높고 수평인 곳을 용마루라 하고 용마루에서 수직으로 내려온 마루를 내림마루, 내림마루에서 45도 각도로 추녀 쪽으로 뻗친 마루를 귀마루(추녀마루)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귀마루에는 잡상(雜像)이라는 것이 있지요. 잡상의 또 다른 말로는 ‘상와(像瓦)’라고도 했고 옛 토박이말로는 줏개 또는 츅두라고도 했습니다. 잡상은 모든 기와지붕 위에 설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궁궐과 그와 관련이 있는 건물에 한정됩니다. 잡상은 맨 앞에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등을 두고 동물이 뒤따라 배열되며, 그 숫자는 최소 3개 이상인데 경회루에는 가장 많게 11개까지 있습니다. 잡상은 원래 중국에서는 악귀나 화재를 쫓으려고 만들어 주술적 의미가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왕궁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1569. 옛 사람들 버들가지로 이를 깨끗이 했다(양지) 양치질이라면 치약이나 소금으로 이를 닦고 입 안을 가셔내는 일을 말합니다. 그런데 옛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이를 닦았을까요? 그리고 양치질이란 말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물론 동의보감에 “소금으로 이를 닦고 더운물로 양치를 하면 이에 남은 술독이 제거된다.”라는 구절이 있어 조선시대에 이미 소금으로 이를 닦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소금으로 양치질하는 것은 숙취해소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 것이지요. 하지만, 원래 양치질은 “양지(楊枝)”라는 말에서 나왔고, 양지란 버들가지를 말하며 곧 이 버들가지로 이 사이를 쑤시는 것인데 이는 불교의 수행에서 나온 일이라고 합니다. 고려시대 일상 속에서 쓰는 낱말을 뽑아 정리한 책 계림유사에도 이 양지(楊枝)란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이미 고려시대 이전부터 우리 겨레가 버드나무 가지로 이를 닦아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568. ‘망나니’보다 더 고약한 직업 ‘고도리’ ‘고도리’하면 대부분 ‘고스톱’이란 화투놀이에서의 ‘고도리’를 떠올릴 것입니다. 여기서 ‘고’는 ‘ご’라고 쓰고 다섯을 뜻하며, ‘도리’는 ‘とり’라고 쓰고 ‘새’를 말하는데 다섯 마리의 새를 의미하는 일본말이지요. 새가 그려진 화투짝 석 장을 모으면 5점이란 큰 점수를 얻는데 원래 화투는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며, 화투 그림 하나하나가 일본문화의 산물입니다. 그런데 우리 겨레도 ‘고도리’라는 말을 썼습니다. 곧 고등어 새끼를 뜻하는 말로 예전엔 많이 쓰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고도리’라는 직업도 있었는데 포도청에서 죄인의 목을 졸라 죽이는 일을 맡아 하던 사람이지요. 사람을 죽이는 직업에는 죄인의 목을 베던 ‘망나니’도 있었는데 사실 ‘고도리’는 목을 졸라 죽였으므로 더 고약한 것이 아닐까요?
1567. 영조임금, 어머니를 생각하니 눈물·콧물이 흐른다 “아! 이제야 25년 동안 낳아주고 길러주신 은혜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을 듯하다. 지금 이 비문을 나 스스로 짓는 것은 자식으로서 사친(私親, 후궁 신분인 임금의 친어머니)의 마음을 삼가 받든다는 뜻이다. 붓을 잡고 글을 쓰려 하니 눈물·콧물이 얼굴을 뒤덮는다. 옛날을 추억하노니 이내 감회가 곱절이나 애틋하구나!” 이는 영조임금이 자신의 어머니 숙빈 최씨가 세상을 뜬지 26년 만인 1744년 7월 어머니의 묘에 ‘소령(昭寧)’이란 묘호(墓號)를 올리고 무덤 앞에 세우는 돌비석의 비문(묘갈문)에 어머니를 애타게 그리는 마음을 풀어놓은 글입니다.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는 무수리 출신으로 측은하고 불행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조는 어머니를 기억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고 하지요. 어버이날에 생각해 보았습니다.
1566. 족의라고도 부른 버선, 어머님께 드리고 싶다 “나는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왈칵 치밀었다. 생전에 고운 옷 한 벌 입지 않으시던 어머님, 설날 아침이 되면 겨우 하얀 외씨버선을 신고 절을 받으시며 세뱃돈을 나누어 주시던 어머님께 꽃버선을 사드리고 싶어서였다.” 이 글은 서상옥 씨 수필 중 일부입니다. 버선은 무명·광목 등으로 만들어 발에 꿰어 신는 것으로 한복엔 꼭 필요한 것이지요. 1527년(조선 중종 22) 최세진이 쓴 《훈몽자회(訓蒙字會)》에는 “보션말”이라고 씌어 있고, 중국 사전 《설문해자》는 발옷이란 뜻으로 “족의(足衣)”라고 했지요. 또 말(襪)·족건(足件)이라고도 합니다. 동지부터 섣달 그믐까지는 시어머니 등 시집의 기혼녀들에게 버선을 지어 바치려고 며느리들의 일손이 바빠지는데 이를 ‘동지헌말’ 또는 풍년을 빌고 다산을 드린다는 뜻인 ‘풍정(豊呈)’이라고도 했습니다.
1565. 부처님 법당에 웬 벌거벗은 여자상(像)이 있을까? 강화도의 유명한 절 전등사 대웅보전에는 대웅보전의 지붕을 떠받치는 나부상(裸婦像)이 있습니다. 부처님 법당에 웬 벌거벗은 여자가 있을까요? 전등사는 1600년 이상의 역사만큼이나 여러 차례 불이 났었고 이 때문에 대웅보전도 여러 번 중건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부상은 17세기 말에 만들어졌다고 짐작합니다. 이 나부상에 관한 재미있는 설화가 있지요. 대웅보전 건축을 지휘하고 있었던 도편수가 절 아래 사하촌 한 주막의 주모와 눈이 맞아 사랑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도편수는 돈이 생길 때마다 주모에게 모조리 건네주었지요. 하지만, 공사 막바지에 이른 어느 날 주모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도편수는 화가 났는데 대신 대웅전의 처마 네 군데에 벌거벗은 여인이 지붕을 떠받치는 조각을 만들었다지요. 그런데 주모가 꼭 돈 때문에만 달아났을까요? 산마늘 만나러 백아산 산나물축제 가보자 ▶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