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앗, 무대가 열리자, 신윤복의 <미인도>를 연상시키는 것은 물론 여백이 미가 인상적인 무대가 열린다. 실루엣으로 보이는 무용수의 독무가 나의 가슴 속으로 밀려 들어온다. 조선시대의 미인이 현대 우리 곁으로 다가온 것이다. 국립극장(극장장 박인건) 전속단체 국립무용단(예술감독 겸 단장 김종덕)은 신작 <미인>을 4월 3일(목)부터 6일(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그 직전인 2일 낮 3시부터 60분 동안 열린 기자시연회에서 여성 무용수들로만 펼치는 압도적인 한국춤의 향연 속으로 나는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전통에 현대적 감각을 더한 작품을 통해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임을 증명해 온 국립무용단이 2025년 공개하는 첫 번째 신작이다. 국립극장 관계자는 “국내 각 분야 예술계를 대표하는 창작진과 함께 한국춤에 내재한 아름다움의 값어치를 새롭게 조명한다.”라고 <미인> 공연의 의미를 밝혔다. 특히 공연 가운데 “장삼의 유려한 곡선미와 나비춤의 고요한 울림을 조화롭게 결합해 새롭게 구성했디.”라는 ‘승무&나비춤’을 관심으로 지켜보았다. 나는 그동안 전통 ‘승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인삼장수가 만일 호조의 황첩(黃帖, 일정한 세를 물고 발급받은 여행증면서)도 없이 사사로이 매매하면 해당 부사(府使)는 금고(禁錮, 관리가 되는 자격을 박탈하는 벌)의 율로 시행하라."하였다. 호조 판서 김상성(金尙星)이 일본(日本)의 예단(禮單)에 쓰일 삼을 채울 수 없다고 올렸는데, 대체로 인삼장수가 삼을 가지고 왜관(倭館)에 가서 매매하면 이익도 많고 황첩이 없으면 세금도 내지 않기 때문에 몰래 잠입한 자가 많았으므로, 동래 부사가 이들을 금칙해야 한다고 하였기 때문에 이 명이 있게 된 것이다.“ 영조실록 76권 영조 28년(1752년) 4월 2일 기록입니다. 또 “중국 배가 와서 시끄럽게 하고, 홍삼을 몰래 사가는 것을 단속하되, 아울러 이러한 내용을 개성 유수(開城留守)와 평안도ㆍ함경도 두 도의 관찰사에게 경계하라고 명하였다.”라는 《고종실록》 1권, 1년(1864) 2월 3일 기록도 있습니다. 또 1828년 북경에 다녀온 박사호의 기행문인 《심전고(心田稿)》에는 "연경에 가지고 가는 것이 금지된 물건은 금, 인삼, 담비가죽인데 홍삼은 그중에서도 가장 엄격했다. 연경 사람들이 그 값의 10배를 주고 사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살아생전 나라위해 독립운동 실천하신 삼각산아 대각사 창건주 용성대선사 85주기 추모다례제 음성공양을 올립니다” 지난 3월 23일 낮 11시 서울 종로3가 대한불교조계종 대각사 ‘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 열반 제85주기 추모음악회’에서 노은주 명창이 용성스님에게 맞게 개사한 회심곡이 울렸습니다. 원래 ‘회심곡(悔心曲)’이란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지었다는 불교음악의 하나로 불교의 대중적인 포교를 위해 알아듣기 쉬운 한글 사설을 민요 선율에 얹어 부르는 것으로, 본격적인 불교음악인 범패에 비하여 음악형식과 사설이 쉽게 짜여 있지요. 그 내용을 보면 “모든 사람은 석가여래의 공덕으로 부모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이생에서 부처를 믿고 좋은 업을 많이 지으면 극락세계로 가고 악업을 지으면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경기 명창들이 부르는 <회심곡>은 이날 노은주 명창이 부른 사설과는 달리, “우리부모 날비실제 백일정성이며 산천기도라 명산대찰을 다니시며 온갖 정성을 다 들이시니.”와 같은 《부모은중경》의 내용을 노래합니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부모님 생각이 나서 눈물이 저절로 흐른다는 사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2025년 올해로 위대한 글자 훈민정음은 창제 582돌, 반포 579돌을 맞이했다. 훈민정음 창제는 세종대왕이 혼자 한 것이었지만, 해례본은 정인지ㆍ최항ㆍ박팽년ㆍ신숙주ㆍ성삼문ㆍ강희안ㆍ이개ㆍ이선로 등 8명의 학사와 함께 이뤄낸 집단 지성의 결과물이었다. 그런 만큼 15세기까지 이룩한 각종 학문 성과, 곧 인문학ㆍ과학ㆍ음악ㆍ수학 같은 다양한 지식과 사상이 융합 기술되어 있다. 인류 보편의 문자 사상과 철학이 매우 짜임새 있게 담겨 있다. 또 해례본은 1997년에 유네스코에 첫 번째로 오른 대한민국 세계 기록 유산이다. 섬세한 문자 해설서이면서 음성학 책이기도 하고 문자학 책이기도 하다. 15세기로 보나 지금으로 보나 으뜸 사상과 학문을 담은 책이자 현대 음성학과 문자학 그 이상의 값어치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무가지보의 문화유산인 해례본이 대단한 책이라는 건 알면서 정작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다. 원문이 한문이고, 한글로 뒤침(번역)도 대개 전문가들이 그들의 수준에 맞게 한 것이라 읽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국어국문학과나 국어교육학과에서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 문화일보에는 “강풍타고 번지는 ‘괴물산불’ … 안동 거쳐 청송까지 덮친다.”란 제목의 기사가 올랐습니다. 과학이 발달한 지금도 불이 나면 속수무책입니다만 예전에는 건물이 거의 나무로 된 주택이어서 더 그랬습니다. 그래서 화재를 막기 위한 벽사(辟邪)시설을 곳곳에 설치해 두었습니다. 특히 경복궁 근정전 월대 모서리와 창덕궁 대조전, 창경궁 명전전, 덕수궁 중화전, 경희궁 숭정전 등 각 궁궐의 정전(正殿) 앞에 가면 조금씩 모양은 다르지만 대체로 청동 빛깔을 띤 넓적한 독이 놓여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에 쓰는 무엇일까요? 이름하여 ‘‘드므입니다. 이를 어떤 이들은 향로나 쓰레기통으로 잘못 알기도 합니다만 사실은 화재를 막기 위한 벽사(辟邪)시설이지요. 옛날엔 ‘불’을 관장하고 불을 일으키는 재앙 화마(火魔)가 있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 화마는 아주 험상궂게 생겼지만, 정작 자기 얼굴을 본 적이 없었지요. 이 화마가 어느 날 한 집에 불을 내려고 내려왔다가 드므의 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너무나 험상궂게 생긴 것에 기겁하여 도망쳤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그래서 나무로 된 중요한 건축물들에는 이 드므를 설치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살아생전 나라위해 독립운동 실천하신 삼각산아 대각사 창건주 용성대선사 85주기 추모다례제 음성공양을 올립니다” 어제 낮 11시 서울 종로3가 대한불교조계종 대각사(주지 종원 스님) ‘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 열반 제85주기 추모음악회’에서 회심곡이 울렸다. 대각사 누리집에는 “대각사는 민족해방운동을 위하여 용성조사께서 창건하신 절로 용성조사의 전법의 땅이며, 열반의 땅이고, 깨우침의 땅이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대각사가 3ㆍ1독립운동의 성지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용성 스님은 만해 한용운 스님과 함께 3ㆍ1만세운동 때 불교 대표로 참여하였고, 서대문 감옥에서 3년 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또한 스님은 한문으로 되어 있던 불경을 한글로 뒤쳤으며, 민족정신 말살정책의 하나로 시행하고 있던 왜색불교의 폐단을 지적하고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건백서(建白書)를 2차에 걸쳐서 제출하여 전통불교의 맥을 계승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훌륭하신 용성 스님이 열반하신 지 벌써 8년 대각사에서는 잊지 않고 추모음악회를 연 것이다. 이날 추모음악회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판소리 노은주 명창이 <회심곡(悔心曲)>을 부른 것이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2022년 10월 수원화성박물관에서는 정조대왕(1752~1800) 탄신 270돌을 기려 ‘독서대왕 정조의 글과 글씨’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세종대왕, 영조 임금과 더불어 조선의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정조대왕은 수원화성을 쌓고 신도시 수원을 건설해 우리에게 물려준 위대한 군주였는데 이 전시회로 우리는 정조대왕의 삶과 철학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 전시회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정조의 대표 유물인 《홍재전서(弘齋全書)》 100책이었지요. 독서로 글짓기의 기초를 다진 정조는 나라 경영에 대한 자기 생각과 마음을 담은 글을 많이 남겼습니다. 가족과 신하를 위해 지은 글도 많은데 이를 모두 모아 만든 문집이 《홍재전서》입니다. 유난히 책을 사랑하며 학문정치를 추구했던 정조의 삶과 철학이 이 책에 담겨있습니다. 모두 184권 100책으로 이루어진 《홍재전서》는 조선 역대 임금이 쓴 책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이며, 펴낼 때 쓴 금속활자는 정조 때에 만든 정리자(整理字)입니다. 내용은 시문뿐만 아니라 신하들과의 응답, 해당관서의 기록에 대한 최종 판결, 재위 기간에 펴낸 서적의 해제 등 다양한 내용의 글이 다수 포함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원까지 1개월이자 원금의 백분의 7 10원까지 1개월이자 원금의 백분의 5 50원까지 1개월이자 원금의 백분의 4 100원까지 1개월이자 원금의 백분의 2.5(아래 줄임) 1원 이내의 것이면 한 달 이자가 원금의 백분의 7이라고 하엿스니까 7전(錢)임니다그려. 한달에 7전이니까 기한까지 넉달이면 28전이요 연리로 계산한다 하면 1년에 84전. 즉 연리 8할4푼의 이자임니다. 연리 8할4품의 이자! 아! 얼마나 무서운 폭리냐!“ 이는 일제강점기 잡지 《별건곤》 제33호(1930년10월01일)에 나온 “지상공개(誌上公開) 폭리대취체(暴利大取締-단속, 제2회), 젼당포ㆍ셋집ㆍ양복점(洋服店)”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지금이야 거의 사라진 풍속이지만 예전엔 기한 내에 돈을 갚지 못하면 맡긴 물건 따위를 마음대로 처분하여도 좋다는 조건에 돈을 빌려주는 일종의 사금융업 ‘전당포(典當舖)’가 있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급하게 돈이 쓸 데가 생기면 집안에 있던 온갖 물건을 전당포에 가서 전당을 잡히면서 한 푼이라고 더 받으려고 전당포 주인에게 사정을 하는 풍속이 있었지요. 《별건곤》은 연리 84%나 되는 이자에 폭리라며 고발합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준천(濬川)의 대책은 역시 모색하기 어려운 일이더니, 이제는 그 실마리를 알 수 있겠다. 이미 조그마한 책자를 하나 만들도록 명하여 《준천사실(濬川事實)》이라고 이름하였으니, 책이 완성된 뒤에는 서문을 지어 내리겠다. (가운데 줄임)’ 살펴보건대, 준천의 역사에 역민(役民)이 여러 십만 명이나 동원되고 경비(經費)도 십만여 전(錢)이나 소모되었으니, 이것이 어찌 국가의 안위(安危)가 걸린 그만둘 수 없는 일이라는 말인가? 위는 《영조실록》 95권, 영조 36년(1760)년 3월 16일 기록으로 청계천 준천에 관한 내용입니다. 조선후기가 되면서 한양은 상업도시로 발전하고 전국 각지에서 이주민이 몰리면서 거주지 부족 현상이 심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개천 주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들어 집단 거주지를 형성하였고, 이에 따라 개천 주변에는 생활쓰레기의 증가, 주변 산에서 무분별한 벌목으로 인한 토사물의 유입 등으로 인해 개천 바닥의 높이가 점점 높아졌지요. 이 탓에 개천은 비만 오면 넘쳐흘러 한양의 백성들에게 큰 피해를 줬습니다. 이에 영조는 개천때문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백성들과 직접 소통하고, 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아름다운 사람 - 김민기 어두운 빛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으으음 아름다운 그 이름 사람이어라 세찬 바람 불어오면 벌판에 한 아이 달려가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 안으면 으으음 아름다운 그 이름 사람이어라 새하얀 눈 내려오면 산위에 한 아이 우뚝 서있네 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 으으음 아름다운 그 이름 사람이어라 그 이름 아름다운 사람이어라 지난해 7월 21일 작곡가면서 가수인 김민기가 일흔세 해 삶을 내려놓고 우리 곁을 떠났다. 조승우, 설경구, 황정민 등 유명 영화배우와 김광석 같은 전설적인 가수를 키워낸 김민기는 대학로 ‘학전’을 운영하면서 늘 ‘뒷것’을 자처했다. 그는 연극계에 처음 계약서를 도입하고 수입을 공개한 다음 일일이 배우들과 제작진들에게 고마움을 담아 월급을 주었음은 물론 배고팠던 배우들의 밥을 꼭 챙겼다는데 배우들은 앞것, 자기는 앞것의 뒤를 채워주는 뒷것임을 늘 강조했다. 여기 그 김민기가 만들고 노래한 또 하나의 아름다운 노래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 김민기는 “어두운 빛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네”라고 음울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