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우리가 사는 동네의 중심이라고 할 연신내 네거리에 가면 마트가 있다. 마침 집안 정리에 필요한 작은 물품들이 필요한 아내를 따라서 마트에 갔다가 2층에 있는 시계가게를 보게 되었다. 시간이 일러서인지 주인은 나오지 않고 크고 작은 각종 시계가 수없이 걸려 있다. 모양은 대개가 둥근 것이지만 크기가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색깔도 다양하다. 그런데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시계들이 같은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 거의 없다는 거다. 12시를 가리키는 것들이 좀 있지만 대개는 저마다 긴 바늘, 작은 바늘 모두 제 멋대로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여기서는 시간이 서로 다른 게 아닌가? 이 시계들은 두 가지를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같다. 모든 시계들이 일정한 시간을 지키며 가야하겠지만 실제로는 각자의 시간대로 가는 것이구나 하는 점이 첫째이고 또 시계의 크기에 따라서 시간의 의미가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같은 시계의 운명을 타고 났지만 시간이 맞추어지는 시점에 따라 각자 시작을 달리하고, 시계에 따라서 아무리 정확하게 시간이 가도록 해 놓았다고 하지만 저마다 점점 차이가 벌어져 다른 시간을 가리키게 된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대낮 햇살이 하도 뜨거워서 하는 수 없이 가게에 들어가 부채를 찾으니 중국산 부채가 있다. 3천5백원이니까 그리 비싸다고는 할 수 없는 이 부채는 중국 비단을 앞 뒤로 붙이고 거기에 그림과 글씨를 인쇄해놓은 것인데, 거기에 한시(漢詩)가 하나 실려있다. 시의 제목은 拈花微笑图(염화미소도)이고 시를 지은 사람은 唐寅(당인)으로 되어 있다. "꽃을 들고 미소를 짓고 있는 그림"이라는 뜻일 터인데 무슨 시인가 읽어보았다. 昨夜海棠初着雨, 數朵輕盈嬌欲語。어젯밤 비가 내린 뒤 해당화 몇 송이가 피어올랐는데 佳人曉起出蘭房, 折來對鏡比红妝。아침 일찍 미인이 꺾어와 거울에 대고 서로 비교하며 問郎花好奴顔好, 郎道不如花窈窕。신랑에게 누가 더 이쁘냐 물으니 꽃이 더 이쁘단다 佳人見語發嬌嗔, 不信死花勝活人。이 말에 화가 난 미인, 죽은 꽃이 사람보다 어찌 이쁜가 將花揉碎擲郎前, 請郎今夜伴花眠。꽃을 신랑 발 앞에 던져 밟으며 오늘밤 꽃이랑 자라고 하네 뭐 대충 이런 뜻이다. 그런대로 재미있는 시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어디서 비슷한 것을 본 것 같다. 그것도 우리나라 시인이 쓴 듯하다. 머리를 짜내어 보니 고려시대 위대한 시인이었던 이규보의 시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우리나라의 봄과 여름이 좋은 것은 푸르름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계절적인 특성상 나무들은 가을이 되면 잎이 떨어지는 활엽수가 많고 침엽수도 낙엽송의 경우는 잎이 떨어지니까 가을을 지나 겨울 이후 이른 봄까지는 갈색의 나뭇가지만 보아야 한다는 아쉬움이 많은데 5월이 지나면 대부분 나무에 잎이 돌아오니 산과 들이 온통 푸르게 변하여 눈에도 좋고 마음에도 여간 싱그러운 것이 아니다. 특히나 요즈음 도시 주변이건 어디건 조경을 잘하고 나무를 잘 가꿔 그 속에 사는 재미를 실감하게 된다. 서설이 길어졌는데 새로 이사 간 북한산 자락에서 구파발역까지 약 2킬로미터는 산에서 내려오는 실개천이 흐른다. 이 물을 따라 양쪽으로 아름다운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어 이곳 주민들뿐 아니라 북한산을 오르내리려는 분들도 즐겨 산책길로 이용하고 있다. 맑은 물이 졸졸 흘러내리고 곳곳에 수초가 자라고 있고 군데군데 놓인 바위 근처로 몰고기들이 헤엄을 치고 그 작은 물고기들을 노려 오리가 헤엄치고 해오라비가 날아오는 이 실개천은 도심에서 보기 힘든 선경임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며칠 전 그 실개천 옆에 조성된 조그만 휴식공간에 앉아 쉬다가 무심코 주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자네는 지겹지도 않아서 평생을 두고 수학만을 그렇게 연구하는가? 자네가 하는 그 일이 인류 사회에 어떤 공헌을 하고 있단 말인가?” 이럴 때마다 그 수학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제비꽃은 제비꽃답게 피면 그만이지, 제비꽃이 핌으로써 봄의 들녘에 어떤 영양을 끼칠 것인가, 그건 제비꽃으로선 알 바가 아니라네.” 법정 스님의 저서 '서 있는 사람들'에 나오는 글이다. 세상이 어지럽다. 지겨운 코로나는 언제 우리 곁을 떠나려나? 이런 때에 제비꽃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걱정하지 말고 그저 자기 일이나 또박또박 잘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문득 고개를 드니 오후의 햇살이 길게 창문을 타고 들어온다. 물끄러미, 아무 생각 없이, 오랫동안 그 햇살을 본다. 그러다가 햇살을 말한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떠올랐다. 小窓多明 使我久坐(소창다명 사아구좌) 뜻이야 뭐 “작은 창으로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니, 그것을 보느라 한참 앉아있네” 정도일 것인데 원래 뜻글자인 한자를 상형문자화 해서 표현하는 추사의 솜씨가 기가 막힌다. 창(窓)을 격자무늬의 칸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갈수록 시름이 많은 세상이다. 해가 바뀌면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는 퇴출될 듯하다가 다시 기승을 부린다. 이번엔 북에 사는 정치인들이 자기들의 핵문제는 팽개치고 교류 안한다고 남에 짜증을 낸다, 세상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집에 묶이고 왕래를 안 하니 돈이 돌지 않아 모두가 죽겠다고 아우성이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말라버린 돈을 돌리려 해도 제도에 가로막혀 끙끙대고 있다. 이런 세상에 시름을 잊고 좀 마음 편히 사는 방법은 없는가? 이 가운데 시름없는 것은 어부의 생애로다 일엽편주를 만경창파에 띄워놓고 인간세상 다 잊었으니 날 가는 줄 알겠는가 1549년 6월 유두(流頭) 사흘 뒤에 귀밑털에 서리가 내린 노인은 낙동강의 지류인 분강(汾江)의 고깃배 뱃전에서 어부가 보는 세상을 노래하는 시조를 선보인다. 이 시조를 만든 이는 당시 83세의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1467~1555). 서른둘에 벼슬길에 올라 중앙과 지방의 온갖 요직을 거치며 유능한 관리로서 인정을 받고 명성을 쌓았지만, 중앙 정계의 소용돌이를 피해 고향으로 내려오려는 소망은 일흔넷이 되어서야, 그것도 겨우 병을 핑계로 허락될 수 있었다. 그만큼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금강산과 백두산에 관한 전문사진작가이며 영상작가이신 이정수 님이 새로 이사한 집을 위해서라며 액자에 넣은 사진을 선물로 가지고 오셨다. 사진을 보니 금강산 천화대의 모습이다. 구름이 영봉들을 휘감아 오르는 신령한 풍경사진인데 보는 사람들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멋진 선경이다. 지금 금강산에 가면 딱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금강산 관광이 끊어진 지 10년이 넘어 가볼 수가 없으니, 사진으로라도 이렇게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전 세계 아무리 좋은 경치도 구경하러 갈 수가 없으니, 옛날 교통편이 힘들어 천하의 명승이라도 구경을 하지 못한 선인들의 처지와 다를 것이 없다. 우리 선조들이 실제로 가보지도 못하면서도 가장 많이 애송한 시가 당나라의 시인 두보(杜甫)의 '등악양루(登岳陽樓)'라는 시이다. 사실 옛날 악양루를 가서 볼 우리 선인들이 몇 명이나 있었겠는가? 얼마 전까지야 숱하게 우리가 관광으로 다녀왔지만, 이제는 못 가보는 그 악양루의 경치와 그것을 보는 시인의 심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昔聞洞庭水러니 今上岳陽樓라. 吳楚東南坼이요, 乾坤이 日夜浮라. 고등학교 때 문과반에서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다시 장미의 계절이 돌아왔구나. 요즈음 서울 등 대도시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장미이다. 장미는 장미이되, 땅에서 나무처럼 크는 것이 아니라 긴 줄기가 무한히 뻗어가는 넝쿨장미(rambling rose)다. 어릴 때 많이 듣던 낫 킹 콜의 노래 그대로다. 넝쿨장미야, 넝쿨장미야 왜 너는 넝쿨이 지는 건지 아무도 모르네 거친 세파에 겪으며 너는 자랐지 누가 넝쿨장미에 가까이 가 주겠는가? Ramblin' rose, ramblin' rose Why you ramble, no one knows Wild and wind-blown, that's how you've grown Who can cling to a ramblin' rose? 장미는 원래 화단에 길고 넓게 심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우리나라 도회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담장에 심어져 넝쿨로 뻗어가면서 담을 대신한다. 꽃이 피는 오뉴월에는 보기도 좋을뿐더러 가시 때문에 자연스럽게 방범 효과도 높지 않겠는가? 그러다 보니 도회지에 가장 흔한 식물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역시 가시이다. 꽃의 여왕, 계절의 여왕이란 직위를 부여받았으면서도 장미는 잎 뒤에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한 달 가까이 걸린 이삿짐 정리가 끝나자 비로소 둘레길 숲에도 발길이 가능했다. 홀가분한 마음이다. 사실은 부엌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뻐꾸기의 소리로 비로소 귀가 열린 것이다. 어 뻐꾸기구나. 너 어디 있었는가? 그 뻐꾸기 소리를 따라 둘레길 숲속으로 들어가 본다. 문득 나는 어느새 영국의 시인 워즈워스가 되어버린다. 해가 벌써 지고 나니 별들이 두셋씩 나와 있네 작은 새들은 숲속에서 나무에서 여전히 지저귀고 있구나 아 저기 뻐꾸기, 그리고 개똥지빠귀들 저 멀리서 바람도 불어오고 물 솟아 흐르는 소리도... 뻐꾸기 목소리는 왕의 그것인양 빈 하늘을 울려 퍼지네 The sun has long been set, The stars are out by twos and threes, The little birds are piping yet Among the bushes and trees; There's a cuckoo, and one or two thrushes, And a far-off wind that rushes, And a sound of water that gushes, And the cuckoo's sovereign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현대인들은 마음이 바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 써 놓은 수필이건 시이건 소설이건 빨리 결론이 뭔가, 뭐가 가장 중요한가를 파악하는 능력이 우선시 된다. 새잎이 나기 시작하는 4월에는 ‘사월은 잔인한 달’이란 어느 외국 시인의 글귀만을 인용하는 것이 그것이고 5월이 되면 영문학자인 피천득 선생님의 <오월>이란 수필을 들먹거리면서도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라는 구절만을 반복해서 듣고 인용하는 것으로 오월을 보낸다. 그런데 오월을 신록이라는 개념으로만 보면 오월의 진정한 맛을 모르듯이 피천득 선생님의 <오월>을 첫 구절에만 머물고 더는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면 그 수필과 수필에 담긴 진정한 맛을 모르고 넘어가는 것이 된다. 그만큼 우리의 삶을 겉핥기식으로 마구 보내는 것이 된다는 뜻이다. 그 <오월>이란 수필을 조금 더 읽어보자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있는 비취가락이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친구가 복권을 산다고 하기에 옆에 서 있다가 나도 모르게 2천원을 꺼내어 그 친구보고 사달라고 했다. 나는 복권에 당첨되는 그런 행운은 없는 사람이기에, 평소 돈을 잘 만지고 돈도 잘 버는 친구의 손기운을 받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왜 이럴까? 무엇때문에 되지도 않을 일을 기대하고 있는가? 당첨이 되어 일확천금을 하면 그것을 감당이나 할 수 있는가? 그런데도 왜 복권에 손을 대는가? 한 참 전에 휴일 아침에 집 근처 숲속을 산책하던 적이 있었다. 한 시간 남짓 걸었기에 허리가 조금 아파서 허리도 펼 겸 잠시 길옆에 주저앉아 눈에 띄는 클로버 덤불 속을 눈으로 훑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있었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네 개의 잎이 달린 클로버가 있었다. 하나를 찾아서 집사람에게 주니 집사람도 자기도 찾았다며 즐거워한다. 다시 보니 그 옆에 또 있었다. 그 옆에도 또. 이런 추세라면 더 찾을 수 있겠지만 나는 거기서 그만하자고 제의했다. 우리 식구가 4명인데 더 찾아서 무엇하랴. ‘행운의 네 잎 클로버도 너무 많으면 행운이 아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었다. 프로 바둑기사가운데 묘수를 잘 두는 분이 있었다. 과거 7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