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국화의 향기가 은은하게 다가오는 시절이다. 국화의 색이 눈을 포근하게 만져주는 계절이다. 국화의 꽃술이 우리 마음을 보드랍게 감싸주는 때다. 지난 월요일은 음력 9월9일, 중국인들이 중양절이라고 부르는, 우리에게는 잊힌 계절의 분수령이다. 중국인들은 9라는 숫자를 매우 중요시하고 좋아해서, 9가 두 번 겹치는 9월 9일을 중양절(重陽節)이라고 하여 일찌기 당나라 때부터 이 날을 축하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한가위를 풍성하게 즐기고는 3주 뒤쯤 되는 중양절은 지나치지만, 중국 사람들은 중양절인 9월 9일엔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셨다는 전설이 있다. 일찍이 비장방(費長房)이라는 사람이 그의 제자였던 여남의 환경(桓景)에게 "9월 9일 자네의 집에 큰 재난이 닥칠 것이니 빨리 집으로 돌아가 집안사람들에게 붉은 주머니에 수유(茱萸)를 넣어 어깨에 메고 높은 산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면 이 재난을 면할 것이다."라고 하자 환경이 그 말대로 하였다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과연 집안의 개, 돼지, 닭, 양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날에 가슴에 수유 가지를 꽂고 높은 산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는 습관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을 가리키는 말로 ‘선비’라는 말 이상은 없다고 하겠다. 행실이 바르고 근검절약하며 재물을 밝히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고 임금에 대해서는 충성을 하되 바른 말을 할 때에는 목숨을 내걸고 하고 자신이 공부한 바른 이치를 세상에 펴서 모든 이들이 고루 공평하게 잘 살도록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물론 공자가 처음 만들어 낸 것이다.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 사서(四書)와 《주역(周易 또은 易經)》, 《서경(書經)》, 《예기(禮記)》 등 3경을 포함해 이른바 사서삼경(四書三經) 가운데서 《예기(禮記)》라는 책은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지키고 따라야 할 예법에 대해 공자의 말을 빌어 길고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 「유행(儒行)」편이 나온다. 유(儒)라는 단어를 ‘선비’라고 풀 수 있다면 유교라는 것은 선비가 되어 선비의 도를 행하는 길을 열어주는 가르침 혹은 종교라 할 수 있을 것인데 거기서 선비의 길을 아주 소상하게 일러주고 있다. “선비는 오늘날 세상을 살면서도 옛 사람들을 되돌아봅니다. 이 세상에서 행하여서 후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9월이 하순으로 접어들면서 뜨겁던 여름 기운이 서늘한 가을 기운에 밀려 확실히 서늘하게 내려간 것은 물론 바람의 방향이 달라졌다. 옛날 동양에서는 사방팔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대해 각각 이름을 붙이고 구분을 했단다. 이른바 팔풍(八風)이다. 일 년 365일은 대략 45일을 기준으로 철이 바뀐다고 보겠는데 입춘에는 북동풍이 분다고 보고 이를 조풍(條風)이라고 했고 45일 후인 춘분에는 동풍이 부는데 이를 명서풍(明庶風)이라고 불렀다. 춘분 후 45일이 지나면 입하가 되고 이때는 동남풍인 청명풍(淸明風)이 불어온다. 또 45일이 지나면 하지인데 이때는 마파람이라고 하는 경풍(景風)이 남쪽에서 불어온다. 다시 45일이 지나면 입추가 되니 이때는 서늘한 바람인 양풍(凉風)이 서남쪽에서 불어온다. 다시 45일이 지나면 추분이 되는데 이때는 창합풍(閶闔風)이 서쪽에서부터 불어온다고 했다. 창(閶)은 큰 문이고 합(闔)은 작은 문짝이니 아마도 이제는 찬바람에 문을 닫아야 한다는 뜻일 게다. 추분 이후 45일이 되는 입동에는 서북쪽에서부터 부주풍(不周風)이 불어오고 다시 45일 후인 동지에는 북쪽에서부터 광막풍(廣莫風)이 불어온다고 했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북쪽의 이민족 여진족의 금(金)나라에 의해 송(宋)나라가 망하고 남은 세력이 다시 지금의 항주로 근거지를 옮겨 다시 송나라(역사에서는 남송이라고 부름)를 세운 무렵에 태어난 주희(朱熹 1130~1200)는 왜 나라가 이처럼 이민족의 침입에 시달리게 됐는가를 깊이 생각하다가 그것이 불교와 도교 때문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위진(魏晋)남북조와 수(隋),당(唐)시대를 거치면서 유학은 침체되고 불교(佛敎)와 도가(道家)가 유학을 압도하게 되는데, 이들은 군신(君臣) 부자(父子)라는 사회적 관계를 부정하고 오로지 마음의 평안을 구하고자 하며, 도덕이라는 추상적인 개념만을 강조하다 보니 결국 인의까지도 망가지므로 해서 사회의 기강이 무너지고 천하가 어지러워진다는 생각이었다. 한때 불교와 노자의 학문을 열심히 공부했으나 24살 이후 유학만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유학에 복귀한 주희는 11세기 북송(北宋)의 대표적인 학자 주돈이와 정호ㆍ정이 형제 등의 학문을 이어받아 새로운 유학을 연다. 그 유학은 과거처럼 경전의 해석을 중요시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며, 경전과 성현의 말씀을 다시 새겨 우주의 원리를 새롭게 규명하고, 이를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소쇄원(瀟灑園)이란 이름은 이제는 유명해서,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거기를 찾는 사람들은 말로만 듣던 것과는 달리 규모가 너무 작다고 실망을 하고 돌아서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분은 명승 제40호 소쇄원에 대한 진정한 감상을 하지 못하고 돌아 나오는 것이 된다. 바로 우리나라의 민간 정원문화를 대표하는 걸작으로서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 작은 계곡을 따라 만들어진 정원이다. 그런데 단순히 정원으로만 본다면 다소 작아 보이지만 이곳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모여서 자연을 벗하며 인생의 원리를 탐구하고 인간의 멋진 세계를 찾아보려는 만남의 장이었다. 1520년대 후반에 호를 소쇄옹(瀟灑翁)이라고 하는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이 정원을 만든 이후 수많은 선비들이 이곳을 찾아 계곡과 물과 바람과 나무와 자연을 벗하며 멋진 경계를 시로 읊기도 했다. 소쇄원에 들어서면 계곡을 따라 먼저 광풍각(光風閣)이 있고 그 위에 제월당(霽月堂)이란 조그만 집이 있다. 광풍각은 소쇄원 건물 가운데 가장 낮은 자리에 지은 것으로 너럭바위로 흘러내린 물이 십장폭포로 떨어지는 소리를 제대로 듣기 위한 것이고, 제월당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여러분은 청량산을 아시는가?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돼 있지만, 대규모 위락시설이나 숙박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산이 아주 크거나 높은 것도 아니다. 그 산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나라에서 깊은 두메산골로 알려진 경북 봉화에 있다. 봉화하면 춘양목으로 유명한데, 그만큼 산이 깊어서 우리나라 전래의 소나무 가운데 최고의 것들이 남아있는 셈이고. 그만큼 깊은 두메산골이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도 청량산을 아신다면 당신은 산 또은 절과 그 분위기, 역사를 웬만큼 좋아하는 분이 아닐 수가 없다 . 최근 이 청량산이 뉴스를 탔다. 바로 지난 달 중순 경북 봉화군이 지난 5월부터 청량산 안에 있는 김생암지라는 한 굴을 발굴조사했는데, 230㎡에 달하는 이 굴 안, 자연암반을 굴착해 만들어진 바위그늘 아래에 인공축대와 기단이 조성되어 있었음을 파악했다는 것이다. 이 김생암지는 신라말의 명필 김생이 머물렀다는 전설이 있는 곳인데 과연 그 안에서 토기조각, 자기조각 기와조각 등 고려시대 전기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었고, 특히 ‘淸凉 (청량)’과 ‘山寺 (산사)’라는 글씨가 새겨진 기와를 비롯해 ‘金生寺 (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어디까지 가는 찬데요?」 「은비령으로 가는 찹니다」 「은비령요?」 사내는 그런 지명이 여기 어디 있느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여기 살아도 모르지요? 은비령이라고.」 「처음 듣는데요, 은비령이란 얘긴.」 「한계령에서 가리산으로 가는 길 말입니다.」 「아, 거기 우풍재 내려가는 길 말이군요. 한계령 꼭대기에서 다시 인제 쪽으로 내려가는 샛길 말이지요...」 소설의 주인공은 이렇게 추억이 어린 은비령을 찾고 있었다. 이순원의 소설 《은비령》이다. <은비령>, 신비롭게 깊이 감추어진 땅이라는 뜻의 은비령, 지도에도 없는 이름이니 어찌 그 곳이 거기인줄을 알았으랴? 그러나 역시 운명의 힘은 무서운 것, 나는 무엇에 홀린 듯,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은비령에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휴가를 받기가 어려워 계곡에서의 피서를 포기하고 집에 박혀 솔잎향을 안주로 하고 솔바람을 타고 오는 거문고 소리를 술인양 들어마시려던 처량한 이 사람은, 사상 최대의 구조개편입네, 그야말로 혁명입네, 하며 회사 내의 술렁거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일약 강원도를 향해 달렸다. "이제 취재부서의 팀장으로 나가면 좀처럼 마음 놓고 쉴 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사상 최장의 장마', '사상 최악의 무더위'... 매년 여름이면 우리는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한다. 올 여름엔 장마도 있었고 무더위는 진행형이라거 여름이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난 늘 사람들이 "정말 올 여름엔 왜 이러는거야?"라던가 "지구가 미쳤어!" 라던가 "봄 가을이 없어지니 여름 겨울만 너무 길어 힘드네." 라던가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그냥 푸념으로만 여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 사람들이란 존재는 다소는 지난 일에 대해서는 무뎌지고 당장 눈 앞에 펼쳐지는 현상은 마치 생전 처음 이 세상이 오고 있는 듯 얘기하는 것이 조금은 경망스럽지 않느냐는 생각에서 기인된 마음이라고 할까? 그렇지만 더운 것은 사실이었다. 더운 여름에 어쨌든 출근하는 사람들은 사무실이 있어서 그 속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살았는데 집에서 여름을 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더위와 직접 맞대고 사는 수 밖에 없는 지라 더욱 더위가 몸으로 느껴진다. 장마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더위가 없었던 것이 아님에, 나도 모르게 내 손이 책상 서랍을 열고 그 안에 넣어두었던 부채를 찾는다. 하로동선(夏爐冬扇)이 아니라 하선동로(夏扇冬爐) 현상이라고나 할까? 이제 에어컨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집집마다 더위에 지쳐 터져 나오는 신음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이럴 때에 더위를 피하는 방법으로는 시원한 계곡 물에 발을 담근 채로 갖고 간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는 것이 으뜸일 것이다. “복더위 찌는 날에 맑은 계곡 찾아가 옷 벗어 나무에 걸고 풍입송 노래하며 옥 같은 물에 이 한 몸 먼지 씻어냄이 어떠리.” ‘해동가요’를 펴낸 조선 영조 때 가객 김수장의 시조다. 그러나 '복날에 시내나 강에서 목욕을 하면 몸이 여윈다.'는 속설이 있어서 물에 들어가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 만큼 뭔가 다른 방도를 찾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생각나는 것이 시원한 바람을 쐬는 것이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무더위가 극심하면 바람이 잘 부는 나무그늘에 갔다고 한다. 옛날에는 활엽수가 우거진 곳보다는 침엽수, 곧 소나무가 있는 곳이 더 바람을 잘 전해주어 시원했던 것 같다. 그런 곳에서 나오는 시원한 바람, 곧 소나무 숲에서 솔잎사이로 부는 바람이 이른바 ‘풍입송(風入松)’이다. 옛 사람들은 이러한 풍입송의 경지를 무척 즐겼던 것 같다. 앞머리 김수장의 시조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풍입송이란 단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다이(영주)의 장례식이 끝난 어느 날이었다. 아수친마님(박씨부인)에게 지출장부를 들고 왔던 안현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수친의 얼굴이 굳어졌다. “박연폭포가 떨어지던 고모못을 잊었습니까? 이렇게 가을바람이 불면 젊은 부부들이 채련가(採蓮歌)를 부르며 연밥을 따지 않았습니까? 연꽃은 붉고, 연잎은 넓적하고 연밥은 많고 많았지요. 나는 노를 잡고 당신은 소쿠리를 들고 연잎 속으로 배를 저어 가지 않았습니까?”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요?” “저는 아직도 돌아오는 돛대에 어리던 그 달빛이 눈에 선합니다. 아내가 부르던 채련가도 전부 기억할 수 있습니다. 아내는 예뻤고 노랫소리도 곱고 빼어났지요. 요즈음도 잠자리에 누우면 그 노래가 귓전에 들립니다. 그러면 연뿌리 끊기듯 애간장이 끓고 연밥알인양 눈물이 방울방울 흐릅니다.” 왜 이 구절이 다시 생각나는 것일까? 경남 함안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연꽃 씨앗이 700년 만에 꽃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생각난 것은 소설가 이인화가 쓴 《시인의 별(부제:채련가, 주석 일곱 개)》라는 소설의 이 구절이었다. 2000년 제24회 이상문학상의 당선작이다.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