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사람들은 즐겨 산으로 올라간다. 산에 오르는 길옆에는 작은 도랑이 있고 거기에는 지난 가을 노랗게 말라버린 키가 큰 풀들이 여전히 가을의 뒷자락 색깔을 거둬가지 못하고 있다. 봄은 한겨울 게을러서 집 안에 있는 것만을 좋아하던 사람들을 불러내는 힘이 있는데 그 봄으로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는 조금 시간이 필요하다. 산행을 나서보면 이곳저곳에 이미 허연 솜털을 날려버린 억새들이 지난 가을처럼 손을 흔들지는 않고 그저 좀 뻣뻣하게 서 있다. 따라서 이럴 때에 지난 가을에 무반사적으로 나오던 노래와 노랫말 "아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는 의미가 없어진다. 그렇더라도 그 노랫말에 곧바로 나오는 질문은 유효하다. "으악새가 뭐예요? 무슨 새길래 슬피 우는가요?" 여기에 일행 중에서 제법 유식한 분이 목소리를 높인다. "아니 아직 그것도 몰라? 으악새는 새가 아니야. 저기 저 억새풀을 사투리로 으악새라고 하는 거야." 이 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어차피 저 풀들은 곧 잘리거나 새로 나오는 푸른 줄기에 밟힐 운명이긴 하지만... 그런데 이처럼 우리의 상식이 되어버린 으악새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난주에 눈과 추위 실종신고서를 내려고 했더니 하늘이 입춘에 맞춰 추위를 보내준다. 이 정도 추위도 없이 올겨울을 거저먹었다는 비난을 듣기가 괴로우셨던 모양이다. 중국발 무슨 바이러스가 코로나 전염되는지 입으로나 전염되는지 갑자기 우리나라에도 감당하기 어려운 소용돌이를 몰고 오고 있는데 이런 때에 입춘에 맞춰 오는 추위가 좋은 일인지, 안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추위가 옴으로써 잊어버릴 듯하다가 생각나는 꽃이 있다. 바로 봄이 오는 것을 가장 먼저 알려준다는 매화다. 梅 매화 얼음 뼈 옥 같은 뺨. 섣달 다 가고 봄 오려 하는데 북쪽 아직 춥건만 남쪽 가지 꽃 피웠네. 안개 아침엔 빛 가리고 달 저녁엔 그림자 배회하니 찬 꽃술 비스듬히 대숲 넘나고 暗香1은 날아서 금 술잔에 드누나. 흰 떨기 추워 떠는 모습 안쓰럽더니 바람에 날려 綠笞2에 지니 애석하도다. 굳은 절개 맑은 선비 견줄만 함 이로 아니 우뚝함 말할진대 어찌 보통의 사람이라 하리. 홀로 있음 사랑해도 시인이 보러감은 용납하지만 들렘을 미워하여 狂蝶3이 찾아옴은 허락치 않는도다. 묻노라, 廟堂4에 올라 높은 정승의 지위에 뽑히는 것이 어찌 옛날 林逋5 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상하다. 24절기로 보면 양력으로 분명히 지난해 12월에 소설 대설 지났고 올해 들어서는 소한 대한이 다 지났는데 겨울의 두 단골손님이 영 오지를 않는다. 하나는 눈이고 다른 하나는 추위이다. 눈은커녕 대한을 지나면서 비가 내린다. 그래서 이 두 손님에 대한 실종신고서를 작성하려 한다. 그런데 이 신고서는 어디다 내야 하는가? 눈이 오지 않으면 청소부들이 편할 것이요, 추위가 오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웃들이 추위에 대한 비용지출이 줄어들어 편하고 좋은 것은 사실이겠지만 우리 사회라는 것을 어느 부분만 가지고 따지기보다는 보다 큰 전체를 봐야한다면 겨울은 겨울다워야 사회 전체가 그에 맞게 돌아간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이고 보면 겨울이 겨울 다우려면 눈이 오고 추위가 봐야 하는데 그 두 손님이 몇 달째 실종인 것이다. 눈이 오지 않으니 눈에 관한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일화도 빛을 잃는다. 중국 동진(東晉) 때의 유명한 재상 사안(謝安)의 조카딸에 사도온(謝道韞)이 있었다. 사도온(謝道韞)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배움을 좋아했는데 특히 문장에 능했다고 한다. 사도온이 14살 되던 해 겨울, 밤사이 한바탕 서설(瑞雪)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곧 설이다. 2020년 경자년 새해가 밝은지 한 달이 다 돼 가지만 실제로 12간지 60갑자를 따지는 것은 음력으로 하니 설이 지나야 경자년 쥐띠 해가 시작되는 것으로 봐야 옳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기해년 돼지띠인 셈이다. 말하자면 새해라고 하면서 2020년이 되었지만, 띠로 본 새해는 아직 오지 않은 셈이니 조금 복잡하고 불편하다. 이웃나라 일본은 일찌감치 음력을 폐지하고 모든 설을 양력으로 쇠니 그런 고민이 없다. 그것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하여간 새해를 맞는 헷갈림은 여전히 있는 것이다. 우리가 새해를 쇠는 습관은 언제부터일까? "진덕여왕(眞德女王) 5년(636) 정월 초하루에 왕이 백관(百官)의 조하(朝賀, 경축일에 신하들이 조정에 나아가 임금에게 하례하던 일)를 받았다. 새해를 축하하는 예법이 이때부터 비롯되었다." 고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에 기록이 되어있는 것을 보면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그 전에 고구려나 백제에서도 새해를 쇴을 것이지만 기록에 없으니 그저 신라 것을 칠 수밖에. 예전 조선시대에는 설날이 되면 일주일을 쉬는 것으로 되어있었다고 한다. 조상에 대한 예절을 중요시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거기서 뭘 하고 있나요?" 어린왕자가 술꾼에게 말했어요. 그 술꾼은 빈 병 한 무더기와 술이 가득 찬 병 한 무더기를 앞에 놓고 말없이 앉아 있었어요. "술을 마시고 있지." 그가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했어요. "술을 왜 마셔요?" 어린왕자가 물었어요. "잊기 위해서야." "무엇을요?" 어린왕자는 어쩐지 측은한 생각이 들어서 물었어요. “내가 부끄러운 놈이란 걸 잊기 위해서야." 술꾼은 고개를 떨어뜨리며 고백했어요. "뭐가 부끄러운데요?" 어린왕자는 그를 도와주고 싶었어요. "술 마신다는 게 부끄러워!" 그는 말을 끝내고 입을 꼭 다물어 버렸어요. 프랑스의 작가 셍 떽쥐베리의 소설 《어린왕자》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술꾼들이 산다는 세 번째 별나라의 한 장면이다. 정말 술꾼들은 왜 술을 마시는지도 모르고 마시는 것 같다. 우리나라만 그런 줄 알았는데, 프랑스 사람들도 그랬음을 알게 된 것으로 다소 위안이 될까? 사람이 살다 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근심도 많아진다. 그래서 접하게 되는 것이 곧 술인데, 술을 하면 다소 그런 근심이 일시적으로 잊어버리게 되는 효과가 있기에 예로부터 사람들은 술을 망우물(忘憂物) 곧 근심을 잊게 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중국 동진(東晋)의 정치가 사안(謝安, 320∼385)은 국난을 구해낸 명재상으로 유명한데, 정치에 나오기 전에 동산(東山)에 은거하고 있다가 조정의 부름을 거듭 받고 할 수 없이 나와서 환온(桓溫, 중국 오호십육국시대 동진-東晉의 정치가)의 사마(司馬, 중국 주(周)나라 때 벼슬)가 됐다. 당시에 어떤 사람이 환온에게 약을 보냈는데, 그중에 원지(遠志)라는 약초가 있었다. 환온이 그 약초를 들고 사안에게 묻기를 “이 약초의 다른 이름이 소초(小草)인데 어찌 하나의 물건에 두 가지 이름이 있는가” 하자, 사안이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동석한 학륭(郝隆)이라는 사람이 대답하기를 “그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산속에 있을 때는 원지라고 하고 산을 나오면 소초라고 합니다” 하자, 사안이 몹시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이후 원지 혹은 소초라는 말은 명성은 요란하지만, 실제 일을 하는 면에서는 보잘 것 없는 사람에 대해서 놀리는 말이 됐다.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조선조 중기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은 출사하기 전에 고향인 안동 땅에 원지정사(遠志精舍)라는 작은 건물을 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사람마다 모두 생일이 둘이라고 한다. 한 번은 자기의 탄생을 기리는 생일이며 또 한 번은 해마다 맞는 새해의 탄생이란다. 누구도 정월 초하루를 무심히 보내지는 않으며 여기에는 임금이나 구두 수선공이나 차이가 없다고 영국의 수필가 찰스 램은 말한다. 말하자면 이날은 인류 공동의 생일이라는 것이다. 새해를 맞기 위해 서양에서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동양에서도 제야의 종이 울린다. 그 종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은 지난 열두 달이란 기간 동안 내가 행했거나 당했거나, 이루었거나 등한히 한 모든 일을 순식간에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느끼는 진솔한 감정은 지난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 뭔가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같은 것이리라. “저물어 가는 한 해는, 구렁에 들어가는 뱀과 같아라. 긴 비늘 몸체가 반 넘어 들어갔으니, 가는 뜻을 그 누가 막으랴. 더구나 꼬리마저 말고 있으니 애써 봐야 소용없는 것을. 아이들은 잠들지 않으려고, 밤을 새며 웃고 떠드네. 새벽닭아 부디 울지 말아라. 제야의 북도 울리지 말아라.” - 소식(蘇軾)), '수세(守歲)' 중국 송(宋)나라의 시인 동파(東坡) 소식(蘇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이다. 다들 시간의 빠름과 덧없음을 한숨으로 토해내고 있다. 올 한 해를 너무나 빨리 보냈다는 뜻이리라. 2019년, 올해 우리는 3.1만세운동 100돌, 임시정부 세움 100돌을 맞아 그 의미를 많이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올해가 기미년이란 착각에 빠질 정도였는데 가만히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기해년 황금돼지의 해였다. 이 한 해 나라 전체로 보면 황금돼지의 후광을 조금도 받지 못한 듯 곳곳에서 경제가 안 돌아가고 생산과 소비가 엉망이라는 비명을 들어야 했다. 경제가 그리된 데 대한 원인 진단 또한 서로 달랐고, 특히나 정치적인 소용돌이가 너무 크게 일어 우리가 기대했던 만큼 편안하고 윤택한 한 해가 아니었음은 누구도 비난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너나 나나 모두 후회 일색이지만 그 후회의 이면을 보면 우리가 우리 앞에 지나가는 이 시간에 대해서 주인이 아니고 종이나 노예가 되어, 우리가 시간의 흐름에 맥없이 끌려간 게 아니냐는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반성도 하게 된다. 그것은 언젠가 ‘걷기 예찬’이라는 책의 저자 다비드 르 브르통이 지적한 대로 우리들의 시간을 잘 쓰지 못한 것 아니냐는 점에서 출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장생(張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집을 지으려는 생각에 산에 들어가 재목을 찾아보았는데, 빽빽이 들어찬 나무들 모두가 구불구불하게 비틀어져 용도에 맞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산 속 무덤가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앞에서 보아도 곧바르고 왼쪽에서 보아도 쭉 뻗었으며 오른쪽에서 보아도 곧아 보였다. 그래서 '좋은 재목이구나'라고 생각하고는 도끼를 들고 그쪽으로 가서 뒤에서 살펴보니 슬쩍 구부러져 쓸 수 없는 나무였다. 이에 도끼를 내던지고 탄식한다. “아, 재목이 될 나무는 얼른 보아도 쉽게 알 수가 있어 고르기가 쉬운 법인데, 이 나무의 경우는 내가 세 번이나 다른 쪽에서 살폈어도 쓸모없는 나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니 용모를 그럴듯하게 꾸미면서 속마음을 숨기고 있는 사람의 경우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 말을 들어 보면 조리가 정연하고 그 용모를 살펴보면 선량하게만 여겨지며 사소한 행동을 관찰해보아도 삼가며 몸을 단속하고 있으니 영락없이 군자의 모습이라고 할 것인데, 급기야 큰 변고를 당해 절개를 지켜야 할 때에 가서는 본래의 정체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마니, 나라가 결딴나고 마는 것은 늘 이런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복잡한 도심을 떠나서 북한산자락으로 이사 온 지도 7년이 지나 벌써 8년째다. 우리집에서 언덕을 넘어서면 한옥마을이다. 이사 올 때에 허허벌판이었는데 2015년부터 한두 채 한옥이 시범적으로 들어서더니 지금은 한옥마을이 한옥 양옥으로 꽉 찼다. 사진을 비교해보면 그 변화에 눈을 의심할 정도다. 이 근처로 이사 온 것은 옛사람들이 즐기던 풍류, 곧 어지러운 속세의 소란스러움을 벗어나 산 가까이에서 맑은 공기를 숨 쉬며 자연 속에 평온하고 건강한 삶을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 일대는 북한산이 바로 눈앞에 있고 크고 작은 계곡을 마음만 먹으면 금방 찾아갈 수 있는 곳이어서 진(晉)나라 도연명(陶淵明)이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묘사한 대로 “깊숙한 골짜기를 찾아가고 높다란 언덕을 거닐어 볼만한[尋壑經丘] 운치와 구름 따라 나갔다가 새들을 따라 돌아오는[雲出鳥還] 한가함을 즐길 수 있다.” 집 거실에서 가까이로는 작은 산등성이나 가파른 언덕, 조금 멀리로는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푸른 소나무로 덮이고 군데군데 바위가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산의 힘찬 모습이 바로 보인다. 공자가 말했듯 “어진 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