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현대인들은 마음이 바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 써 놓은 수필이건 시이건 소설이건 빨리 결론이 뭔가, 뭐가 가장 중요한가를 파악하는 능력이 우선시 된다. 새잎이 나기 시작하는 4월에는 ‘사월은 잔인한 달’이란 어느 외국 시인의 글귀만을 인용하는 것이 그것이고 5월이 되면 영문학자인 피천득 선생님의 <오월>이란 수필을 들먹거리면서도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라는 구절만을 반복해서 듣고 인용하는 것으로 오월을 보낸다. 그런데 오월을 신록이라는 개념으로만 보면 오월의 진정한 맛을 모르듯이 피천득 선생님의 <오월>을 첫 구절에만 머물고 더는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면 그 수필과 수필에 담긴 진정한 맛을 모르고 넘어가는 것이 된다. 그만큼 우리의 삶을 겉핥기식으로 마구 보내는 것이 된다는 뜻이다. 그 <오월>이란 수필을 조금 더 읽어보자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있는 비취가락이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친구가 복권을 산다고 하기에 옆에 서 있다가 나도 모르게 2천원을 꺼내어 그 친구보고 사달라고 했다. 나는 복권에 당첨되는 그런 행운은 없는 사람이기에, 평소 돈을 잘 만지고 돈도 잘 버는 친구의 손기운을 받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왜 이럴까? 무엇때문에 되지도 않을 일을 기대하고 있는가? 당첨이 되어 일확천금을 하면 그것을 감당이나 할 수 있는가? 그런데도 왜 복권에 손을 대는가? 한 참 전에 휴일 아침에 집 근처 숲속을 산책하던 적이 있었다. 한 시간 남짓 걸었기에 허리가 조금 아파서 허리도 펼 겸 잠시 길옆에 주저앉아 눈에 띄는 클로버 덤불 속을 눈으로 훑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있었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네 개의 잎이 달린 클로버가 있었다. 하나를 찾아서 집사람에게 주니 집사람도 자기도 찾았다며 즐거워한다. 다시 보니 그 옆에 또 있었다. 그 옆에도 또. 이런 추세라면 더 찾을 수 있겠지만 나는 거기서 그만하자고 제의했다. 우리 식구가 4명인데 더 찾아서 무엇하랴. ‘행운의 네 잎 클로버도 너무 많으면 행운이 아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었다. 프로 바둑기사가운데 묘수를 잘 두는 분이 있었다. 과거 7단인가
[우리문화신문=글, 사진 이동식 인문탐험가] 온 세상이 푸르다. 봄이 온 가장 확실한 증명은 세상이 온통 푸르게 변하는 것이다. 어디를 가도 푸르다. 공원의 산책로에도, 자동차 도로 옆 조그만 화단도, 길옆 나뭇가지도 온통 푸르다. 가까이 있는 나무들, 멀리 보이는 숲에서 연하거나 짙은 푸르름이 점점이 박혀있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다. “저 보세요!” “제가 얼마나 싱그러운지 보이시죠?” 코로나19 사태로 게임이 중단된 골프장의 잔디들도 다 푸르름으로 되살아났다. 싱그럽고 푸르른 봄, 이 말을 표현하는 색깔은 연두색, 연둣빛 등 단연 연두다. 연두, 완두콩의 빛깔을 상징하는 색이름이리라. 한자로는 ‘軟豆’라고 쓰니, 연한 콩이란 뜻이리라. 식물의 푸르름을 표현하는 한자말의 도움으로 형성된 우리말의 개념을 보면 록(綠)이라는 글자가 중심이라고 하겠는데, 가장 중심이 되는 단어가 녹색(綠色)이라면 그보다 조금 연한 것은 초록(草綠)일 것이요, 그보다 더 연한 것이 연두(軟豆)일 터이다. 이 록(綠)이 더 진해지면 진녹색, 검녹색이 된다. 그러니 싱그럽다는 말, 푸르다는 말은 곧 연두색 잎과 싹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하겠다. 우리 말로는 그냥 ‘연두’라는 말 하나일 것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봄을 맞아 문화재청에서 의미 있는 일을 벌이는 모양이다. 전국에 있는 25개의 문화재를 대상으로 안내문을 더욱 쉽고 멋있고 더 편하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써서 보내주면 우수한 작품을 뽑아서 표창도 하고 그것을 안내판에 쓰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우리 함께 만들어요! 문화재 안내판 안내문안’ 온라인 공모전으로서 오는 5월 1일부터 5월 15일까지 안내문안을 공모해 받는다. 문화재 안내문은 원래가 복잡한 한자말에서 온 것이 많아서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음은 자타가 다 인정하는 점이다. 전국에 있는 모든 문화재의 안내문을 새로 쓸 수는 없으니 우선 25개만을 뽑아서 안내문을 새로 써보자는 것이다. 이를 테면 명승 제20호인 제천 의림지와 제림에 대한 기존의 안내문은 다음과 같다: “제천 의림지(義林池)는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로 호반의 둘레는 1.8km이고 수심은 8m이다. 제방을 따라 소나무,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어 제림(堤林)이라 불린다. 물과 숲이 주변의 영호정(映湖亭) 및 경호루(鏡湖樓) 등과 함께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뽐내고 있다. 호서(湖西), 호수의 서쪽이라는 충청도의 다른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봄이 오기는 왔구나. 꽃들은 다 피어나고 잎들은 다 얇은 나들이옷을 입고 나온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숨이다. 울고 싶은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이상한 전염병이 몸만 아프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주머니까지 털어가니 몸과 마음이 다 무너지는 것인가? 사정이 딱한 분들도 점점 많아진다. 그런 분들 가운데는 울고 싶은 분들도 있다. 그런데 울지 말아야 한단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이 시인에게 울음을 주는 것은 외로움인 모양이다. 봄이 되면 사람들은 더 외로워지는 모양이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위 시의 제목은 특이하게도 <수선화에게>다. 정호승 시인의 작품이다. 수선화를 보면 노랗고 생기있고 밝은 표정인데 거기서 외로움과 눈물을 본다. 과연 시인의 감수성은 다르구나. 그런데 요즈음 울고 싶은 것은 그런 외로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는 게 힘이 들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논어(論語)》 미자편(微子篇)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장저(長沮)ㆍ걸익(桀溺)이 나란히 밭을 갈고 있었는데, 공자가 지나가다가 자로(子路)를 시켜 나루터를 묻게[問津]하였다. 장저가 “수레 고삐를 잡은 이는 누구요?” 하여, 자로가 “공구(孔丘)라고 합니다.” 하니, 장저가 “노나라 공구라는 사람이요?” 하여, 자로가 “맞습니다.” 하니, 장저가 “그는 나루터를 알 것이다.” 하였다. 다시 걸익에게 물으니 “당신은 누구요?” 하여, 자로가 “중유(仲由)라고 합니다.” 하니, “노나라 공자의 제자입니까?” 하여 그렇다고 하였다. 이에 걸익이 “천하의 도도한 물결이 다 그러한데 누가 바꾼단 말이오? 사람을 피해 다니는 선비를 따르기보다는 세상을 피해 사는 선비를 따르는 것이 나을 것이오.” 하고 여전히 김을 매었다. 자로가 그 내용을 가지고 가서 공자에게 고하니 공자가 서글픈 표정으로 말하기를 “조수(鳥獸)와는 함께 살 수 없는 법이다. 내가 이 백성들을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천하에 도가 있다면 내가 바꾸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였다. 이 이야기는 장저와 걸익이라는 도가(道家) 계열의 은자(隱者;숨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서울에도 드디어 봄이 왔다. 지난 가을옷을 벗어버리고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던 도로변 개나리들이 일제히 노란 치마저고리를 아래위로 한 벌씩 차려입고 나서서 자기를 봐 달라고 온갖 표정을 다 짓는다. 강을 낀 둑방길에는 다시 벚꽃이 피었다. 우리집 앞길에서 벚꽃들이 활짝 피었다.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꽃길인 여의도 국회의사당 뒤로 도는 유명한 벚꽃길도 꽃 속에 갇혔다. 전혀 예상도 못 하던 이상한 초강력 바이러스 때문에 전 지구인들의 발길이 얼어붙고 있는 가운데서도 따뜻한 햇살에 우리들의 꽃나무들은 철을 지키며 자신들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누구는 꽃이 피는 것도 기억이 아니라 습관이라고 하지만 다시 돌아오는 꽃들의 화려한 잔치는 세상의 얼어붙었던 마음을 풀어주고 있는 것이다. 서강대교 북단에서부터 국회의사당 뒤를 돌아 여의광장 끝까지 이어지는 약 1.8 킬로미터의 이 길은 이제 전에 부르던 윤중로란 이름이 아니고 <여의서로>다. 오래 전 '윤중제(輪中堤)'라는 일본식 용어가 쓰일 때 그 이름을 딴 윤중로라는 이름이 습관적으로 쓰이다가 '둑방길'이란 쉬운 우리말을 쓰자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제는 도로명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4월은 사랑스러운가? 대중음악가 그룹인데 좀 느낌이 안 좋은 Slaughter를 이름에 쓰는 음악그룹의 리더인 Mark Slaughter는 4월이 사랑스럽다며 빨리 오기를 재촉하는 노래를 발표했다. 4월이여 사랑스런 4월이여 April, Dear April 4월이여 사랑스런 4월이여 빨리 오렴 달콤한 앵초꽃도 빨리 피어 수선화 잔치에 참가하려무나 하늘이 새 햇살을 선사할 때에 4월이여 사랑스런 4월이여 축복받은 봄의 아들이여 노랑과 흰색으로 온통 화려한 그대 새들을 간질러 노래를 부르도록, 하늘을 날아 춤을 추도록 하는 너 이 노래의 주인공은 수선화이다. 이른 봄의 주인공은 우리나라의 경우 진달래, 개나리, 그리고는 벚꽃인데 외국의 경우, 다른 데는 잘 모르겠고 내가 있었던 영국의 경우 체리가 있기는 하지만 많이 넓게 피는 것으로는 들판의 수선화가 보편적이다. 영국의 시인 워즈워드(1770-1850)가 제일 먼저 노래하는 꽃도 수선화다. 수선화 (Daffodils)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1770~1850) 하늘 높이 골짝과 산 위를 떠도는 구름처럼 외로이 헤매다 문득 나는 보았네, 수 없이 많은 황금빛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춘분이던 지난 주말 북한산 둘레길에 가보니 많은 사람이 나들이 겸 산보 겸 나온 가운데 길옆에서 못 보던 미인들이 인사를 한다. 바로 진달래꽃들이 여기저기서 봉오리를 터트리면서 살포시 웃고있는 것이다. 아직 다른 관목들의 잎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 꽃들은 자신들이 화장도 제대로 하지 않고 너무 일찍 나왔다고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 개나리도 막 노란 꽃잎이 나온다. 남쪽에 견주어 많이 늦었지만 북한산 뒤편에도 봄이 오는 것이다. 진달래나 개나리나 혹은 산수유나 모두 봄이 온 것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전령임은 분명하다. 봄기운이 대지를 싱그럽게 데우고 있는 것이다. 人父乾而母坤 사람은 하늘과 땅을 부모로 삼았고 物吾與而幷生 만물은 나와 함께 나란히 태어났으니 雖一草與一木 비록 한 포기 풀 한 그루 나무일지라도 亦稟氣而生成 또한 기운을 받아 생성된 것이로세 覽庭中之交翠 뜰 가운데의 무성한 풀을 보고 揖濂溪之胸次 염계의 가슴속을 헤아려 보니 輸萬物於度內 만물을 내 몸속에 옮겨 놓아서 認一般之意思 자신의 의사와 같음을 알았구나 - 《동계집》 속집 제1권 조선시대 숙종 때를 산 동계(東溪) 박태순(朴泰淳:1653~1704)은 새봄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에 갔을 때 기념품점에서 눈이 머문 글이 있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대련(對聯: 문짝이나 기둥 같은 곳에 걸거나 붙이는 서로 나란히 붙어있는 두 문장)인데 글귀는 이랬다; 春風大雅能容物 秋水文章不染塵 발음으로 읽으면 "춘풍대아능용물 추수문장불염진"인데 흔히 이렇게 해석들 한다. 봄바람처럼 큰 아량은 만물을 용납하고 가을 물같이 맑은 문장은 티끌에 물들지 않는다. 기념품으로 팔지만 실제로 이 미술관 소장품인 이 대련 글씨는 추사가 남긴 대표적인 명작이다. 흔히 추사체는 필획의 굵고 가늘기의 차이가 심하고 글자는 각이 지고 비틀어진 듯하면서도 파격적인 조형미를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한 데, 이 대련이 바로 그런 경지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글씨가 뛰어난 것도 뛰어난 것이지만, 이 대련이 사랑을 받는 다른 이유는 바로 이 글의 뜻 때문일 것이다. 다시 문장을 들여다보자. 春風大雅能容物 춘풍은 봄바람이고 대아는 크고 우아하다는 것인데, 그게 왜 갑자기 튀어나올까? 그것을 알려면 공자가 편찬한 시경을 알아야 한다. 시경은 공자가 자신의 시대에까지 전해지는 각지의 노래를 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