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운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운은 그저 다가오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운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고, 그저 나쁜 일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 《운을 만드는 집》의 지은이 신기율은 그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 ‘운’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명(命)’은 고정불변의 것이고 정해져 있는 것이라지만, 사람이 사는 공간은 자신의 의지로 길흉을 바꿀 수 있는 ‘운(運)’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돈ㆍ건강ㆍ관계의 흐름이 바뀌는 공간의 비밀’이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좋은 공간에 사는 것은 재운과 건강, 관계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공간이 가진 특별한 치유의 힘과 가능성, 에너지를 알고 다스릴 수 있다면 이는 공간이 좋은 운수가 열리는 지름길이 된다.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400년을 이어온 최부잣집의 남다른 스페이스로지’다. ‘재불백년(財不百年)’, 곧 ‘100년 가는 재산이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재산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에, 무려 400년 동안 부를 이어간 최부잣집의 비결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공간 설계’라는 것이다. 글쓴이는 최씨 집안의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16년 전에 경남에서 열린 ‘제10차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 가운데서,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준 생태 관광지로 첫손 꼽힌 데가 바로 창녕의 ‘우포늪’이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는 창원의 ‘주남저수지’도 거기에 못지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이들 두 관광지의 이름이 하나는 우리 토박이말 ‘우포늪’으로 람사르 정신에 잘 어우러지지만, 다른 하나는 ‘주남저수지’라는 한자말이어서 아쉽고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주남저수지’는 아무래도 일제강점기 때에 바꾸어 쓴 이름일 터이고 본디는 틀림없이 ‘주남못’이었을 것이다. ‘못’은 쓸모 있을 적에 쓰려고 사람이 땅을 파고 둑을 쌓아서 물을 가두어 두는 곳이다. 못에 가두어 두는 물은 거의 벼농사에 쓰자는 것이라 논보다 높은 산골짜기를 막아서 만들어 놓은 곳이 많다. 못은 거의 벼농사에 쓰자고 물을 가두어 두지만, 바닥의 흙이 좋으면 연을 길러서 꽃도 보고 뿌리를 캐서 돈을 벌자고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연을 키우려고 만든 못을 ‘연못’이라 부른다. 그리고 연못은 집 안에 뜰을 꾸미느라 만들기도 하는데, 이런 뜰 안의 연못에 키우는 연은 꽃을 보자는 것일 뿐 뿌리를 팔아서 돈을 벌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박 교수와 점심 내기를 하고 나서 며칠 뒤에 김 교수의 가정에서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김 교수는 고3 아들이 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늦둥이 아들이 하나 있다. 김 교수의 자녀 교육 방침은 자유방임에 가까웠다. 공부란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 부모가 시킨다고, 과외 선생을 붙여준다고, 안 하는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고3 아들은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10등 이내의 상위권에 들었는데,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학급 석차가 10~20 등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정도의 실력이었다. 담임선생님 말로는 이러한 성적권의 학생들을 진학 지도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조금만 잘하면 이른바 서울대학(요즘에는 서울 시내에 있는 대학이면 다 서울대학이라고 부른다)에 보낼 수 있겠는데 그게 뜻대로 안 된다. 어느 가정이나 사정은 비슷하리라. 교육과 관련한, 남편은 대개 방임형이고 아내는 극성형이다. 대학까지 나온 어머니들은 자기 자녀가 대학에 못 가면 자기가 창피를 당하는 줄로 안다. 자기가 모자라서 자녀가 공부를 못하고 대학에 못 가는 줄로 잘못 아는 것이다. 고등학교까지만 졸업한 어머니들은 자기 자녀는 꼭 대학에 보내야만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사가독서는 조선 시대 젊은 문신들이 임금의 명으로 직무를 쉬면서 글을 읽고 학문을 닦던 제도다. 세종은 국가의 지식확대와 전문가 양성을 위해 문신들에게 출근하지 않고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글을 읽던 곳을 독서당(讀書堂) 또는 호당(湖堂)으로 불렀기 때문에 독서당 제도 또는 호당 제도로 부르기도 한다. 세종 2년(1420) 3월에 집현전을 설치한 뒤 집현전 학사들 가운데 재행(才行)이 뛰어난 자를 뽑아 휴가를 주어 독서와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고 그 경비 일체를 나라에서 부담하도록 하였다. 사가독서(賜暇讀書) 세종 8년(1426)에 문신 가운데서 덕과 재주가 있는 사람을 뽑아 사가(賜暇 : 휴가를 줌) 하도록 하여 집에서 공부하게 한 것이 그 시초로, 집현전의 대제학 변계량이 임금의 명령을 받고 이를 행하였다. (집현전 부교리 권채 등을 불러 집현관으로서 독서에만 전념하라고 명하다) 집현전 부교리(集賢殿副校理) 권채(權綵)와 저작랑(著作郞) 신석견(辛石堅)ㆍ정자(正字) 남수문(南秀文) 등을 불러 명하기를, "내가 너희들에게 집현관(集賢官)을 제수한 것은 나이가 젊고 장래가 있으므로 다만 글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예수는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기 전에 나병환자 시몬의 집을 찾는다. 이때 한 여인이 들어와 예수의 발에 기름을 붓고 머리카락으로 닦아주는 최고의 경배를 올린다. 제자들은 비싼 기름을 허투루 쓴다고 비난하지만, 예수는 이를 받아들이고 그 여인의 죄를 사하여 준다. 다음날 예수가 나귀를 나고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라고 외쳤다. 그 주 목요일 저녁에 예수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한다. 그리고 그다음 날 금요일에 공회와 총독 앞에서 재판받고,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맞이한다(성-聖 금요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흘 후인 일요일에 예수는 부활한다. 이렇게 부활까지의 일주일은 예수가 가장 큰 수난을 입고 고통을 당한 기간이기에 기독교 교회에서는 이 기간을 고난주간. 혹은 수난주간(영어로는 Passion Week)이라고 한다. 해마다 달라지긴 하지만 올해는 이번 주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고난주간이고 이번 일요일은 부활절이 된다. 오늘 아침 예수의 고난주간을 맞아 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생각한다. 이 주간은 33년 동안 예수의 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간으로, 예수는 자기 말과 가르침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민속학자] (1) 「땅끝」 한국춤 현실에 대한 이애주의 비판의식을 잘 드러낸 시대적 창작춤 「땅끝」, 「나눔굿」, 「도라지꽃」은 당시 춤계가 안고 있는 현실적 문제를 풀어내기 위한 갈망의 몸부림이었다. 첫 번째 작품은 지금으로부터 1974년, 6월 22일부터 23일까지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펼쳐진 제1회 이애주 전통 춤판과 창작춤 「땅끝」이었다. 낮 3시 30분과 밤 7시 30분 등 모두 이틀 동안의 4회 공연은 국립국악원 악사 반주 음악과 함께 이애주 스승 한영숙을 비롯한 동료 정재만, 채희완 및 대학 탈꾼 그리고 무용 전공 학생들이 함께한 성대한 춤판이었다. 1부 전통춤은 <이애주의 춘앵전, 이애주ㆍ정재만의 학무, 한영숙의 살풀이, 채희완 외 7인의 봉산탈춤의 뭇동중, 이애주의 미얄춤, 김민기, 장민철, 이애주, 유갑수, 김석만 등의 불교의식춤 그리고 이애주의 「승무」> 공연이었고, 2부 창작춤은 「땅끝」으로 막을 올렸다. 20대 중반을 갓 넘긴 이애주가 춤판에서 던진 메시지는 강렬했다. 그 내용을 1974년 이애주 춤판 팜플렛에서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오늘, 이 땅에서 춤을 춘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춤을 추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 가운데 한 곳으로 꼽히는 천리포수목원은 계절마다 풍경이 참 아름다운 곳이다. 충청남도 태안에 있는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북쪽으로 2km 떨어진 곳이 바로 천리포다. 놀랍게도 이 천리포수목원을 가꾸어 낸 이는 우리나라 귀화 1호 미국인, 민병갈이다. 이 책 《민병갈, 파란 눈의 나무 할아버지》의 지은이 정영애는 우연히 천리포수목원을 갔다가 민병갈 원장의 삶에 매료되었다.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머릿속에 천리포수목원과 민병갈 원장이 떠나질 않아 결국 수목원에 전화를 걸었다. 민병갈 원장님의 전기를 쓰고 싶다고 하자 천리포수목원에서도 흔쾌히 허락해 주면서 여러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이 책은 이렇게 천리포수목원과 그곳을 가꾼 한 사람에게 반한 지은이의 열정이 빚어낸 책이다. 글이 잘 써지지 않으면 천리포수목원으로 차를 몰았다. 모두 다섯 번을 찾아갔고, 그때마다 민병갈 원장이 반겨주는 듯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그럼 머나먼 한국 땅에 이토록 아름다운 수목원을 가꿔낸 주인공, 민병갈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되었고 어떻게 천리포수목원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민병갈 원장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우리문화신문=안승열 명리학도] 인간은 35억 년 전 발생한 생명체로부터 시작된 수많은 우연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인간의 출생은 출생자의 의지와 무관한 우연의 에너지가 총체적으로 집적된 특별한 사건이다. 국적이나 가문, 부모의 인성이나 능력, 건강, 체질, 빈부 그리고 출생자의 성별, 신체의 강약, 유전병, 재능, 인성 등은 출생자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출생자의 인생사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명리학은 이들의 에너지가 인간 운명의 본질이며, 인생사에 있어 많은 길흉화복의 근원이라고 관념하였다. 이 관념에 따라 “운명은 출생시 천기(天氣- 하늘의 에너지)에 의해 출생자 인생의 길흉화복으로 예정되며, 이렇게 예정된 에너지를 사주 간지로 확인하여 감정하면 일상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고 정의(定義)하였다. 이 정의는 명리학의 중요한 공리(증명이 필요 없는 자명한 사실이나 진리로 다른 명제의 전제가 되는 원리)가 되었다. 운명은 출생 전에 주어진 것이고 살면서 겪게 되는 길흉화복은 출생 후에 일어나는 일이니 운명이 길흉화복으로 예정되는 시점은 출생 시점일 것이다. 또한 인간을 별의 먼지와 그 에너지로 만들어진 소우주라 하였으니 이러한 예정이 천기에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구는 쉬지 않고 태양 주위를 돌면서 가을이 깊어 갔다. 봄이 여자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 말이 있다. 봄이 되면 여자들은 생기가 나고 멋도 부리고 싶고 노출되는 옷으로 치장을 하고 싶어진다. 여자들은 봄에 괜히 들뜬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속된 말로 하면 여자는 봄에 물이 오른다. 여자가 바람나기 쉬운 계절이다. 남자들은 가을이 되면 괜히 울적해지고 감상에 젖는다. 낙엽 떨어지는 돌담길을 걷고 싶어진다. 어디로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인생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상념에 사로잡힌다.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을 보고서 어떤 남자는 우울증에 빠진다. 어떤 남자는 시를 쓰기도 한다. 낙엽이 흩날리는 가을날, 인생의 끝이 죽음이라는 것을 깨닫고 어떤 남자는 종교에 귀의하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변한다”라는 깨달음을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어려운 말로 표현한다. 여기서 행이라는 말의 의미는 광범위하다. 보이는 사물, 느끼는 감정, 관념적인 개념 등등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행이라고 말한다. 제행무상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는 뜻이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말꽃’은 ‘문학’을 뜻하는 토박이말이다. 토박이말이지만 예로부터 써 오던 것이 아니라 요즘 새로 나타난 말이다. ‘문학(文學)’은 본디 ‘글의 학문’이라는 뜻으로 공자님이 처음 썼다고 하는 중국말인데, 우리는 지금 그러한 뜻으로 ‘문학’이란 낱말을 쓰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 쓰는 ‘문학’은 놀이(희곡), 노래(시), 이야기(소설) 같은 것을 싸잡아 서양 사람들이 ‘리터러처(literature)’라고 하는 그것이다. 이것을 일본 사람들이 ‘문학’이라 뒤쳐 쓰니까 우리가 그대로 가져와서 쓰는 것이다. 그러나 놀이, 노래, 이야기는 이른바 ‘말의 예술’이므로, 중국말이었든 일본말이었든 글의 학문을 뜻하는 ‘문학’이라는 말로는 그것들을 마땅하게 담아내지 못한다. 게다가 말의 예술인 놀이, 노래, 이야기는 입말, 글말, 전자말을 두루 싸잡아야 하는데, 글말만을 뜻하는 ‘문학’이라 부르면 입말과 전자말로 즐기는 예술은 싸잡을 수가 없다. 그렇게 중국 한자말 ‘문학’과 우리가 싸잡아 담으려는 뜻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데, 언제까지 우리가 ‘문학’이라는 남의 말을 빌려다 써야 하는가? 이런 물음을 가슴에 품고 마땅한 낱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