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 교수] 지난주에는 <현악(絃樂)영산회상>이야기를 하였다. 거문고, 가야금, 양금이 중심을 이루며 아명(雅名)은 <중광지곡(重光之曲>이고, 이를 민간 음악계에서는 줄(絃)악기 중심이란 뜻에서 <줄풍류>로 부른다는 점, 영산회상과 줄풍류는 가락이나, 장단, 표현법 등에 차이를 보이고 있어 분위기가 다르다는 점, 영산회상은 원래 상령산이었다는 점,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서 중령산 이하의 9곡의 모음곡으로 확대 발전되어 왔다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현악영산회상이 되었든, 민간의 줄풍류가 되었든 영산회상은 전문가 뿐 아니라, 글공부하는 선비나 고관대작, 지체가 높은 양반들이 교양과 취미로 즐겨 왔던 음악이다. 이번주에는 현악영산회상과 대비를 이루는 <관악영산회상>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관악이란 관악기(管樂器), 곧 입으로 불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들의 합주를 뜻한다. 원래 <관(管)>이란 대나무와 같이 속이 비어 있으면서 동그란 형태여서 이것을 입으로 불어 소리내는 악기의 총칭이란 의미이다. 대표적인 악기들로는 대금이나 피리, 소금, 단소, 퉁소와 같은 악기들인데, 관악영산회상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황족(皇族)으로 산다는 것은 행복한 일일까? 아니면 불행한 일일까? 지금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황족 출신의 마코(眞子, 30) 공주 결혼을 앞두고 연일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결혼 상대자는 고무로 케이(小室圭. 30) 씨로 이들은 10월 26일 결혼을 앞두고 있다. 마코 공주는 나루히토 일왕의 조카로 이들의 결혼에 대해 일본 국민은 매우 부정적인 반응이다. 마코 공주는 지난 2017년 9월, 대학 동창인 고무로 케이 씨와 약혼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약혼 발표 이후 주간지 등에서 약혼자인 고무로 케이 씨의 어머니가 돈 문제로 시끄럽다고 보도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몰아갔다. 일부 언론에서는 약혼자인 고무로 케이 씨가 마코 공주의 일시금(여성 황족에게 주는 왕실 세금)을 노리고 접근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마코 공주는 일시금을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9월 27일, 약혼자 고무로 케이 씨가 미국에서 귀국했다. 그는 올해 7월, 미국 뉴욕주에서 사법시험을 치렀고 합격이 예상되어 뉴욕주의 법률 사무소에서 취직이 정해졌다고 한다. 이제 마코 공주와 결혼하여 미국으로 가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 지난 주에 영산회상(靈山會相)이란 말은 넓은 의미로 석가의 교설(敎說)이지만,『악학궤범(樂學軌範)』이나『대악후보(大樂後譜)』등에는 음악의 악곡 이름으로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 조선조 후기에는 점차 세속화되면서 가사를 잃고, 기악곡화 되어 현재는 9곡의 모음곡(組曲)이 되었다는 점, 현재는 국악연주회나 개인발표회에서 가장 빈번하게 또한 가장 널리 연주되고 있는 음악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영산회상은 세 갈래의 음악으로 구분된다. 이 음악은 조선조 후기로 내려오면서 현악기 중심으로 연주되는 형태와, 관악기 중심으로 연주되는 형태, 그리고 관현악 편성으로 연주되는 형태가 있는 등, 악기 편성이 각각 다르게 연주되고 있는 음악으로 확대 발전되었다. 현악기가 중심을 이루는 악곡의 이름이 바로 <현악(絃樂)영산회상>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관악기들이 중심이 되는 음악은 <관악(管樂)영산회상>이다. 또한 현악영산회상은 웃조로 되어 있는 음악인데, 이를 조금 낮추어 평조로 만들고, 관악기와 현악기들이 함께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든 <평조(平調)회상>이 있다. 먼저, 현악영산회상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나아가는 곳에 광명이 있나니 젊은 그대여 나아가자! 오직 앞으로 앞으로 또 앞으로 가시덤불을 뚫고 비록 모든 사람이 주저할지라도 젊은 그대여 나아가자! 용기는 젊은이만의 자랑스런 보배 어찌 욕되게 뒤로 숨어들랴 진실로 나아가는 곳에 광명이 있나니 비록 나아가다가 거꾸러질지라도 명예로운 그대, 젊은 선구자여 물러섬 없이 오직 나아가자! 이는 박팔양 시인이 《중앙》(1936년 2월호)에 발표한 ‘선구자’라는 시다. 박팔양 시인은 1905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배재고등보통학교를 다녔고 이때 정지용 시인 등과 <요람>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18살 되던 해인 192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신의 주(神의 酒)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박팔양 시인의 필명은 김려수(金麗水)인데 여기서 여수(麗水, 如水)는 호다. 그의 대표 시집 《여수시초(麗水詩抄)》(1940)는 말하자면 박팔양 시인의 호를 딴 시집인 셈이다. 박팔양 시인의 《여수시초(麗水詩抄》가 일본의 중견 시인 우에노 미야코(上野 都, 74) 씨에 의해 지난 8월 15일 일본 오사카에서 일본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우에노 미야코 시인은 윤동주 시인의 시집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시조창은 <시절가>, <단가>, 또는 <시절 단가>라고도 했는데, 영조 때 이세춘이 처음으로 장단을 배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시조라는 명칭에서 <평(平)>은 가곡 <평거(平擧)>와 같이 보통의 높이로, 중허리시조는 <중거(中擧)>와 같이 중간부분을 들어내는 곡조, 지름시조는 <두거(頭擧)>와 같이 머리 부분을 높이 내는 곡조, 사설시조는 농(弄)시조, 또는 엇시조로, <언롱(言弄)>의 형태와 유사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시조창보(時調唱譜)』를 펴낸 이양교(李良敎)는 김진홍(金眞紅), 장사훈, 김태영, 한창환 등을 통해 추교신, 임기준, 최상욱 등의 시조가락을 이어왔다는 점에서 전통성이 인정된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주에는 기악합주곡으로 널리 알려진 <영산회상(靈山會相)>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영산회상>은 넓은 의미로 석가의 교설(敎說)이다. 홍윤식은『한국불화의 연구』에서 이 말은 불교자체를 의미할 뿐 아니라, 불교의 상징적인 표상으로서의 뜻을 지닌 말이라고 했다. 의미를 좁혀 영축산에서 석가의 법화경(法華經)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 중 추분으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입니다. 이날을 기준으로 밤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며 가을도 그만큼 깊어가지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추분의 의미는 이것이 다일까요? 아닙니다. 조선왕조실록 <철종 10년 (1859)> 기록에 보면 “(임금께서) ‘성문의 자물쇠를 여는 데 대해 의견을 모으라고 하시면서 종 치는 시각은 예부터 전해오는 관례에 따라 정하여 행하라는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추분 뒤에 자정(子正) 3각(三刻)에 파루(罷漏, 통행금지를 해제하기 위하여 종각의 종을 서른 세 번 치던 일)하게 되면, 이르지도 늦지도 않아서 딱 중간에 해당하여 중도(中道)에 맞게 될 것 같다.”라는 내용이 보입니다. 이 기록처럼 추분날 종 치는 일조차 중도의 균형감각을 바탕에 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도 덜도 치우침이 없는 날이 추분인 것으로 이는 그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곳에 덕(德)이 있다는 뜻이며 이를 중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추분엔 향에 대한 의미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추분의 들녘에 서면 벼가 익어가는데 그 냄새를 한자말로 향(香)이라고 합니다. 벼 화(禾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김대중 대통령의 출신지가 신안군 하의도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서울살이 속에서 ‘하의도’는 머나먼 땅으로만 여겨왔다. 막연히 언젠가는 가봐야지 하면서 말이다. 지난 9월 12일, 한가위 연휴를 맞이하여 마침내 그 땅에 발을 디뎠다. 서울에서 목포까지 승용차로 간 뒤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신의도행에 배에 승용차를 싣고 2시간 달려 도착한 곳은 신의도(신의여객선터미널)였다. 이곳에서 다시 승용차를 30여분 달려 하의도에 도착했다. 신안을 흔히 천사섬이라고 해서 솔직히 ‘신안에 왠 천사?’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1004개의 섬이 있어서 이를 한글로 천사(1004) = 천사(天使)가 된 것이란다. 오호라! 하의도는 어촌이라기보다는 농촌에 가까운 섬이었다.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들판이 이를 말해준다. 맨 먼저 찾아 간 곳이 ‘하의3도농민운동기념관(이하 농민운동기념관)’이다. 농민운동기념관 입구에서부터 천사상이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농민운동기념관에는 조선후기부터 광복까지 무려 360년 동안 하의 3도(하의도, 상태도, 하태도) 주민들의 빼앗긴 토지를 탈환하기 위해 흘린 ‘피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360년 동안 토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해에 이어 두해째 '코로나19' 때문에 한가위를 오롯이 즐기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하지만 올해로 '코로나19'가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방역을 지키면서 겨레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를 맞았다. ≪열양세시기≫에 있는 “더도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는 말처럼 한가위는 햇곡식과 과일들이 풍성한 좋은 절기로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다. 가위의 유래와 말밑 한가위는 음력 팔월 보름날로 추석, 가배절, 중추절, 가위, 가윗날 등으로 불린다. '한가위'라는 말은 ‘크다’는 뜻의 '한'과 '가운데'라는 뜻의 '가위'라는 말이 합쳐진 것으로 8월 한가운데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다. 또 '가위'라는 말은 신라 때 길쌈놀이(베짜기)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인데 다음과 같은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라 유리왕 9년에 국내 6부의 부녀자들을 두 편으로 갈라 두 왕녀로 하여금 그들을 이끌어 음력 열엿새 날인 7월 기망(旣望, 음력 16일)부터 길쌈을 해서 8월 보름까지 짜게 하였다. 그리고 짠 베의 품질과 양을 가늠하여 승부를 결정하고, 진편에서 술과 음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시조의 학습을 위해서는 쉬운 악보의 제작, 지도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내포제 시조의 확산을 위해서는 도내(道內)공직자들과 교사들을 동호인으로 안내해야 하며, 국내외 방문객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그러면서 동 보존회는 이제까지 추진해 온 발표회, 경연대회, 강습회 등을 꾸준히 지속시켜 나가야 한다는 당부의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주에는 시조음악에 관한 일반 상식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본래 시조, 또는 시조창은 <시절가>, <단가>, <시절단가>라는 명칭으로 불러온 노래였다. 시조는 조선조 영조 무렵, 신광수(申光洙)의 《석북집(石北集)》 관서악부에 보이는 시구(詩句, 곧 “ 일반 시조에 장단을 배열한 것은 장안에서 온 이세춘(李世春)으로부터 비롯한다”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작 그 악보는 순조 때, 서유구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유예지(遊藝志)편에 전하는 시조 악보라는 점에서 200여년을 헤아린다. 이 악보를 해독하여 세상에 알린 장사훈 교수는 이 시조가 현행 경제(京制)의 평시조라는 점을 밝혔으며, 그 이후 평시조는 가곡의 다양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인 구라하시 요코(倉橋葉子, 71)씨로부터 신문 기사 한 장이 카톡으로 날아왔다. 어제(7일) 석간 아사히신문이었다. 기사 내용은 50년 전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일본인 기사였다. 이 기사는 6일(월)과 7일(화)에 걸쳐 2회로 연재했는데 구라하시 씨가 보낸 것은 2회차였다. 50년 전에 한글 교실을? 그렇다. 이날 기사는 일본인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계기와 그들이 현재 지속하고 있는 일을 두 팀으로 나눠 소개하고 있었다. 한 팀은 한국어를 배워 현재 한국의 소설가 황석영 씨의 수필을 읽고 있는 팀이고, 다른 한 팀은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에 의해 학살당한 조선인을 추도하는 모임의 니시자키 마사오(西崎雅夫, 61) 씨 이야기다. 이들은 1970년부터 ‘현대어학숙(現代語學塾)’이라는 한국어교실을 만들어 꾸준히 한국어 실력을 쌓아 왔다. 한국어교실은 김희로공판대책위원회가 사무실로 쓰기 위해 빌린 도쿄 요요기역 근처의 사무실이었다. 이들이 한국어교실 문을 연 계기는 1968년 재일동포 김희로 사건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김희로는 가난한 집안형편과 일본사회의 차별과 천대를 겪어내면서 여러 차례 감옥살이를 했다. 그가 세상에서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