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190) 정숙하게 앉는 것은 공부하는데 가장 도움이 된다. 반드시 옷을 깨끗이 입고 자세를 엄숙히 한 다음 눈을 감고 코끝을 내려다보면서 망령스레 움직이지 않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이다. 뜻(情)이 움직일 때에는 그 생각이 어떠한가를 살펴서 알맞지 않으면 막아버리고 알맞으면 따라 행하되, 그 도를 이미 다했다면 예전처럼 고요할 것이다. 정숙하게 앉아 글을 읽는 모습. 이것이 옛 선비의 ‘공부하는 모습’으로 가장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모습이다. 위의 글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유명한 홍대용이 자신을 스스로 깨치는 말을 지어 의관을 정제하고 학문을 익힐 것을 다짐한 글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과거제도 때문인지 우리 문화는 유난히 공부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아무리 훌륭한 가문 출신이어도 ‘공부를 잘해야’ 인정받을 수 있었던 분위기, 출신보다 실력을 중시했던 사회 풍조가 수많은 문제 속에서도 조선 왕조를 약 500년 동안 지탱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역사 저술가인 이수광이 쓴 이 책, 《공부에 미친 16인의 조선 선비들》은 조선 역사에서 공부로 이름을 날린 인물 16인을 골라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그들의 삶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는개’는 국어사전에도 올라서 꽤 널리 알려진 낱말인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안개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라고 풀이해 놓았다. 굳이 틀렸다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알맹이를 놓쳐서 많이 모자라는 풀이다. ‘는개’는 ‘늘어진 안개’라는 어구가 줄어진 낱말임을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개 방울이 굵어지면 아래로 늘어져 거미줄 같은 줄이 되어 땅으로 내려앉으며 비가 되는데, 이런 것은 비라고 하기가 뭣해서 안개 쪽에다 붙여 ‘는개’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는개’처럼 비라고 하기가 어려워 비라고 하지 않은 것에 ‘먼지잼’도 있다. ‘먼지잼’은 ‘공중에 떠도는 먼지를 땅으로 데리고 내려와서 잠재우는 것’이라는 뜻의 풀이를 그대로 줄여 만든 이름이다. ‘먼지잼’은 빗방울이 ‘는개’처럼 아주 작기도 하지만, 공중의 먼지만을 겨우 재워 놓고 곧장 그쳐 버리는 비라는 뜻까지 담고 있다. 자연을 이처럼 깊이 꿰뚫어 보고 감쪽같이 이름을 붙이며 살아온 겨레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먼지잼’과 ‘는개’ 다음으로 가장 가늘게 내리는 비가 ‘이슬비’다. 비가 오는 것 같지도 않은데 풀이나 나무의 잎에 내린 비가 모여서 이슬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김 교수가 보신탕과 관련하여 어이없는 사건을 이야기했다. 브리지트 바르도(프랑스의 유명한 여배우)가 최근에 우리나라 정부에 야만스러운 보신탕을 금지하라는 편지를 보내었다고 한다. 똑같이 보신탕주의자인 박 교수는 브리지트가 편지를 보내었다는 김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술김에 분개하였다. “웃기는 x이네, 프랑스 인들은 혐오스레 개구리를 먹는다는데, 우리가 개구리를 금지하라고 프랑스 정부에 편지하면 뭐라고 대답할까? 브리지트가 한국에 항의 방문차 한 번 온다고? 오기만 하면 내가 꼭 만나서 데리고 갈 데가 있지. 거기 말이야, 강남의 보신탕 뷔페 집에 데려가서 대접을 한 번 해야지!”라고 기염을 토하였다. 박 교수의 말에 의하면 강남구청 근처 어딘가에 보신탕 뷔페 집이 있다는데, 꼭 한번 가 보자는 것이다. 보신탕 뷔페 집에는 개고기의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단다. 김 교수가 아직 한 번도 못 먹어본 개의 거시기도 있다는데 값도 일반 호텔 뷔페에 비하여 별로 비싸지 않다고 한다. 술은 보통 사람을 용감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두 사람이 술의 힘을 빌려 프랑스 여배우를 욕하고 또한 사대주의적인 우리나라 정부를 욕하다 보니 시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등대 옆에서 배를 기다렸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하품을 참으면 기다렸는데도 등대도 나도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등대는 나보고 '등대' 같은 놈이라고 했을 거다 ... <외로운 사람이 등대를 찾는다> 이생진 이생진 시인은 말한다. 등대는 외로운 사람의 우체통이라고. 등대는 별에서 오는 편지와 별에게 보내는 편지를 넣어두는 우체통이라고. 그래서 사람들은 혹시나 하고 등대를 찾아가고 별에게 보낼 편지를 넣으려고 등대를 찾아간다고. 어느 날 아침 등대를 가까이서 만났다. 건너편 바다 끝에서 지진이 일어났다고, 높이 60센티가 넘는 해일이 밀려 온 동해 묵호항에서였다.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캄캄한 밤을 지나고 보니 나도 등대가 그리웠던 모양이다. 가까이에서 보는 등대가 반갑다. 이생진 시인의 말처럼 묵호항 등대 앞에는 별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우체통이 있었다. 그 앞에 끝없는 바다가 있고 그 바다를 가르고 해가 뜬다. 그 해를 위해 어두운 밤을 밝혀준 것이 등대다. 우리 현대인들은 모두 캄캄한 밤을 사는 듯 점점 외로워지고 있다. 서로 이웃을 못 보고 외롭게 살다 보니 점점 더 외로워진다. 근래에 많은 분이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민속학자] 민속학자 양종승 박사가 공연참관과 면담조사를 통해 기록한 한국 무형유산 전승자들의 예술 생애를 <명인ㆍ명무 열전>으로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평생 남북분단의 아픔을 안고서 세기의 무용가 최승희(1911-1967) 춤 정신을 이어왔던 한순옥 명무가 지난 2022년 2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속세에 젖은 현대인의 멍든 심신을 정화하고 흐릿한 정신을 달래주었던 예술가, 공허하고 허무한 내면세계를 자신의 기법으로 미적 세계를 기름지도록 극대화하며 윤택한 삶을 부추겼던 무용가 한순옥의 이름 석 자를 되새겨 본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며 서울특별시 무형유산 한량무 보유자 조흥동은 한순옥을 “평생 올곧은 예술가의 자세로서 예술뿐만 아니라 삶 모두를 깨끗함의 상징처럼 사셨던 무용가”라고 회상하였다. 국가무형유산 승무 보유자 채상묵 또한 한순옥은 “권위적이지 않은 진실한 무용가로서, 그리고 군더더기 없이 늘 해맑은 춤새로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만들어줬던 깊이 있는 예술가”였다고 회고하였다. 한순옥의 담백한 춤 세계와 올곧았던 삶의 속내를 알 수 있게 하는 기억들이다. 미학적 자세를 앞세워 반듯한 춤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풍수(風水)! 바람과 물의 기운을 살려 사람들에게 이롭게 쓰려는 지혜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왔다. 공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 곧 기운이 깃들어 있고 이 기운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그곳에 사는 사람의 운명까지 영향을 받는다는 이론이다. 어떤 이는 이러한 노력이 별로 효과를 보기도 어렵고, 또 근거도 없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공간에 영향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환경이 사람을 바꾸는 것처럼, 자신을 둘러싼 공간을 어떻게 조성하느냐는 운명에 상당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저명한 풍수 전문가 정동근이 쓴 이 책, 《생기가 샘솟는 집》은 기의 흐름과 오행의 기운을 살펴 실내공간을 꾸미고 공간에 머무는 사람을 이롭게 할 방법을 제안한다. 책을 읽다 보면 사무실이나 안방 등 거주 공간에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아이디어를 여럿 얻게 된다. (p.17) 풍수의 원리는, 기의 유입과 유출을 조절하여 각자의 기운과 분위기에 맞는 조화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풍수에서는 조화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균형을 강조한다. …(줄임)… 만약 사무실이나 주택에서 뭔지 모를 불안한 분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스펀지>라는 텔레비전 방송에서 재미나는 구경을 했다. 돼지 다섯 마리를 새로 만든 우리에 넣고 돼지가 똥오줌과 잠자리를 가릴지 못 가릴지를 알아보려고, 다섯 사람이 한 마리씩 맡아서 밤을 새우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한 놈이 구석에다 오줌을 누었다. 그러자 다른 놈들도 모두 똥이나 오줌을 그 구석에만 가서 잘 가려 누었다. 그런데 지켜보는 사람들은 돼지가 오줌이나 똥을 눌 때마다 한결같이 “쌌습니다! 쌌습니다!” 했다. 박문희 선생님이 유치원 아이들과 살면서 겪은 그대로였다. ‘똥오줌을 눈다’와 ‘똥오줌을 싼다’를 가려 쓰지 않고 그냥 ‘싼다’로 써 버립니다. ‘똥오줌을 눈다’는 말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변기에 눈 건지 바지에 싼 건지를 가려 쓰지 않으니 가려듣지 못합니다. 이러니 생활이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분명히 ‘똥을 눈다, 똥을 싼다’는 말을 가려 써 왔습니다. - 박문희, 《우리말 우리얼》 46호 ‘누다’와 ‘싸다’는 다스림으로 가려진다. ‘누다’는 똥이든 오줌이든 스스로 잘 다스려서 내보내는 것이고, ‘싸다’는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고 그냥 내보내는 것이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제 나이 40대 중반인 1996~1997년 무렵, 우연한 인연으로 강남의 술집에서 한 아가씨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아가씨와 만났던 사건과 이야기를 간략히 노트에 기록하여 저장해 두었습니다. 그 후 17년이 지난 2014년에, 당시의 기록을 바탕으로 중편소설을 써서 수원대 교수협의회 카페에 60회에 걸쳐 발표하였습니다. 1990년대는 우리나라가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면서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크게 나아지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덩달아서 술집도 번창하였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이었습니다. 2024년 지금과는 사회 분위기가 매우 다른 때였습니다. 사람들은 희망을 품고 열심히 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대학교수는 매우 좋은 직업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한 마디로 살기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문화신문 독자들에게 <열 번 찍어도>라는 제목의 중편소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매주 금요일에 연재를 하겠습니다. 소설이란 작가의 경험에 상상의 나래를 달고 살을 붙여 재미있게 쓴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 역시 반쯤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난 1월 29일 서울 강남의 봉은사에서는 한 예술가의 추모행사가 열렸습니다. 세계적인 비디오 예술가였던 고 백남준 님이 2006년 1월 29일에 세상을 뜨셨으니 벌써 18년이 되었습니다. 올해 행사는 예년보다도 더 조촐하게 열린 것 같습니다. 점차 관련 소식도 언론매체들에서 그리 눈에 띄지 않습니다.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 봉은사의 법왕루에 차려진 추모제단에서 유족과 친지, 백남준 아트센터 관계자 등 많지 않은 추모객들이 생전의 예슬업적을 돌아보며 선생이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난 것을 차분히 아쉬워했습니다. 1932년생인 백남준 선생에게 있어 올해는 좀 더 특별한 해입니다. 선생이 우리나라에 처음 제대로 소개되고 우리 문화예술계에 큰 충격을 준 지 만 4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1984년 새해가 밝은 뒤 1월 1일 자정을 넘은 시각(정확히는 1월 2일 새벽 2시)에 우리나라는 KBS1텔레비전이 중계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란 텔레비전 종합예술축제를 보느라 눈을 비빈 분들이 많았고 1월 2일 날이 밝으면서 도하 언론들은 이 프로그램의 시청 소감 등을 대서특필했습니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은 일찍이 「1984」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오방색!’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단어다. 사실 우리의 전통색인 ‘오방색’의 정확한 이름은 ‘오방정색’이다.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하얀색, 검은색. 각각 불ㆍ나무ㆍ흙ㆍ쇠ㆍ물을 나타내는 이 다섯 가지 색은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한 우리 문화와 참 잘 어울린다. 임어진이 쓴 책, 《오방색이 뭐예요?》는 아직은 오방색이 생소할 어린이들에게 오방색이 무엇인지, 색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지, 이 색을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활용했는지 친절히 짚어준다. 오방색을 들어는 봤지만 잘 알지 못했던 어른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되어준다. 우리 전통혼례만 보아도 음양의 조화를 나타내는 파란색과 빨간색이 조화롭게 쓰였다. 청사초롱의 빨강은 양의 기운을, 파랑은 음의 기운을 뜻한다. 신부는 전체적으로 빨간색을, 신랑은 전체적으로 파란색을 입었다. 청실과 홍실로 연결된 표주박에 술을 담아 서로 나누어 마시는 의식도 음과 양의 기운을 더해 서로 하나가 된다는 뜻이 담겼다. 혼인할 신부의 집에 보내는 함에 같이 넣어 보내던 다섯 가지 곡식 주머니인 ‘오방낭자’도 있었다. 팥은 잡귀를 쫓는 의미를, 콩은 귀한 신분을, 찹쌀은 인내를, 향나무는 절개와 순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