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다리를 하나 건너자 드디어 청령포가 보인다.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배가 멀리 보인다. 청령포에 가까이 가자 강변에 소나무 숲이 나타난다. 소나무 숲 사이에 비석이 서 있다. 가까이 가보니 왕방연 시조비다. 단종 유배길의 호송 책임을 맡은 금부도사 왕방연이 임무를 끝내고 한양으로 돌아가다가, 비통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어 이곳에서 청령포를 바라보면서 시조를 읊었다고 전해진다. 이 시조가 <단장가>로서 영조 때에 펴낸 《청구영언》에 전한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은 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시조비가 서 있는 울창한 소나무숲을 솔모정이라고 한다. 소나무 숲이 마치 멋들어진 정자를 떠올리게 한다고 하여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왕방연 시조비는 1984년에 세워졌다. 솔모정을 지나자 왼쪽에 커다랗게 움푹 꺼진 분지가 나타난다. 이곳이 ‘영월 강변 저류지’다. 영월 저류지는 홍수가 나면 침수되어 물난리가 나는 방절리 일대를 홍수에서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영월 저류지 조성 공사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일부로 추진되었다. 2010년 6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보통 비염은 완치가 어려운 만성질환이라고들 하는데 특히 알레르기성 비염은 더더욱 치료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알레르기 유발 물질에 대한 과민반응인 알레르기성 비염은 그 근본 원인을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정의하는 순간, 치료가 힘들고 오래 걸리겠다고 생각하고 장벽을 만들게 된다. 특히 봄이 되면 꽃가루가 날리고, 스스로 만들어낸 환경오염과 더불어 중국으로부터 밀려오는 미세먼지, 황사의 영향으로 다양하고 복합적인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된다. 따라서 봄에는 원래 비염 환자는 물론 많은 사람이 다양한 환경의 영향으로 호흡기 통로가 부담을 받기 때문에 비염이 아닌 사람들도 코막힘과 콧물, 코딱지를 어느 정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의 경우 특정 알레르기 물질이 과잉되지 않기 때문에 평균적인 적응력만 가지고 있다면 봄의 알레르기 환경을 극복할 수 있다. 가령 일본 같은 경우 봄이 되어 편백꽃가루가 엄습할 시점이 되면 대부분 극도의 알레르기 질환으로 고생을 하며, 인간이 살기에 쾌적하다는 아메리카 서부도 유채꽂이 필 무렵이 되면 근방의 대부분 사람이 크고 작은 알레르기 질환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어젯밤 자고 나니 코뼈에 눈썹 하나 오늘은 또 어디가 문드러져 사라질까 남산도 허리가 잘려 내 꼴인 듯 서러운데 양반아 군수님아 공방살 낀 연놈들아 대곡산 넘다 보니 문드러진 꼬라지 이 몸만은 아니더라. 찢고 이기고 조져놓은 산세가 가히 장관이다. 날라리야 꽹과리야 한도 눈물도 상관 말고 뛰놀아라. 코 하나 달아나니 빗물이 들고나고, 귀 하나 떨어지니 세상 잡소리 안 들린다. 소고에 북채 흔들며 굿거리 한 장단에 시름도 한숨도 쏟아내고, 앉거나 서거나 아프거나 마르거나 밟히거나 뒤지거나 나 몰라라 나는 몰라라. 엇장단에 덧뵈기로 춤판을 돌아간다. 어깨춤 한 번이면 고대광실이 내 것이요, 얼쑤 장단을 넘다 보면 나랏님도 발 아래니 돌아라 부러진 어처구니 이빨 빠진 맷돌들아 <해설> “어젯밤 자고 나니 코뼈에 눈썹 하나 / 오늘은 또 어디가 문드러져 사라질까 / 남산도 허리가 잘려 내 꼴인 듯 서러운데” 이제 시는 조금씩 세상 이야기를 담아 간다. 내 몸 어디가 문둥병으로 몽그라지고 사라지듯 우리네 강토 곳곳도 잘리어 사라져 간다. “양반아 군수님아 / 공방살 낀 연놈들아” 춤판에서 양반은 현실에선 정치 일선에 선 지도자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자> 2021년 10월 21일 목요일 <답사 참가자> 이상훈 김형대 박인기 이규석 최경아 최돈형 홍종배, 모두 7명 <답사기 작성일> 2021년 10월 30일 토요일 평창강 제13구간은 영월읍 방절리 선돌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에 이르는 7.2km다. 이날 답사에는 시인마뇽과 석주, 해당이 불참하였다. 대신 용평면에 사는 최경아 사장과 강릉에 사는 김형대 다큐멘터리 감독이 참여했다. 김 감독은 KBS에서 근무할 당시, 유명한 다큐멘터리 차마고도 6부작 제작에 참여했다니 다큐멘터리 분야의 최고 전문가라고 볼 수 있다. 나는 2015년에 평창으로 귀촌하여 봉평성당에 다니면서 한경주라는 분을 만났다. 이분은 보이차 전문가로서 이효석 문학의 숲 앞에서 평화다원을 운영하고 있다. 김 감독이 한 원장을 주인공으로 하여 “보이차 인생”이라는 제목의 3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중간에 나는 김 감독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평창강 따라 걷기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김 감독은 관심을 보이며 이날 답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는 청령포 주차장에서 11시 30분에 만나 영월읍내에
[우리문화신문=김동하 작가] 아버지에게 강원도는 애증이 새겨져 있는 지역이다. 한국전쟁이 한참이던 그 시절, 제주도에서 신병훈련을 받고 배속된 곳은 낙동강 전투가 한창이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 이후 아버지는 강원도지역에 군부대에 보급품을 실어다 주는 일을 하셨다는데, 지금이야 강원도 가는 것이 뭐 그리 힘든 일은 아니겠지만, 1951년 당시 강원도 가는 길이 정비가 된 것도 아니고, 포장된 것도 아닐 테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곳을 보급품 가득 실은 고물 미제트럭을 몰고 다니셨다니,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기셨다고 하셨다. 한번은 비가 많이 온 뒤라 길이 무너져 내려서 늘 가던 길을 포기하고 산길을 돌고 돌아 보급품을 전하러 갔더니 이미 부대가 퇴각하고 난 뒤에 도착한 때도 있었다. 시체만 널브러져 있는 전장을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와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는 당신의 사촌매형이 일하고 계시던 강원도 산판에 가서 몇 년 일도 하셨고, 칠순이 넘으셔서부터는 강원도 오대산 근처에 살만한 움막을 하나 찾았다 하시면서, 그곳에 가서 여생을 마치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근처에 병원도 없고 교통도 불편한 그곳에 왜 가려고 하시냐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온대지역은 사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각각의 계절이 주는 혜택을 누리고 적응하면서 문명의 꽃을 피워냈다. 그러나 한편,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다면 다양한 환절기 질환으로부터 시작해서 불편한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비용이 소모된다. 올봄의 특징은 추위가 빨리 가고 온화한 날씨가 예년에 견줘 거의 1달 앞서 다가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초봄의 추위를 거의 느끼지 못하였고, 봄바람의 쌀쌀함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 그리고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에서 현재만을 보자면 인간이 가장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는 기온으로 온도조절에 부담이 없는 날씨다. 그러다 보니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드러나는 환절기 질환이 없거나 적을 거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계절의 흐름으로 보면 인간의 몸은, 화창한 날씨를 따라가지 못하고 아직 움츠린 상태이며 외부의 환경은 따뜻함과 봄바람으로 부유물이 많아진 상태이다. 따라서 따뜻하고 온화한 날씨임에도 환절기 질환이 오히려 더 많아진 모습을 보인다. 지난해와 지지난해는 일반적인 봄 날씨와 더불어 마스크라는 방어막을 가진 채 생활했기에 봄철의 감기나 알레르기 비염 환자가 현격히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패랭이 눌러쓰고 웃음인지 울음인지 자줏빛 흔데자국* 이리 씰룩 저리 씰룩 날라리 장고는 울고 춤사위 시작된다 노방초 모진 목숨 고향이라 찾아드니, 돌팔매에 몽둥이찜질, 나물 삶은 물 퍼붓는 인심도 서러워라. 조석지변(朝夕之變)하고 조변석개(朝變夕改)한 인간사야 매양 그렇지만, 옥수골 내천이며 무량산 구름은 어이 외면하고 떠나는가. 내 일찍이 강산 두루미로 떠돌고 돌았지만 희다 검다 모의하고 도모한 적 없었는데, 세상은 저들끼리 어르고 달래며 희희낙락이다. 청산엔 봄꽃들 지천인데 내겐 아직 잔설만 남아 있다. 몽그라진 손으로는 코 풀기도 어려워라. 손가락 떨어진 곳에 파리는 왜 앉느냐. 찔레야 무성한 들찔레야 똥파리 좀 쫓아다오 * 흔데자국: 검은색의 문둥병 흔적 <해설> “날라리 장고는 울고 / 춤사위 시작된다.” 자줏빛 흔데자국(문둥병 흔적)만 봐도 고통은 알만하다. 웃음 같기도 하고, 울음 같기도 한 이지러진 탈바가지 덮어쓰고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노방초처럼 살아온 떠꺼머리총각은 고향에 와서도 찬밥 신세다. 그도 그럴 것이, 하라는 농사는 안 하고 고작 배웠다는 것이, 문둥이 흉내나 내는 춤꾼이 되어 귀향했으니.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 시대의 인물을 살펴보고 있는데 주요한 인물의 한 분이 바로 부인 소헌 왕후다. 태조 4년(1395)에 출생하여 본관은 청송(靑松)이고 문하시중 심덕부(沈德符)의 손녀이며, 영의정 심온(沈溫)의 딸으로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안천보(安天保)의 딸이다. 태종 8년(1408)에 충녕군(忠寧君) 이도(李祹)와 가례를 올려 빈(嬪)이 되고, 경숙옹주(敬淑翁主)에 봉해졌다. 태종 18년(1418) 4월 충녕대군이 왕세자에 책봉되자 경빈(敬嬪)으로 봉해졌으며, 같은 해 9월에 세종이 즉위하니 12월에 왕후로 봉하여 공비(恭妃)라 일컬었다. 수난상황 소헌 왕후는 어릴 때부터 정숙하고 총명하여 14살에 세종과 혼인했다. 세종이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어 친정아버지인 심온이 누명을 쓰고 사약을 받아 죽임을 당하면서 친정집은 풍비박산이 되었다. 대신들은 반역자의 딸도 궁궐에서 내쫓아야 한다고 야단이었지만 세종은 자신의 아내 곧 왕비가 궁궐에서 내쫓길까 노심초사하였다. 심온은 세종이 즉위한 뒤 영의정에 올라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서 귀환하던 중 아우 심청(沈泟)이 군국대사를 상왕(上王: 태종)이 처리한다고 불평한 일로 대역(大逆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입이 짧은 아이들의 식욕을 회복하려 할 때 단기간에 식욕을 증진하려 하지 말고 온전한 식성을 얻기 위해서는 밟아야 할 순서가 있다. 첫 번째는 아이의 상태를 정확하게 인식한 뒤 왜 그런 것인가 하는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인과관계를 개선하여 더는 나빠지지 않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명확하게 이루어져도 성장기 아이들의 특성상 성장과 더불어 점점 식욕이 증진되므로 그 자체가 식욕호전의 대비책이다. 이렇게 아이들이 더 나빠지는 것을 막은 뒤에 한방의 도움으로 점점 잘 먹은 아이가 되어 드디어는 “그만 먹어라” 소리가 나오는 상태까지 가보도록 하자. 1. 먹는 것에 부담을 주지 말아야 ① 아이들의 입맛을 존중하자 입이 짧은 아이들의 식사 유형은 같은 음식이라도 맛이 수시로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호소하는 입맛을 존중하여 맛있다고 하면 먹게 하고, 맛이 없다고 하면 안 먹을 수 있는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외동이나 첫째 아이들의 경우 엄마 아빠의 비위를 맞추려 하고 이미지를 관리하려 하기에 맛없다는 말을 차마 못 할 때가 많으므로 엄마 아빠의 세심한 배려가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장마당 문둥이 등장 아따 올 농사 오지게도 실하것다 덕석 피고 차일 쳐서 어제부터 끓인 국밥 흥겨운 장구경 끝에 막걸리 한 사발 걸쳤는가? 넘사시런 몰골이라 나서긴 좀 그렇네만 문둥골에도 춤이 있어 춤 한 자락 배웠으니 어떤가 장마당 오달지게 이놈 춤 한번 놀아볼까? <해설> 옳거니, 오래도 기다렸다. 장마당 열리고 고사도 지냈으니 본격적으로 춤판을 벌여볼까. 그렇담 첫 번째로 문둥춤이겠다. 문둥탈 쓰고 쓰억 좌우 돌아보는 것이, 흡사 “흥겨운 장구경 끝에 / 막걸리 한 사발 걸쳤는가?” 하고 묻는 듯하다. 문둥춤 추는 사내의 사연이야 미뤄 짐작해도 알만하다. 문둥이 흉내 내는 잡기춤. 양손에 소고와 북채 들고 이리 들썩, 저리 들썩 마당을 호령하는 모양이 심상찮다. 오죽하면 문둥병을 천형이라 했을까. 그 슬픔과 비애를 무엇에 비하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들은 격리되어 살았다. 그러므로 그들 마을은 금이 그어진 금지된 마을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문둥골인들 춤이 없겠는가? 슬픔 많고 고통 많은 그 몸짓 하나로만 씰룩대어도 춤사위는 절로 피어난다. 내 비록 문둥이는 아니지만, 그들 애환 내가 듣고, 나의 애환 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