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북해도(北海道)》란 책이 있다. 신촌(서대문구 창천동) 버티고빌딩 2층에 있는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에서 빌린 책이다. 이곳에는 일본전문도서관이 있어 국내에서 쉽사리 일본관련 책과 디브이디(DVD)를 접하기 어려운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공간이다. 강의용 디브이디를 빌리러 갔다가 신간 책꽂이에서 발견한 이 책은 지난 8월에 나온 책으로 고향 문학산책 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연붉은 노을로 표지를 장식하고 아무 군더더기 없이 북해도라고 되어 있어 북해도의 무엇을 다루고 있나 하는 호기심이 있어 빌려왔으나 내용은 북해도를 소재로 한 여러 작품을 골라 일부를 싣고 거기에 해설을 덧붙인 책이다. 기대와는 달랐지만 더러더러 흥미로운 부분도 있었다. ▲ 《북해도(北海道)》책 표지 흔히 북해도라고 하면 겨울의 눈축제(유키마츠리)나 아이누 족을 떠 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책의 부제가 말해주듯 문학 속에 비친 북해도의 모습은 춥고 황량한 겨울 이미지와는 약간 다르다. 라일락은 일본 원산지 나무가 아니다. 원산지는 터키반도에서 유럽남동부 발칸반도 일대다. 라일락은 영어 이름이고 리라는 프랑스 이름이다. 라일락의 일본 이름은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물건을 사면 담아주는 비닐 봉투나 종이 가방 같은 것이 나오기 전에는 일본에서도 후로시키(風呂敷, 보자기)가 쓰였다. 일본 보자기의 기원은 나라시대(奈良時代,710-794) 정창원(正倉院) 소장품 가운데 보자기 같은 것이 보이는데 부가쿠(舞樂, ぶがく, 전통적인 무대 예술)을 할 때 입던 옷을 싸놓았던 것이 보자기의 시초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보자기 형태라기보다 보자기 안쪽에 옷을 고정하는 띠를 붙여 놓은 것이라 보자기로 보아야 할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헤이안시대(平安時代,794-1185)로 오면 히라츠츠미(平包)라고 해서 보자기에 서민들이 옷을 싸가지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재미난 것은 이 시대 목욕 문화와 보자기가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후로시키(風呂敷, 보자기)라는 말도 후로(목욕)라는 말이 들어 있어 목욕과 관련이 있음을 암시한다. 이 당시에 목욕은 단순히 신체를 깨끗이 하는 뜻 말고도 마음을 닦는다는 뜻이 있어서 알몸으로 목욕탕에 들어가지 않고 흰옷을 걸치고 욕탕에 들어갔다고 전해지는데 욕탕 앞에서 보자기에 별도로 싸가지고 간 흰 옷으로 바꿔 입었다. 흰옷으로 갈아입을 때는 바닥에 보자기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일본인이 정원에서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남녀불문하고 소나무입니다. 일본인은 정원에 소나무 한그루를 심고 그 옆에는 작은 길을 만들고 맑은 시냇물이 흐르게 합니다. 이런 것이 전통적인 일본 미학의 기본적인 형태이며 이러한 일본인의 소나무 사랑은 아마도 오래된 회상(回想)에서 기인한 것일 겁니다. 위는 평론가이자 교토대학 교수였던 타다미치타로(多田道太郞, 1924-2007)가 그의 책 《신변의 일본문화, 身邊の日本文化》에서 한 말이다. 그는 왜 소나무를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나무라고 보았을까? 그는 말한다. 일본인들은 신이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보았는데 그냥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소나무를 의지해서 땅으로 내려온다고 믿었다. 이를 의대(依代)라고 한다. 의대가 없으면 신은 내려오지 않는다. 그래서 정원에는 소나무를 심고 연극을 할 때는 무대 뒷면에 소나무를 그리는 것이다 타다미치타로 교수의 이론대로라면 소나무는 신을 맞이하기 위한 신목(神木)인 것이다. 그러나 신이 나무를 타고 내려온다면 구태여 소나무여야 할 까닭은 없지 않은가. 한국의 무당집 앞마당에는 키 큰 대나무를 심어두는데 이 나무를 통해 신이 내려오는 것으로 믿은 때문이다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일본에는 한국 어린이들처럼 돌잔치가 없다. 그 대신 시치고상(七五三)이라는 풍습이 있다. 일본의 어린아이들은 ‘오미야마이리(お宮參り)’라고 해서 생후 한 달 정도 되는 갓난아기를 강보에 싸서 신사참배를 하는 풍습이 있다. 그 이후에 남자아이는 3살과 5살 때 여자아이는 3살과 7살이 되는 해에 일본 전통 옷을 곱게 입혀 신사참배를 시키는 데 이를 시치고상(七五三)이라 한다. 시치고상이란 말하자면 3살, 5살, 7살을 맞이하는 어린아이들의 건강과 무병장수를 비는 인생의 통과의례 행사인 것이다. 이날이 되면 부모들은 어린아이에게 일본 전통 옷을 입혀 유명한 신사(神社)에 참배하러 데리고 가는데 이러한 풍습은 1681년 도쿠가와 집안의 5대 장군인 도쿠가와 츠나요시(川綱吉)의 장남인 도쿠가와 도쿠마츠(川松)의 건강을 빌기 위해 비롯되었다고 하는 설이 있다. ▲ 시치고상을 위한 전통옷을 파는 옷가게 광고 (위) 아래는 가족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신사참배 중인 아이들 신사에서 ‘시치고상’ 의식을 치른 아이들은 손에 ‘치토세아메(千歲飴)’를 하나씩 들고 있는데 이는 가늘고 길게 만든 사탕으로 장수를 비는 뜻이 있으며 학과 거북이, 소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과거 일본열도에서 맛있는 고기 가운데 하나가 개고기였다. 에도시대의 유명한 가학자(歌學者) 도다 모스이(田戶茂睡, 1629-1706) 씨는 아키다 지방의 성주인 사타케(佐竹) 씨의 초대를 받고 가서 개고기를 대접받고 너무나 맛있어서 뜰에 있던 통통한 개 날 위해 잡아 요리했네라는 노래를 불렀다고 전해진다. 일본열도에 살던 선주민들은 개고기의 미각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곤도 히로시(近藤博) 박사는 그의 책《일본인의 미각》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는 또 이 책에서 일본인이 개고기를 좋아하는 것은 일본인의 기원을 찾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 일본위키피디어에는 여러 나라의 개고기 음식들을 소개했다. (베트남, 동남아, 중국 / 시계방향), 남의 나라 개고기 요리만 잔뜩 모아놨는데 정작 자기들 것은 없다. 한국의 진도견처럼 일본에는 아키타개(秋田犬)가 유명한데 도다 스모이 씨는 바로 이 개고기를 맛보고 홀딱 반한 것이었다. 아키타개고기의 상품(上品)으로는 이치시로, 니아카라고 해서 첫 번째로 흰둥이 두 번째로는 붉은개(황구)를 쳤다. 뿐만 아니라 사츠마(薩摩)지방에서도 개고기는 진미 중에 진미로 꼽혔다. 저명한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일본문학의 시가적 기조(基調)는 사랑의 연민이요, 사물의 연민이라고 하였다. 이름은 기억되지 않으나 그는 저서이름을 아예 일본문학의 연민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일본적 예술의 특색은 비과학적, 비수학적이며 부조화, 불안정의 유동미에 있다고 하였다. 내가 보는 아와레는 서럽고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무상하고 측은하고 안쓰럽고 외롭고 아쉽고 고요하고 적적한 시인의 미에 대한 심미적 개괄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연변작가회의 회원인 리성휘 시인의 시집 《고향사람들》에 나오는 일본문학의 정서인 아와레 (あわれ)'에 관한 설명이다. 리성휘 시인은 일본와세다대학 문과를 수료한 분으로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에 능통한 분이다. 그러고 보니 일본문학을 공부하면서 늘 의문이었던 모노노아와레(줄여서 아와레라고도 함, もののあわれ、物の哀れ)라는 정서를 속 시원히 정의 하는 것 같아 후련하다. 다시 살펴보면 아와레는 서럽고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무상하고 측은하고 안쓰럽고 외롭고 아쉽고 고요하고 적적한 시인의 미에 대한 심미적 개괄을 포함 하는 뜻인데 정말 이런 모든 것을 포함하는 아와레라는 말을 한국말로 바꿀 수 있을까? 좀 생뚱맞고 전혀 동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헤이안천도로부터 1100년째를 기념하여 명치28(1895)년에 환무천황(桓武天皇)을 제신으로 헤이안신궁(平安神宮)이 조영되었으며 10월 22일부터 10월 24일에 걸쳐서 마츠리가 성대히 거행되었다.” 이는 교토시관광협회(京都市光協)에서 시대마츠리(時代祭)의 유래에 대해 밝힌 글이다. 교토의 3대 마츠리라고 하면 5월 15일의 아오이마츠리, 7월 17일의 기온마츠리, 10월 22일의 ‘지다이마츠리’를 꼽는다. 화려한 고대 의상을 입은 출연자들이 교토 시내를 두어 시간 행진하는 이 광경을 보기 위해 일본 전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 교토다. 마츠리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도구, 행렬 시간 등을 따지자면 7월의 기온마츠리(祇園祭)에 견줄 수가 없지만 5월의 아오이마츠리(葵祭)나 10월22일의 지다이마츠리(時代祭)도 꽤 볼만하다. 다만, 교토의 3대 마츠리 가운데 가장 그 역사가 짧은 것이 지다이마츠리로 1895년부터 시작되었으니 올해로 118년째를 맞이한다. ▲ 에도시대 부인 행렬, 무로마치시대 행렬, 풍신수길 시대 복장, 오다노부나가시대 행렬 지다이마츠리 행렬은 교토 어소(御所)를 낮 12시에 출발하여 가라스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흔히 일본가나 글자를 공부할 때 오십음도(五十音, 고쥬온즈)를 그려 넣은 직사각형의 글자표를 가지고 공부를 하는데 가로 5글자 세로 10줄이니까 50개 글자인 셈이다. 물론 이 가운데는 현대 일본어 글자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있어서 50개가 되지 않지만 편의상 지금도 50음도라 부른다. 문제는 일본 글자가 히라가나와 카타카나 두 종류가 있어서 모두 100개나 익혀야 하는 데 있다. 보통 히라가나는 일반적인 문장을 쓸 때 쓰며 카타카나는 외래어나 의성어 의태어 그리고 전보문 따위에 쓴다. 글자 숫자도 많지만 문제는 이렇게 글자 수가 많은데도 다양한 표현이 안 된다. 예컨대 한국어에서는 외래어 발음 가운데 쉘부르, 섀도우, 쇄뜨기, 미셸, 셀프, 샐러드에서 보듯이 다양한 모음과 복모음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본어에서는 쉘, 섀, 쇄, 셸, 셀, 샐을 각각 발음 할 수 없는 모음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것들은 겨우 셀 하나로만 발음이 가능하다. 거기다가 받침에 해당하는 발음이 안 되다 보니, 맥도널드는 마그도나르도, 보일러는 보이라, 로켓은 로케토 같은 식이다. 그래서 일본인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를 할 때 글쓴이는 종종 영어발음을 시켜보고 놀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오늘은 한글이 태어난 지 567돌을 맞는 날이다. 그렇다면 이웃나라 글자인 가나(仮名)는 언제 생겨났을까?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한글보다 훨씬 이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충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 공문서에서 오늘날 글자와 같은 형태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가나(仮名) 탄생을 나라시대로 잡기도 하는데 그러나 정확한 연대는 모른다. 재미난 것은 글쓴이가 대학에서 일본어를 처음 접하던 37년전 만 해도 일본의 가나(仮名)는 10세기에서 12세기에 생겨난 글자라고 배웠는데 오늘 이글을 쓰려고 '가나의 역사'를 찾아보니 일본 위키피디어에서는 이보다 훨씬 앞선 나라시대로 잡고 있다. 여기서는 2세기 곧 200년이나 앞서 생긴 글자라고 쓰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또 언제 가나(仮名)의 역사가 바뀔지 모르겠다. ▲ 기노츠라유끼(紀貫之)의 토사일기로 서기 935년 무렵의 가나글자다. 만든 이와 창제, 반포일이 확실하지 않기에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일본 가나의 최초 모습이라고 들고 있는 것은 정창원(正倉院) 소장의 공문서이다. 여기에서는 다(多)라는 한자를 현재 일본글자인 다(夕)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일본의 가게나 식당 입구에는 노렌(暖簾, のれん)이라는 헝겊으로 된 발을 걸어두는 풍습이 있다. 노렌에는 기업 이름, 가게 이름, 가문(家紋, 집안 무늬) 따위를 새겨두는 데 원래 이것은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바람을 막거나 또는 직사광선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문을 열어두었을 때 가게 안쪽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가게 입구에 늘어뜨린 발과 같은 구실로 쓰기시작 한 것이다. 태평양전쟁 전후에는 밥집이나 포장마차 등에서 손님이 나가면서 이 헝겊에 손을 닦고 나가기도 했는데 노렌이 더러울수록 번성하는 가게라는 인상을 손님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일본의 식당이나 가게 등에 걸린 노렌은 영업중임을 나타내는 표시로 쓰고 있다. 말하자면 노렌이 걸렸으면 영업중이요, 노렌이 없으면 영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것이다. ▲ 여러가지 노렌이 걸린 일본의 가게들 이러한 손님과 무언의 신호장치인 노렌문화가 한국에는 없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는 바쁜 점심을 마치고 저녁 영업사이에 잠시 쉬고 있는 식당에 들어가서 미안한 경우를 만날 때가 있다. 종업원들이 고된 식당일에 잠시 쉬는 달콤한 휴식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