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악곡 이름으로서의 염불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현악이나 관악, 평조회상 등 영산회상에 들어있는 구성곡의 하나인데, 관악영산회상 제6곡이 염불도드리란 점, 궁중무용이나 민속무용의 반주음악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 승무의 반주 음악인 긴염불, 반염불과는 6박자의 도드리 장단과 음계, 향피리를 사용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악곡의 길이와 잔가락, 장식음은 다르다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또 염불도드리 중에서 일부분을 발췌하여 이를 느리게 연주하면서 거기에 잔가락이나 장식음을 넣은 악곡이 긴염불이고, 이 곡조에서 잔가락을 덜고 골격음 위주로 빠르고 간결하게 연주하면 반염불이 된다는 점, 이들 3곡은 6박의 도드리 장단으로 (쌍)雙-2박, 편(鞭)-1박, 고(鼓)-1박, 요(搖)-2박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동일한 형태의 장단 반복은 지루하고 단순하기 때문에 실제의 활용은 10여종의 다양한 변형장단을 구사한다는 점, 그렇다고 해서 장고연주자 임의의 변화형은 아니고, 특정 가락에 해당되는 정해진 변형장단을 구사한다는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기악합주나 춤 반주시 기본형 장단만 반복해서 친다고 하면 매우 단조로울 수 있다.
국악속풀이 210[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속풀이 209에서는 민간 대풍류의 삼형영산회상이나 정악계의 관악영산회상 상령산(上靈山)은 박자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불규칙한 진행이 특징이란 이야기를 하였다. 박자가 불규칙적이기에 이를 제대로 연주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이야기, 마치 자동차 운전을 할 때 신호등을 잘 지켜야 되는 것처럼 장고나 북의 약속자리를 잘 지켜야 된다는 이야기, 상령산의 시작은 동시에 여러 악기가 합주로 시작되지 않고 박을 일타(一打)하면 장고, 북, 피리, 그리고 대금과 해금, 아쟁 등이 소리를 이어받아 전제적인 합주가 시작되는 형태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또 높고 시원한 가락과 변형 장단의 다양함이 이 음악의 특징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 염불풍류는 승무춤을 반주할 때에 듣게 되는 음악으로 긴염불-반염불(도드리)-타령-굿거리-법고-굿거리-당악 등을 차례로 연주한다는 이야기, 원래의 염불보다 느린 것이 긴염불이고, 이를 반으로 줄였다는 뜻에서 반염불이라 하지만, 명칭에 대한 관습은 일관성의 논리가 없으며 일반적으로 반염불을 다른 이름으로는 도드리라 부르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염불이란 악곡명의 이름은 현악영산회상에도 들어있고
[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삼현영산회상이란 음악은 높은 음역에서 이루어지는 흥겨운 가락과 다양한 장단형이 특징이란 이야기를 하였다. 아울러 삼현의 넓은 의미는 민간의 잔치음악이나, 제사음악, 군악 및 행악, 춤의 반주악이나 탈놀이의 반주음악 등 음악 전반을 뜻하는 용어이고, 좁은 의미는 대풍류 형태로 연주되는 삼현영산회상을 지칭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일반적으로 민간 대풍류는 세 종류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민간 삼현영산회상이고, 둘은 취타풍류이며 셋은 승무의 반주음악으로 연주되고 있는 염불풍류라는 이야기, 대령산은 삼현영산회상을 일컫는 이름이지만, 작게는 대풍류 첫곡의 명칭이라는 이야기, 장단형은 쌍(雙), 편(鞭), 고(鼓), 요(搖)이며 장고점(杖鼓點)간의 박자가 일정치 않아 이를 제대로 연주하기가 어렵기에 각 연주자들이 다른 악기의 선율을 훤히 꿰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 관악영산회상을 연주하고 있는 삼현육각보존회 회원들 민간 대풍류의 삼형영산회상을 국립국악원을 비롯하여 정악계에서는관악영산회상 또는 아명을 사용하여 표정만방지곡이라 부르고 있다. 특히 이 곡의 첫 악장인 상령산(上靈山)은 악보상에는 20박을 한
[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삼현육각>이란 말에서 <삼현>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점을 설명하였다. 삼현이란 말은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여러 의미로 쓰이고 있어서 해석이 분분하다는 점을 전제하면서《삼국사기》 통일신라 조에 소개되어 있는 삼현(三絃)은 3종의 현악기, 즉 거문고, 가야금, 비파를 가리키는 말이어서 삼현육각의 삼현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점, 조선조 영조때에는“근래에 삼현이 너무 촉급해 졌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의 음악 일반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보인다는 점을 말했다. 또한 “삼현이라고 하는 것은 군악을 가리키는 것이다.”라는 《목민심서(牧民心書)》의 내용처럼 행악(行樂)에 쓰이는 음악일체를 포괄적으로 지칭하였다는 점, 행악은 힘차고 씩씩한 곡풍이어서 전부(前部)고취와 후부고취로 구분되는데, 전부고취는 태평소와 나발, 나각 등이 중심이고, 후부(後部)고취는 피리, 대금, 해금과 같은 선율악기들의 세악수(細樂手)편성이었다는 점도 얘기했다, 더불어 삼현의 의미와 가장 가깝게 연상되는 악곡은 <관악영산회상>, 일명 <삼현영산회상>으로 보인다는 점, 또한 가면무나 놀이형식의 탈춤 등을
[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민간 기악합주의 주류를 이루어 온 삼현육각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서울 경기지방의 삼현육각(三絃六角)음악이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피리의 최경만, 대금의 이철주, 해금의 김무경 등이 보유자로 인정되었다는 이야기, 삼현육각의 악기편성은 피리 2인, 대금 1인, 해금 1인, 북 1인, 장고 1인 등, 6인이며, 최경만은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악장으로 재임하던 2006년 11월, 50여년 만에 대풍류 전곡을 재구성하여 발표하여 호평을 받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대령산과 같은 음악은 매우 느린 템포로 진행되기 때문에 호흡이 길어야 하며 피리와 대금, 해금의 가락이 어렵고 장단이 불규칙한 악곡이라는 이야기, 전승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의욕적으로 공연을 준비한 삼현육각보존회의 열의와 뒤늦은 결정이긴 해도 서울시의 시 지정 문화재로 삼현육각을 선정한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이라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삼현육각으로 연주되는 서울경기의 대풍류 원가락을 되찾는 작업에 고심해 온 보존회장 최경만은 어렵고 재현이 불가능했던 부분은 지영희 편 《민속음악연구집》을 참고하였고, 선배나 선생들이
[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민간 기악합주의 주류를 이루어 온 삼현육각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서울 경기지방의 삼현육각(三絃六角)음악이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피리의 최경만, 대금의 이철주, 해금의 김무경 등이 보유자로 인정되었다는 이야기, 삼현육각의 악기편성은 피리 2인, 대금 1인, 해금 1인, 북 1인, 장고 1인 등, 6인이며, 최경만은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악장으로 재임하던 2006년 11월, 50여년 만에 대풍류 전곡을 재구성하여 발표하여 호평을 받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대령산과 같은 음악은 매우 느린 템포로 진행되기 때문에 호흡이 길어야 하며 피리와 대금, 해금의 가락이 어렵고 장단이 불규칙한 악곡이라는 이야기, 전승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의욕적으로 공연을 준비한 삼현육각보존회의 열의와 뒤늦은 결정이긴 해도 서울시의 시 지정 문화재로 삼현육각을 선정한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이라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삼현육각으로 연주되는 서울경기의 대풍류 원가락을 되찾는 작업에 고심해 온 보존회장 최경만은 어렵고 재현이 불가능했던 부분은 지영희 편 《민속음악연구집》을 참고하였고, 선배나 선생들이
[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 주 속풀이에서는 충남 서천이 낳은 판소리 이동백 명창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근대 판소리사에서 큰 이름을 떨친 이동백(李東伯,1867-1950)은 충청남도 서천 태생이다. 84세로 작고하기 전까지 평생을 소리꾼으로, 창극운동과 후진 양성 등 판소리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란 점, 일제 강점기, 국권상실과 급격한 서구화의 충격으로 판소리가 위축될 시기에 김창환, 송만갑, 김창룡, 정정렬 등과 함께, 판소리를 지켜가며 창극운동에 공이 큰 5명창 중에 한 사람임을 얘기했다. 또 그의 성음은 매우 미려하면서도 다양해서 청중을 웃기고 울리는 일을 자유자재로 했으며 특히 하청(下淸)이 웅장했다는 점, 그는 심청가와 적벽가에 능했고 새타령은 이날치 명창 이후 당대 독보였다는 점, 그의 판소리제는 충청지역의 중고제로 분류된다는 점, 최근에 미국 빅터 음반사에서 녹음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동백 명창의 100년 전 음반, 춘향가 SP(유성기 음반) 희귀본 2장이 발견되었다는 점, 이동백을 기리는 전국판소리 경연대회가 충남 서천에서 열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부터는 엊그제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렸던 삼현육각(三絃六角)이
[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조선의 세력가들이 다나베를 위한 만찬장에서 가곡을 들려준 것과 관련하여 가곡이 어떤 특징을 지닌 음악인가 하는 점을 간단하게 언급하였고, 궁중음악과 춤을 촬영하는 현장 이야기를 하였다. 가곡은 형식이나 선율, 시김새나 창법, 또는 발음법 등이 특징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재미있는 노래가 아니어서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는 어려운 노래라는 이야기, 그러나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을 하나로 묶는 힘을 지닌 노래라는 이야기, 그리고 다음날 궁중음악과 춤을 촬영할 때, 이를 신기하게 여긴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담장 일부가 허물어지는 소동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명월관에서는 궁중 연례악과 춘앵전 등 궁중무용을 찍었고, 촬영이 끝나고 명월관 특별 연회장에는 이동백(李東伯)이 나와 판소리를 들려주었는데, 그는 조선 제일의 명우인 만큼 성량이나 음색이나 모두 탄복할 정도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명월관 별실에서 가진 연회에 조선 명창 이동백이 어떤 소리를 들려주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러나 조선 제일의 명우답게 성량이나 음색이 모두 탄복할 정도라는 점에서 이동백의 위용이 대략적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근대 판소리사에
[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 속풀이에서는 당대의 거물 정치인들이 삼청동 송병준의 별채에서 다나베를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으며 주 종목은 가곡과 궁중무용이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 자리에 참석자로 송병준, 이완용, 박영효 등이 거명되는데, 송병준은 일진회를 이끌며 고종의 퇴위와 한일 강제병합에 앞장섰던 인물이고, 이완용은 을사조약의 체결을 지지하는 등, 민족을 배반하는 일을 자행한 인물이며 박영효도 일제의 통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친일파들이었다. 또한 그 자리에서 연주된 음악은 가곡과 궁중의 무용이었는데, 가곡을 선정한 배경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노래로 조선조의 지식인들이 즐기던 점잖은 노래였기에 일본인에게 음악적 수준을 과시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이며, 가곡의 특징으로 형식이 세련되고 정제되어 있다는 점, 16박과 10박형 장단 그 어느 것도 일체의 즉흥성이나 변형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 춘앵전(문화재청) 이처럼 가곡의 형식이나 장단은 매우 엄격한 편이다. 가곡은 5장 형식인데 이것은 시조시의 3형식을 확대한 것이다. 가곡은 세피리나 대금, 거문고, 가야금 등의 관현악 반주를 동반하기 때문에 노래가 시작되기 전
[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다나베의 기행문 중 1921년 4월 11일에는 그가 총독부에 보관되어 있던 국악 관련 악서들을 살펴 본 다음, 삼청동에 있던 송병준의 별저에 초대되어 전통가곡과 궁중무용 등을 감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난주에는 그가 살펴본 관련 자료들 중에서 《세조실록『(世祖實錄)》 악보를 비롯하여 성종때 편찬된 음악총서 《악학궤범(樂學軌範)》이나 《악통(樂通)》, 정약용의 《악서고존(樂書孤存)》, 《악장등록(樂掌騰錄)》 등과 그 외 각종 《의궤(儀軌)》 등 한국음악의 역사를 알게 하는 귀중한 자료 등을 소개하였다. 다나베는 그 날 오후, 삼청동 송병준의 별저에 초대되었고, 그곳에서 초수대엽이나 소용 등 가곡 여러 곡과 춘앵전을 비롯하여 장생보연지무, 검무, 사고무 등과 같은 악무(樂舞)로 그를 위한 최고의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는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 1876년(고종 13) 박효관(朴孝寬)과 안민영(安玟英)이 펴낸 가곡원류(歌曲源流) 다나베는 그 날 오후, 삼청동 송병준의 별저에 초대되었고, 그곳에서 초수대엽이나 소용 등 가곡 여러 곡과 춘앵전을 비롯하여 장생보연지무, 검무, 사고무 등과 같은 악무(樂舞)로 그를 위한 최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