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한국음악무용예술단>이 L.A와 그 이웃 지역에도 전속 예술단체가 되어 그동안 3,000개 이상의 학교에서 5,000회 이상의 방문 공연하였다는 이야기와 학교의 선생님들이 ‘경이로운(wonderful)’, ‘최고로 멋진(awesome)’, ‘아름다운(beautiful)’, ‘매혹적인 (mesmerized)’, ‘최고로 즐거운(really enjoyed)’ 등으로 평가해 줄 때, 김동석 교수는 보람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L.A 음악센터에 소속되어 있는 <한국음악무용예술단>이 어떻게 그토록 긴 시간을 학교방문 교육에 동참해 올 수 있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해 본다. 김동석의 학교방문 공연수업은 한국의 역사 이야기로 시작해서 국악기 연주와 무용 등을 선보인 다음, 한국말 몇 마디 가르쳐 주는 것으로 진행한다. 처음에는 낯설기만 한 동양의 한 작은 나라, 코리아의 음악과 춤을 감상하는 시간이려니 해서 학생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러나 공연이 진행됨에 따라 학생들의 반응은 점차 달아오르기 시작하다가 이내 ‘원더풀’을 연호하며, 공연이 끝나면 사인을 해달라고 줄을 서기 시작한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설을 앞두고 일본에서는 ‘카도마츠(門松)’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일본은 메이지(明治, 1868년) 때부터 양력설을 쇠고 있으며 이제 설날은 일주일 남짓 남았다. 카도마츠란 설날을 맞아 집 대문 앞 또는 출입문 앞에 세우는 소나무 장식물을 말한다. 카도마츠는 길고 두툼한 토막의 대나무를 가운데 세우고 그 둘레에 소나무를 세운다. 소나무는 조상신이 찾아든다는 속설이 있어 소나무 장식을 즐기며 여기 쓰이는 대나무는 천수를 누리며 장수하라는 뜻을 지닌다. 설날 장식품인 카도마츠는 12월 23일부터 새해 1월 7일까지 세워두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15일까지 세워두는 곳도 있다. 이렇게 카도마츠를 세워두는 기간을 가리켜 ‘소나무가 세워져 있는 동안’이라는 뜻으로 ‘마츠노우치(松の內)’라고 한다. 22일(화) 북일본신문에는 오야베 원예고등학교(토야마현 오야베시) 학생들이 미니 카도마츠를 만들어 손에 들고 찍은 사진을 크게 보도했다. 이들은 미니 카도마츠 50개를 만들어 학교에서 판매한다고 한다. 미야코시 히데아키(宮腰秀明) 선생으로부터 지도를 받은 학생 3명은 이번 달 초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원예고등학교 학생들은 목화버섯과, 학교 터 안에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김동석 교수가 L.A지역의 어느 중학교에서 실행한 다인종 문화의 이해를 위한 공연 수업을 소개하였다. 음악센터에는 약 60여 개의 단체가 활동하고 있으나, 창립 이후,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유일한 단체는 김동석의 <한국음악무용예술단>이라는 이야기, 음악센터의 광장 한복판에 있는 커다란 스크린에는 항상 동 예술단의 공연 장면들이 소개되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김동석의 <한국음악무용예술단>은 창단 다음 해인 1984년부터 이웃 지역, 곧 오렌지 카운티와 산타 바바라,(Santa Barbara county), 산디에고(San Diego)의 전속 예술단체가 되었다. 이들 지역을 합하면 남북한을 합친 길이보다 더 길다고 하는데, 대략 3,000개 이상의 학교를 방문하였다고 한다. 김동석 교수의 말이다. “어떤 날은 새벽 4시에 떠나 3시간 운전해서 학교에 도착, 공연하고, 또 어떤 날은 2~3개 도시를 돌면서 한국을 모르고 있는 어린 학생들을 만나는 기쁨에 피곤을 잊고 뛰어다녔지요. 아마도 지난해 2019년까지 우리는 5,000회 이상의 방문 공연을 했을 겁니다. 이 강의를 하면서 음악센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윤성용)은 신축년(辛丑年) 소띠 해를 맞이해 학술강연회 <심우(尋牛): 소를 찾아서>를 연다. 이번 강연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으로 진행되며 국립민속박물관 공식 유튜브 채널(www.youtube.com/tnfmk)에서 2020년 12월 23일(수)부터 2021년 3월 1일(월)까지 시청할 수 있다. 학술강연회에서는 정연학(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천명선(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김희재(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한국의 생활문화 속에서 소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풀어나갈 예정이다. □ 노동력과 풍년의 상징, 소 우리 문화는 농경문화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농사의 주역인 소는 여러 풍속과 관련 맺어 왔다. 정연학 학예연구관은 소가 갖는 의미를 농경사회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소의 힘을 빌려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래로 우리 농경문화에서 소는 필수적인 노동력이었다. 소가 없는 집에서 남의 소를 빌려 쓰고 품삯으로 갚았던 소 품앗이나 소를 한 마리씩만 가지고 있는 겨리사촌끼리 돕던 관습은 소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형성된 민속문화이다. 소는 권농과 풍년을 상징하기도 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경자년(庚子年)은 참으로 피곤하기 짝이 없는 한해였다. 쥐띠해가 저물어가는 마당에 쥐가 옮긴 전염병으로 알려진 중세 유럽의 흑사병(페스트)이 떠오른다. 인류 역사상 큰 재앙이었던 흑사병은 1347년부터 1351년 사이, 약 3년 동안 2천만 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냈다. 올해 유행한 ‘코로나19’도 인류를 위협하고 있어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 고통이 끝은 어디인가? 일본도 올 한해 코로나19로 올림픽마저 연기하는 등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 맞이하는 연말이라 예년과 같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연말 분위기라고 하면 시메카자리(금줄, 注連飾り)를 빼놓을 수 없다. 시메카자리는 연말에 집 대문에 걸어두는 장식으로 짚을 꼬아 만든 줄에 흰 종이를 끼워 만드는데 요즈음은 편의점 따위에서 손쉽게 살 수 있다. 이러한 장식은 농사의 신(稻作信仰)을 받드는 의식에서 유래한 것인데 풍년을 기원하고 나쁜 액운을 멀리하려는 뜻으로 신도(神道)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도 있고 한편으로는 일본의 나라신(國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과 관련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시메카자리는 전염병 같은 액운을 막아준다는 믿음이 있는 만큼 새해 신축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김동석 교수가 창단한 <한국음악무용예술단(Korean Classical Music and Dance Company)>이 L.A 지역의 다문화 이해 프로그램에 참가, 초 중등학교에서 한국음악과 춤에 관한 강의를 해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처럼 작게 보이는 노력들이 모이고 쌓여, 미국민을 비롯한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문화의 강국”임을 심어 온 것이라 하겠다. 글쓴이가 김동석 교수를 만났을 때, 그는 어느 중학교 공연 수업에 나를 초대해 현장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처음에 그는 <Korea>의 spelling을 알고 있는 학생들은 손을 들어보라고 질문한다. 약 1/3 정도가 손을 든다. 이어서 한국은 어느 대륙에 위치하고, 인구수, 수도를 소개한 다음, 간단하게 역사와 한국인들이 즐기는 전통음악과 무용을 소개했다. 한국의 전통악기들, 예를 들어 장고를 소개한다면, 실제의 장고를 들어 올려 생긴 모양새를 보여주면서 설명한다. 오른손으로는 장고채를 잡는 법과, 치는 형태, 왼손으로 북편을 울리는 시범을 보이며 소리빛깔의 차이를 느끼게 해 준 것이다. 그리고 나면 무용수가 직접 장고를 메고 나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힘겨웠던 경자년(庚子年) 쥐띠 해는 서서히 저물어 가고 신축년(辛丑年) 소띠 해가 슬슬 다가오고 있다. 소띠 해를 앞두고 일본 기후현 다카야마시(岐阜県 高山市)에서는 이 지역 전통공예품인 ‘황소상’을 만들기 바쁘다. 특히 다카야마에서 만드는 전통공예품을 ‘이치이잇토보리(一位一刀彫)’라고 하는데 여기서 ‘이치이(一位)’란 주목나무를 말하며, ‘잇토보리(一刀彫)’란 나무를 깎아내는 조각법을 말하며 약간 거친 듯이 깎아 질박한 느낌을 주는 조각법을 일컫는다. 주목나무는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고 할 만큼 견고하고 은은한 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죽은 자를 위한 최고급 관의 재료로 쓰이기도 하지만 공예품 재료로도 널리 쓰인다. 주목나무는 시간이 지나면 붉은빛을 띠어 조각품이 더욱 생동감을 느끼게 해주는데 그래서인지 ‘황소상’에 딱 맞는 재료다. 다카야마시 히다지역(飛騨地域)에서는 1843년에 창업한 츠다조각(津田彫刻)집이 유명한데 이곳은 현재 6대째인 츠다 스케토모(津田亮友, 73) 형제가 목공예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작업할 때에는 40개의 조각칼을 사용해 누워있는 소의 모습이나 서 있는 소의 모습을 조각하는데 크기가 큰 작품은 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매주 화요일, 독자들을 만나 온 <서한범의 한국음악이야기>가 지난주로 500회를 맞게 되었다. 두서없는 이야기였음에도 독자들로부터 격려와 응원에 힘입어 여기까지 왔다는 점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앞에서는 “한국정부의 지원 약속, 지켜지지 않아 실망”이라는 제목의 <한국민속보존단체>의 탄생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미국 연방 정부로부터의 운영자급을 받아 10여 명, 다음 해에는 20여 명의 생활비가 지급되었다는 이야기, 동 단체는 각급 학교를 방문, 한국과 미국의 동맹 관계, 한국의 역사, 한국의 전통음악과 춤의 실연, 때로는 지역의 불우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도 해 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어서 미 공화당의 새로운 정책으로 인해 이 직업훈련 프로그램은 끝나게 되어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중, 1980년 3월, 한국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단원들은 대대적으로 환영 연주를 하였다는 이야기, 대통령을 수행하던 당시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과 상의해서 매년 30만 달러의 기금을 보내 주겠다는 약속을 했으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김동석 교수가 <한국음악무용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구마모토에 조선의 뛰어난 제지술을 전한 이는 경춘(慶春, 일본발음 케이슌)과 도경(道慶, 일본발음 도케이) 형제다. 이들 형제는 정유재란 때 포로로 끌려갔지만 뛰어난 제지기술을 갖고 있어 일본에서도 귀한 존재로 대우받았다. 경춘과 도경의 이름은 일본의 제지 관련 역사책이나 논문 등에서 ’바이블(성서)’처럼 인용되고 있다. 한국에서 전통종이(한지)의 고장이라고 하면 전주를 꼽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경우는 어디를 꼽을까? 그곳이 바로 경춘과 도경 형제가 조선에서 건너가 살았던 구마모토다. 경춘과 도경 형제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조선을 침략해왔던 장수 가등청정(加藤淸正, 가토 기요마사)에 의해 일본에 건너왔다. 이들은 다른 조선인 9명과 함께 구마모토로 건너가 당시 뛰어난 한지(韓紙) 기술을 전한다. 당시 에도시대(1602-1868)에 들어서면서부터 일본에서는 종이의 수요가 크게 늘어났으나 질 좋은 종이를 보급해줄 공급처가 부족하던 때였다. 따라서 이들 형제의 제지기술을 전수한 구마모토에서는 번(藩, 에도시대 봉건영주가 다스리던 영역)의 주 수입원으로 제지기술이 급부상했다. 영주들은 형제를 특별장인(御紙漉役)으로 임명하여 이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매주 화요일, 독자들을 만나 온 국악속풀이가 이번 주로 500회를 맞게 되었다. 당시 <신한국문화신문>이란 이름의 인터넷 신문을 발간하고 있던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윤옥 시인, 이무성 화백 등, 3인은 나를 만난 자리에서 “국악 듣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는 점”, “국악감상이나 이해에 가까이 접근하려 해도 쉽지 않다는 점”, “그들을 위해 쉽게 안내하는 글을 신문에 써 주었으면 한다는 점” 등을 청해 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요청이 매우 현실적이며 진지했기에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당시 나는 몸담고 있던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하여 다소 시간 여유는 있게 되었던 차였고, 이러한 기회에 인터넷 신문을 통해서 독자들과 만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판단해서 긍정적으로 대답한 것이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주 1회, A4 2장에 국악 관련 이야기들을 생각나는 대로 써보는 작업은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때그때, 생각나는 이야기, 또는 발표 공연이나 연주회, 학술모임, 등등, 국악 행사와 관련하여 보고 느낀 점 등을 중심으로 적어보기로 한 것이다. 지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