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내가 허약한 가설 위에 지어 올렸던 환상의 성은 눈 깜짝할 사이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그 후에는 무감각하고 밋밋한 평면이 덩그렇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장편소설 《상실의 시대》 가운데서- 어느 날 내가 기대했던 어느 것 하나가 환상이었음을 깨닫곤 한다. 복권을 사놓고 긴장된 마음으로 추첨 일을 기다렸다가 추첨이 끝나자, 주먹 안에 무참하게 뭉개진 종잇장처럼 그 시간까지 기대했던 꿈도 처절하게 뭉개진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꿈이 어느 때는 그저 생각만으로 지어 올린 가설과 논리들의 군상들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다가설 수 없는 여러 색깔의 꿈의 반란을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꿈이 없는 삶이란 망막한 사막과 같다. 한 여자가 양계장에서 하루 일을 해주고 그 대가로 달걀 한 판을 받았다. 달걀판을 머리에 이고 부픈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큰 부자가 될 거라는 꿈을 꾸며 길을 걸었다. “이 달걀을 부화시키면 병아리 30마리가 된다. 30마리 병아리를 다섯 달 동안 잘 키우게 되면 그 닭들이 수많은 알을 낳게 되고, 그 알로 또다시 병아리를 부화시키면 닭은 엄청나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광주역 앞에서 늦은 점심을 간단히 먹고 4시에 광주에서 출발하였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연담 거사와 불교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담 거사는 특이하게도 부인이 교회에 다닌다. 자녀가 둘 있는데, 하나는 아버지 따라 절에 다니고, 하나는 어머니 따라 교회에 다니는 독특한 가정이다. 연담 거사는 그러한 가정 내력 때문인지 이미 기독교 교리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그가 설명하는 불교 이야기는 이해하기 쉬었다. 나는 수원대 교수로 오기 전에 국토개발원에서 3년 동안 근무한 적이 있다. 그때 이 과장이라는 분과 차를 마시면서 불교에 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분은 불자로서 불교 공부를 많이 한 분이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었다. “부처님의 말씀을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일반인의 행동 차이점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이 깨닫는다면 그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달라지는가?” 내 질문을 들은 이 과장님은 이것은 금강경에 나오는 보물 같은 이야기인데 좋은 질문을 했으므로 나에게만 말해 준다면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연담거사가 설명하는 무주상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아침마다 부부 함께 산길을 돌아내려 오는 산책길에 최근 달라진 것이 있다. 그것은 맨발로 이 길을 도는 분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주로 여성분들이고 남자도 있기는 한데 여름철로 접어들면서 하얀 맨발로 조심스레 길을 걷는 분들이 더 자주 눈에 띈다. 우리 부부가 걷는 산책길은 북한산 둘레길 8구간 가운데서 은평 뉴타운 4단지 일명 폭포동아파트의 뒷길을 끼고 돌다가 안쪽 경사진 길로 내려오는 코스로 걷는 시간이 45분 안팎이라 아침 운동으로는 적절한 거리라 하겠지만 우리만 해도 신발을 신고 다닌다. 그런데 맨발로 올라오고 내려가는 분들이 점점 많아진다. 우리는 선림사 입구 쪽에서 먼저 산쪽 경사진 길로 올라갔다가 둘레길을 타고 내려오는 식으로 걷는데 우리 코스의 정상 부분에는 평평한 구간이 있다. 거기는 가는 입자의 흙이 많아 걷기에는 제법 안성맞춤이다. 또 경사가 급한 곳은 계단이 있고 계단에는 고무깔판도 있어 걸을 수 있다. 그렇지만 험한 구간도 많은데 여성분들이 용케도 이런 데를 맨발로 다니신다. 그것은 한 일간신문 스포츠 기자가 2년 전인가 처음 맨발걷기의 효과를 말하면서 말기 암도 고쳤다는 사례를 제시한 데 따른 현상일
[우리문화신문=신부용 전 KAIST 교수] 전번 이야기에서 세계 시각장애인들은 자국어 점자 대신 ‘한글20’으로 된 문서를 읽고, 소리자판을 써서 자국어 글자를 입력할 수 있는 방법을 보였습니다. 곧 ‘한글20’으로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글20’이 청각장애인을 위해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청각장애의 등급 청각장애는 장애 정도에 따라 6가지 등급으로 분류되지만, 이 글에서는 편의상 다음과 같이 3단계로 나누어 이야기하겠습니다. - 가장 심한 경우: 농아인: 태어나면서부터 전연 듣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려서부터 듣지 못해 말을 배우지도 못해 농아인(聾啞人)이 됩니다. 헬렌켈러는 이러한 사람이었으나 썰리반 선생의 헌신적이고도 창의적인 교육 덕분으로 말하고 글쓰기에 능해졌으며 심지어는 외국어도 몇 가지 했다고 합니다. 썰리반 선생의 교육 요령은 혀, 입술 등 구강의 움직임을 글자와 연계시켜 가르쳐주는 것부터 시작했다고 합니다. - 중증(重症) 청각 장애인: 정상으로 태어나 말을 배운 뒤 귀가 잘 안 들리게 되어 남의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입니다. 장애가 오기 전에 글을 배웠다면 말을 하고 책 읽기와 글쓰기를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역사가 필요한 날이 있다. 옛날에는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이런 상황에서 나보다 앞서 살다 간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궁금해지는 때가 있다. 신동욱이 쓴 《그래서 역사가 필요해》는 그럴 때 펼쳐보기 좋은 책이다. ‘삶의 무기가 되는 역사 속 인물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지은이 신동욱은 자신의 삶에 놓인 수많은 문제 앞에서 고심하고, 또 노력했던 인물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예나 지금이나 ‘인생 고민’은 늘 비슷한 것처럼, 똑같이 슬퍼하고 분노하며 기뻐하는 역사 속 그들을 보노라면 시대를 뛰어넘은 동질감이 느껴진다. 가령, 책의 한 꼭지로 들어가 있는 제목처럼 ‘배신감과 복수심이 내 마음을 어지럽힐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작가는 성왕의 사례를 들려준다. 백제 성왕이야말로 신라 진흥왕에게 호되게 배신당한 인물이다.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배운 대로, 백제와 신라는 동맹을 맺고 고구려를 몰아낸 뒤 한강 유역의 땅을 수복했지만, 진흥왕이 갑자기 배신하면서 기껏 되찾은 한강 유역이 모두 신라의 땅이 되고 말았다. 한강 유역의 위례성에서 건국한 백제는 고구려에 빼앗긴 한강 유역의 땅을 되찾는 것이 누대에 걸친 숙원사업이었다. 천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우리나라의 경우 본격적인 여름을 알리는 분기점이 있다. 여름 장마를 그 분기점으로 볼 수 있는데, 장마 이전에는 봄기운이 남아 아침, 저녁에 서늘함도 있고, 시원한 바람도 있는 쾌청한 날씨인데 장마가 지나면서 완전히 달라진다. 보통 6월 말 무렵을 장마 시점으로 보고 있으며 장마가 지나가면 본격적인 여름 날씨가 시작되는데 올해는 장마가 조금 오래 진행되어 7월 중순 이후부터 불볕더위가 시작되었다. 장마부터는 날도 덥고 습해지면서 우리 몸도 더위에 힘들지만 덥고 습한 환경 때문에 음식물의 부패 속도가 높아져 음식이 쉽게 상할 수 있는 것이 문제가 된다. 요즘에야 냉장보관을 할 수 있어서 어느 정도 극복했지만, 예전에는 음식물의 관리가 온전하지 않아 장염과 식중독 사고가 자주 발생했다. 따라서 최근에는 장염이나 식중독 발생이 거의 없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올여름에는 이러한 기대를 배반하고 있다. 그간 코로나19도 잠잠했든 것으로 인식되든 온갖 바이러스가 퍼져 거의 전 국민이 감기에 노출된 듯한 힘겨운 봄을 보내게 되었다. 감기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대하면서 봄이 빨리 지나 더운 여름이 되어 바이러스가 잠잠해지면 낫겠지 하는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을 도와 세종르네상스를 만든 인물을 살피고 있다. 하연과 한상경, 황보인을 보자. 하연(河演, 우왕 2년 1376년 ~ 단종 1년 1453) 하연은 조선 초기의 영의정을 지낸 문신이자, 성리학자, 서예가, 시인으로 문종의 스승이다. 하연의 졸기를 중심으로 그의 활동을 살펴보자. “영의정(領議政)으로 잉령치사(仍令致仕, 임금의 영 에 따라 그대로 벼슬에 머묾)한 하연(河演)이 졸(卒)하였다. 하연은 진주 사람이다. 병자년(1396 태조 5년)에 과거에 올라 봉상 녹사(의정부 중추원의 벼슬아치)에 보직(補職)하였다가 뽑혀서 직예문 춘추관 수찬관이 되고 여러 관직(官職)을 더하여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에 이르렀다가 승정원 동부대언에 발탁 제수되었다. 태종(太宗)이 하연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경은 이 벼슬에 이른 까닭을 아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알지 못합니다." 하니, 태종이 말하기를, "경이 대간(臺諫)에 있을 때 의연하게 일을 말하였으므로, 내가 곧 경을 알았다." 하였다. 세종이 내선(內禪, 후손에게 양위)을 받자, 지신사(知申事, 밀직사의 정3품 관직)에 제수하였다. 이때 나라에 일이 많았는데, 하연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동대문 밖 주택가에 작은 갤러리가 있는데 가보실래요?" 회사 후배의 권유에 조금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더니 이번에는 거기는 서양화가가 살던 집인데 가보시면 아는 분이 있을 것이란다. 그래, 그렇다면 한 번 가보지. 이렇게 해서 발길을 들여놓게 된 것이 숭인동 골목이다. 숭인동 주민센터가 있는 골목길을 들어서니 좁은 골목을 낀 집 벽에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아이들과 토끼, 거북 등이 함께 노는 그림이다. "이거 생전에 그 미술가가 재능기부로 그려주신 것입니다" 그러고는 비탈에 있는 3층 건물의 입구로 끌고 간다. 거기에 작은 간판이 있다. "욘보 스페이스" 욘보? 못 듣던 말인데 뭐지? 그랬더니 이 집이 김용기라는 화가가 사시던 곳이고, 그 화가가 어릴 때 일본에서 자라면서 일본 사람들이 용을 발음을 잘 못해 '욘기'라고 하니까 그 모친께서 욘보라고 아들에게 붙여준 애칭이란다. 말하자면 어머니한테는 영원한 아기인 그 아들의 뿌리가 살아있는 이름인데, 욘보 스페이스, 곧 욘보가 있던 공간이란 뜻이고, 그것이 이 골목에 있는 갤러리 겸 카페의 이름이 된 것이다. 정문을 들어서니 집안 곳곳이 온통 그림 천지다. 파란 바닷물의 항구
[우리문화신문=신부용 전 KAIST 교수] 배경 앞에서 f를 ‘ㅍ’으로 쓰라는 등의 외래어표기법 때문에 우리 국민은 세계에서 일본 다음으로 영어를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외래어표기법을 버리고 새로운 ‘외국어표기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제한의 합자가 가능한 ‘한글20’으로 외국어 발음을 표기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또한 ‘한글20’은 간단한데다가 어떤 발음이라도 표현할 수 있으므로 시각장애인도 쉽게 배워 점자 대신 쓸 수 있을 것이라 하고 시각장애인에게 쉽게 한글을 가르쳐주는 방법을 소개했습니다. 이는 모두 시각장애인이 글을 쉽게 읽을 수 있게 되는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이 글을 쓰는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합니다. 아래에서 설명하는 소리자판은 그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곧 소리자판으로 시각장애인이 글을 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시각장애인이 아닌 청각장애인과 지체장애인의 언어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문맹의 문제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문제를 ‘한글20’이 해결할 수 있다면, 아니 해결은 못 한다고 해도 문제를 조금만이라도 줄일 수 있으면 ‘한글20’은 세계적으로 전파되어 그 값어치를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이태영 변호사.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생소할 그녀는, 한국 여성 인권 발전에 한 획을 그은 여성 법조인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고등 고시에 합격한 여성, 이태영! 그녀는 일제강점기 치하에서 모진 고생을 하면서도 마침내 한국 첫 여성 변호사가 되기까지 절대로, 절대로 꿈을 놓지 않았던 멋진 여성이었다. 강효미가 쓴 책, 《이태영 변호사의 낡은 가위》는 우리나라 첫 여성 변호사로 오랜 세월 차별받아 온 수많은 여성의 응어리진 한을 풀어 준 이태영의 일생을 알기 쉽게 풀어 쓴 책이다. 여성은 남성에게 예속된 부속물처럼 여겨지고 ‘여성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희미했던 시절, 그녀는 시대를 앞서간 감성으로 여성의 권리를 부르짖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여자들이 정식으로 교육을 받은 것은 불과 백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1914년 평안북도 운산에서 2남 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이태영은 한 살 무렵 광산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홀어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이태영의 어머니는 아들딸 차별 안 하고 공부시켜주기로 약속했다. 그 누구보다 총명하고 웅변도 잘했던 그녀는 평양 정의여자고등보통학교를 1등으로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