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나는 의식적으로 무정부주의자가 되었다거나 무정부주의자로 사상을 전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우리나라의 독립에 관하여 실현하려 노력하는 나의 생각과 방법이 현대사상의 견지에서 보면 무정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상통하기 때문에 남들이 그렇게 보는 것이다. …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알맞은 제도와 조직과 구조를 생각해야 했고 그 결과 얻어진 것이 이것이니, 나의 이 사상은 일관된 것이며, 나의 독립운동의 방향이라고 나는 믿는다. … 나는 사심 없이 공정한 민족적 양심을 지닌 사람이라면 당연히 나와 같은 주장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무정부주의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은 무정부주의 운동이어야 할 것이다. … 우리 독립운동의 현실로 보아 (아나키즘이) 가장 실제적인 이론이며 적절한 방법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 사실상 모든 운동가들이 자기 사상이야 어떠하든지 이미 무정부주의 자유연합의 이론을 다 같이 이대로 실행하고 있다. 기미년 이전과 이후를 막론하고, 지금까지 수많은 단체와 조직이 생겼지만 그에 소속된 운동가가 자신의 자유의사의 결정에 의지하지 않고 강제 명령에 무조건 맹종하여 행동한 사람이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중학교 1,2학년은 다니지 못하고 3학년으로 들어가 1년 다니고 졸업을 했지요. 아버지가 6.25때 보성경찰서에 끌려가 51살의 나이로 학살당하실 무렵 저는 겨우 9살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때 막내 동생을 임신 중이셨으니 집안 형편이 말이 아니었지요. 저는 또래 애들이 초등학교를 다니고 중학교에 다닐 때에 신문팔이, 비누장사, 식모살이 등을 하느라 제대로 교육을 받을 형편이 안되었습니다. 그래도교육가이셨던 아버지를 떠 올리며 이를 악물고 주경야독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장흥중학교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3학년에 편입해 달라고 당당히 말했지요. 간단한 테스트를 거쳤지만 충분히 3학년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판단 했는지 교장선생님은 저를 3학년에 편입해주셨습니다. 그때는 그런 융통성이 있었습니다. " 이는 항일민족교육자인 학산 윤윤기(1900.7.9~1950.7.22)선생의 둘째 따님인 윤종순 여사(76살)의 말이다. 윤 여사는 말을 이어갔다. “그때는 지금과 달라서 교장선생님의 권한이 컸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비록 비명에 가셨지만 저는 중학교 졸업장을 따야겠다는 생각에서무작정 초면의 교장선생님을 찾아 간 것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이곳은 충북여성장애인연대입니다만 우리회원들을 위해 여성독립운동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까?” 리산은숙(전, 여성장애인 성폭력상담소장) 씨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지난 8월 24일이었다. 강연일은 1주일 뒤인 8월 31일. 한 달간 일본에서 머물다 막 귀국한 터라 처리할일이 쌓여 청주까지 내려가기가 쉽지 않았지만 ‘여성장애인’ 들에게 여성독립운동가를 알려주었으면 하는 말에 선뜻 대답을 했다. 그리고 어제 31일(목), 오전 10시 30분, 강연장에 들어섰다. 40여명 되는 여성 장애인들이 빼곡히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장애 정도가 심해 보이는 분들이 꽤 눈에 띄었다. 아뿔사! 준비해온 이날 강연 자료가 혹시 이분들에게 어려운 내용이 아닌가하고 내심 걱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1시간 30분 주어진 시간 동안 원래는 40분하고 10분 쉬고 다시 40분을 해달라고 주문했지만 참석자들의 강연을 듣는 태도가 너무나 진지하여 쉬지 않고 내리했다. 수많은 곳에 강연을 다녀보았지만 이렇게 강연태도가 진지한 곳은 보질 못했다. “저는 지체장애자로 학교 공부를 많이 못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오늘 강연을 듣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스스로 잘난 체 하는 것보다 더 외로운 것은 없다. -孤幕孤於自恃(고막고어자시)-” 안중근(1879~1910) 의사를 모신 국내 단 한 곳의 사당인 해동사(海東祠)안에는 안 의사의 심지 곧은 마음이 드러난 유품 몇 점 만이 덩그렇게 놓여있었다. 국내 유일의 안 의사를 모시는 사당이 전라남도 장흥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26일(토), 서울에서 부랴부랴 달려갔다. 그간 기자는 안 의사의 유적지를 쫓아 거사 현장인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역과 그곳에 들어선 안중근의사 기념관 그리고 거사 뒤 처음으로 잡혀갔던 일본영사관 건물과 자신이 죽으면 뼈를 묻어 달라던 하얼빈공원(현 조린공원)의 "청초당" 이란 돌비석을 세운 자리까지 찾아다녔지만 국내에 안중근 의사를 모신 사당이 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부끄러웠다. 출발에 앞서 길찾개(네비게이션)에서 해동사(海東祠)를 찾으니 뜨질 않았다. 간신히 알아낸 정보를 통해 죽산 안씨 사당인 만수사 (萬壽祠, 전남 장흥군 장동면 만수길 25-121)에 안 의사를 모신 해동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러한 극비스런(?) 정보를 준 사람은 장흥의 향토사학자 안명규 씨였다. 안중근 의사 사당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난 8월 27일 일본 나가노현 나가노시 시노노이(長野県長野市篠ノ井)에 있는 시노노이교회(篠ノ井教会)에서는 아주 특별한 강연이 있었다. 조선침략을 사죄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만든 NPO법인 고려박물관(高麗博物館) 주최로 한국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 강연회가 그것이다. 강연제목은 “침략에 저항하는 불굴의 조선여성들(侵略に抗う不屈の朝鮮女性たち)” 이었고 강사는 고려박물관 조선여성사연구회 오오바 씨(大場小夜子)가 맡았다. 이번 강연회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 29일까지 3달 동안 고려박물관에서 열린 “시와 그림으로 보는 독립운동의 여성들(詩と画でつづる独立運動の女性たち(2), 이윤옥 시, 이무성 그림) 가운데 15명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이날 오오바 씨는 일제 침략기에 한국의 여성들이 독립을 위해 헌신한 내용을 소개하면서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위한 이윤옥 시인의 헌시(獻詩)를 일본어로 낭송하였다. 시낭송 시에는 참석자 전원이 고개를 숙이고 숙연한 분위기를 보여 강사인 오오바 씨도 가슴이 뭉클했다고 전한다. 원래 이날 강연은한국의이윤옥 시인이 직접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사정상 참석하지 못해 아쉬웠다. 하지만 고려박물관에서 한국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백년편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글 형식의 글입니다.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 접수를 받습니다. 문의 : 02 -733-5027】 "모든 자유의 적을 쳐부수고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이룩하기 위하여 또다시 역사를 말살하고 조상을 모욕하는 어리석은 후예가 되지 않기 위하여 자기의 무능과 태만과 비겁으로 말미암아 자손만대에 누를 끼치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이 역사적 사명을 깊이 통찰하고 지성일관 그 완수에 용약매진해야 할 줄로 안다" - <사상계> 창간선언 중 지고지순한 영혼의 소유자 장준하 선생님, 당신께서 대한민국 현대사를 뒤바꾼 잡지 <사상계>를 창간하면서 함께 선언한 선언문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평소 흠모해 마지않던 역사를 전공하는 한 대학생 홍순기입니다. 역사적인 인물에게, 더욱이 제가 존경하던 분께 이렇게 직접적으로 온 마음을 다해 편지를 쓰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으로 출발하여 사상계 발행인, 국회의원, 민주통일운동가까지. 선생님의 약력은 그야말로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김종진 신임 문화재청장은 19일 낮 11시 경상북도 안동에 있는 보물 제182호 '임청각(臨淸閣)’을 찾아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1858~1932년) 선생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고성 이씨 종택인 임청각의 복원ㆍ정비계획 추진방향을 권영세 안동시장과 협의했으며, 석주 이상룡선생의 종손 이창수 씨 등을 만나 복원관련 의견을 들었다. 우리 신문은 일제는 지난 2013년 5월 29일 “일제는 중앙선 철도를 놓으면서 항일투사의 집 임청각 없애려 했지만 여론이 좋지 않자 집 몇 채를 허물고 마당으로 철길을 내버렸다. 그 철도를 이제 서쪽으로 옮기고 임청각을 제대로 복원한는 계획이다.”라고 보도했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현재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아흔아홉 칸 대저택이었던 임청각은 지금도 반 토막 난 그 모습 그대로”라면서 “임청각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후 임청각 복원ㆍ정비는 급물살을 타는 모양새다. 문화재청은 안동 임청각 앞마당을 관통하는 중앙선 철도가 철거된 이후(2020년까지/국토교통부) 안동 임청각 복원ㆍ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서울시는 3ㆍ1만세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8월 18일(금) 저녁 7시, ‘광복비행 818: C-47콘서트’를 연다.이 행사는 1945년 8월 18일 광복군 정진대원들이 당시 경성비행장(여의도공항)에 착륙했던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기 위해 여는 행사로 여의도공원내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공간 C-47 비행기 전시관 앞에서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이날 행사는 광복비행 818 주제에 맞춰 대한민국 공군 의장대의 기수제식과 군악대의 항일음악 공연으로 시작한다. 공군 의장대의 기수제식은 시민들에게 공군의 기상과 품위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며, 공군 군악대 역시 독립군과 광복군이 부르던 신독립군가, 용진가, 최후의 결전 등 항일 음악을 연주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군대가 항일투쟁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음악예술로 표현한다. 이어지는 시민 콘서트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독립군가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편곡하여 다양한 버전으로 소개하고, 독립유공자 후손 등이 참여하는 역사 토크쇼를 통해 독립군의 역사를 현 세대와 공유하는 시간을 가진다. 유투브와 페이스북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시민 음악인들(서울용문고등학교 밴드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제72년 광복절 기념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경축사를 통해“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은 안 된다”라고 강하게 강조했다. 그러나 이날 기념식에서 또 하나 뭉클한 장면이 있었다. 생존해 계신 여성독립운동가 세분 가운데 한분이신 오희옥 애국지사가 스코트랜드 민요 올드랭사인 곡에 애국가 가사를 붙인 옛날 애국가를 부른 것이다. 오희옥 애국지사는 중간에 숨이 찬듯 잠시 멈추기도 했지만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시절을 회상하는듯 끝까지 불렀다. 오희옥 애국지사는 할아버지 오인수 의병장, 아버지 오광선 장군, 어머니 정현숙 애국지사, 언니 오희영 애국지사, 형부 신송식 애국지사 등 일가족 3대가 독립운동을 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4살 때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에 입대하여 일본군의 정보를 수집하고,독립군을 모으면서 한편으로는연극ㆍ무용등을 통한 독립군들을 위문하는 활동을 한 당당한 독립운동가다.
[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광주 3ㆍ1운동에 참여한 전남 고흥 출신 박성순(朴聖淳) 등 12인이 한 재야사학자의 노력으로 정부포상을 받았다.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은 지난 2009년 대전 국가기록원에서 광주 3ㆍ1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른 항일운동가 48명의 판결문을 찾아 언론을 통해 공개한 후 정부포상을 청원, 지금까지 12인의 항일운동가가 정부포상과 함께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고 밝혔다. 포상을 받은 박성순 정몽석(광주)을 포함 12인은 광주 장날인 1919년 3월 10일 만세운동을 일으켜 일본 경찰에 체포돼 광주지방법원과 대구복심법원(현재 고등법원) 그리고 대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서 징역 4개월까지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건국훈장 애족장 2명 건국포장 2명 대통령표창 8명이다. 지역별로는 광주 3명, 전남 순천 3명, 나주ㆍ장흥ㆍ강진ㆍ고흥, 경남 하동, 평안남도 성천군이 각각 1명이다. ▲건국훈장 애족장: 이달근(징역 1년, 27세 평안남도 성천군 숭인면 창인리ㆍ안마업), 김정수(징역 10월, 21세 전남 장흥군 유치면 학송리ㆍ생도) ▲건국포장: 정몽석(징역 6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