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 겨레의 큰 스승 백범 김구 길러 낸 억척 어머니 곽낙원 이윤옥 비탈진 언덕길 인천 형무소 터엔 지금 ▲ 사형을 기다리는 아들 백범에게 밥을 얻어 나르던 겨레의 어머니 곽낙원 애국지사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찜질방 들어서 사람들 웃음꽃 피우며 여가 즐기지만 예전 이곳은 백범 어른 잡혀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던 곳 국모 살해범 츠치다를 처단한 사형수 아들 위해 정든 땅 해주 떠나 남의 집 식모살이 밥 얻어 감옥 드나들며 아들 옥바라지 하신 어머니 삼남 지방으로 쫓기는 아들 마곡사서 머리 깎고 중 된다고 소식 끊었을 때 애간장 타셨을 어머니 인과 신 어린 손자 두고 먼 이국땅서 눈 감은 며느리 대신하여 빈 젖 물리며 길러 내신 어머니 상해 뒷골목 배추 시래기 주어 애국청년 배 채우고 광복 위해 뛰는 동포 뒷바라지로 평생 등이 굽은 겨레의 어머니 오늘도 허리띠 질끈 동여매고 오른손에 밥사발 든 어머니 겨레에게 건네는 말 나지막이 들려온다 너희가 통일을 이루었느냐! 너희가 진정 나라를 되찾았느냐! 곽낙원(郭樂園, 1859.2.26~1939.4.26) 곽낙원 여사는 겨레의 큰 스승 백범 김구선생의 어머니이다.평양숭실학교 3학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7월 3일 화요일 오전 11시 아그네스 안 씨를 만난 것은 서울 시내 한 커피숍에서였다. 까만 원피스에 초록빛 스카프가 잘 어울리는 아그네스 안 씨는 단발머리에 아담한 체구의 밝은 모습으로 내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서로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우리였지만 그녀는 한복 차림의 나를 먼저 알아보고 손을 내밀었다. 방한 중인 아그네스 안 씨는 보스톤에서 산부인과의사로 일하고 있는데 그가 건넨 명함에는 Dr. Agnes Rhee Ahn 이라고 쓰여 있었다. 한인 교포 3세인 아그네스 안 씨를 알게 된 것은 여성독립운동가 오정화 (1899.1.25~1974. 11.1) 애국지사 때문이었다. 오정화 애국지사는 아그네스 안 씨의 할머니로 3·1운동 때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붙잡혀 유관순 열사와 함께 8개월간 옥고를 치른 뒤 일제의 감시를 견디지 못해 만주로 가서 갖은 고생을 하며 피해 살다가 해방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75살로 삶을 마감한 분이다. 오정화 애국지사는 2001년에 독립운동이 인정되어 대통령표창을 추서 받았다. 부모님의 이민으로 1961년 미국에서 태어난 아그네스 안 씨는 이러한 외할머니의 독립운동사실을 모른 채 동양인으로서 미국문
[우리문화신문=이항증(이상룡 애국지사 후손)] 가장이 나라를 위해 죽거나 불구자가 되면 그 가족 전부가 정신적 육체적 상처를 안고 평생을 살아간다.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들은 몸뿐이 아니라 재산도 모두 바쳤다. 그 때문에 후손은 유산은커녕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보다도 훨씬 불리한 조건에서 경쟁이 어렵기 때문에 나라가 개입해주는 것이 보훈제도다. 군사독재 시절이라 하는 3공화국은 그래도 이 보훈제도를 철저히 지키려 했다. 당시 기업은 정부의 독려에 보훈유족 고용유지비율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업이 알아서 채용하도록 위임했다. “보훈유족이라는 것” 하나로 기업에 고용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이다. 그러니 기업으로서는 보훈유족을 고용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나는 지난 2009년 초 딸의 취업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정부가 저축은행 계약직(비정규직)을 소개하여 거절했다. 그리고 곧바로 국민권익위원회에 항의서를 제출했다. 그러자 그해 11월 고위공직자를 보내 유감의 뜻을 전하며, 2010년 1월 20일 이후 선처하겠다는 공문까지 받았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