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뚫으세 뚫으세 펑펑 뚫으세 / 수정같이 맑은 우물 펑펑 뚫으세 / 조상대대 자자손손 먹고살고 먹고살고 / 뚫으세 뚫으세 펑펑 뚫으세” 이 노래는 마을 공동우물에서 우물치기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예전 사람들의 식수원은 우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마운 우물에서 물이 잘 나오도록 하고, 물이 맑아서 마을 사람들이 배탈 나지 않고 건강하게 살도록 해달라고 빌기도 했는데 그것이 바로 “우물치기”입니다. 마을에서는 동제(마을 공동의 제사)를 올리기 사흘 전 마을 공동우물을 찾아가 샘굿을 합니다. 물론 샘굿을 하기 직전에는 우물에 함부로 범접하지 못하도록 금줄을 칩니다. 그리고 우물 속에 빠져버린 끊어진 두레박이라든가 줄 따위를 말끔히 치워내고, 깨끗한 자갈을 다시 깔아 둡니다. 그런 다음 풍물패들이 우물에 다다르면 상쇠가 용왕님께 축문을 외웁니다. 축문을 외우고 난 뒤 노래를 부르고 풍물을 치며, 우물을 몇 바퀴 돕니다. 그러면 이 우물은 신성한 생명수의 원천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때부터는 금줄을 거두고 누구나 우물에서 물을 퍼 갈 수 있습니다. 수돗물을 마시는 지금 이 수돗물도 믿을 수 없다며 정수기를 들여놓거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물질하던 옷 벗어 말리며 / 가슴 속 저 밑바닥 속 / 한 줌 한도 꺼내 말린다 / 비바람 치는 날 / 바닷속 헤매며 떠올리던 꿈 / 누구에게 주려 했는가 / 오늘도 불턱에 지핀 장작불에 / 무명옷 말리며 / 바람 잦길 비는 해녀 순이" - 김승기 ‘불턱’- “여기서 불 초멍 속말도 허구, 세상 돌아가는 말도 듣고 했쥬.” 제주 해녀는 ‘붙턱’에 대해서 그렇게 말합니다. 불턱은 해녀들이 물질하기 위해서 옷을 갈아입거나 무자맥질해서 작업하다가 언 몸을 녹이기 위하여 불을 피워 몸을 녹이기 위해서 바닷가에 돌을 둥그렇거나 네모나게 쌓아 만든 공간을 말합니다. 이곳 불턱에서 해녀들은 불을 쬐면서 속에 있는 말들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말들도 얻어듣곤 했습니다. 보통은 제주에 많은 돌로 담을 쌓아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한 것으로 쉽게 말하면 바닷가에 설치한 해녀들의 탈의장이었지요. 예전 해녀들은 물소중이 또는 ‘잠수옷ㆍ잠녀옷ㆍ물옷’ 따위로 불렸던 옷을 입고 바닷속에서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입고 벗기가 편하게 만들었던 이 물소중이는 자주 물 밖으로 나와 불을 쬐어 체온을 높여야 했지요. 그런 까닭으로 제주에는 바닷가 마을마다 여러 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에서도 박사가 되랴면 전과 가티 성균관 가튼 데만 다녀서는 안된다. 적어도 관립전문학교나 또는 경성대학 가튼 곳을 졸업한 다음에 무엇을 또 연구하야 론문을 제출하고 그것이 입격이 되여야 명색 박사가 될 것이다. (중략) 그것도 년수가 너무 멀어서 각갑하거던 남에게 구걸을 하야서라도 돈을 몃 백원만 주선하야 손쉽게 박사 운동을 하여라. 그러면 그럿케 실패는 하지 안을 것이다. (중략) 현재 조선에도 법학통론(法通) 한 권 못 사본 사람도 법학사가 되고 우주관(宇宙觀)이니 인생관(人生觀)이니 하는 문자 한아를 몰나도 철학박사된 일이 만치 안으냐.” 위는 일제강점기 잡지 <별건곤> 제47호(1932년 01월 01일 발행)에 나온 “대풍자! 대희학, 현대 조선 10대 발명품 신제조법” 가운데 “제4 박사 제조법”이란 글입니다. 당시에도 법학통론 한 권 안 본 사람이 법학박사가 되고, 우주관이란 글자 하나 몰라도 철학박사가 되었다니 박사학위의 허술함이 엿보입니다. 최근엔 한 대학 총장이 가짜 박사학위를 명함에 찍어서 다녀 말썽이 나기도 했지요. 박사(博士)는 원래 고대에 전문 학자나 기술자에게 주던 벼슬 이름이었습니다. 백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며칠 전 국립공원공단에서 보내온 보도자료에는 “국립공원 봄꽃…복수초 시작으로 작년보다 보름 빨라”라는 제목이 보였습니다. 지금 온 나라는 코로나19로 온통 난리입니다만 자연은 태연하게 봄을 맞이합니다. 여기서 복수초라는 꽃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꽃이 복수를 하나?”라면서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복수’는 원한을 갚는 복수(復讐)가 아니라 복수(福壽) 곧 복과 목숨을 뜻하는 것으로 일본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따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복수초’ 대신 ‘얼음새꽃’으로 부르는 이들이 늘어납니다. 예쁜 우리말 이름을 놔두고 일본식을 따라 부르는 것은 큰개불알꽃, 개불알꽃, 며느리밑씻개, 도둑놈의 갈고리 따위도 있습니다.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인물과사상사)》을 펴낸 이윤옥 작가는 “푸른 꽃잎이 4장 달린 ‘큰개불알꽃’은 유럽이 원산지로 아시아, 북아메리카, 오세니아 등에 귀화식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일본에 최초로 정착이 확인된 것은 1887년 명치 때 일이다. 열매가 개의 음낭을 닮았다고 해서 “일본 식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키노 토미타로우(牧野 富太郎 1862~1957)가 이누노후구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얼음이 얼어붙는 추운 날에 거동하면 몸을 상하게 할 염려가 이미 적지 않고, 더군다나 지금은 전염병이 갈수록 심해지니, 모시고 따라가는 문무백관들이 모두 재소(齋所, 제사 지내는 곳)에서 밤을 지낼 수가 없고, 빽빽하게 따르는 군졸들 또한 어찌 모두가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으며, 길을 가득 메우고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는 사람들 또한 병에 전염되지 않는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며, 수레가 지나가는 길 좌우에 또한 반드시 바야흐로 병든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숙종실록》 숙종 24년(1698년) 12월 12일 기록으로 돌림병(전염병)이 심해지니 임금이 거동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리고 있는 내용입니다. 지금 온 나라에 코로나19가 퍼져가고 있음 사람들 모두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는 어땠을까요? 검색어로 살펴보니 전염병 702건, 여역(癘疫) 418건, 염병(染病, 장티푸스) 154건, 천연두 74건, 여기(癘氣) 47건, 역병(疫病) 27건, 홍역 17건 등이 나왔습니다. 특히 《영조실록》 영조 19년(1743년) 12월 29일 기록에는 “이 해에 여러 도에 여기(癘氣)가 크게 번져 사망자가 6, 7만 명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강세황이 태어난 지 300해가 되던 때인 지난 2013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조선시대 위대한 화원 강세황전”이 열린 적이 있었습니다. 강세황은 보통 물러나 쉴 나이인 61살에 노인과거에 장원급제한 뒤 왕릉을 지키는 벼슬인 능참봉으로 시작하여 6년 만에 정2품 한성부판윤에 오르는 초고속 승진을 했지요. 그러나 이 초고속 승진은 누가 뒤를 보아준 덕이 아니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때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인정하여 갈고닦아 드디어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 강세황에게는 자신이 직접 그린 국립부여박물관 소장의 강세황 자화상을 비롯한 몇 점의 초상화가 전해옵니다. 특히 개인 소장인 보물 590-2호 ‘강세황상’은 정조 임금이 아끼던 신하 강세황이 71살이 되어 기로소(조선시대 고위 퇴임관리들의 예우를 목적으로 설치한 기구)에 들어간 것을 기려 궁중화가인 이명기에게 명하여 그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림 오른쪽 위에는 정조가 짓고, 문신 조윤형이 쓴 제문이 적혀있습니다. 이 작품은 조선 초 이후 왕실에 공헌한 신하들을 위해 궁중화가를 시켜 그리던 공신초상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요. 다만, 이 작품은 전통적인 화풍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재필 박사는 남 먼저 자전차를 타고 다니엿다. 그는 갑신년 김옥균 정변 때 멀니 미국에 망명하야 그 나라에 입적까지 하엿다가 그후 13년만에 정부의 초빙에 의하야 귀국함에 미국에서 타던 자전차를 가지고 와서 타고 다니엿는데 그때에 윤치호 씨는 그에게 자전차 타는 법을 배워가지고 또 미국에 주문을 하야다가 타고 다니엿다. 우에 말한 것과 가티 그 때만 하야도 아즉 일반의 지식이 몽매한 까닭에 그들의 자전타 차고 다니는 것을 보고 퍽 신기하게 생각하야 별별 말을 다 하되 서 씨는 서양에 가서 양인의 축지법을 배워가지고 하루에 몃 백리 몃 천리를 마음대로 다니더니 윤 씨는 대데가전의 차력약(借力藥)이 잇서서 남대문을 마음대로 훌훌 뛰여 넘어 다니녀니하고 또 자전차를 안경차니 쌍륜차니 하는 별명까지 지여섯다.” 위는 일제강점기 잡지 《별건곤 제16~17호(1928년 12월 1일 발행)》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보고 축지법을 써서 하루 몇백 리 몇천 리를 마음대로 다닌다고 합니다. 그런데 구한말 조선에 온 선교사이며 의사였던 알렌이 1908년 펴낸 책 《조선견문기》에도 선교사들이 자전거를 처음 탄 이야기가 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은 세수할 때 고개를 빳빳이 든 채로 물을 찍어다 바르는 버릇 때문에 마룻바닥, 저고리 소매와 바짓가랑이가 온통 물투성이가 됐다고 합니다. 선생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일이면 절대로 뜻을 굽히지 않았는데, 특히 일본이 지배하는 땅에서는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며 꼿꼿이 서서 세수를 한 것입니다. 1936년 오늘(2월 21일)은 단재 선생이, 차디찬 감옥에서 순국한 날입니다. 선생은 일제강점기 드물게 언론, 역사, 그리고 독립운동 세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한 분이지요. 먼저 언론인으로서는 황성신문의 논설위원에 이어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이 되어 일제의 침략상을 폭로하고 침략 논리를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애국계몽운동의 실천적 지식인으로 크게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리고 사학자로서는 식민사관에 맞서서 역사의식을 갖추는 것이 곧 애국심을 키우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독사신론(讀史新論)》과 《조선상고문화사(朝鮮上古文化史)》,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草)》를 펴냈으며, 특히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총론에서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기록’이라는 그의 유명한 민족주의 사관을 극명하게 이론화하여 밝혔습니다. 선생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몇 년 전 KBS ‘불후의 명곡’ 프로그램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조통달 명창과 그의 아들로 가요계의 한 획을 그은 가수 조관우 그리고 그의 아들 피아니스트 조현까지 3대가 함께한 무대가 큰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관우는 어려서 이모할머니로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춘향가’의 보유자 박초월 명창 손에서 자랐다고 하지요. 결국, 박초월 명창의 뛰어난 음악성은 3대를 이어간 셈입니다. 1913년 오늘은 그 박초월 명창이 태어난 날입니다. 박초월 명창은 전라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전라북도 남원에서 자랐는데 김정문(金正文)ㆍ송만갑(宋萬甲)ㆍ임방울(林芳蔚)ㆍ정광수(丁珖秀) 등 당대의 명창들에게 판소리를 배웠습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좋은 목소리에 성량도 풍부하여 일찍부터 이름을 떨쳤지요. 1930년 전주 전국남녀명창대회에서 1등을 한 뒤 여러 음반회사와 계약을 맺고 「흥보가」ㆍ「심청가」ㆍ「춘향가」 등을 취입하였습니다. 1955년에는 현 서울국악예술학교의 모체인 ‘한국민속예술학원’을 박귀희(朴貴姬) 명창과 함께 설립하고 교사로서 많은 신인을 양성하였지요. 1962년 초대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을 맡았으며, 1971년 국악협회 상임고문, 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의 둘째 우수(雨水)입니다. 우수라는 말은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말이어서 이제 추운 겨울이 가고 드디어 봄을 맞게 된 것이지요. “우수 뒤에 얼음같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슬슬 녹아 없어짐을 이르는 뜻으로 우수의 성격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이 무렵에 꽃샘추위가 잠시 기승을 부리지만 “우수 경칩에 대동강도 풀린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우수와 경칩을 지나면 아무리 춥던 날씨도 누그러져 봄기운이 돌고 초목이 싹트지요. "꽃샘잎샘 추위에 반늙은이(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계절에 나누는 전래의 인사에도 "꽃샘잎샘에 집안이 두루 안녕하십니까?"라는 것도 있지요. 이 꽃샘추위를 한자말로는 꽃 피는 것을 샘하여 아양을 피운다는 뜻을 담은 말로 화투연(花妬姸)이라 합니다. 하지만, 우수가 되면 봄기운이 서리기 시작하는데 풀과 나무가 깨어나는 모습이 엿보입니다. 이때는 논밭을 둘러보고 새해 농사 계획 세우며, 삽질 한 번, 낫질 한 번으로 몸을 풀지요. 특히 이 무렵에는 농사일 한발 앞서 장을 담가야 합니다. 장 담그는 일은 시골 살림에서 매우 중요한 일인데 이웃과 장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이야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