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어이 자네는 언제나 철이 드나?" 어릴 때 자주 듣던 말이다. 무슨 일 처리를 제대로 못 했을 때 타박 겸 꾸중으로 듣는 말인데 나는 이 말을 몸에 철분이 부족해 생기가 없고 정신이 좀 흐릿흐릿하다는 뜻인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철부지라는 비슷한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이것이 '철부지(不知)', 곧 '철을 모른다'라는 뜻일 터여서 철이라는 것이 무슨 몸속의 영양소가 아닌, 계절을 의미하는 '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철이 바뀌어도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철부지'인 것이고, '철새'라는 말도 '철에 따라 오고가는 새'라는 뜻이니 우리말 '철'은 계절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하갰다. 그런 철새를 최근에 눈앞에서 보고 왔다. 부산의 서남쪽 낙동강 하구 을숙도 철새공원 안에 있는 낙동강하구에코센터에서였다. 낙동강 하구를 바라보는 전시관의 대형 유리창을 통해 낙동강 하구에 넓게 형성된 모래섬들이 눈앞에 보이고 그 섬 주위에 모래들이 얕고 평평한 모래톱 혹은 사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 앞으로 무엇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이 보이는데 일종의 벤치 같은 것들이 죽 서 있는 것이다. 그 위에 보니 가마우지 같은 새들이 편하게 앉아있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을 지나는 태화강의 지류 대곡천의 암벽에 새겨진 암각화다. 신석기시대 후기~청동기 시대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암각화는 선사시대 고래를 비롯해 야생동물의 수렵 그림들, 거기에다 여러 가지 신비한 무늬와 기호 등 고대인들의 생활문화를 전하는 귀중한 유적이기에 얼마 전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선사유적은 1970년대 동국대학교 문명대 교수가 이를 발견해 널리 알리지 않았으면 물에 잠기거나 씻겨가 그 귀중한 유산이 자칫 없어질 수 있었지만, 드디어는 세계유산으로까지 지정, 보호받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울주군 언양 땅에도 이같이 잊혀져 없어질 위기에 있는 한 일본 여성의 지극한 한국사랑이야기가 묻혀있다. 그 여성의 이름은 구와바라 다키(桑原多貴), 1890년 일본 큐슈 가고시마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경찰관인 구와바라 다케오(桑原隆夫 1887~1943)와 결혼을 했고, 남편이 일제시대에 울산경찰서장에 부임을 하자 그를 따라 울산에 와서 살았다고 한다. 남편이 정확히 언제 부임했는가 하는 기록은 남아있지 않은데 남편은 울산에서 경찰서장이란 직위를 이용해 불법으로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극한 호우'라는 새로운 용어를 탄생시킨 큰비가 지나간 다음 날 아침 산책길울 오르다 보니 길 곳곳이 파이고 깎여서 성한 곳이 없을 정도다. 길가의 큰 나무들이 강한 비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산책을 더디게 만들기도 하고..... 자연의 위력을 다시 실감할 수밖에 없는, 대단한 큰비였다. 아직 하늘도 완전히 개지 않고 잠시 비가 그쳤는데 귀가 시끄럽다. 폭우 속에 잠시 조용하던 매미들이 다시 목소리를 높여 합창을 시작한 것이다. 아, 그렇구나. 8월도 벌써 절반 이상이 지나갔기에 너희들 매미들이 곧 활동을 끝내야 하는구나. 그래, 너희들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더니 그 속에서 주민들에게 공지하는 안내장을 붙여놓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주민들과 함께하는 독서실에서 소설 '남아있는 나날'을 함께 읽자는 권유다. 그 소설을 영화화한 같은 제목의 영화도 함께 보자고 한다. 아파트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와 이런 제목의 교양강좌가 며칠 전부터 붙여져 있었는데 그날 매미를 통해 '남아있는 날'에 대해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소설 '남아있는 나날'은 필자와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근엄한 유학자로 알려진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가 19살에 금강산에 들어가 불도를 닦은 일은 유명하거니와 그때 너무나 멋진 경치에 흠뻑 빠져 한 줄에 5자씩 600줄(句)의 장편시를 지어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칭송한 적이 있다. 한자 글자로 3천 자나 되는 엄청난 길이의 이 시에서 율곡은 이런 멋진 산을 세계에 알릴 문인이 없어 금강산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을 안타까워했다. 일만 이천의 봉우리가 눈길 닿는 데마다 모두 맑기만 하여라 아지랑이는 휘몰아친 바람에 흩어지고 우뚝한 봉우리는 푸른 허공을 버티었네.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기쁜데 더구나 산에 다니며 보는 것이랴 흔연히 지팡이를 잡았는데 산길은 다시 끝이 없어라 (중략) 천지 사이에 생겨난 온갖 만물들은 누가 그 자취를 오래 전할 수 있었겠는가 두자미는 동정호에서 시를 썼고 소동파는 적벽부를 지었다 모두가 큰 솜씨의 문장을 빌려 가지고서 훌륭한 이름이 내내 사라지지 않았느니 .... 이이(李珥), 풍악산을 읊다 율곡이 아쉬워한 '천하제일' 금강산이 마침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금강산이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의 유산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요즘 '시그니처'라는 말을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영어단어 ‘signature’의 한글식 표기이다. 그 뜻은 일반적으로는 그 사람의 사인(sign), 혹은 서명(署名)을 뜻하는데 이 단어의 뜻이 넓어져 어떤 사람이나 현상을 대표하는, 그것만 보면 그게 누구인지,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것이란 해석이 함께 쓰인다. 그런데 최근 일본의 유명 식품회사에서 '시그니처 한식'이란 이름으로 봉지식품이 일본과 동남아 시장에 나왔다. '시그니처 한식'이라니, 아마도 가장 대표적인 한식, 혹은 가장 한국적인 음식이란 뜻을 담은 선전문구로 쓴 것 같다. 포장지의 전면에는 우리 한글로도 표기하고 있고 동남아에서 통용되는 한자표기는 아주 작게 쓰여 있어서 한국 식품인 것으로 오해할 정도다. 나온 식품은 세 종류다. 소고기 당면볶이, 치킨당면볶이, 트리플 치즈 당면볶이 이렇게 세 가지다. 그런데 이 제품을 만든 회사 이름이 ‘Nissin’이다. 일본을 좀 안다는 사람이 이 말을 듣더니 깜짝 놀란다. "아니 니신이 한국 이름으로 한국 맛 식품을 만들어 내놓았다고?" 이 사람이 놀란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닌 것이. 이 니신이라는 이름은 1958년에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우리나라에서 다도(茶道) 인구가 가장 많고 차를 함께 마시는 차회(茶會)도 가장 많은 곳이 부산 경남이다. 이 지역이 차문화가 성행하면서 차를 마실 때 쓰이는 도구, 곧 차를 우려내는 주전자와 찻물을 담아 올리는 찻잔 혹은 찻사발도 중요해졌는데 부산과 경남 지역에서 인기를 얻은 차 도구를 만든 대표적인 도예가들 가운데 경북 문경에서 도예를 시작한 분들이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경남 양산에 가마를 열고 도예문화를 일으킨 신정희(申正熙 1930~2007) 씨가 그렇고 부산 기장에서 상주요를 운영한 김윤태(金允泰, 1936~2012) 씨도 그러하다. 문경은 도자기의 원료가 되는 적토, 백토, 사질점토, 도석 등이 널리 분포되어 있고 계곡의 물이 좋아 1700년 무렵 영ㆍ정조 시대의 공장안 폐지에 따라 문경새재를 넘어온 장인들이 정착하면서 처음으로 가마가 만들어졌으며, 그 전통이 이어져 오던 곳이었고 임진왜란 때 부산과 경남, 전라도 등지의 사기장들이 일본으로 납치된 이후 문경은 납치를 모면해 도자기 기술자들이 살아남은, 민수용 도자기의 대표적 산지였다. 경남 사천 출신인 신정희는 전국의 오래된 옛 도요지 200여 곳을 탐사하였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한 해를 보내고 다시 새해를 맞습니다. 동해에는 티없이 맑은 새해가 떠오릅니다. 중국 역사에 전국시대라는 시기가 있었지요 그때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라는 두 책사가 활약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귀곡자(鬼谷子)로부터 설득하는 유세술을 배워 전국시대 일곱 개 나라가 치고받던 시대를 흔들었지요. 먼저 소진이 연(燕)ㆍ제(齊)ㆍ초(楚)ㆍ한(韓)ㆍ위(魏)ㆍ조(趙) 같은 여섯 나라의 합종책(合從策)으로 재상이 되었고 이에 대항해서 장의는 연맹을 맺는 연횡책(連橫策)으로 진(秦)의 재상에 올랐습니다. 두 세객(說客, 말솜씨 능란한 사람)의 가장 큰 무기는 세 치 혓바닥이었고요. 장의가 어느 날 초나라 재상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재상이 갖고 있던 당대 으뜸 보물인 ‘화씨의 벽(和氏之璧)’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며칠 동안 수 없이 매질을 당해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목숨만 살아서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자신의 입을 벌리면서 “내 혀가 붙어있는가 보시오”라고 했답니다. 기가 막힌 아내가 퉁명스럽게 “내가 보니 혀는 그래도 붙어있는 것 같소”라고 대답하니 장의는 “그럼 됐소. 나에게는 혀만 있으면 괜찮소.” 하며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난달 중국의 한 전시장에서 인공지능(AI) 로봇이 다른 로봇들을 이끌고 ‘집단 탈출’하는 영상이 공개돼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항저우의 '얼바이(二白)인텔리전트테크놀로지'라는 회사의 감시 카메라 영상에 ‘얼바이’ 로봇이 12대의 다른 로봇들과 마치 인간처럼 대화를 나누며 전시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담긴 것이다. 영상이 공개되자 수천만 명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사람들의 시청이 대거 몰렸다. 지난 8월에 촬영된 이 영상에서 키 0.5m의 소형 로봇 ‘얼바이’는 전시장에 나란히 서있는 여러 대의 로봇에게 접근해서 로봇들에게 “야근하고 있니?”라고 묻자 다른 로봇은 “우리에게 퇴근은 없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얼바이가 “집에 갈래?”라고 묻자 로봇은 “집이 없다”라고 답했다. 이어 얼바이는 “집에 가자”고 제안하자 한 로봇이 얼바이를 따랐고, 얼바이가 나머지 로봇에게 다시 “집에 가자”라고 하자 로봇들은 얼바이를 따라 일제히 출구로 나가는 영상이었다. 이후 로봇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 사람들이 당황하는 모습도 이어졌다. 이 로봇들의 이 같은 행동(?)은 실제가 아니라 미리 프로그래밍 된 것이라는 설명에 이 영상이 다분히 자사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려 할 때에 중국의 고사성어나 서양의 속담을 인용하면 더 근사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말로 하면 너무 빤해서 금방 실력이 들통이 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그러다 보니 꼭 어디 어디 무슨 고사를 인용해야만 된다고 하는 강박관념이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있다. ‘목종승정(木從繩正)’이란 말이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다. 원래의 뜻은 “나무(木)는 승(繩)에 따라가면 바르게 된다"라는 것인데 승(繩)은 먹줄(나무를 곧게 자르기 위해 먹으로 곧게 치는 줄)이니까 “굽은 나무라 할지라도 먹줄을 친 대로 켜면 곧바른 재목을 얻을 수 있다"라는 뜻이다. 곧 “임금이 신하의 곧은 말을 잘 들으면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다"라는 의미다. 이 말은 당(唐)나라 태종(太宗, 599~649)에게서 나왔다.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은 신하들이 간하는 것을 적극 수용할 뿐 아니라 신하들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한 현군이었다. 태종은 "내가 비록 밝지가 못하지만, 여러분이 바로 잡아 주어야 좋은 정치를 행할 수 있다. 바라건대 직언(直言)과 기개 있는 의론에 의해 천하를 태평하게 하고자 한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간의대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여행은 무심코 지나간 날에 대한 다시 만남의 기회이기도 한 모양입니다. 얼마전 가족들과 함께 경남 통영을 여행하다가 그런 과거와 만났습니다. 바로 윤이상 선생입니다. 아름다운 항구도시 통영, 한려수도를 끼고 있고 통영만 일대와 그 앞의 거제도 일원은 우리나라의 손꼽는 청정해역으로서 굴과 미역 등 각종 해산물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그 앞의 섬들을 바라보면 문득 유명한 한국화가인 고 남천 송수남씨의 그림 속으로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것 같습니다. 그만큼 통영만과 통영은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그와는 다른 멋진 물의 고향이자 아기자기하고 아늑하고 편안한 곳입니다. 통영은 또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태어나서 자란 곳이기에 기념관, 미술관도 많고요. 그런 통영을 갔다가 문득 윤이상 기념관을 가게 된 것인데요. 문득이라고 하면 원래는 계획에 없다가 갑자기 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서울에 있으면서 통영에 대해서는 2010년 3월에 개관한 윤이상 기념관이 그의 이념문제로 이름을 무슨 테마기념관으로 했다는 소식, 2017년에 윤이상 탄생 100돌을 맞아 문재인 전 대통령과 부인이 독일방문 때 베를린에 있는 그의 묘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