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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귓속말로 들려주는 남녀상열지사 <정읍사> 이야기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00]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많이 들어본 가사지요? 예!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 가요이자, 한글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가요인 정읍사(井邑詞)입니다. 요즘에도 실려있는지 모르겠으나, 제가 학교 다닐 때는 교과서에 실려 달달 외우던 백제가요입니다. 왜 갑자기 백제가요 이야기를 하느냐고요? 얼마 전 집에 배달된 신세게 백화점 잡지 <SHINSEGAE> 9월호에 최정동 중앙일보 기자가 이에 대해 쓴 글이 실려 보았습니다.

 

제 아내가 신세계 백화점 회원이라 매달 이 잡지가 집에 옵니다. 그런데 대부분 자기네가 알리고픈 패션, 골프상품, 음식 등에 관한 내용이라, 보통 때는 화장실에서 한 번 휘~ 훑어보고 맙니다. 참! 화장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저는 일반 독서와 화장실 독서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신문, 잡지류는 화장실 독서로 소화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최 기자가 쓴 글 제목은 <궁(宮)으로 간 남녀상열지사 수제천(壽齊川)>입니다. 정읍사가 조선시대에 궁중음악 수제천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녀상열지사’라니요?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는 ‘남녀 사이의 사랑을 읊은 노래’라는 말 아닙니까? 주로 조선의 유학자들이 고려가요가 남녀 간의 사랑을 너무 사실적으로 읊었다고 고려가요를 낮춰 부르면서 남녀상열지사라고 하였지요.

 

여기에 걸려 천한 작품 취급받은 것이 ‘쌍화점’, ‘서경별곡’, ‘만전춘’등이고요. 이렇게 조선의 유학자들은 남녀상열지사라고 하면 경기를 일으키는데, 어떻게 그런 남녀상열지사가 궁중음악이 될 수 있단 말인가요?

 

참! 그전에 왜 정읍사와 같은 건전가요을 남녀상열지사라고 하느냐는 항변에 대한 최 기자의 얘기를 들어봐야겠군요. 우리가 알고 있는 정읍사는 행상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이를 걱정하는 아내가 읊조리는 노래지요. 아내는 남편 모습이 보일까 언덕에 올라, ‘달아 높이 솟아올라 남편이 진 데를 밟지 않게 잘 비추라’고 호소합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남녀상열지사입니까?

 

최 기자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즌 데를 드데욜셰라’는 남편이 진 데를 밟을까봐 걱정하는 것이 아니고, 수렁 같은 주색(酒色)에 빠질까봐 걱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는 달이 높이 솟아오르라는 것이 아니고, 남자의 성기가 불끈 솟아오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즌 데를 드데욜셰라’는 불끈 솟아오른 남자의 성기가 ‘젖은 데’ 곧 젖은 여성의 성기에 잠입한다는 것이네요.

 

또한 ‘아으 다롱디리’는 그냥 단순한 후렴구가 아니라, 흥분한 여성이 내지르는 신음소리입니다. 하하! 재미있지 않습니까? 사실 저도 정읍사의 속뜻이 이렇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정읍사가 궁중음악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최 기자의 글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네요. 하여튼 최 기자의 글을 읽으면서 다시금 정읍사의 속뜻을 음미할 수 있어 즐겁게 화장실 일을 보았습니다.

 

 

그나저나 점잖은 조선 유학자들이 들으면 화들짝 놀랄 이런 외설적인 가요가 어떻게 궁중음악으로 들어갔지요? 조선 유학자들도 순진하게 아내가 남편을 걱정하는 노래로만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궁중음악이라는 것이 조용하고 장중하면서도 사람을 차분하게 고아한 정신세계로 이끄는 맛이 있지 않습니까? 정읍사도 가사는 그렇지만 곡은 궁중음악으로 사용하기에 알맞았던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가사가 문제가 되어, 중종 13년에 정읍사는 《악학궤범》에서 지워지고 궁중에서 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정읍사의 선율만 남아 수제천으로 계속 연주되고 있습니다. 저도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수제천을 듣고 있습니다. ‘수제천이 어떤 음악일까?’ 하는 사람도 수제천을 들으면 금방 ‘아! 이게 수제천이었어?’ 하실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알게 모르게 주위에서 많이 듣던 궁중음악입니다. 보통 궁중음악이라면 느리고 장중하여 즐겨 듣지 않게 되는데, 앞으로 수제천을 들으면 남편이 색주집에서 재미보고 있을까봐 걱정하는 아내가 떠올라 빙그레 웃으면서 재미있게 수제천을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