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무용단 조기숙 K_CB 한혜주 예술감독(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초빙교수)가 2024년 3월 14일 밤 8시 이화여자대학교 삼성홀에서 개인발표회를 열었다. 한혜주 예술감독은 이번 개인발표회에서 안무를 하고 함께 출연하였다. 한혜주 예술감독은 거문고의 묵직하고 거친 음색에 맞춰 무대를 가로지르듯 천천히 움직이며 서막을 시작한다.
거문고로 시작한 음악은 아쟁과 첼로의 낮고 거친 음악들로 점차 겹겹이 쌓아간다. 무용수들이 하나둘씩 무거운 짐을 지듯 나와 지치듯이 쓰러지기도 하고 괴로운 듯 뛰기도 하였다. 무엇인가에 쫓기듯 하였고, 무엇인가에 붙잡힌 듯 각자의 춤 속에서 같은 듯 다른 움직임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이번 한혜주 예술감독의 개인발표회 <어둔 밤, 잠든 사람들>은 체념 증후군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체념 증후군은 2015년 스웨덴으로 망명을 오게 된 난민 자녀들 169명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사건을 말한다. 청년 시기는 하루 가운데 정오가 막 지난 시간으로 꿈을 꾸며 열정을 쏟는 때가 아닌가?
그러나 한혜주 예술감독은 “청년들의 꿈을 상실하고 에너지가 고갈된 모습을 보았어요. 마치 체념 증후군에 빠진 듯한 이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팠습니다. 오늘 이 작품 속에서 다시 움직이실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발레전공 초빙교수로 재직 중인 한혜주 예술감독이 교육현장에서 청년들에게 느끼고 공감했던 자신의 이야기가 투영된 듯하다. “다 잘될 거야. 그럴 수 있어. 할 수 있어.” 등 긍정의 말소리가 침묵 속에 쓰러진 청년 무용수들 사이에서 전해질 때 한혜주 예술감독의 간절한 마음이 담은 춤사위가 관객들 사이에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이번 공연에서 무용수들은 마치 전통무용을 하는 듯, 발레를 하였고 현대무용을 하는 듯하였지만, 자신의 움직임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표현해냈다. 한국의 현대(컨템포러리) 발레 (contemporary ballet)의 역사는 길지 않으며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장르이기도 하다. 낯선 것을 처음 접하는 대중들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 공감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인지 컨템포러리 발레 공연이라고 하면 긴장을 하고 보게 된다.
그러나 오늘 공연은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꿈과 열정을 잃은 상실의 시기는 언제든 누구나 찾아오기 마련이다. 흩어진 장단 속에서 기타와 베이스가 산조를 연주하기도 하였고 거문고와 가야금, 아쟁, 비파 등 전통국악기들이 화음과 불협화음으로 독특한 화성을 이루기도 하였다. 우리에게 익숙한 음악과 동작을 취하는 것 같았으나 새로운 것이었으며, 낯선 것을 선보이는 것 같았으나 깊은 공감을 끌어내었다.
이것이 앞으로 컨템포러리 발레가 가야할 방향의 좌표로 보인다. 현재 이 시대에 사는 우리의 이야기로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고 익숙한 듯한 음악과 동작이지만 그들만의 색과 매력을 담아 분명하고 구별된 춤사위로 무대를 채우는 것이다.
예술은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시대가 변화할 때마다 누구보다 앞서 바라보고 진단하며 자신의 예술로 표현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한혜주 예술감독의 <어둔 밤, 잠든 사람들>은 마지막 조명 빛이 무용수들 머리 위로 가까이 다가와 쏟아내며 청년들의 꿈과 희망뿐만 아니라 컨템포러리 발레의 꿈과 희망을 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