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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거리와 꾸미개

요즈음은 곳곳에서 생활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는 것은 물론 생활한복을 입는 사람들을 원숭이 보듯 쳐다보는 일도 없다. 그러나 생활한복이 나오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에는 운동권들이 입는 옷이거나 도인들만 입는 옷으로 오해하여 입는 사람들은 무척 곤욕을 치러야 했다. 심지어 승복 같다거나 중국옷 같다고 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생활한복은 어떤 옷이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우선 용어의 정의를 살펴보도록 하자.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개량한복’, ‘우리옷’, ‘겨레옷’, ‘민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일정부분 맞지 않는 구석이 있다. 우선 ‘개량한복’이란 말은 ‘뭐가 나빠서 개량했다’는 의미로 들린다. 그러나 생활한복의 출발점을 전통한복으로 보았을 때 그 전통한복을 약간의 불편함만 있을 뿐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개량한복’이라고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현재 전통한복전문점에서 전통한복에서 주로 쓰는 원단인 비단 등을 사용하여 약간의 변형을 주어 만드는 것을 ‘개량한복’이라 부르는 또 다른 종류의 상품이 있기도 하다. ‘우리옷’, ‘겨레옷’은 아름다운 우리말이기는 하나 전통한복은 그럼 ‘우리옷’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을 때는 답하기가 곤란할 것이다. ‘민복’은 백성 민(民)자를 쓴 것으로 일반 백성들만 입는 질이 낮은 옷이라는 이미지로 생각될 여지가 있다고 하겠다. 이 ‘생활한복’이란 용어는 90년대 중반부터 여러 사람들이 쓰기 시작하여, 1996년 12월 ‘한복입기’를 추진한 당시 문화체육부에 의해 공식용어로 지정되었다. 생활 속에서 편히 입도록 한 한복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다음으로 생활한복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특징을 살펴보도록 하자. 생활한복은 전통한복에서 출발한 것이다. 전통한복의 뛰어난 아름다움에 비해서는 현대인들이 입기에 약간의 불편함이 있어 그것을 고쳐주고자 함이다. 따라서 전통한복의 원형과 철학이 크게 훼손되어서는 문제가 있을 것이다. 살릴 수 있는 장점은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동정, 섶, 섶코, 도련, 배래, 소매끝동, 허리와 대님, 사폭” 등은 약간의 변형 외에는 없애서는 안 되는 중요한 특징이다. 우선 ‘동정’은 우리 한복에서는 상징이라 할 만큼 소중한 부분이어서 살려주었으면 한다. 유일한 직선의 사선으로 깨끗하면서도 아름다운 이미지를 주는 것이어서 많은 사람들은 한복하면 생각난다고 할 정도이다. 동정 끝 부분 즉 동정니는 잘 맞추어 주어야 한다. ‘섶’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섶은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고, 겉섶과 안섶이 겹쳐있어 속이 들여다보이는 문제를 막아준다고 했다. 그리고 아랫부분의 버선코처럼 앙증맞게 나온 ‘섶코’의 아름다움을 말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 섶부분도 잘 계승해야할 점의 하나일 것이다. 저고리 아랫부분 즉 ‘도련’과 소매의 아랫부분인 ‘배래’는 직선으로 잘라 놓았을 때 보다 훨씬 한복의 아름다운 자태를 살려주는 것이므로 살려줄 필요가 있다 하겠다. 서양옷이 허리부분을 딱 맞게 조여주는데 비해 한복은 넉넉한 허리를 자랑한다. 상대적으로 넓어서 불편한 것은 허리끈을 허리에 붙여 놓음으로써 보완하려고 했다. ‘사폭’이 넓은 문제는 오히려 이 점이 입기에 편하고 건강에도 좋다면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대님의 경우에도 전통한복편에서 설명한 것처럼 중요한 부분이라면 대님을 바지에 붙여서 해결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단추로 하면 바깥쪽에 달게 되고, 그러면 의자가 아닌 바닥에 그냥 앉았을 때 배기게 되어 매우 불편하다. 그리고 아랫부분(부리)을 줄여주기만 한 바지들이 있는데 이 경우는 맵시가 살아나지 않는다. 요즈음 심하게 변형을 시도한 생활한복들은 오히려 서양옷에 흡사한 느낌을 주는 옷들도 많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여자 저고리의 경우 가슴부분에 재봉선을 넣어 가슴이 많이 튀어나와 보이도록 하여 섹시함을 강조하는 옷도 있는데 그렇다면 차라리 서양옷을 입는 것이 훨씬 섹시함을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어정쩡한 국적불명의 옷은 오히려 편함도, 전통계승도, 아름다움도 모두 잃어버리는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생활한복이 잘 계승해야할 특징들을 살펴 보았다. 다음은 그런 디자인에 관련된 부분 말고도 원단과 바느질에 관해서 분석해 보기로 하자. 일반적으로 많은 옷들이 폴리에스텔 계열의 화학섬유를 즐겨 쓴다. 옷이 가볍고, 색깔과 느 낌이 좋다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원가가 비교적 싼 것들이 많아 생산자들이 선호하는 면도 있다. 하지만 화학섬유일 때 정전기가 생기고, 부스럼이 잘 생긴다든가 하는 부작용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염색은 어렵더라도 원단만은 천연으로 가야 되지 않을까? 대신 천연원단을 쓴 생활한복을 물빨래 할 때 만일을 대비하여 뜨거운 물, 락스(표백제) 등의 사용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요즈음은 주방용 세제를 쓰면 물도 빠지지 않고 옷을 오래 입을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나와 있다. 또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겹옷일 때 겉감과 안감의 재질이 같아야 한다. 만일 다르다면 여러 번 빨았을 때 주는 정도가 달라 원단의 한쪽이 당겨지므로 심한 원단의 변형이 생기게 된다. 바느질의 경우 많은 생산자들이 원가절감을 이유로 한복의 중요한 특징까지 생략하고 한복의 기본도 모르는 재봉사들을 쓰는데 그렇다면 한복의 아름다움과 특징을 올바로 계승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유명 백화점에 있는 생활한복 전문점에서는 섶의 좌우가 바뀌어 있는 생활한복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을 보는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한복을 잘 모르는 보통의 사람들은 유명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것이니 좋은 옷으로 믿고 살 것이다. 또 바느질을 볼 때는 땀수가 촘촘한지, 울게 바느질한 데는 없는지 등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하겠다. 그 외에 생각해야 할 것은 현대인의 편의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든다면 남자옷의 경우 안주머니를 달고 지퍼를 붙여 놓아야 지갑을 넣을 때 좋을 것이다. 또 손전화(핸드폰) 주머니를 저고리 주머니 안에 추가로 달아 놓는다면 편할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의 편의를 고려한다고 해서 이것이 한복의 특징을 왜곡하거나 품위를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남자바지에 소변용 지퍼를 달아놓은 것들이 많이 눈에 띄는데 물론 어떻게 생각하면 상당히 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바지를 입고 전철에 앉았다고 생각해보자.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지퍼 때문에 정말 품위없는 모습으로 비쳐지지 않겠는가? 또 지퍼를 가운데가 아닌 오른쪽의 사폭선에 달수밖에 없어서 어쩌면 더 불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지퍼를 달지 말고 허리끈을 허리에 붙여줌으로써 허리끈을 풀지 않은 상태에서그냥 앞부분만 내렸다 올림으로써 해결하고 있다. 약간 불편한 듯 하지만 그래서 품위를 지킬 수 있다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한복을 입는 이유는 단순히 입기 편함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품위와 아름다움도 동시에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약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할 당위성도 있지 않을까? 서양 양복의 경우 여름에도 넥타이를 매는 불편함을 가지고 있지만 양복을 불편하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만큼 품위와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양보해야 되는 부분도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쨌든 생활한복을 많은 사람이 입도록 하고,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하는 좋은 생활한복이 되도록 하고 싶다면 철학이 살아있는 원칙이 있어야 하고, 이익만을 위한 무조건 원가절감을 고집하는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상대적으로 소비자의 입장에선 전통한복을 얼마나 현대인에게 맞게 잘 계승했는지와 소비자의 입장에서 고민한 흔적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본 다음에 사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이다. 또 그렇게 샀을 때는 입을 때마다 흐믓한 생각이 절로 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