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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금석문톺아보기 37]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百濟昌王銘石造舍利龕)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절터 출토

[그린경제 =정석현 기자]  부여 능산리사지(扶餘陵山里寺址 : 사적 434호)는 백제 사비시대의 사찰유적으로, 부여 나성(羅城)과 능산리고분군 사이에 있는 능뫼골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능산리사지에 대한 발굴조사는 백제문화권개발계획의 일환으로 국립부여박물관에 의해 1992년부터 2002년까지 8차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중문(中門), 목탑(木塔), 금당(金堂), 강당(講堂)이 남북 일직선상에 놓이고 주위에 회랑(回廊)이 배치된 일탑일금당(一塔一金堂)의 전형적인 백제 가람형식임이 밝혀졌다.

또한 동서회랑의 바깥쪽에는 각각 남북방향의 배수로(排水路)가 설치되어 있는데, 서회랑 외곽의 배수로에는 목교(木橋) 및 석교(石橋)가, 동회랑 외곽의 배수로에는 석교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외에도 중문지 남쪽에서는 동서·남북방향의 도로유구와 배수시설이 확인되었다.

   
▲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百濟昌王銘石造舍利龕)

한편 1993년에는 공방(工房)으로 추정되는 건물지에서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 : 국보 287호)가 출토되었다. 또한 목탑지의 심초석(心礎石) 위에서 출토된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百濟昌王銘石造舍利龕 : 국보 288호)에는 창왕 13년(567)에 공주(公主)가 사리를 공양(供養)했다는 명문기록이 확인됨에 따라 이 절이 백제왕실의 기원사찰(祈願寺刹)임이 밝혀졌다.

사리감이 출토된 목탑지의 기단규모는 동서 11.79m이며, 그 중심부의 108X133cm의 범위에 깊이 114cm 정도로 묻혀 있었다. 출토된 사리감은 가로, 세로 각각 50cm, 높이 74cm의 크기이며, 밑면이 비교적 납작하고 윗면이 둥근 아치형이다. 정면 중앙에 역시 아치형의 사리장엄을 넣을 수 있는 감실이 파여져 있다.


앞면의 감실 양쪽에는 각각 10자씩의 글씨가 음각(陰刻)되어 있는데 예서풍(隸書風)이 강한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의 서체로 공주(公州) 무녕왕릉(武寧王陵) 지석(誌石)의 서체와 비슷하다. 아랫줄 4번째의 “*”자(字)는 북위(北魏)에서만 사용하였던 별자(別子)로서 백제(百濟)와 북위(北魏)와의 밀접한 교류를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명문(銘文)의 내용은, 이 사리감은 성왕(聖王)의 아들로 554년 왕위에 오른 창왕(昌王)[위덕왕(威德王)]에 의해 567년 만들어졌으며, 성왕(聖王)의 따님이자 창왕(昌王)의 여자 형제인 공주가 사리를 공양하였다는 내용이다.

연대: 567년(위덕왕13년)
국보: 288호
크기: 가로 50cm, 세로 50cm, 높이 74.0cm
출토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사지(寺址)
소재지:국립부여박물관-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출처: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