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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황사영 백서와 그의 아내 그리고 아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3]

[그린경제/얼레빗=양승국 변호사]  오늘은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얘기 하나 하겠습니다. 신유박해의 모든 것을 흰 비단에 써서 북경에 보내려다 들켜 능지처참형을 당한 황사영이란 천주교 순교자가 있지요. 이때 황사영이 처형당한 뒤 그의 아내 정명련(일명 난주)와 아들이 겪었던 얘기입니다. 황사영이 백서 사건으로 능지처참형을 당한 후 황사영의 아내와 아들은 노비로 전락하여 제주도 대정으로 유배 갑니다. 정명련은 다산 정약용의 큰 형인 정약현의 딸이지요. 정약현이 처음 딸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장래가 촉망되는 황사영에게 시집보냈을 때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겠지요 
 

   
▲ 황사영이 신유박해의 모든 것을 흰 비단에 써서 북경에 보내려다 들켜 처형당한 < 황사영 백서 >

정명련이 유배 갈 때에 명련은 두 돌배기 아들 황경헌(황경한이라는 기록도 있다)을 데리고 있었습니다. 배가 추자도 예초리에 잠시 정박할 때에 명련은 뱃사공을 매수하여 아들을 물새울 황새바위에 두고 떠납니다. 아들을 데리고 제주도로 가봐야 아들은 노비로서 클 수밖에 없으니, 차라리 추자도에 내려놓은 것이지요.  

물론 명련은 아들을 내려놓을 때 아들의 이름과 출생일을 적은 쪽지를 아기 저고리 속에 넣어둡니다. 아들을 바위 위에 두고 떠날 때 명련의 가슴은 찢어지고, 눈에서는 피눈물이 났겠지요. 아들이 주문모 신부에게 유아세례를 받을 때에 명련은 아들을 품에 꼬옥 안고 행복한 꿈을 꾸었을 텐데... 이 글을 쓰면서 저도 마음이 쓰라립니다.  

다행히 황경헌은 소를 방목하던 오씨 어부의 아내에 의해 발견되어 길러집니다. 황경헌은 이 섬에서 어부로서 일생을 마쳤고, 그의 후손들은 6대까지 이어져 추자도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오씨가 황씨를 아들처럼 길렀기 때문에, 지금도 추자도에서는 황씨와 오씨는 서로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군요.  

추자도에 가면 황경헌의 눈물이라는 샘이 있습니다. 경헌이 커서 자신의 내력을 알고는 항상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제주도에서 고깃배가 들어오면 어머니의 안부를 묻곤 하였답니다. 사람들은 이 샘물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애끓는 소망에 하늘이 탄복하여 내리는 황경헌의 눈물이라고 부르는데,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샘물은 늘 흐르고 있답니다 

 

   
▲ 추자도에 있는 황경헌의 눈물샘

그런데 1801(순조 1) 천주교 박해에 관한 정부 쪽 기록을 수집, 정리한 책 사학징의(邪學懲義)에는 황경한을 추자도 노비로 유배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는군요. 글쎄요... 조선이 아무리 천주교에 대해 심하게 박해를 하였다지만, 이제 겨우 두 돌 지난 갓난아기를 엄마 품에서 강제로 떼어내어 그 어미가 만날 수 없는 추자도로 유배를 보낸단 말인가요? 제 생각에는 천주교사에 기록된 대로 정명련이 유배가다가 아들의 장래를 위해 추자도에 두고 떠났다는 설이 더 유력해보입니다.  

지금 추자도에 가면 천주교에서 깨끗하게 잘 단장해 놓은 황경헌의 묘역을 볼 수 있습니다. 황경헌의 어머니 정난주 마리아는 37년간 관노로서 한() 의 세월을 살다가 죽어 대정에 묻혔는데, 천주교에서는 이곳을 성지로서 관리하고 있지요. 제주 올레길 11코스를 걷다보면 이 성지를 만날 수 있다는데, 언제 시간이 되면 이 모자의 안식처를 모두 찾아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