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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하늘의 길 붓의 길 가다

중리 하상호 서예작품 전시회, 세종문화회관 본관 1 전시실

[그린경제/얼레빗=양승국 변호사]  지난 수요일(2014. 7. 9.) 세종문화회관 본관 1 전시실에서 중리 하상호 선생님의 서예 작품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전시회 제목은 <하늘의 길, 붓의 길 가다>입니다. ‘붓의 길은 알겠는데, ‘하늘의 길은 무엇일까요? 중리 선생의 이번 전시 작품 대부분이 성서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직접 성경 구절을 쓰신 것도 있고, ‘주님의 향기’, ‘성령 충만처럼 믿음의 언어를 표현한 것도 있습니다. 이날 사회를 본 임병걸 케이비에스(KBS) 보도위원은 이에 더하여 중리 선생이 붓을 잡으신지 지천명(知天命)의 햇수를 지난 55년이니, 중리 선생이 이제는 마음 가는 대로 붓을 놀리셔도 하늘의 뜻이기에 하늘의 길, 붓의 길 가다가 아니겠냐고 하네요. 

   
▲ 인사말을 하는 중리 하상호 선생(위), ‘자클린드의 눈물’을 연주하는 첼리스트 이완이

   
▲ 커다란 붓으로 "相愛"라는 글씨를 쓰는 중리 하상호 선생

전시회는 음악과 함께 문을 열었습니다. 보통 다른 전시회 개막식도 음악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 전시회 개막식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작은 음악회였습니다. 중리 선생님의 인사가 끝난 후, 처음 등장한 첼리스트 이완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자클린드의 눈물이라는 곡을 연주하는데, 연주라기보다는 음악을 따라 몸이 가고, 몸을 따라 활이 현의 위를 미끄러지는, 그녀 자신이 음악이더군요.  

다음에 등장한 테너 류정필의 새타령은 언제 들어도 우렁찹니다. 그 작은 몸에서 어찌 그리 우렁찬 목소리가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새타령을 부를 때에는 류정필의 입에서 소리의 새가 날개짓하며 나와 관객들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듯합니다. 이런 자리에 결코 빠질 수 없는 이병욱 교수님은 전날 늦게 중국 여행에서 돌아와 많이 피곤할 텐데도 아리랑 별곡기타 연주를 해주시고, ‘검정 고무신은 기타 연주에 더하여 노래까지 불러주셨습니다. 

이크! 서예 전시회 얘기하면서 음악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는군요. 그 외 대금 연주자 정진용의 청성곡연주와, 중요 무형문화재 30호인 김영기 명창의 시조창, 중리 선생의 제자 송영숙(가야금)과 권은경(장구)의 가야금 산조 연주가 이어졌습니다. 김영기 명창은 중리 선생의 전시회를 축하하기 위하여 시조창에 아예 풍류서예가 중리 선생의 귀하디 귀한 예술 영원토록 누리소서란 가사를 넣어서 부르더군요. 

   
▲ 양옆으로 직사각형의 검은 형체(글씨 덩어리)가 화면을 차지한 가운데에 꽃이 피어나는 작품 "주님의 향기"

   
▲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쓴 작품 "好"

개막식의 마지막은 무용가 신미경 선생이 박소연 선생의 거문고 연주에 맞추어 축하의 춤을 추는 가운데에 중리 선생의 퍼포먼스로 멋지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처음 중리 선생은 바닥에 펼쳐놓은 종이 위에 가부좌로 앉아 참선으로 숨을 고르더니, 이윽고 일어나 커다란 붓을 두 손으로 잡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며 相愛라는 글자를 힘차게 써내려가기 시작합니다. 글자가 워낙 크다보니 글자 주위로 먹물이 튀는 것이 꼭 글자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 같습니다. 

작품 전시회이니 개막식 행사에만 눈독 들이지 말고, 전시된 작품도 차분하게 감상을 해야 하는데, 개막식 행사에다가 곧이어 뒤풀이 행사에 가느라고 작품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아쉽네요. 물론 다음에 다시 가서 차분하게 작품 감상을 할 것인데, 오늘은 그나마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본 작품 몇 점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을 ()’자를 쓰신 것은 성모마리아가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으로 쓰셨습니다. 하긴 원래 자가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 없다고 하여 생긴 글자이니,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은 더더욱 보기 좋고 성스러운 모습 아니겠습니까? ‘聖靈充滿이란 작품은 이미 작품 자체가 성령으로 충만되어 바라보는 저까지도 성령으로 감화시키고 있습니다. 

주님의 향기라는 작품은 양옆으로 직사각형의 검은 형체가 화면을 차지한 가운데에 꽃이 피어나고, 그 밑에 약간의 글씨가 쓰여 있는 것이 서예작품치고는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양 옆의 묵직한 검은 형체는 글자의 덩어리입니다. 중리 선생이 삼위일체’,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 ‘성령충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글자를 무수히 쓰다보니, 어느덧 글자는 사라지고 묵향이 짙게 배어나는 검은 글자의 덩어리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묵향의 글자 덩어리에서 주님의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 테너 류정필이 노래하는 뒤로 창세기 1장부터 22장 4절까지의 말씀을 한자로 쓴 작품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중리 선생이 혼이 깃든 대작을 말씀드려야겠군요. 중리 선생은 창세기 1장부터 224절까지의 말씀을 한자 성경에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으로 베껴 써서 벽면을 그득 채웠습니다. 옆의 사진에 테너 류정필의 뒤로 보이는 작품이 바로 그 작품입니다. 제 생각에 중리 선생은 저 작품의 마지막 글자를 쓰시고 난 이후에는 온 힘을 쏟아 부은 탓에 탈진하여 옆으로 쓰러지시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전시회는 되도록 많은 분이 보셔야 할 텐데, 안타깝게도 전시회는 다음 주 화요일(7. 15.)까지밖에 안 합니다. 전시회를 보고 싶은 분들은 빨리 서둘러야겠네요. 마지막으로 이번 개막식의 사회를 맡은 임병걸 위원의 전시회를 여는 글의 일부를 인용하면서 제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의 글씨는 천의무봉의 경지에 오르셨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선생님의 글씨 앞에 설 때마다 그 넘치는 생명력과 무한한 상상력 그리고 아무 곳에도 얽매이지 않는 원초적 자유로움에 늘 감탄하곤 합니다. 사실 문자는 세상의 현상과 사물을 추상화,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기운생동을 잃어버리기 마련입니다. 

이라는 글자엔 더 이상 나무가 없고, 꽃이 피지 않고 새들도 지저귀지 않습니다. ‘이라는 글자에서도 물은 흐르지 않고 물고기도 뛰놀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리 선생님의 글씨에서는 문자화 과정에서 소멸됐던 사물과 자연의 생생한 본래 모습과 속성이 부활합니다. 선생님의 글씨에서는 전형적인 필법을 넘어서 선생님 특유의 실험정신과 창의성이 강렬한 생명력을 뿜어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