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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에도시대 265년 간을 한눈에, “에도도쿄박물관”

[그린경제/얼레빗 = 도쿄 이윤옥 기자] 도쿄 료고쿠(両国)에는 에도도쿄박물관(江戸東京博物館)이 있다. 에도도쿄박물관장이 직접 “동경에 오면 에도도쿄박물관에 꼭 오라”고 권하는 에도도쿄박물관은 올해로 설립 21년을 맞이한다. 가만히 서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어제 섭씨 37를 오르내리는 날씨 속에 에도도쿄박물관엘 다녀왔다.

에도란 지금의 동경을 일컫는 말로 덕천가강(徳川家康)이 풍신수길(豊臣秀吉)을 물리치고 지금의 동경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1603년부터 명치시대가 시작된 1868년 이전까지 265년간을 말한다. 1603년이라면 조선이 개국하여 211년이 지난 때이고  제14대 왕인 선조임금 재위기간이다. (재위 1567∼1608).

평생을 싸움으로 시작해서 싸움으로 망한 풍신수길 시대에 종지부를 찍은 덕천가강의 시대는 비록 사무라이 정권이기는 해도 전 시대보다는 평온했다. 일본 역사상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운 시대를 꼽는다면 헤이안시대(794-1192) 다음으로 에도시대(1603-1868)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 에도시민의 물 공급 시설

   
▲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던 모습은 수도 시설이 나오기 전에는 어느나라나 비슷하다.

그러나 인류에 있어서 19세기 이전의 역사란 대동소이하다. 우물을 파서 그 물을 쓰고 산파가 집에서 해산을 돕던 시절에는 산업이래야 물고기를 잡아먹거나 논밭에서 곡식을 길러 그것으로 먹고 살던 그런 시대였다.

에도도쿄박물관에도 에도를 대표하는 서민들의 생활관에는 그 첫 장면이 물 확보 시설이다. 시설이라고 할 것도 없는 물 저장 나무통이지만 어쨌든 큼지막한 나무통에 물을 저장해서 먹고 살았던 모습과 에도시대의 한 가정집을 재현 해놓은 방에는 산파가 갓 태어난 아기를 목욕시키는 모습이 인형으로 꾸며져 있다. 

7층으로 된 에도도쿄박물관은 6층과 5층이 상설전시관이다. 1층에서 표를 사서 6층의 상설전시관으로 들어서면 니혼바시(日本橋)가 버티고 있는데 바로 에도로 들어가는 관문과도 같은 이 다리를 건너면 당시 에도성(江戸城)과 이 성에 살던 장수들의 집(屋敷, 야시키) 모형이 재현되어있다.

   
▲ 한국으로 말하면 소품 가구를 만드는 재료를 다루는 에도의 소목장

   
▲ 집에서 출산하는 일을 산파가 돕고 있다. 갓 태어난 아기를 씻기는 장면이 재현 되어있다

비록 풍신수길 시대처럼 싸움으로 지새지는 않았지만 에도시대 역시 사무라이 시대임을 입증하듯 크게 볼만한 것은 없었다. 사무라이시대란 <칼과 갑옷>의 시대로 <책과 붓>의 문화와는 사뭇 다르다. 따라서 <칼과 갑옷> 외에는 박물관을 채울 내용이 없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장수들이 한가하게 책장을 넘길 일도 없거니와 그를 따르는 부하들도 책을 곁에 놓고 학문을 논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시서화 같은 유물이 그다지 없는 것이고  산더미 같은 서책들도 있을 수 없다. 일본의 사무라이정권이 유지되었던 676년의 <가마쿠라시대(1192) ~ 명치시대(1868)> 동안을 장식하는 전시품은 그래서  <칼이나 갑옷> 이 주종을 이룬다.

이것은 좋고 나쁘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칼과 갑옷>을 빼고는 딱히 볼게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박물관 이야기가 나왔으니  동경의 유서 깊은 우에노박물관에서도 기자는 그런 실망감을 톡톡히 맛본 적이 있는데 전시품 거의가 <기모노>였기 때문이다.

   
▲ 여성들의 머리 빗

   
▲ 서민의 소박한 밥상이지만 에도말기에는 폭등하는 쌀값과 물가고에 서민의 봉기가 잦았다

다시 에도박물관을 보자. 장수들의 대 저택 모형 몇 개와 에도시대를 그린 병풍 한 점, 그리고 장수가 사용한 가마 한 점이 전부인 6층 관람을 마치고 5층으로 이어지는 내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바로 에도 시민들의 물 공급원인 물 저장 통나무 재현과, 집에서 산모가 애기를 낳는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그리고는 쵸닌(상인)들의 상업번창과 그로인한 부의 축적으로 느슨해진 서민들이 호기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책 출판의 욕구로 생긴 인쇄용 활자판 몇 점과 상업관련 물품들이 5층 전시관의 전시품 대부분이다. 에도도쿄박물관에서는 무사들의 생활 보다는 주로 서민생활을 중심으로 꾸며 놓고 있다.

고려시대의 불교관련 유물과 고려청자, 시서화((詩書畵) 그리고 조선시대의 수많은 문장가들의 시서화((詩書畵)로 가득찬 한국의 박물관과는 매우 대조적인 에도도쿄박물관 을 둘러보고  기자는 676년간 일본의 ‘무사문화’와  556년간 조선의 ‘문신문화’의 차이를 다시 한 번 돌아 보게 되었다.

 

   
▲ 니혼바시 주변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배들

 

   
▲ 박물관을 찾은 시민들

이것은 비단 에도도쿄박물관에만 한정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지방의 군소 박물관을 가 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일본의 박물관이나 자료관의 주된 전시품은 <칼과 갑옷>이다. 어딜 가나 <일본칼(刀)>이 한가운데에 전시 되고 있으며 다음이 <갑옷>이다.

이러한 전시품은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태어나 이러한 문화 속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전시물이지만 전쟁을 좋아하지 않고 평화로운 삶을 지향하며 이웃나라와 사이좋게 지내려했던 나라 사람으로서는 어째 이러한 전시품들이 익숙지 않다. 저 야스쿠니신사 자료관의 섬뜩한 <일본칼>과 무수한 <갑옷>이 문뜩 뇌리를 스친다.

그건 기자만 그런 것은 아닐 게다. 권력과 힘에 눌려 살던 대다수의 서민들은 일본인일지라도 <칼의 문화>가 달갑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막부를 향해, 때로는 어용상인들을 향해 칼을 빼들고 곡괭이로 저항 했다. 이것을 일본말로는 요나오시잇키(世直し一揆)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세상을 뒤집으려는 봉기”인 것이다. 특히 요나오시잇키는 에도시대후반부터 명치시대 초기의 민중봉기를 일컫는다.

 

   
▲ 무거운 세금으로 서민들의 목을 옥죄는모습을 풍자한 그림

 “이들은 생활고 개선을 요구하고, 새로운 세금 거두기와 징병에 반대하는 사람들로 사상적, 정치적인 배경은 없었다. 그러나 이들의  봉기는 막부와 제번, 신정부의 군대에 의해 진압되었다. 다만 이들 민중 봉기의 특징은 직접 세금을 징수하는 막부나 제번, 신정부가 아니라 이들의 앞잡이인 마을의 촌장, 어용상인들에게 영향을 미친 점이다.” 이는 일본 위키 사전이 전하는 민중봉기에 대한 설명이다.

한 시간여 에도도쿄박물관을 둘러보는 동안 “에도시대 265년”은 일본에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잠겼다. 그것은 단순한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모양새를 인형이나 실물로 재현해놓은 것 말고 진정 오늘의 동경을 있게 한 “에도시대”란 일본에게 있어 무엇인가를 묻는 시간이었다.   

오늘의 일본이란 결국 그 시대의 정신과 그 시대의 풍습, 그 시대의 “그 무엇”이 내재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동경” 이해의 기본점이 될 에도도쿄박물관 관람은 한번쯤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 주소 : 도쿄도 에도도쿄박물관(東京都江戸東京博物館:東京都墨田区横網1-4-1)
* 전화 :  03-3626-9974 FAX:03-3626-9950
* 에도박물관 누리집 :  http://www.edo-tokyo-museum.or.jp
* 입장료 : 일반 600엔
* 찾아 가는 길 :
1)JR소부센 료고쿠니시구치 (JR総武線 両国駅西口) 하차 3분 거리
2)도에이 지하철 오오에도센 료고쿠역 에도도쿄박물관역 (都営地下鉄大江戸線 両国駅, 江戸東京博物館前)하차 1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