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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김정호 “지난 겨울엔”, 그에게 미쳐 살았던 행복한 겨울

[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6]

   
▲ 김정호 ‘지난 겨울엔’ 음반 표지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 칼럼리스트]  전설인줄 알았다. 픽션 같기도 하고 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으로 오버랩 되기도 했다. 그날의 하늘은 예리한 칼날에 베여 벌어진 쌀부대처럼 이팝꽃 송이가 마구 쏟아져 내렸다. 태엽이 조여졌다. 시간도 서둘러 집으로 향하고 모든 게 앞당겨졌다. 택시부 광장엔 자정이 되기도 전에 이미 인적이 끊겼다. 조금 전 아베크 한 쌍이 말똥가리가 되어 이팝꽃덩이를 굴리다 뽀르르 사라진 게 인간이 남긴 마지막 잔영이었다. 

해일처럼 내리붓는 이팝꽃은 금방 발등을 덮고 무릎을 넘더니 축시를 지나자 빨간 우체통마저 절반이나 묻어 버렸다. 세상이 두꺼운 이팝꽃 이불을 덮고 깊은 잠에 빠져들 때 나는 고적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허름한 이층 카페에 홀로 남아 있었다. 턴테이블 위에는 여전히 김정호가 살아있었고, 마른멸치 몇 마리를 안주삼아 나의 소망대로 이팝꽃 더미에 묻혀갔다. 

까가각 ! 

강물 얼 때 얼음 갈라지는 소리처럼 쩡쩡한 까치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부비니, 아침햇살이 퇴락의 공간을 환등기처럼 환히 비추고 있었다. 수돗물 한사발로 사포 같은 혓바닥을 축이며 내다본 창밖 풍경은 양화점 지붕이며 약국 옥상이며 온통 휘핑크림으로 뒤덮여 있었다. 드문드문 행인들이 띄긴 했으나 전깃줄 위의 까치 수보다 도 적었다. 

서산너머 해도 지고
깊어가는 겨울밤에
소리 없이 떨어진 눈송이
소복소복 하얗게 쌓이네
나 나 나 지난겨울에
그대 와 나 둘이 앉아
나 나 나 꿈을 키웠지
아름다운 먼 훗날을
님도 가고 세월 갔지만
눈 감으면 그님 생각
창을 열고 밖을 바라보니
떨어지네 하얀 눈송이가 

   
▲ 김정호의 '이름 모를 소녀' 음반 표지
이젠 태엽이 풀려 모든 게 늘어졌다. 교통이 두절된 도시를 하슬라의 후예들은 염전물레질 걸음으로 허우적거리며 걸어 다녔다. 신영극장이, 강일여고 체육관이, 롤러스케이트장이 새벽녘에 내려앉았다는 웅성거림이 제설작업을 하는 인부들 틈에서 흘러 나왔다. 전에는 쳐다보고 다녀야했던 세탁소 간판이며 서점 간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집으로 갔다.  

난생 처음 그렇게 많은 눈을 본 그해 겨울 나는 김정호에게 미쳐 살아 진정 행복했다. 그리움과 고독 그리고 우수와 쓸쓸한 미소로 상징되는 김정호! 그가 처음 가요계에 나왔을 때 우리도 이제 진정한 천재를 얻었다고 가요계는 흥분했었다. 조영호가 본명인 김정호. 그의 목소리에 배어있는 짙은 애조는 이미 그의 외가가계에서 결정되었다. 

6·25 때 납북된 국악계의 거목 박동신 명창이 외조부이며 전남대 교수직을 역임한 아쟁명인 박종선을 외삼촌으로, 박숙자 명창을 어머니로 1952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여수 경찰서장직을 그만 둔 부친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솔가하여 교동초등, 대동중·상고를 다녔다. 고교 졸업 후 늘 귓가에 맴도는 외삼촌의 아쟁소리에 이끌려 학업을 포기하고 우이동 골짜기에 골방을 얻어 임창제와 함께 지내며 기타 스승 이상일을 사사했다. 공부로는 일등을 못했지만 음악으로는 꼭 일등을 해보자며 임창제의 새끼손가락을 걸었던 김정호.  

파르스름한 새벽별빛이 똑똑 떨어지던 그 큰 눈망울은 올 겨울에도 시린 하늘가를 비추고 있겠지.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