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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제암리 학살 사건을 세계에 알린 테일러의 집 딜쿠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56]

[그린경제/얼레빗=양승국 변호사]  딜쿠샤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딜쿠샤는 힌두어로 이상향, 행복한 마음, 기쁨등을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딜쿠샤 얘기를 하니, 좀 의아해 하실지 모르겠는데, 저번에 서울 종로구 행촌동 1-88, 89 언덕 위에 있는 딜쿠샤라는 집을 찾아보고 왔습니다. 하하! 이렇게 말씀드리면, 행촌동에 그런 집이 있냐고 더 의아해 하실 것 같네요.  


딜쿠샤는 미국인 알버트 테일러(Albert Taylor, 1875~1948)1923년에 지은 집으로, 화강석 기저부 위에 붉은 벽돌을 세워 쌓은 2층 주택입니다. 안내문에는 이런 건축기법을 프랑스식 쌓기라고 적어놓았는데, 하여튼 당시로서는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희귀한 벽돌 양식의 집이었다 할 것입니다. 1923년에 미국인이 조선 땅에 이런 희귀한 집을 지었다는 것, 게다가 집 이름이 딜쿠샤라는 힌두어 이름이라는 것이 저를 딜쿠샤로 끌어당겼습니다 



 
알버트는 왜 조선에 집을 지으면서 딜쿠샤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딜쿠샤는 알버트의 부인 메리 테일러가 결혼 전 인도 러크나우 지역에서 본 고성의 이름이랍니다. 메리는 딜쿠샤라는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어, 결혼하면 자기가 살 집의 이름을 딜쿠샤로 하겠다고 마음먹었답니다. 


! ! 알버트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말씀을 드리지 않았군요. 알버트는 UPA(UPI의 전신) 통신의 특파원으로 한국에 왔습니다. 알버트가 오고 나서 얼마 안 되어 3.1.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 때 알버트는 일제의 제암리 학살 사건을 세계에 처음으로 알렸습니다. 그뿐 아니라 3.1. 독립선언문을 입수한 후 이를 일제에 압수당하지 않기 위해 3.1. 운동 전날 태어난 아들 브루스 테일러의 침대 밑에 숨겨두었다가 마찬가지로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이런 알버트가 일제에 곱게 보일 리가 없겠지요? 일제는 태평양 전쟁을 도발하고는 1942년 알버트를 잠시 감옥에 가두었다가 추방합니다. 그러나 몸은 추방할 수 있을지언정 영혼은 추방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을 사랑한 알버트는 자신이 죽거들랑 재만이라도 한국에 뿌려달라고 하였다는데, 그의 소원대로 알버트는 현재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럼 알버트가 추방된 후 딜쿠샤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주인은 추방되고 일제도 쫓겨 간 후 딜쿠샤는 집 없는 서민들이 맘대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딜쿠샤는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쳐 가면서 기억 속에 묻혀버렸습니다. 그러다가 2006년 알버트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가 찾아오면서 딜쿠샤의 존재가 다시 사람들의 시선 속으로 들어옵니다. 이후 서울시는 2008년 브루스에게 명예 시민증을 수여하였고, 딜쿠샤를 문화재로 등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념물 지정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딜쿠샤에 살고 있는 십여 세대 입주자들이 나가달라는 요구에 버티고 있는 것이지요. 딜쿠샤 앞에는 허가 없이 딜쿠샤를 사용할 경우 변상금 부과처분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한국자산관리공사 명의의 안내문이 붙여져 있지만, 딜쿠샤에서 쫓겨나면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이를 들을 리가 없습니다. 저는 딜쿠샤 내부도 보고 싶었지만, 명도 요구로 신경이 날카로울 입주민들에게 어떤 말을 들을지 몰라 엄두도 못 내고, 딜쿠샤 외부 사진도 사람이 안 보일 때 얼른 찍었지요. 

   

                                        ▲ 권율장군이 심었다는 은행나무


딜쿠샤 옆에는 오래 된 은행나무가 서있습니다. 권율 장군이 자기 집 앞에 심은 나무로 마을사람들이 당산목으로 신령스럽게 여기던 나무라고 합니다. 행촌동(杏村洞)이란 동네 이름도 바로 이 은행나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실 테일러 부부는 이 은행나무에 매료되어, 은행나무 옆에 딜쿠샤를 지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파란 눈의 외국인이 당산목 옆에 서양집을 짓는다고 하니, 당시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반발했겠습니까? 마을 무당은 테일러 부부에게 저주를 퍼붓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가 딜쿠샤는 1926. 7. 26. 벼락을 맞아 2층이 불에 타기도 했다고 하는군요.  


은행나무 밑에서 다시 한 번 딜쿠샤를 바라봅니다. 딜쿠샤에 사람의 그림자가 비칩니다. 과연 딜쿠샤는 살고 있던 사람들을 모두 쫓아내고 문화재로 등록될 수 있을 것인가? 딜쿠샤의 앞날을 이리저리 생각해보면서 언덕을 내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