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0. 경인년에서 “경”이 오행의 흰색을 뜻해 흰호랑이해 2010년 경인년 새해는 60년 만에 돌아온다는 흰호랑이의 해입니다. 그런데 왜 흰호랑이일까요? 경인년의 경(庚)은 동양철학 오행(五行)에서 흰색과 서쪽, 금(金)을 뜻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사실 흰호랑이띠가 다른 띠보다 더 좋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 민속에서 호랑이는 산신령으로 통하는 신앙의 대상이자 중국의 용, 인도의 코끼리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동물이지요. 또 호랑이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신 가운데 유일하게 실재 동물이며, 예로부터 민화, 속담에 많이 등장해 왔고, 역사 속 기록에서도 우리나라를 “호담지국(虎談之國)”이라고까지 불렀을 정도로 호랑이가 많이 살면서 우리 겨레와 깊은 관계를 맺어 온 동물입니다. 실제 태조실록 2권 1년 윤 12월 20일 자에 “성안에 들어온 호랑이를 흥국리 사람이 쏴 죽이다”란 내용이 있는 등 ≪조선왕조실록≫에 무려 879건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흰랑이해로 알려지면서 음력으로 경인년이 끝나는 2011년 초까지 아이를 낳기 위한 산부인과 문의가 늘었다지요. 그래서 2000년 ‘즈믄둥이’와 2007년 ‘황금돼지띠’의 아기 낳기 유행이 재연되
1739. 액막이연으로 지난해의 액을 날려버리세요 “눈이 내리면 소년은 연을 날렸다. / 산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지면 / 더욱 높이 띄웠다. 팽팽한 연실을 곱은 손으로 / 움켜쥐고 실을 풀거나 당기면서 연과 이야기했다. / 연이 공중바람을 타고 높디높게 오르면 연실이 모자랐다.” 연을 날려 보셨나요? 한국의 연 특히 방패연은 그 형태와 구조 면에서 다른 나라의 연과 달리 바람과의 관계가 매우 과학적인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방패연은 다른 나라의 연에는 없는 독특한 방구멍이 있지요. 이 방구멍은 맞바람의 저항을 줄이고, 뒷면의 진공상태를 메워주기 때문에 연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강한 바람을 받아도 잘 빠지게 되어 있어 웬만한 강풍에서도 연이 잘 상하지 않습니다. 중국, 일본 등 세계의 연이 높이 띄우거나 그림, 모양 등에 관심을 두는 것과는 달리 한국의 연은 연을 날리는 사람의 조종하는 것에 따라 올라가거나 내려가기,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돌기, 급하게 올라가거나 내려가며, 앞으로 나아감과 뒤로 빠짐이 가능합니다. 한국연의 구조는 연 날리는 사람에 의해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기동력을 갖게 되어 있는 특성 때문에 연싸움(연줄 끊기)도
1738. 억압받는 이들의 구세주 미륵보살 어느 시대건 지배자와 억압받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 억압받는 사람들은 누군가 구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억압받는 민중의 바람이 신앙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 바로 미륵신앙(彌勒信仰)입니다. 미륵신앙은 서양 기독교의 구세주 신앙과 비슷하지요. 고려말, 조선초에 향나무를 바닷가 개펄에 묻어두는 매향의식(埋香儀式)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때 자주 출몰하던 왜구의 침탈에 고통을 받던 민중들이 자신들을 구원해줄 미륵이 오시기를 비는 뜻이었습니다. 이 미륵신앙은 시골길을 걷다가 문득 풀숲 사이로 나타나는 미륵상이나 절에 모셔진 미륵보살상들로 나타납니다. 백제에서 국가 통치 이념으로 나타난 미륵신앙은 후삼국시대 궁예가 흉흉한 민심을 타고 자신이 미륵이라 하여 한때 사람들의 호응을 얻습니다. 또 근세 우리나라에서 생긴 증산교, 용화교 등도 미륵신앙이라고 합니다. 이 미륵신앙은 역사적으로 지배층에 항거한 민중봉기의 원천이 되기도 했습니다. “님이 오셨다, 사랑이 오신 게다 / 내 속으로 미륵이 쳐들어 오신 게다 / 내장 다 빼내 던져버리고 / 들어와 앉아 계신 / 불덩어리 둥근 달이여, / 그토록 기다리던 미
1737. 머리털을 깎으면 되놈, 상투를 틀면 조선사람 조선 19세기 선비 조재삼이 지은 ≪송남잡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옵니다. “대체로 머리털이 사람 몸에는 쓸모없는 물건이지만 풀어헤치면 이천의 오랑캐이고, 깎으면 북방의 되놈이고 몽치를 만들면 남만의 왜인이니 모두 말 타고 활 쏘는데 편리하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특히 왜인의 몽치는 머리의 앞뒤를 돌려가며 깎고 숫구멍에 한 줌만 남겨서 밀랍을 바른 뒤 한 치쯤 그 끝을 잘라 몽치모양을 만든다고 합니다. 머리털의 형태로 어떤 종족인지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불경에서 “부끄러움의 옷을 뒤집고 번뇌의 머리털을 떨어뜨리라.”라고 한 말은 우리나라 말로는 “상투”라고 한다고 설명합니다. 또 옛날 대머리는 비단 주머니와 구슬, 패물로 망건을 꾸미고 갓에 이어 붙이더니, 요새는 성천 사람들이 사람의 머리털로 상투를 만들기에 “성천의 가짜 상투”라고 불렀다고 하지요. 옛날에도 대머리가 있었고 대머리는 가발을 썼었나 봅니다. 그리고 상투는 불경에서 유래한 거룩한 머리 모양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1736. 진짜 토종뮤지컬 을 아시나요? “네 칠자나 내 팔자나 둥둥 떴는 부평초 / 물에 뜨긴 마찬가지 신세 초라한 개구리밥 / 7년 대한 가뭄 날에 피죽 끓여라 피사리풀 / 보릿고개 넘기라고 지천에 깔린 복사풀 / 장마 통에 손님 왔다 장닭 잡아라. 닭의장풀 / 갈 때까지 가보자고 억지 쓰는 갈대풀” 위 노래는 토종뮤지컬로 새롭게 선보인 창작서도연희극 에 나오는 “잡풀노래”입니다. 지난 12월 8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전수조교 유지숙 명창이 서도민요를 바탕으로 새롭게 창작한 이 무대에 올라 큰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은 서도민요를 노래만이 아닌 춤 그리고 연극적인 요소를 더해 뮤지컬 형식으로 만든 창작 연희극입니다. 은 권력에 눈이 멀어 어여쁜 딸을 팔아넘기는 아버지와 이를 구하려는 사윗감을 둘러싼 해학이 담긴 소설을 각색한 것으로 유지숙 명창이 민요의 세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장르로 시험대에 올린 역작입니다. 이날 공연은 유지숙 명창과 출연진들의 구성진 소리와 더불어 뮤지컬에서 볼 수 있는 역동적인 연극의 맛이 어우러진 무대였습니다. 민요를 뮤지컬화한 이러한 시도야말로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라는 뜻의 "법고창신(
1735. 소설 춘향전 속에 들어 있는 허구를 찾아보세요 판소리 로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 “춘향전”은 그것이 소설인지라 그 속엔 허구가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그 가운데 두 가지만 찾아보겠습니다. 먼저 이도령이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암행어사로 나간다는 대목입니다. 원래 과거에 급제하면 종9품의 벼슬을 받고 장원급제를 하면 종6품의 벼슬을 받습니다. 장원급제를 하면 동기생보다 보통 4~5년 앞서 나갑니다. 그런데 암행어사로 나갈 수 있는 것이 종6품부터니 자격은 되지만 암행어사는 그야말로 임금이 비밀리에 지시한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암행어사는 임금을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신하를 내보내는 것이 순리입니다. 이제 갓 과거에 급제한 새내기를 암행어사로 보내는 임금은 없었겠지요. 또 하나는 이도령이 남원에 파견된다는 것이 허구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상피제(相避制)가 엄격히 적용되어 자신의 출신지에 암행어사를 파견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연고지역에 나가 안면이 있는 벼슬아치들의 청탁을 받는다면 공정하게 일을 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이 상피제는 부정과 청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조선시대 내내 지켜졌습니다. 특히 암행어사의 파견지를
1734. 몸을 던져 상원사와 문화재를 지킨 한암스님 “나야 죽으면 어차피 다비(茶毘)에 붙여질 몸이니 내 걱정은 말고 어서 불을 지르시오.” “스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나오세요!” “너희는 군인으로서 상부의 명령에 따라 불을 놓으면 되고, 나는 중으로서 마땅히 절을 지켜야 해. 본래 중들은 죽으면 당연히 불에 태우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나이도 많고 죽을 날도 멀지 않았으니 잘된 것 아니냐.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불을 질러라.” 위 대화 내용은 6.25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3일 오대산 상원암에서 76살의 한암스님과 20대 초반의 육군 중위가 물러설 수 없는 한판 대결을 벌인 장면입니다. 군은 1·4 후퇴를 하면서 절을 불태우려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 상원암은 국보 제36호 상원사 동종, 국보 221호 문수동자상, 국보 제292호 상원사 중창권선문 등의 문화재가 있었습니다. 한암스님이 자신까지 태우라고 하자 결국 국군 중위는 “이 스님은 도인 스님이 분명해.”라고 하면서 절 불태우기를 포기했습니다. 대신 상원사의 문짝 수십 개를 떼어내서 불을 지르도록 함으로써 절을 불태운 것으로 위장했습니다. 상원사와 국보 문화재들은 한암스님의 죽음으
1733. 어제 동지팥죽 드신 분? 어제는 24절기 중 동지였습니다. 동지에는 팥죽을 쑤어먹는데 드신 분 손 좀 들어보세요? 그냥 사 드셨다구요? 아니 어제는 음력 11월 7일로 초순에 들었으니까 “애동지”로 팥죽을 먹지 않고 시루떡을 쪄먹는 날인데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왜 팥죽을 쑤어 먹느냐?”란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원래 팥죽은 붉은색으로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겨레는 단순히 귀신만을 쫓으려 팥죽을 쑨 것이 아닙니다. 겨울철에 먹을 것이 모자라는 짐승들을 위해서 “고수레”하면서 던져주는 것입니다.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려는 따뜻한 마음이 있었던 것이지요. 이즈음 감나무에 까치밥을 남겨두는 마음과 같은 것으로 이를 김남조 시인은 “조선의 마음”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어느 절에서는 팥죽을 쑤어 노숙자들에게 나눠주었다는데 이 겨울 주위에 어려운 이웃은 없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1732. 마음의 키를 낮추게 하는 풀꽃, 쇠비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풀 쇠비름은 오행초(五行草)·마치채(馬齒菜)·산산채(酸酸菜)·장명채(長命菜)·돼지풀·도둑풀·말비름이라고도 합니다. 서양에서는 연한 부분을 샐러드로 이용하고 한국에서는 나물로 이용하며, 풀 전체를 민간약으로 사용하지요. 하지만, 쇠비름은 예쁜 꽃이 피어도 잡초라고 합니다. 옛날 어린 나이에 한집에 민며느리로 들어간 소녀는 큰 동서와 시어머니가 몹시 구박했습니다. 그러던 중 유행병 이질에 걸려 밭둑 움막으로 쫓겨났나가 쇠비름을 먹고 나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구박하던 큰 동서와 시어머니는 이질로 죽었고, 잘 해주던 둘째 동서는 역시 쇠비름으로 살렸다지요. 그 뒤 그 어린 민며느리는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가 쇠비름에는 숨어 있습니다. 강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전설과 약초로서 한 몫을 거뜬히 해 낸 이야기가 재미있지요. 작고 여려 보이지만 강한 힘을 가진 들꽃. 크고 강한 나뭇가지는 비바람에 꺾이지만 쇠비름 같은 작은 것들은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답니다. 풀이라 하여 누가 눈길조차 잘 주지 않는 쇠비름은 그런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약초로서도 한 몫을 하는데 키를 낮추어야 볼 수 있다고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