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유광남 직가] 김충선이 깊숙이 허리를 굽혔다. 소생은 지금 대감의 혜안(慧眼)에 감탄만 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조선 제일의 재상(宰相)이시옵니다. 서애 유성룡이 싱긋이 웃었다. 그대야말로 삼국시대의 장수 관우(關羽)나 자룡의 헌신이 아니던가. 내가 보면 볼수록 자네에 대해서 감탄하고 있는 것을 아는가? 김충선은 몸을 더욱 조아렸다. 대감께서는 과연 신(神)의 기운을 지니고 계시옵니다. 그걸 어찌 아셨는지요? 관운장과 조자룡은 소생이 가장 흠모하는 장수들이옵니다. 그 대화를 듣고 있던 유진은 내심 실소를 머금었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관우와 조운이 가당키나 하는 것입니까? 아버님이 평소와는 다르게 감언(甘言)이 대단하시구나. 후훗 그러나 부친 유성룡은 결코 농담을 건네는 표정이 아니었다. 만일 자네와 같은 장수 한 명 만 더 얻을 수 있다면 그건 참으로 조선의 기쁨이 될 것일세. 김충선의 입가에 안타까운 미소가 머무르다가 홀연 부드러운 표정이 적막해졌다. 김덕령! 그가 있었다면 능히 그러고도 남았지요. 의병장 김덕령은 왕세자 광해군이 직접 익호장군이란 칭호를 내려줬던 장수였다. 분조 무군사(無軍司) 시절에 광해군의 측근으로 활동했으며 용맹하기
김충선이 깊숙이 허리를 굽혔다. 소생은 지금 대감의 혜안(慧眼)에 감탄만 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조선 제일의 재상(宰相)이시옵니다. 서애 유성룡이 싱긋이 웃었다. 그대야말로 삼국시대의 장수 관우(關羽)나 자룡의 헌신이 아니던가. 내가 보면 볼수록 자네에 대해서 감탄하고 있는 것을 아는가? 김충선은 몸을 더욱 조아렸다. 대감께서는 과연 신(神)의 기운을 지니고 계시옵니다. 그걸 어찌 아셨는지요? 관운장과 조자룡은 소생이 가장 흠모하는 장수들이옵니다. 그 대화를 듣고 있던 유진은 내심 실소를 머금었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관우와 조운이 가당키나 하는 것입니까? 아버님이 평소와는 다르게 감언(甘言)이 대단하시구나. 후훗 그러나 부친 유성룡은 결코 농담을 건네는 표정이 아니었다. 만일 자네와 같은 장수 한 명 만 더 얻을 수 있다면 그건 참으로 조선의 기쁨이 될 것일세. 김충선의 입가에 안타까운 미소가 머무르다가 홀연 부드러운 표정이 적막해졌다. 김덕령! 그가 있었다면 능히 그러고도 남았지요. 의병장 김덕령은 왕세자 광해군이 직접 익호장군이란 칭호를 내려줬던 장수였다. 분조 무군사(無軍司) 시절에 광해군의 측근으로 활동했으며 용맹하기 그지없는 장수중에 장수였다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칼잡이는 땅바닥의 글귀를 슬쩍 훑어보더니 재빠르게 강두명을 앞질렀다. 소인이 글을 읽는 재주는 없지만 척 보니까 제법 글자에 힘이 넘치게 들었습니다. 강두명은 어이가 없었다. 허튼 수작 말고 미행에 만전을 기하라. 염려 놓으십시오. 그게 바로 소인의 전문 아닙니까? 칼잡이가 히쭉 웃으며 빠른 걸음을 걸었다. 사헌부 지평 강두명은 고개를 돌려서 다시 한 번 그들이 쓰고 간 땅바닥의 글자를 음미했다. 이래서 성상께서는 이순신에 대하여 안심을 하지 못하시는 것이다. * * * ......! 이순신과 김충선은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충선은 가까스로 벌어진 입을 다물며 이순신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들으셨습니까? 이순신의 경직된 얼굴이 순간적으로 풀어졌다. 기다리고 계셨다니 어서 들어가야지. 서애대감이 가장 총애하는 셋째 아들 유진이 문간에 서 있다가 그들을 안내했다. 이리로. 몸가짐이 바르고 태도가 의연했다. 눈매는 총기가 어려 있고 코는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입술은 적당히 도톰하고 붉었으며 전체적 얼굴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미남자 풍이었다. 김충선이 그 약관(弱冠)의 도령에게 물었다. 대감께옵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람들이 과연 우리가
당연하지. 그 조선의 병력으로는 현재 그 어느 나라도 상대할 수 없어. 조선이 그 틈바구니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로지 교묘한 줄타기뿐이지. 그러나 그것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사교(沙橋)를 놓는 것과 다름이 없어. 우린 내부적으로 일당 백, 일당 천의 강한 군사력을 키워야만 한다. 그리고 외교적으로는 적을 이용하여 적을 쳐야하는 계략만이 우리가 새로운 하늘을 제대로 열게 되는 길이다. 김충선은 이순신의 분석을 부인하지 않았다. 본래 이순신은 문관이 되려했던 무관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즐겨 책을 읽었으며 벼슬에 올라서도 서책을 읽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지독한 독서광이었던 이순신은 무관의 신분이 되자 손자병법(孫子兵法)과 오자병법(吳者兵法) 육도삼략(六韜三略)을 누더기가 되도록 읽고 외웠다. 또한 유성룡으로부터 넘겨받게 된 병서 '증손전수방략'(增損戰守方略)을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습득하였다. 김충선의 입에서 저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장군의 지모(智謀)가 가히 공명(孔明)에 가깝습니다. 이순신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서애대감이 계시는데 감히 내가 제갈공명을 자처하겠는가? 서애 유성룡은 조일전쟁 내내 탁월한 용병술(用兵術)로 침몰하는 조선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선조는 명나라 군사들을 부름에 있어서 천군(天軍)이라 호칭하고 있지 않습니까? 명에 대한 의존도가 수위를 넘겼습니다. 오죽하면 일본과의 전쟁이 터지자 망명을 하고자 했겠습니까? 조선은 명나라를 언제나 섬기고 있습니다. 이순신의 눈매에서 예사롭지 않은 결의가 뿜어져 나왔다. 겁은 나지만 비겁하기는 싫다. 조선의 굴욕을 더 이상 감당하지 않을 것이다. 이순신은 명나라에 대하여 뿌리 깊은 불신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 명나라 군대는 조선을 구원하기 위해 왔다는 미명아래 온갖 추태를 저지르며, 그 오만방자함이 설명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단지 군사의 숫자가 많을 뿐이옵니다. 그러나 숫자는 숫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명나라 대군을 상대하기 위한 방도가 존재 합니다. 이순신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너에게 그런 방안이 강구되어 있단 말이냐? 장담드릴 수 없으나 사용할 만합니다. 김충선은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좋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 표현해 보도록 하자. 이순신은 어린아이처럼 제안했다. 그리고는 걷다말고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글자를 적었다. 김충선은 이순신의 돌연한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하였다. 확실히 이순신은 변해 있었다.
이순신은 직설적인 대답을 회피하였다. 너무 늦은 것이냐? 그럴 리가 있습니까? 장군의 신념으로 시작되는 그 순간이 적기이옵니다. 이순신은 폐부 깊숙이 새벽 공기를 들이마셨다. 좋구나! 상쾌하다. 김충선은 이제 자신이 꿈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조선의 왕 선조를 상대로 이순신의 거사를 염원했던 그가 아니었던가. 막상 그것이 현실로 다가오자 정신이 몽롱한 기분이었다. 가슴이 벅차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다. 두 개의 하늘에는 분명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것이고 그것들은 버거울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또 이순신은 말하였다. 어쩌면 하나의 하늘이 더 개벽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김충선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그 세 번째 하늘이었다. 대명제국(大明帝國)! 바로 조선의 주권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거대한 대륙. 그리되면 사대사상에 물들어 있는 조선은 혼돈의 역사로 함몰될 것이 틀림이 없었다. 삼국대전(三國大戰)인가? 조선과 일본의 임진년 전쟁은 이후 명나라의 참전으로 인하여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세력이 일본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치열한 전쟁은 잠시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위태로운 평화 협상이 진행되다가 기어코 근래 정유년에 일본으로부터 다
서애 대감입니까? 이순신은 웃지 않았다. 재미없구나. 잘 못 짚은 것입니까? 소인이? 너무 잘 맞춰서 즐겁지 않다는 뜻이었다. 김충선은 머리를 조아렸다. 조선의 왕 선조의 모함으로 34일 간을 체포 투옥 되었던 이순신은 방면된 첫 날 새벽 화두와도 같은 두 개의 하늘로 말문을 열었다. 두 개의 하늘을 새롭게 열어야 한다는 것은 젊은 김충선의 피를 끓게 만들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회(感懷)가 뜨겁게 피어올랐다. 두 개의 하늘은 조선과 일본이었다. 김충선이 그토록 소망하던 대업(大業)을 이순신은 자유의 몸이 되어 풀려난 이 새벽에 비로소 응답한 셈이었다. 그러나 또 하나의 하늘은? 세 개의 하늘이라? 김충선은 조선과 일본 외의 또 다른 나라를 지칭하는 이순신에 대하여 경이로움과 동시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면 백의종군 신분이 된 이순신은 어제의 이순신이 분명 아니었다. 나는 이제 결정하였다. 이순신은 홀가분한 모습이었다. 나머지 하나의 하늘까지 도모하고자 하신다면 그것은 너무 무모한 개벽이 아닐 런지요? 김충선은 조심스럽게 물었고 이순신은 빙그레 웃었다. 새 하늘을 열고자 하는 개벽은 본래 무모한 법이다. 하나의 하늘을 열기
충선아! 이순신의 부름에 젊은 조일인(朝日人) 김충선이 한 걸음에 달려와 엎드렸다. 하명하소서. 그러나 이순신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어떤 말들을 쏟아내야 하는 것일까. 이순신의 그런 신중함에 김충선 역시 결코 서둘지 않았다. 그는 추호의 흐트러짐 없이 이순신이 발아래 조용히 머물며 기다렸다. 내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구나. 한 동안 침음하던 이순신이 내 뱉은 말이었다. 김충선은 그 순간 마치 흔적도 없는 사람처럼 호흡도, 움직임도 일체 멈춰져 버렸다. 이순신의 꿈이 어떤 것이었던가? 김충선이 도모하고자 했던 바로 그것이 아니었던가. 새로운 하늘을 열고자 하시옵니까? 김충선은 확인하듯 조용히 되물었다. 그래. 그러나 두 개의 하늘을 개벽해야만 새로운 하늘이 열려지게 되었으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니겠느냐. 두 개의 하늘. 두 개의 나라. 세 개의 하늘이 아닌 것이 다행스럽지 않습니까? 김충선은 진지하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이순신이 무섭도록 진지하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세 개의 하늘일 수도. 그때서야 김충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그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토해냈다. 일본과 조선 외에 하나가 더 추가 되었다. 등골에 소름이 식은땀과 함께
하나...개벽(開闢)의 아침 새벽이었다. 그러나 그 날의 새벽은 여느 새벽과는 달랐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되지 않는 아득함이 존재했다. 이순신은 고단한 몸을 뒤척이지 않았다. 단지 그는 몸을 잔뜩 움츠리고 나직이 전방을 노려보았다. 이 새벽은 개벽(開闢)이로다. 꿈을 꾸었다. 아주 혹독한 한차례 폭풍과도 같은 꿈을 꾸었다. 조선에 참담함을 안겨 주었던 일본을 기습하고 천황을 사로잡았다. 자신을 모함하여 죽이려던 선조가 폐위되고 일본이 항복하였다. 조선의 왕조를 바꾸는 이순신의 반역이 모의 되었다. 그것은 모두 죄인의 신분으로 의금부 수옥(囚獄)에 감금되어 있을 때의 꿈이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 꿈이다! 이순신은 울컥 치솟아 오르는 노기를 삭혀야만 했다. 조선 천지가 일본의 야욕에 유린되어 셀 수 없는 사상자를 만들어 냈다. 그 뿐이랴. 조선으로 일본군을 따라 들어 온 노예상인들에 의해서 끌려간 남녀의 숫자는 확인이 불가능했다. 혹자는 오 만 명이라 했고 혹자는 이 십 만 명에 달한다고 했다. 그들 중에는 도예 기술로 이름 난 도공들이 있었고 철부지 어린 아이도 있었다. 부녀자들 또한 적지 않게 개처럼 끌려갔다. 그들은 일본상인들에 의해서 물건처럼 일본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