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 이하 보훈처)는 자생의료재단(사회공헌위원장 신민식)과 함께 오는 6일(금) 오전 11시, 경기도 부천에 있는 주택 현장에서 ‘영주귀국 독립유공자 후손 거주지 지원’ 업무협약을 맺는다고 밝혔다. 이번 협약은 제76주년 광복절(8.15)을 앞두고 나라 밖에서 살다가 영주 귀국한 독립유공자 후손의 안정적인 국내 정착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체결하는 것이다. 협약식은 코로나19 대책을 수립한 가운데 황기철 보훈처장과 신민식 자생의료재단 사회공헌위원장이 참석 하에 진행되며, 이번 협약을 통해 영주귀국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비용부담 없이 가족 단위로 거주할 수 있는 주택 2동을 지원하게 된다. 또한, 주택 2동에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침대, 가구 등의 생활용품도 지원하여 일상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배려했다. 협약식을 마치고 주택 2동 중에 8월부터 첫 번째로 입주하게 된 독립유공자 송종빈 선생 증손녀인 송경화 님의 가족을 위문하고 격려하는 시간을 갖는다. 증손녀인 송경화 님은 송종빈 선생의 4대 후손으로, 오는 12일(목)에 특별귀화 절차를 통해 법무부로부터 국적증서를 수여 받게 된다. 송경화 님은 “그동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어에 ‘도둑이 제 발 저리다’라는 말이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말이겠지만 <다음 국어사전>의 뜻을 빌리자면 “지은 죄가 있으면 자연히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는 말”이라고 한다. 일본어에는 이런 말이 없지만 구태여 일본말로 옮겨보면 “悪いことをすると気がとがめて必ずばれてしまう(나쁜 짓을 하면 마음의 가책을 느껴 반드시 들통난다)”라는 정도로 바꿀 수 있겠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그제(2일), 교도통신(共同通信) 보도가 볼썽사나운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도쿄 올림픽 한국선수단이 선수촌에서 제공되는 후쿠시마 산 식재료를 피해 자체 급식센터를 설치했다”라면서 근거없는 피해(風評被害, 후효히가이)를 조장하는 한국선수단의 급식센터에 대해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대응해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이러한 교도통신의 뉴스에 대해서는 이미 한국의 언론에서도 “2008년 북경 올림픽 때부터 자체 급식센터를 운영해왔는데 새삼 무슨 소리냐.”라고 반박하는 기사가 나와 있는 상황이다. 문제의 본질은 일본이 후쿠시마산 식재료에 대해 너무 과민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올림픽 참가 선수들은 단순한 관광객들이 아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 이하 보훈처)는 에스케이텔레콤(대표이사 박정호),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과 함께 제76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공동기획· 제작한 독립운동 관련 5편의 ‘통화연결 영상(V 컬러링)*’ 콘텐츠를 8월 2일(월)부터 제공한다고 밝혔다. * ‘통화연결 영상(V 컬러링)’ : 나에게 전화를 건 상대방(발신자)에게 통화가 연결되기 전까지 내가 미리 설정해 둔 영상을 보여주는 서비스로, 기존의 특정 음악이나 소리를 제공하는 통화 연결음에서 짧은 영상 콘텐츠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일보 한 것이다. 이번 캠페인은 지난해 6월 독립기념관과 에스케이텔레콤이 체결한 업무협약이 계기가 되었으며, 제76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보훈처의 국민과 함께하는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홍보와 에스케이텔레콤의 사회적 가치(Social Value) 구현이 합일되어 함께 추진하게 되었다. 이번에 제작된 독립운동 관련 5편의 ‘통화연결 영상(V 컬러링)’ 콘텐츠는 △ 중국 내 독립운동 사적지 편 △ 대한독립만세 : 광복의 의미 전달 편 △ 김구 선생의 명언 등 독립운동가 메시지 3편이다. 특히, ’중국 내 독립운동 사적지‘ 편 영상은 독립운동 사적지인 상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신촌세브란스병원에는 아주 특이한 '나무그림작품'이 있다. 지하주차장입구, 병원입출구, 엘리베이터 입구 등 곳곳에 세워둔 이 나무 모양의 '배너'는 병원 방문객들을 위한 작은 아이디어 배너로, 병원 출입객들이 발열검사와 코로나19 문진 검사후에 받게되는 요일별 작은 스티커를 붙이도록 해놓은 배너다. 볼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사람들에게 스티커는 불필요하다. 이런 배너를 설치하기 전에는 아무곳에나 방문스티커를 붙이거나 버렸지만 이러한 배너 등장후에는 거의 이곳에 자신이 받았던 스티커를 붙이고 간다. 주최측이나, 방문객이나 서로 편한 장치로 코로나19가 빚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다.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전 세계가 고통을 겪고 있는 전염병, 코로나19로 지각 올림픽(2020년)이 열리고 있는 도쿄 날씨는 그야말로 불가마 속이다. 한국보다 습기가 많은 날씨이기에 그 더위의 강도는 더 세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탁 막히는 이때, 경기장마다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선수들 모습을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고 있자니 안쓰럽기 짝이 없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이면 일본인들은 무더위 속의 안부 편지인 ‘쇼츄미마이(暑中見舞い)’를 보내는 풍습이 있다. 쇼츄미마이를 우리말로 옮기자면 ‘무더위 속 안부편지’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쇼츄미마이는 편지나 엽서를 이용하기도 하고 직접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 집에 찾아가기도 한다. 엽서의 경우에는 보기만 해도 시원한 산과 바다 풍경이나 찬 수박, 금붕어가 헤엄치는 어항 사진 등 ‘시원한 그림’이 주종을 이룬다. 일본우편주식회사(日本郵便株式会社)에서는 이때를 특별 엽서보내기 기간으로 정하여 1950년부터 “쇼츄미마이용우편엽서(暑中見舞用郵便葉書)”를 발행하고 있다. 또한 1986년부터는 엽서에 복권 번호처럼 번호를 새겨 넣어 당첨되면 선물을 주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특히 무더위 안부를 묻는 쇼츄미마이 엽서 이름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제강점기 시절 오랫동안 가슴속에 품었던 태극기, 그 태극기를 보는 어머니(오희옥 지사)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입니다. 망국의 한을 품고 떠돌던 중국 땅에서 떳떳하게 내 나라 국기를 펼치고 싶었던 강렬한 희망 때문이었는지 어머니는 태극기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에서 눈을 더욱 크게 뜨고 오래도록 태극기를 응시하셨습니다.“ 이는 유일한 생존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95세) 지사의 아드님 김흥태 선생의 말이다. 서울중앙보훈병원에서는 국가보훈처의 제공으로 병원 1층 전시장에서 '광복 제76주년 기념, 문화재태극기 사진전'을 8월 26일까지 연다. '중앙보훈병원 독립기념 특별기획 순회전시회'로 기획된 이번 전시회에 어머니(오희옥 지사)와 아드님이 다정한 모습으로 태극기 앞에 서서 '그날의 감격'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태극기에 대한 보통사람들이 갖고 있는 감정의 수백, 수천 배의 '감동과 감흥'을 애국지사들은 간직하고 있다. 1938년 12월, 한국광복군의 전신인 한국광복진선청년전지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戰地工作隊) 대원으로 오희옥 지사와 단짝이 되어 활동한 엄기선(1929~2002) 지사 역시 광복절만 되면 태극기를 부채에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7월 23일, 도쿄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코로나19로 주최국인 일본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과연 올림픽이 제대로 열릴지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어 가고 있는 가운데 현지에서는 ‘열린다’는 것을 전제로 다양한 응원 준비가 한창이다. 요미우리신문(読売新聞) 7월 21일 보도를 보면, ‘선수들을 직접 못 만나지만 우리 마음을 전하고 싶다’라는 제목 아래 종이학으로 브라질 국기를 만든 도쿄 시내 한 초등학교를 소개했다. 그 내용은 “선수와 직접 교류할 수 없는 것은 유감이지만, 조금이라도 일본인의 환영 마음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브라질 선수에게 응원 메시지를 전하고자 브라질 국기를 만들었다.”라고 하는 무라카미 타카시 교장을 소개했다. 무라카미 교장은 도쿄도 츄오구 구립 도요미소학교 (東京都 中央区 区立 豊海小学校)에 재직 중이다. 츄오구(中央区)는 2017년 브라질 올림픽위원회와 양해각서를 맺고 선수 훈련 등을 위해 선수촌 바로 앞 학교 건물 일부를 대회 기간에 제공하기로 했었다. 코로나19가 아니라면 학생들과 선수의 교류 이벤트를 열 기획이었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모두 중지된 상태다. 하지만 브라질 선수가 이 학교에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친절하게 자신을 설명하는 법이 없었기에 그를 찾아가는 길은 잘 열리지 않는 문을 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문은 끝이 없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문을 열면 또 다른 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없이 문을 열었지만, 아직도 나는 문 앞에 여전히 서 있다.” 이는 허연 시인의 ‘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가와바타 야스나리》’ 책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속초 설악산책(雪嶽山冊) 도서관 입구에는 들어서자마자 눈에 확 띄는 곳에 책 표지를 앞으로 해서 세워둔 테이블이 있다. 이곳에 드나든 지 보름이 넘었지만, 책을 읽으러 온 것이 아니라서 그냥 무심히 지나치다가 오늘 불현듯 ‘가와바타 야스나리’ 책에 시선이 꽂혔다. 표지에 영어로 ‘KAWABATA YASUNRI’라고 쓰여 있는 바람에 활자의 의미를 새기지 않은 채 ‘웬 영어책을 진열했나?’ 싶었다. 보름 동안 이 책이 내 시야에서 ‘영어책’으로 여겨졌다니 나도 참 어지간하다. 책 장을 넘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보지 못한 무용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머리를 숙여 쌀쌀맞게 대답했다. 그 목덜미에 삼나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관장 정진영)은 만주망명 110주년을 맞이하여 모두 12회에 걸친 기획 보도를 진행하고 있다. 제9편은 만주 한인사회의 안정과 독립군 재건에서 큰 활약을 펼친 일송 김동삼 선생에 관한 이야기다. 1919년 나라 안팎으로 울려 퍼진 3.1만세운동에 의해 일송 김동삼 등이 활동하던 서간도 유하현 삼원포와 통화현에서 3월 12일에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에 앞서 김동삼은 대한독립의군부에서 작성, 배포한 대한독립선언서에 이상룡과 함께 참여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조직할 때도 주요 구실을 하는 등 서간도 일대의 정부조직인 한족회 서무사장과 군정부(이후 서로군정서 개칭)의 참모부장 등을 맡아 최고 군사 지휘자의 위치에서 활약하며 남만주 독립운동계의 중견으로 떠올랐다. 김동삼은 경신참변과 자유시참변을 거치며 이상룡 등과 함께 남만주 일대에서 한인사회를 안정시키고 독립군을 재건하려고 노력했는데, 가장 시급한 과제는 분산되어 있던 독립군단을 통합하는 일이었다. 1921년 4월 북경군사통일회의에 참여하기 위해 이상룡이 북경으로 떠났고, 그 사이 김동삼은 서로군정서를 재정비하면서 법무위원장을 맡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관장 정진영)은 만주망명 110주년을 맞이하여 모두 12회에 걸친 기획 보도를 진행하고 있다. 제8편은 1920년(경신년)에 자행된 만주 한인사회에 대한 일제의 무자비한 학살에 관한 이야기다. 3.1만세운동이 있고 나서 만주 서ㆍ북간도에서는 다수의 독립군단이 조직되어 항일무장투쟁을 이끌다가 1920년 6월과 10월의 봉오동ㆍ청산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게 된다. 이 승리는 만주망명 이후 약 10여 년 동안 만주 땅에서 일궈낸 독립운동가의 피나는 노력의 결실이었다. 하지만 전투에서 대패한 일본군은 만주 한인사회에 대해 무자비하게 보복 학살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일제는 중국 마적을 매수하여 일본 공사관을 습격하도록 지시한 뒤 만주 독립군기지를 공격하기 위한 구실로 삼은 ‘훈춘사건’을 조작했다. 그리고는 만주 한인사회에 군대를 보내 민간인들을 무참히 학살했던 것이다. 일제는 이미 1920년 초부터 중국 동북지방의 군벌과 연합하여 유하현 삼원포의 한족회 본회의 해산 명령을 내렸고, 같은 해 5월에는 봉천ㆍ길림성 일대의 한인들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이때부터 1921년 초까지 벌어진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