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월봉 근처의 해안 전경. 검은 용암들로 이루어진 화산지형. ▲ 화산의 분출로 물과 수증기 화산재와 화산탄이 분출하여 흐르다가 멈추어 화산층을 이루면서 쌓여있다. ▲ 육지에 있는 퇴적암은 물이 흐르면서 돌이나 모래 흙을 시대별로 쌓아서 생기는 것이나, 수월봉은 화산재와 화산탄으로 화쇄난류가 흐르면서이루어진화산퇴적층이다. 화산의 폭발시 화산재가 분줄하여 급격히 흐르면서쌓인 곳에 다시 또다른 종류의 화산물질들이 분출하여 흐르다쌓이면서 층을 이루고 있고, 그 중간 중간에크고작은화산탄들이 분출되어 박혀있는 형상이다. ▲ 깎아지른 절벽으로 화쇄난류가 흐르면서켜켜이 쌓여있는 화산재와 화산탄들은 지질학적으로 큰 가치를 자랑한다. ▲ 화산재가 분출하여 층을 이루고 있는 곳에도 들꽃이 피어난다. ▲ 수월봉 화산절벽은 그 길이가 2.km,에 이르는 긴 거리에 펼쳐져 있다. ▲ 해안 절벽에는 군데 군데 일제강
숭렬전 전경 맨 위에 숭렬전이 있다 오른쪽 맞배지붕 건물이 숭렬전, 왼쪽의 건물은 이서장군의 사당 오른쪽 건물이 온조의 사당인 숭렬전 담장으로 둘러싸인 숭렬전 외부모습 사당 앞에 있는 건물로 제사 때 주로 쓰이는 강당 일제강점기에 찍었던 사진. 복원공사가 끝난 enl에 발견되어 현재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그러나앞으로는 사진의 모습으로 복원될 것이다. [우리문화신문= 최우성 기자] 이제는 세계문화유산이 된 한양의 남쪽에 있는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요충지였고, 백제가 처음 도읍을 정한 하남 위례성과도 인접하여,삼국시대부터 성을 쌓고 지켜왔다. 처음에는 흙을 다져서 쌓은 토성이었다가 차츰 석성으로 바뀌었고, 조선 시대 임진왜란을 당한 뒤에 인조때대대적으로 수리하여 완비했는데 인조는 여진족인 북방 오랑캐가 중원을 차지한 것이 국가간의 위계를 어기는 불충의 극치라며,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였다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에 있는 신라 56대 경순왕릉 조감도 능으로 가는 길은잘 포장되어있다 경순왕릉 전경, 능의 좌우와 뒤로는 곡장이 둘러있고, 앞에는 비각과 작지만 재실도 갖추었다. 재실은 1986년에 세워졌다. 왕릉으로 최소한의 격을 갖춘 경순왕릉. 한때 유실되었다가 조선 영조 때 다시 찾았다. 조선왕릉의 경우에는 석양이 능 주변에 배치되었으나, 경순왕릉의 경우에는 능의 앞에 좌우로 배치되었다. 전쟁의 흔적인지 입부분과 엉덩이 부분이 손상되었다. 최근에능 주변을 호석으로 둘렀고 앞부분에는 꽃장식이 있다. 왕릉의 뒤에서 본 모습 제사 때 사용하는 재실 비석으로 당시에는 많은 내용을 기록했을 것이나, 지금은 전혀 글씨를 알수가 없다. 릉 앞에 세워진 경순왕의 능표
윗세오름 전망대를 내려와 영실기암으로 내려가는 길 윗세오름 전망대를 내려오면 키작은 조릿대나무뒤로 한라산 암반영봉이 보인다. 영실기암 능선에서 본 한라산 아래 정경 영실기암 능선에는 고사목 사이로철쭉이 피어나고 있다. 영실 기암괴석인 오백나한상과 철쭉 산을 즐기는 부산아주머니들의 인증샷 영실기암 전망데크에서 한 컷 철쭉을 배경으로 또 한 컷 탐방로 주변에 돌탑도 쌓고 부산 아주머니들과 일행들이 즐거운 추억을 함께하며. 부지런히 영실주차장을 향하여 내려가는 부산 탐방객들 해발고도가 낮아지니 교목으로 숲을 이룬 영실계곡. [우리문화신문= 최 우 성 기자] 계절이 무르익어 이제 철쭉이 피어났을 것으로 짐작하고 한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본 한라산 암벽으로 둘러싸인봉우리, 고지에 자라는 구상나무와 조릿대나무들의 군락이 펼쳐져있다. 활화산으로 폭발한 검은 용암이 분출하여 그대로 굳은 한라산 봉우리. 바위들의 모습이 마치 산을 오르는 거북이들 같다 윗세오름에서 남벽분기점으로 가는 탐방로.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이다. 더 이상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하여 계단과 데크로 이루어진 탐방로 분출한 용암괴들로 이루어진날카로운 암반들 남벽분기점으로 가는 길에 만난 구상나무 솔방울이 자주빛 꽃을 피우고 있다. 용암괴의 남측 바위들도 마치 거북이들이 꼭대기를 향해 기어오르는 듯 보인다. 탐방로에서 본 왼쪽의 한라산 꼭대기 용암괴, 바람에 다 날리고흙이 없이 바위로만 되어있어 더욱 날카롭게 보인다. 조릿대나무밭과 잡목으로 이루어진 탐방로에서 고산지대로 키작은 나무들
영실기암 입구에 들어서서 새벽 영실기암으로 들어서는 탐방객의 다정한 모습 화산암으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늘 깨끗한 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영실기암의 계곡 초록으로 변해가는 영실기암, 능선에 바위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늘어서 있다. 그 모습을 오백장군 또는 오백나한상이라고도 부른다. 가파른 능선에는 계단이 놓여있어 오르기 편리하나 자연의 맛을 느끼기에는 인공적이란 느낌이다. 영실기암의 병풍바위 주변에는 철쭉이 피어오르고 있다. 한라산의 또 다른 주인인 고라니(노루)가 사슴을 대신하고 있다. 기암괴석의 집합장 영실계곡의 바위들 능선의 위에서 본 영실계곡을 오르는 사람들 능선의 위에서 보니 크고 작은 오름들과 멀리 바다가 보인다. 해발 1600고지를 넘어서자
제주도 돌문화박물관 내 들머리에 있는 돌들.선문대할망이 낳았다는 오백명의 아들을 상징하는 큰 돌들.. 500정군석이라고 한다. ▲ 거대한 돌 사이를 통하여 돌문화박물관으로 향하는 탐방객들 ▲ 특이한 건축물로 돌문화박물관은 건물은모두 지하에 있고 지상으로 노출된 박물관의 지붕에는 커다란 호수처럼 물이 넘실거린다. ▲ 제주에서 수집한 다양한 화산석 수석을 관람하는 탐방객 ▲ 수석의 한 모습 마치 강아지 처럼 보인다. ▲ 화산석으로 둥근 공처럼 된 돌들이다. 이돌들은 용암이 지상으로 나온 뒤 공처럼 구르면서 굳었기에 형태가 저렇게 둥글게 되었다. 이런 돌을 용암구라고 한다. ▲ 화산석 ▲ 화산석중 사람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두상석이라고 한다. ▲ 마치 정으로 둥글게 다듬은 듯 보이는 돌들
도봉산 중턱 원효사 일주문 산 능선이 보이는 곳에 원효사 경내 대웅전 주변 원효사 층탑과 아기부처님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리고 외쳤다는 석가모니의 탄생모습을 재현한 아기부처님. 오른손을 뒤로 들고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대웅전에서 석가탄신 법요식을 진행하는 원효사 스님들과 신도들 단아하게 차려진 대웅전의 불단을 향하여 예불을 드리는 모습 예불을 드리는 스님과 불자들 육법공양(향 등 꽃 차 과일 쌀)을 차례로 불전에 올리는 의식을 하기 전에 아기동자가 꽃을 뿌리는 모습 육법공양의 순서에 따라 차를 올리는 모습 육법공양 중 등을 올리는 모습 공양자로 부터 건네받은 등을 불전에 올리는 모습
봉정암에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 사자바위가 있다. 기자가 오른 날에는 비가 추적거렸으나 다음날에는 이처럼 맑은 날 아침이었다. 사자바위를 지나서 마지막 언덕을 오르면 봉정암이 있다. 오르는 계단부터 연등이 걸린 오솔길을 오르는 참배객들. 부처님께 올릴 공양물을 짊어진 등짐이 무겁게 보인다.. 기자가 오른 날 오후에는 비가 추적대고 있어 우비를 입은 모습이다. 봉정암으로 오르는 오솔길에 걸린 연등에 봉정암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철야기도를 올리는 신도들.늦은 밤에도 쉬임이 없다. 적멸보궁 위에는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5층석탑이 있다. 이른 새벽 동이 튼 시간에 본 석가모니불의 사리탑 봉정암에서는 삼시세끼 흰밥에 미역국 그리고 김치가 몇점놓여진 공양으로 한끼 식사를 한다. 비록 간단하지만 담백하고 또 별도의 음식물 쓰레기가 거의 없어서좋다.
백담사 안내판 백담사의 큰 스님이었던 춘성대선사의 승탑과 비 백담계곡에 걸린 백담사 연등 백담교에서 한 컷 백담사로 들어가는 다리에서 본 천왕문 극락보전 앞에 설치된 연등들 극락전 옆에 있는 나한전, 나한이란 부처님의 제자로 그 경지가 인간으로서는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른 수행자를 이르는 인도말 아라한의 줄임말이다. 나한전 내부의 모습 부처님 좌우에 보살 그리고 많은 아라한들이 빼곡하다. 나한전 내부 옆에서 본 모습 나한들의 자유분망하고 다양한 모습 동네 할아버지 같은 나한들의 모습 나한들의 다양한 모습 나한들의 모습을 그린 나한전 내 나한탱화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