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계묘년 1월, 호남 충청지역에 많은 눈이 내렸다. 겨울이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산천 풍경이 매우 쓸쓸하고 삭막하다. 특히 융성했던 시절 빽빽하게 들어섰던 건물들은 없어지고 너른 절터에 석탑만이 솟아있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겨울에도 눈이 내려 절터를 덮으면, 비록 날씨는 춥지만 황량해 보이던 절터도 포근한 이불을 덮은 듯 따스하게 느껴진다. 충청지역 해안에서 멀지 않은 이곳 보령지역은 신라 선종의 하나로 구산선문의 성주산문을 개창했던 낭혜화상 무염(801~888)이 선불교를 펼쳤던 절터가 있다. 구산선문이란 통일신라시대에 번창했던 불교종파로, 중국의 당나라 시절에 선불교를 개창했던 육조 혜능대사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중국에서 크게 융성했던 종파이다. 선종은 불교의 여러 종파 중에서 팔만대장경에 기록된 수많은 불교경전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부처님의 마음을 깨닫는데는 경전공부 보다도 오히려 참선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으면 된다는 것으로, 이는 중국의 육조 혜능대사에서 새롭게 자리잡았다. 혜능대사는 본래 나뭇꾼 출신으로 공부를 하지 못했으나 어느 날 시장에 나뭇단을 팔러 갔다가 어떤 스님의 말 한마디에 깨달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내일이면 계묘년 새해가 떠오른다. 온 나라 곳곳의 찬란한 해돋이가 신비스럽고 아름답기만 하다. 낙산사 의상대 해돋이부터 제주 형제바위까디의 해돋이 사진을 올려본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청자 기법을 중국의 도자기에서 받아들여 이를 투각과 삼감기법등으로 발전시키고, 고려인들만의 미적감각을 표현하여 천하의 명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였던 고려시대 상감청자들이다. 전시품들을 보면서 황홀함을 느꼈으며, 선조들이 이룩하였던 문화유산들이 얼마나 귀하고 자랑스러운 것인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또 고려시대와 더불어 발전하였지만, 후기에는 전성기와는 다른 변형되거나 쇠퇴해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여길만한 것이 없이 고귀한 작품들을 이렇게 한데 모아 볼 수 있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 고쳐청자 모듬전시회였다. 청자전시회는 지금 국립중앙박물관 본관 3층에서 현재 전시중에 있다. 아울러 조선시대 명품이었던 백자전도 함께 본다면 한국의 청자와 백자에 대하여 제대로 볼 수 있는 전시일 것으로 생각된다. 많은 독자님들의 관람을 추천하며 시리즈를 마친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고려청자로는 주전자, 정병, 찻잔, 항아리, 매병, 등 상당히 큰 작품 뿐 아니라, 작지만 귀하게 여기던 귀중품이나 화장품 등을 보관하던 '합' 선비들이 벼루에 먹을 갈기 위한 물물을 담았던 '연적' 등도 다양하게 만들었다. 청자는 전체적으로 비색(비취색)으로 만들고자 하였지만, 고려시대 만들었던 모든 청자가 비색인 것은 아니었다. 또 청자가 유행하던 시대에도 다양한 색깔의 자기들이 만들어졌으며, 때로는 흑색, 적색, 황색 등의 자기들도 있으며, 고려 후기에는 백자와 비슷한 색깔의 자기들도 만들어졌다. 고려시대에도 비색청자를 만들기 위하여는 특별한 기술을 가진 장인들이 특별한 물감을 개발하여 자신들만의 기법으로 매우 비밀스럽게 전수하였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고려시대에는 불교와 유교문화가 함께 경쟁과 조화를 이르는 시대였기에 차문화와 술문화가 같이 발달하였다. 이에 따라 그에 맞게 사용할 그릇들도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고려시대가 지난 뒤에는 차문화는 차츰 기울고 술문화만 남게되어 고려시대 발달하였던 다양한 청자 다기(茶器)도 사라지고 말았다. 고려시대에는 차를 마시면서도 운치를 느낄 수 있도록 향을 피웠다고 한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중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고려시대 청자는 그릇의 색깔이 청색을 띄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그 기법은 매우 다양하다. 첫째, 흙으로 만든 그릇의 표면을 실처럼 파서 새긴 모목새김 곧 음각(陰刻), 둘째, 무늬를 돌출하게 새긴 돋을새감 곧 양각(陽刻), 셋째, 눌러서 돌출하여 입체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든 압출(壓出) 돋을새김. 넷째, 별도로 모양을 만들어 입체감이 나게 붙인 상형(象形), 다섯째, 흑토와 백토를 물에 개어서 그림을 그르듯 무늬를 새기고, 그 위에 유약을 발라서 구운 퇴화(堆畵)기법, 여섯째, 그릇의 꽃무늬에 붉은색을 칠하여 화려하게 한 동화(銅畵) 동채(銅彩)기법. 일곱째, 철사 물감을 그릇의 표면에 새겨넣은 철화기법(鐵畵技法), 여덟째, 청자의 바탕흙에 역상감 기법으로 백토를 넣고, 그 부분을 제외한 전체에 철분이 많은 유약인 철유(鐵釉)를 발라서 구운 철유기법(鐵釉技法) 등으로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이와 같이 다양한 기법으로 다양한 그릇들을 만들어낸 고려청자는 고려에서만 인정받았던 것이 아니라, 당시 중국은 물론이고, 서양으로까지 흘러들어갔으며, 흙으로 구워만든 그릇 가운데 가장 귀한 그릇으로 여겨졌으며, 지금에 이르러서도 그 아름다운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흑유(검은색) 철유(붉은색)등 여러 유약을 활용하여 도자기의 빛깔을 다양하게 만들고, 그릇의 표면을 긁어내어 무늬를 새기고, 그곳에 다른 색이 나는 흙을 채워서 상감기법으로 발전한 고려청자들 국립중앙박물관 청자전 현재 전시중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12세기 고려청자는 푸른빛의 비색을 띠게 되었고, 다양한 모양으로 발전하였다. 그런데 많은 그릇 중 향로와 주전자의 모양이 많은데, 향로는 투각기법이 등장하여 연기가 올라오는 모습이 더욱 신비스럽게 하였고, 주전자의 기능은 물이나 차 등 액체를 담아 잔에 따르기 위한 단순한 기능이지만, 이런 단순한 기능에 어떻게 하면 아름답고 귀하게 만들 것인가를 연구한 것이 고려청자였다. 그 결과 주전자이되 물을 담는 몸통의 모양으로 다양한 자연물과 동물의 모양을 본따게 되었고, 그 결과 명품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주전자에 활용한 것들로 물고기, 거북이, 오리, 원앙, 석류, 죽순 등이 있으며, 예전에 만들던 항아리를 활용한 경우 등이 있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이전시대에는 청동으로 만들던 것들을 고려시대에는 청자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물건을 쓰는 입장에서 보면 깨지기 쉬운 청자는 다루기도 훨씬 조심스러웠을 것이나, 만들기도 어렵고 다루기도 어려운 물건들을 굳이 청자로 만든 까닭은 귀한 곳에 쓰는 물건을 더욱 귀하게 대접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청자의 시작은 중국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청자의 기법을 더욱 발전시킨 것은 고려였다. 고려청자는 중국에서 더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한국인의 뛰어난 손재주를 마음껏 보여주는 고려청자의 모습을 보면서, 요즈음 세계에 펼쳐지는 한국의 문화상품들이 갑자기 솟아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한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고려왕조는 성종때(981~997) 때부터 각종 의례에 대한 제도를 정비하면서 그에 쓰이는 자기들을 만들었다. 이를 위하여 《상정고금예문》이라는 책을 펴냈다. 각종 의식을 주관하기 위하여 제기도감, 도제고 등의 관청을 설치하고 국가 의례용 그릇들을 체계적으로 만들고 관리하였다. 의례용 그릇에는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도철(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전설의 동물), 용, 이룡(이무기) 등의 무늬를 장식하였고, 의식을 행할 때에는 향로에 향을 피웠는데, 이 향로도 청자로 만들었다. 연꽃문양을 돋을 새김으로 장식한 향로는 백제금동대향로를 생각하게 하는데, 백제금동대향로에서는 연꽃이 수많은 산으로 표현되었고, 그 산마다 수많은 동물들과 사람들이 표현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와 관련된 국가적 의례가 많았는데 대표적 행사로는 연등회와 팔관회가 있었다. 이런 행사에는 다양한 그릇들이 사용되었을 것이고, 귀한 음식과 음료와 행사용 물품들은 귀한 청자에 올려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