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내일은 24절기의 열셋째 입추(立秋)입니다. 입추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절후인데 이날부터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이라고 합니다. 입추 무렵은 벼가 한창 익어가는 때여서 조선시대에는 이때 비가 닷새 이상 계속되면 비를 멈추게 해달라는 ‘기청제(祈晴祭’)를 올렸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동안은 성안으로 통하는 물길을 막고, 성안의 모든 샘물을 덮습니다. 그리고 모든 성안 사람은 물을 써서는 안 되며, 소변을 보아서도 안 된다고 했지요. 그뿐만이 아니라 비를 섭섭하게 하는 모든 행위는 금지됩니다. 심지어 성교까지도 비를 섭섭하게 한다 해서 기청제 지내는 전날 밤에는 부부가 각방을 써야 했습니다. 그리고 양방(陽方)인 남문(南門)을 열고 음방(陰方)인 북문은 닫으며, 이날 음(陰)인 부녀자의 시장 나들이는 절대 금합니다. 제사를 지내는 곳에는 양색(陽色)인 붉은 깃발을 휘날리고 제주(祭主)도 붉은 옷차림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입추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며, 입추가 지난 뒤의 더위를 남은 더위란 뜻의 잔서(殘暑)라고 하지만, 말복이 남아 있어 불볕더위는 아직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하루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구촌 이상기온이 심상치 않다. 지난주 도쿄에 있을 때 간토(關東)의 날씨가 무려 40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한국의 더위와 일본의 더위 차이는 바로 습도다. 한국의 더위는 그늘에 가면 그래도 참을만하지만, 일본의 무더위는 싸우나에 들어가 있는 정도로 숨쉬기조차 힘들다. 그 무덥던 날, 와세다대학 도서관에 자료를 찾으러 숙소인 오오츠카에서 전차(일본에서는 전철이라 부르지 않고 전차라 부름)를 탔다. 도쿄의 명물로 알려진 땡땡전차 (일본말로 친친덴샤 ‘ちんちん電車’)다. ‘친친’이란 전차운전사가 땡땡(친친)하고 벨을 울려 붙은 이름이다. 오오츠카역은 도쿄 도심 순환선인 야마노테센(山手線) 오오츠카역(大冢駅)이 있지만 이 차를 이용하려면 다카다노바바(高田馬場)에서 내려서 10여분 걷거나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한다. 하지만 친친덴샤를 타면 곧바로 오오츠카역에서 170엔으로 와세다대학까지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제는 퇴역해도 좋을 만한 1량짜리 이 전차는 뜻밖에 이용객이 많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도심의 전철이 지나가지 않는 곳을 공략하고 있는 도쿄의 명물 친친덴샤는 달랑 1량짜리로 와세다대학에서 미노와바시까지 달리며 정식이름은 토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밤 8시 55분, 숙소에 들어와 텔레비전을 켜니 ‘사도광산’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오늘부터 한반도 출신자의 역사와 노동 상황에 관한 전시를 시작합니다. 이번 전시는 1940년부터 45년까지 한반도 출신자 1,500명이 사도광산에서 어떠한 환경에서 어떻게 일했는지 등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 위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내용은 판넬 자료 31점입니다.” 이는 지난 7월 28일, 일요일밤 8시 55분 NHK-TV에 방영된 사도광산 전시 개막 소식으로 전시내용을 소개한 사람은 사도시(佐渡市) 문화학예원 쇼코 하루카(庄子 遥) 씨다. 사도시가 운영하는 아이카와향토박물관(相川郷土博物館) 소속인 쇼코 하루카 씨는 이어 “사실을 사실로 전달함으로써 한일 간의 상호 이해가 진행되길 바란다.”라고 이번 전시 의미를 말했다. 사도광산 화면이 바뀌자마자 나는 숙소 1층 로비로 가서 28일자 <요미우리신문> 종이신문을 집어 들었다. 신문에는 1면에 “사도광산 세계유산 유네스코 결정 한국도 찬성”이라는 큼지막한 제목의 사도광산(아래 사도광산, 일본에서는 사도광산<佐渡鑛山> 또는 사도금산<佐渡金山>으로 표기) 보도가 있었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중국에 금(琴)과 슬(瑟)이 있다면, 한국에는 고구려 시대로부터 전해오는 거문고와 가야국으로부터 연주되어 온 가야금이 있다. 흔히 하는 말로, 부부(夫婦)지간의 정이 돈독할 때 ‘금슬상화(琴瑟相和)’라는 말을 한다. ‘금실이 좋다.’ 또는 ‘금실 좋은 부부’라는 말은, 금이라는 악기와 슬이라는 악기의 어울림이 그만큼 조화롭다는 뜻이다. 거문고와 가야금의 조화를 뜻하는 말로도 인용되고 있다. 그런데 규방(閨房) 여인들의 손끝에서 가야금의 가락들이 이어져 왔다면, 거문고의 주된 향수층은 남성들이었고, 남성 가운데서도 사대부들이나 선비 층이 중심이었다. 예로부터 선비란, 좌서우금(左書右琴)이라고 해서 책과 금을 가까이해야 한다고 했다. 곧 왼손에는 책, 오른손에는 금을 든다는 말이니, 곧 선비는 책으로 지식을 얻고, 거문고로 마음을 닦는다는 말이 되겠다. 그래서일까? 거문고만큼 상류사회, 또는 지식인 사회에서 애호를 받아 온 악기도 드물다. 17세기 초, 양덕수(梁德壽)가 펴낸 《양금신보(梁琴新譜)》에는 거문고가 음악을 통솔하는 악기라는 점, 그래서 군자의 악기인 거문고를 백악지장(百樂之長)으로 보고 있다. 거문고나 가야금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둥둥둥, 북소리에 맞춰 무대에서는 봉오도리춤이 펼져졌고, 무대 아래에서도 유카타(기모노의 일종)를 입은 시민들이 함께 흥겨운 춤을 추며 한여름밤의 더위를 이겨내고 있는 모습을 바라다보고 있으려니 한낮의 더위가 조금은 식혀지는 느낌이다. 어제(28일) 관동지방의 한낮 기온이 무려 40도에 육박한 가운데 저녁 6시부터 8시 45분까지 열린 봉오도리(盆踊り) 잔치가 벌어진 스가모상점가에는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봉오도리를 추며 더위를 잊고 있었다. 봉(盆)이란 오봉(お盆)으로 한가위(추석)를 뜻하며 오도리(踊り)란 춤을 말한다. 이날 열린 봉오도리의 정식 명칭은 '스가모납량봉오도리대회(巣鴨納凉盆踊り大會, 아래 스가모봉오도리)로, 올해는 제37회째다. 스가모봉오도리는 2층으로 무대를 꾸며 맨 위에 악사들이 북을 치며 장단을 맞추고 그 아래 무대인 1층에서는 봉오도리 참가 팀들이 춤을 춘다. 그리고 무대 아래에서는 무대를 빙둘러 싸고 일반 관객들이 함께 춤을 추는 구조로 되어있다. 참가자들은 대부분은 스가모상점가 상인들과 이곳을 이용하는 주민들이지만 올해로 37년째이다보니 요즘은 제법 알려져 먼데서 오는 사람들도
[우리문화신문=일본 나가이즈미에서 이윤옥 기자] "이 화분은 식물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미세 뿌리의 성장 환경에 가장 적합한 화분(루트 플러스 폿트)으로 한국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나가이즈미(長泉町)에서 블루베리농원을 하게 된 것은 올해로 10년 째며, 2년 전 누마즈(沼津)에서 블루베리 재배를 시작했습니다. 히라노농원에는 1,000그루의 블루베리 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농약을 전혀 치지 않은 친환경 블루베리를 직접 나무에서 따 먹을 수가 있습니다." 이는 히라노농원 대표인 히라노 노리유키(平野則之, 49살) 씨의 이야기다. 어제(26일), 노리코 씨와 나는 아침 9시 노리코 씨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블루베리농원을 찾았다. 이른바 '블루베리 체험(일본말로는 블루베리가리)을 하기 위해서였다. 예약을 해둔 덕에 바로 농원에서 포도만 한 크기의 블루베리를 실컷 따먹을 수 있었다. 1인당 1,200엔을 내면 입장이 가능한 블루베리농원에는 벌써 10여 명의 입장객이 나무 사이사이에 서서 블루베리를 따 먹고 있었다. 딸기따기 체험이나 귤따기 체험, 사과따기 체험 등 한국에서도 종종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으나 직접 현장에 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번 블
[우리문화신문=일본 미시마에서 이윤옥 기자] 매주 목요일 아침 10시가 되면, 마을에는 이동슈퍼 트럭이 찾아온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용하는 편의점에서 파는 모든 것들이 작은 트럭에 가득하다. 움직이는 편의점이라고나 할까? 생필품부터 일회용 도시락을 비롯하여 과일, 푸성귀, 냉동식품까지 없는 게 없다. 어제(25일), 시즈오카현 미시마의 나가이즈미마을(長泉町)에 찾아온 '이동슈퍼' 트럭을 구경했다. 고령화되어 가다 보니 빈집이 늘어나고 남은 사람들은 차를 운전할 수 없을 정도의 나이가 되어 버리자, 올봄부터 이동슈퍼 트럭이 들어오고 있다. "저는 이동슈퍼 트럭을 자주 이용합니다. 일주일 치 식재료를 사놓고 먹지요. 냉동 생선부터 고기는 물론이고, 돈까스나 튀김류도 있고 토마토, 사과, 바나나 등 과일도 없는 것이 없답니다. 우리가 자주 다니는 슈퍼의 물건을 다 갖추었다고 보면 됩니다." 이동슈퍼 트럭을 자주 이용한다는 나까무라(84살) 씨는 이동트럭이 와줘서 매우 편리하다고 했다. 인구의 고령화로 북적대던 마을이 쪼그라들고 있다. 젊은이들이 떠난 버린 마을에는 빈집이 늘고 있고,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해도 노인들만 살고 있다. 일본의 가장 큰 온천이 있는 아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백성이 잘사는 길을 추구하는[民爲邦本] 세종은 그 실천과정의 하나로 신제(新制, 新製)나 창제를 목표로 삼았다. 그 방법으로는 고전에서 관례를 찾고 토론을 통해 현실에 맞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 이를 실천하고 법제화 해나가려 했다. 여기서 또 하나는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을 체계화하고 활용하고자 한 것이었다. (각도에 《농상집요》 등에 따라 경작할 것을 권면하다.) 호조에 전지하기를, "각도에 공문을 내어 메밀을 경작하게 하되, 《농상집요(農桑輯要)》ㆍ《사시찬요(四時纂要)》 및 본국(本國)의 경험방(經驗方)으로 시기에 따라 경작할 것을 권면시키라." 하였다.(⟪세종실록⟫5/6/1) 이미 농사짓는 방법에 대해 경험과 논리적인 방법을 종합해 만든 《농상집요(農桑輯要)》ㆍ《사시찬요(四時纂要)》가 있지만 여기에 우리나라 및 각 지역 특성에 맞는 ‘경험방’을 활용하여 경작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전의제조(典醫提調, 궁중에서 약을 짓고 질병을 치료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의 우두머리) 황자후(黃子厚)가 종친 양부 이외에서는 병가에서 말을 보내어 의원을 청할 것을 아뢴 일이 있었다. “병이 나면 치료할 처방 방안으로 《집성향약방(集成鄕樂
[우리문화신문= 일본 미시마에서 이윤옥 기자] “이 온천장 호텔은 유명한 곳이었지만 5년 전쯤에 문을 닫았답니다. 그리고 이 근사한 집도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구요. 저 집도 빈집입니다. 저기 나무가 울창한 저 집도 매물로 나와 있지요.” 이른 아침, 숲으로 둘러싸인 시즈오카현 미시마의 나가이즈미마을(長泉町)을 산책하며 이코 노리코(67) 씨는 그렇게 말했다. 어제(23일) 도쿄 날씨가 32도로 완전 찜통더위인데 견주어 나가이즈미마을의 아침은 선선하고 산바람까지 불어와 더욱 시원했다.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여서 마치 설악산 깊숙이에서 맞이하는 아침처럼 상쾌한 미시마(三島)에서의 첫날 아침 산책은 ‘빈집’ 순례가 되고 말았다. “아침엔 보통 5시쯤 개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고 있어요. 산속 마을이라 시원하기는 해도 해가 뜨면 뜨거워서 여름에는 일찍 나선답니다.” 7년 만에 만난 이토 노리코 씨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오늘 아침 6시에 산책하러 나가는 시간을 알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제 오후 도쿄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여 특급 열차로 시부야까지 와서 거기서 다시 신칸센으로 갈아타고 노리코 씨가 살고 있는 미시마역(三島驛)까지 오는 데는 꼬박 3시간 이상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판소리 수궁가(水宮歌) 속에는 토끼의 궤변에 속은 용왕이 오히려 토끼를 위해 수궁(水宮)풍류를 베풀어 주는 대목이 나온다. 이 대목에 명인들의 이름과 함께 여러 악기가 등장하는데, 지난주에 <봉피리>, <죽장고>, <거문고>, <옥통소>는 개략적으로 소개를 하였다. 특히, 거문고라는 악기는 한국 전통음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게 쓰이고 있는 대표적인 현악기이기에 더욱 구체적으로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거문고’의 한자 이름은 현금(玄琴)이다. 이 악기는 고구려 시대로부터 전해오는 악기로 남쪽 가야국에서 유행했던 가야금과 함께 쌍벽을 이루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현악기다. 규방(閨房)의 여성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온 악기가 가야금이라고 하면, 거문고는 주된 향수 층이 거의 남성들이었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특히 거문고는 선비들의 애호를 받아 온 악기로 그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전승 돼왔다. 그런데 수궁 풍류 속에서는 거문고를 탄 사람이 바로 중국 춘추시대에 금(琴)의 명인으로 알려진 성연자(成蓮子)인데, 여기서는 석연자로 소개하고 있다. 그가 거문고를 탔다고 하는 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