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유년 시절 앞산의 오솔길을 지게를 지고 참 많이도 올랐습니다. 무언가 산에서 지고 내려온 기억은 많아도 지고 올라간 기억은 없습니다. 그건 산이 꾸준히 우리에게 무언가를 베풀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삶이 곤고하고 세상에 찌들었을 때 산에 올라보세요. 푸르름의 위로를 한껏 받을 수 있는 산은 위대함 자체여서 귀를 열면 새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 자연의 맑은 음이 내장까지 시원하게 해 주고 하늘과 맞닿은 능선에 걸친 하늘과 구름이 세속의 찌든 때를 정갈하게 씻어주니까요. 산은 그대로 녹색 댐입니다. 우리나라로 국한하더라도 소양강 댐 10개에 버금가는 물 저장 기능이 있고 또한 그들이 광합성으로 생산한 산소는 1억 명 이상이 숨 쉴 수 있는 대단한 양이니 그 혜택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철마다 아름다운 들꽃으로 그리고 산야초와 나물, 각종 열매로 식탁의 풍성함을 주는 산이야말로 무진장입니다. 일망무제의 너름 속에서 두 팔을 벌려 탁 트인 맑은 기운을 호흡하면 새처럼 날지는 못할지라도 인간사 번뇌를 뛰어넘는 호연지기를 맛볼 수 있으니 그 또한 감사함입니다. 눈을 감아도 푸르름이 보이고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맑은소리가 들리는 어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귀하지 않은 꽃도 없고 하찮은 풀도 없습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잎은 담쟁이입니다. 담쟁이는 열매가 포도와 비슷하게 생겨 포도과에 해당하는 여러해살이 덩굴식물입니다. 덩굴식물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담쟁이는 돌담이나 바위 또는 나무줄기를 타고 오르는 습성을 갖고 있지요. 덩굴손 끝에 작은 빨판처럼 생긴 흡착근이 있어 아무 곳에나 착 달라붙을 수 있고 잘 떨어지지 않아 바위나 나무 등을 기어 올라갑니다. 절벽타기의 위대한 실력자지요. 식물 뿌리 대부분은 중력과 같은 방향인 땅속으로 자라고 줄기는 중력과 반대 방향인 하늘로 자랍니다. 하지만 담쟁이덩굴은 위나 옆은 물론 아래쪽으로 뻗는 것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지요. 담쟁이는 약효가 좋아서 한약재로 쓰입니다. 주로 목질화된 줄기나 포도를 닮은 열매를 사용하지요. 다만 나무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는 효과가 있지만 (특히 소나무) 담 또는 바위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는 독성 때문에 약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담쟁이덩굴로 덮인 건물은 품격이 느껴지기도 하고 여름에 햇빛 차단 효과로 냉방비를 30% 정도 줄일 수 있으며 겨울엔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笑對靑山 山亦笑(소대청산 산역소)’란 말이 있습니다. "청산을 마주하고 웃으니 청산도 웃어주더라."라는 말씀이지요. 그러합니다. 거울은 절대로 먼저 웃는 법이 없습니다. 내가 세상을 향해 웃음 지을 때 세상도 나를 향해 웃어주고 내 편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얼굴에 표정을 나타낼 수 있는 동물은 흔치 않습니다. 집에 강아지를 기르고 있는데요. 이놈은 얼굴에 표정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으르렁대거나 물거나 핥거나 비비는 것으로 의사를 표현할 뿐이지요. 인간만큼 다양한 표정을 가진 생명체는 없습니다. 많은 동물 가운데 사람만 웃을 수 있습니다. 일반 동물도 노여움ㆍ슬픔ㆍ기쁨ㆍ즐거움을 나타낼 줄 알기는 하지만 기쁨이나 즐거움을 웃음으로 표현하지는 못합니다. 소가 웃는다고 하지만, 사람에게 그렇게 보일 따름이지요. 동물은 안면 근육이 제대로 웃을 수 있게 발달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데 웃음이 필요하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웃을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게 하는 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웃음은 의심을 녹이고, 편견을 허물며 상대방에게 편안함을 줍니다. 그리고 나에게도 우울감을 줄이고 면역체계를 강화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소나무입니다. 소나무는 송화라는 수꽃과 솔방울이라는 암꽃을 가지고 있지요. 문제는 매우 비효율적인 생식 방법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소나무는 풍매화(風媒花)의 일종입니다. 곧 바람에 의해 수분(受粉)하는 꽃 가운데 하나지요. 송화를 솔방울보다 높이 배치하여 수정하는 데는 쉬운 면도 있지만 매우 많은 송화 가운데 수정에 관여하는 것은 0.01%도 되지 않습니다. 송홧가루 대부분은 장독대에 누렇게 쌓여있거나 개울물에 떠내려가 누런 띠를 형성하거나 인간에게 채집되어 다식으로 환생합니다. 송화를 만드는 무수한 노력이 아주 일부분만 사용되는 비효율적인 구조로 되어 있음은 참으로 원시적입니다. 그에 견줘 곤충의 매개로 다른 꽃의 꽃가루를 받아서 번식하는 충매화는 (물론 매개곤충이 필요하지만) 수꽃의 꽃가루를 아주 적게 생산하고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으니 상당히 경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식물은 풍매화에서 충매화로 진화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충매화는 곤충을 부르기 위하여 화려한 꽃잎이나 눈에 띄는 꽃받침 꽃턱잎으로 나비와 곤충을 불러 모으지요. 그래서 대부분 꽃이 화려합니다. 그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린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반대할 때 이런저런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려고 애씁니다. 이런 까닭으로, 저런 이유로 싫어한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그것이지요.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나는 당신이 싫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의 말에 반대한다."라는 감정이 깔려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선택은 감정이 좌우하는 것이며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근거는 감정을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모든 선택에는 반드시 끌림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논리에 앞서 감성을 자극해야 합니다. 좋아하면 판단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 조지가 이런 실험을 합니다. "나는 약간의 반란은 좋은 것이며 자연계에서의 폭풍처럼 정치계에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 말을 두 그룹에 들려주고 첫 번째 그룹에는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한 말이라고 소개하고 두 번째 그룹에는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가인 레닌이 한 말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놀랍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거의 모든 학생이 그 말에 동의를 표했지만 두 번째 그룹은 거의 모든 학생이 그 말에 반대를 표한 것이지요. 같은 말을 들려주었는데도 그 평가가 상반되게 나온 것은 말하는 사람마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류시화님의 작은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옛날 그리스에 애꾸눈 장군이 죽기 전에 자기 초상화를 남기고 싶어 이름난 화가들을 불렀습니다. 화가들이 그린 초상화를 보고 장군은 못마땅하게 생각했지요. 어떤 화가는 애꾸눈을 그대로 그렸고, 또 어떤 화가는 양쪽 모두 성한 눈을 그렸습니다. 장군은 애꾸눈의 초상화도 못마땅했지만 성한 눈을 그린 것도 못마땅한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이름 없는 화가가 나섰습니다. 이 무명 화가의 초상화는 장군을 흡족하게 했습니다. 그는 장군의 성한 옆모습을 그렸던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혜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물을 칭송했습니다.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상선약수는 노자 사상의 큰 축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세상엔 물처럼 싱거운 것이 없습니다. 맹물 같은 사람이란 표현 속에는 업신여김도 들어있지요. 물은 컵에 담으면 컵 모양으로 주전자에 담으면 주전자 모양으로 되기 때문에 지조 없음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세상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여린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단단하고 힘센 것을 물리치는데 이보다 더 훌륭한 것도 없습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주말에 주왕산을 다녀왔습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의 열병이 마음을 들뜨게 했지만, 길가에 다소곳이 피어난 얼레지와 노루귀, 생강나무꽃과 성급한 진달래가 봄을 이야기하고 있음이 좋았습니다. 잎이 얼룩덜룩한 얼레지는 나물로도 유명한 식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명지산 연인산 정상부에 끝없이 펼쳐진 얼레지 군락이 유명한데 그 길을 걷다 보면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깊은 산속 산모퉁이의 양지바른 곳에 수줍게 피어난 연분홍 얼레지를 봅니다. 얼레지는 꽃이 땅을 향해있고 꽃잎이 치마를 훌렁 걷어 올린 것처럼 보여 바람난 여인이라는 꽃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부끄러움에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니 꽃말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지요. 얼레지는 발아하여 성장하다 꽃을 피워 올릴 때까지 무려 7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 어려움을 딛고 피어난 꽃이기에 더욱 반가운지 모르지요. 얼레지는 엘레지와 다릅니다. 엘레지는 슬픔을 노래한 시를 의미하거든요 여하튼 얼레지라는 명칭이 서구적이어서 멋스럽게 다가올는지는 모르지만 이는 이파리가 얼룩덜룩하여 얼레지라고 이름 붙였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봄입니다. 이제 산야에 푸르름이 지천으로 피어나겠지요. 푸름 속에 연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춘천 강촌의 등선폭포를 거쳐 삼악산으로 오르는 길 산행을 시작하여 10여 분을 올라가 몸이 풀리기 시작할 지점에 양지바른 비탈에 앙증맞게 피어난 꽃이 있습니다. 노루귀가 그것인데요. 노루귀는 여러해살이로 해마다 같은 장소에서 꽃을 피워 올리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양지 식물입니다. 연보랏빛 여섯 개의 꽃잎이 앙증맞게 모여있는 모습이 여간 이쁜 게 아닙니다. 노루귀라는 이름은 꽃대에 털이 송송 나 있어 노루귀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강원도에서 봄에 가장 빨리 피는 꽃으로 노루귀, 얼음새꽃, 생강나무를 꼽을 수 있는데 그중에도 으뜸이 노루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꽃말이 "인내"라고 하니 겨우내 서러운 추위를 참고 견뎌 아주 이른 봄에 꽃대를 피워올려 우주를 열고 있는 모습이 인내를 닮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봄은 아주 작은 꽃송이로부터 옵니다. 봄에 피는 들꽃은 작고 소박하여 원색보다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흰색이나 보라색 계열이 많습니다. 크고 화려함보다는 작지만 은은한 향기를 가진 것도 특징이지요. 봄은 "보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입니다. 봄이 오면 그만큼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늘어난다는 의미겠지요. 아지랑이 넘실대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봄이 조금씩 열리고 있습니다. 야트막한 산 아래 생강나무의 꽃눈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부풀고 겨우내 잠들었던 진달래도 두툼한 꽃망울을 살찌우고 있습니다. 어느 꽃이든 피어있는 꽃은 아름답습니다. 사실 꽃은 식물의 생식 기관이지요. 동물은 생식 기관을 감추고 있지만, 식물은 하늘을 향해 온몸으로 자랑하고 있습니다. 동물은 유전인자를 후세에 물려줄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움직임으로 인한 상처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감추어둔 것이라면 식물은 벌과 나비를 불러들여야 후손을 남길 수 있기에 겉으로, 겉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지요. 식물은 왜 꽃을 피울까요? 그것은 사랑을 이루기 위함이고 후세에 형질을 남기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벌 나비를 불러들일 수 있도록 향기나 색, 꿀이나 꽃가루를 쓰는 생존전략을 갖고 있지요. 그러나 꽃을 보며 예쁘다고 찬사를 보내는 것은 벌도 나비도 아닌 사람입니다. 꽃은 사람을 위하여 봉오리를 피워 올린 것이 아닌데도 말이지요. ‘꽃이 아름다운 까닭은 당신 안에 꽃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꽃은 그냥 꽃이고 하나의 사물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아름다움이 있으므로 아름답게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광양 매화마을을 다녀왔습니다. 봄은 훈풍으로 다가와 꽃으로 환생하여 우리 곁에 다가옵니다. 봄이 가장 먼저 상륙하는 곳은 아마도 섬진강일 겁니다. 그곳엔 매화가 지천으로 있거든요. 섬진강의 섬(蟾)은 두꺼비 섬자 입니다. 1385년(우왕 11)경 왜구가 섬진강 하구를 침입하였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 갔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 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섬진강에는 매화마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른 방문에 꽃봉오리만 맺혀있어 화려한 꽃은 볼 수 없었지만 매화로를 중심으로 잘 가꾸어진 10만 그루가 넘는 매실나무의 군락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굳이 매화마을이 아니어도 섬진강가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길을 따라 흐드러진 매화의 향연이 일주일의 환상적인 한정판 전시회여서 가슴 벅참을 느낄 수 있습니다. 꽃도 좋지만, 6월 초 청매실로 농가의 수입원이 되는 매화나무는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참 좋은 나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조금 더 가면 화개장터가 나옵니다. 작은 장터지만 조영남의 노래로 유명해진 곳인데 그 경쾌한 리듬도 좋지만, 골이 깊은 전라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