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제강점기 조선땅에서 일본인이 조선인을 학대한 글을 읽다가 한마디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건이 있어 이번 주 일본이야기 소재로 삼아본다. 때는 1927년 6월 26일, 강원도 철원읍 중리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6월이면 검붉은 오디(뽕)가 한참 맛있는 계절인데 8살짜리 오순덕과 동무는 오디 밭 옆을 지나다 탐스런 오디를 보고는 그만 먹고싶은 마음에 오디 몇 개를 따먹었다. 문제는 이 오디 밭주인이 일본인이었던 것이다. 운 나쁘게도 마침 그 시각 오디밭주인 후지사와(藤澤暢太郞)는 오디밭 쪽으로 걸어가다가 순덕과 그 친구를 발견했다. 놀란 아이들이 도망치자 후지사와는 쫓아가 순덕을 잡아서 넓적다리 살을 도려내는 악행을 저질렀다. 철없는 아이가 오디 몇 개 따먹었다고 살을 도려낸 이 극악한 사건이 바로 ‘철원사형사건(鐵原私刑事件)’이다. 살점이 떨어져 나간 순덕이가 피를 철철 흘리면서 집으로 돌아오자 부모는 기겁하여 경찰서로 달려가 신고했다. 그러자 철원경찰서에서 순사 2명과 협성의원 의사가 순덕이네 집으로 와서 상처를 조사했다. 결론은 후지사와가 나뭇가지 치는 전정가위로 순덕의 살점을 베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재는 게 편’이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제강점기에 ‘조선고적연구회(朝鮮古蹟硏究會)’라는 단체가 있었다. ‘조선고적연구회’는 조선총독부의 행정지원과 일본의 재벌, 궁내부, 일본학술진흥원, 이왕가 등의 재정지원으로 활동하던 식민사학의 뿌리가 되는 조직이다. 1910년대 이 조직이 등장하기 전에 생긴 조선총독부 주도로 실행하던 고적조사사업이 조선내의 문화재 단순한 파악 수준이었다면 조선고적연구회는 각 지역에 해당 유적의 전문가를 상주시키면서 기존에 파악된 유적이나 유물이 발굴을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파헤치는 조직이라는 점이 다르다. 《청구학보(靑丘學叢), 5호(1931)》에 따르면 구로이타 가츠미(黑板勝美)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던 조선고적연구회는 고분(古墳) 발굴에 주력한 조직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단순히 학술적인 목적으로만 고분 발굴을 했을까? 도쿄 국립박물관 3층에는 “오구라 컬렉션(小倉 Collection)”이 기증한 우리나라 유물들이 버젓이 자리 잡고 있다. 오구라는 1922년부터 1952년까지 조선에서 문화재를 약탈해갔는데 무려 1,100여 점이나 되며, 이 가운데 39점은 일본 국가문화재로 지정될 정도의 수준 높은 문화재들이다. 그런가 하면 앞 이름이 비슷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만일 당신이 전염병 환자와 함께 대형 크루즈선박에 타고 있다면 어떤 심정이 들 것인가? 크루즈선박은 외부와 단절되어 있고, 당신은 선박 객실에서 기약 없는 격리생활을 해야 한다면?....” 사실 이런 상황이라면 정말 아찔할 것 같다. 공포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실제 일어났다. 지금 일본 요코하마에 정박 중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상황이 그렇다. 지난 2월 10일, 크루즈선박에 격리되어 있던 한 일본인 남성은 선상에서의 격리생활에 대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써서 세상에 내보였다. 다음이 그 요구사항이다. 1. 시트 교환, 실내청소가 거의 1주일 정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선내 생활 환경이 급속하게 나빠지고 있어 급속한 대응이 요구된다. 현재 생활환경 배려는 사실상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2. 격리 생활이 장기화함에 따라 승객의 건강악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의료 지원이 거의 안 되고 있으며 그나마 지원되고 있는 부분도 불충분하다. 무엇보다도 건강대책을 세워주고 의료전문가, 간호사, 보건원 등을 파견해달라. 3. 연일 새로운 감염자의 보도를 지켜보면서 승객에 대한 정보 제공이 극히 불충분하여 불안이 가속화되고 있다. 선내 방송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제(4일)는 봄에 들어선다는 입춘이었다. 한국에서는 입춘날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과 같은 글씨를 써서 대문에 붙이기도 하는데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떠한가? 일본에서는 입춘을 절분(세츠분, 節分)이라 해서 사악한 귀신을 몰아내기 위한 콩 뿌리기(마메마키) 행사를 전국의 절이나 신사(神社)에서 한다. “복은 들어오고 귀신은 물러가라(후쿠와 우치, 오니와 소토, 福は內、鬼は外)”라고 하면서 콩을 뿌리고 볶은 콩을 자기 나이 수만큼 먹으면 한 해 동안 아프지 않고 감기도 안 걸리며 모든 악귀에서 보호받는다는 믿음이 있다. 절분(세츠분, 節分)은 보통 입춘 전날을 말하는데 이때는 새로운 계절이 돌아와 추운 겨울이 끝나고 사람들이 활동하기도 좋지만, 귀신도 슬슬 활동하기 좋은 때라고 여겨서인지 이날 사악한 귀신을 물리치기 위한 콩 뿌리기(마메마키) 행사를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다. 절분행사는 예전에 궁중에서 시작했는데 《연희식, 905년》에 보면 색색으로 물들인 흙으로 빚은 토우동자(土牛童子)를 궁궐 안에 있는 사방의 문에 걸어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인형은 대한(大寒) 전날 밤에 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이는 윤동주 시인의 ‘쉽게 쓰인 시’ 가운데 일부다. 지난 1월 26일 일본 아사히신문(朝日新聞) 텐세이진고(天声人語) 칼럼에는 윤동주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칼럼에서는 도쿄 이케부크로에 있는 릿쿄대학 캠퍼스에 이 시가 한글로 걸려있다고 서두를 꺼내고 있다. 그리고는 윤동주 시인이 1942년 릿쿄대학에 유학했으며 한글로 시를 쓴다는 이유로 교토에서 잡혀 들어가 치안유지법 위반이라는 죄명으로 1945년 2월 16일 27살의 나이로 옥사(獄死)했다고 쓰고 있다. 일본신문 칼럼에서 윤동주 시인을 다뤄주는 일은 그리 흔치 않은 일이다. 더욱이 이 칼럼에서는 해마다 일본에서 윤동주 시인의 추도회를 이끌고 있는 야나기하라 야스코 씨((楊原泰子, 74)를 소개하면서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있지만 윤동주 시를 사랑하는 한일간의 시민들은 여전히 모임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칼럼은 “윤동주 시인은 우리들을(한일시민들) 따뜻하게 연결해주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야나기하라 씨의 말도 함께 전했다. 그러면서 칼럼은 “(일본)내에 떠도는 한국인 경멸의 표현, 거기에 비난의 응수”를 경계하면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이 시는 김기림 시인의 ‘바다와 나비’다.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는 바다 건너 일본땅 센다이의 도호쿠대학(東北大學) 교정에 기념비로 우뚝 세워져 있다. 2018년 11월 30일, 도호쿠대학에서는 김기림의 시비와 함께 그의 문학세계를 재조명하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일본에는 김기림 시인의 시를 좋아하고 흠모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호쿠대학에 시비를 세운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그제(19일), 잠시 방한 중인 김기림기념회(金起林紀念會) 공동대표인 아오야기 준이치 (靑柳純一) 씨를 인사동에서 만났다. 아오야기 준이치 씨는 도호쿠대학에 시비를 세운 지 1년째를 맞이한 2019년 11월 30일, 센다이 도호쿠대학에서 열렸던 “김기림에게 배운다. 지금이야말로 센다이에서 일한시민교류를!”이라고 적힌 홍보 전단을 한 장 건넸다. 이날 도호쿠대학에서는 남기정(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난 1월 13일(월), 일본은 올해 스무 살을 맞는 젊은이들을 위한 성인의 날(成人の日)이었다. 올해 스무 살이 되는 젊은이는 122만 명으로 이들은 지자체별로 여는 성인식 행사에 참여하여 성인의식을 치른다. 그렇다고 모든 스무 살이 지자체의 성인식에 참석하는 것은 아니다. 해마다 뉴스에서는 성인식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젊은이들에 대한 보도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래서 성인의 날을 없애자는 무용론이 대두되기도 하지만 대세는 여전히 성인의 날을 경축하는 분위기다. 일본의 ‘성인의 날’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새롭게 성인이 되는 미성년자들이 부모님과 주위의 어른들에게 의지하고 보호받던 시절을 마감하고 이제부터 자신이 어른이 되어 자립심을 갖도록 예복을 갖춰 입고 성인식을 치르는 날”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성인의 날은 1999년까지는 1월 15일이던 것이 2000년부터는 1월 둘째 주 월요일로 정해 행사를 치르고 있다. 이날 스무 살이 되는 젊은이들은 여성은 하레기(晴れ着)라고 해서 전통 기모노를 입고 털이 복슬복슬한 흰 숄을 목에 두른다. 그리고 남성들은 대개 신사복 차림이지만 더러 하카마(袴, 전통 옷) 차림으로 성인의 날 기념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베 다케시(阿部建) 씨는 1933년 함경도 청진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조선땅에서 살았던 그는 조부모를 비롯하여 일가(一家) 40명이 조선에서 나고 죽었다. 그런 인연 때문이었는지 아베 다케시 씨는 고향 청진을 무대로 한 일제강점기를 다룬 소설을 쓰고자 2016년 7월, 노구(84살)를 이끌고 서울에 왔다. 소설의 무대인 북한 청진에는 가보지 못하지만 북한땅이 건너다보이는 임진각에 가보고 싶다고 하여 통역 겸 안내를 한 것이 인연이 되어 이후에도 누리편지 등 소식을 전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 아베 다케시 씨는 각고의 노력 끝에 소설 《중천의 반달(中天の半月)》을 완성하여 2년 전(2018년) 11월 17일 일본 오사카에서 출판기념회를 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난해(2019년) 5월 3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지인들이 아베 다케시 씨를 추모하는 문집을 만들고자 한다며 나에게도 ‘아베 다케시 씨와의 인연’에 대한 글 한 편을 보내 달라는 전갈이 왔다. 아랫글은 그의 추모집에 넣기 위해 쓴 글이다. 추모집에는 일본어로 들어갔지만, 한글로 쓴 부분의 일부를 아래에 싣는다. 그리운 아베 다케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경자년 새해가 밝았다. 일본은 명치(明治) 이후 음력을 버리고 양력만을 쓰고 있으며 설 또한 양력을 기준으로 한다. 설날은 우리네 풍습처럼 가족끼리 모여서 설음식(오세치요리)을 먹으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지만,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 두 가지만 든다면 조상에게 설날 아침 제사를 드리는 ‘차례 문화’가 없는 점과 상당수 일본인이 정초에 신사참배(하츠모우데)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차례’를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 일반적인 문화로 설날 아침에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풍습이 있는 게 한국이며, 일본에는 제사 문화가 아예 없기에 설이나 한가윗날 ‘차례’도 당연히 없다. 그런가 하면 정초에 특별히 신사참배하는 풍습이 있는데 이를 ‘하츠모우데(初詣)’라고 한다. 하츠(初)란 처음을 나타내는 말이고 모우데(詣)는 참배를 뜻하므로 하츠모우데는 신사참배 가운데 유독 ‘정초 참배’만을 가리켜 부르는 말이다.필자도 일본에 있을 때는 지인을 따라 정초 하츠모우데를 여러 번 따라가 본 적이 있다. 하츠모우데는 유명한 절이나 신사에서 하는데 연말이 되면 각종 언론이나 매스컴에서 전국의 유명한 절과 신사를 앞다투어 소개하느라 바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기해년 돼지해가 어느덧 지나가고 있다. 이제 새해는 경자년 쥐해다. 한 해가 저물어 갈 무렵 일본에서는 오오소우지(대청소)를 하고 연말이면 도시코시소바(해넘이 국수)를 먹는다. 그런가 하면 집 대문에 시메카자리(금줄, 注連飾り)를 매달고 집이나 상가 앞에 카도마츠(소나무장식, 門松)를 세워 나쁜 잡귀를 물리치고 복을 기원한다. 시메카자리는 연말에 집 대문에 매다는 장식으로 짚을 꼬아 만든 줄에 흰 종이를 끼워 만드는데 요즈음은 편의점 따위에서 손쉽게 살 수 있다. 이러한 장식은 농사의 신(稻作信仰)을 받드는 의식에서 유래한 것인데 풍년을 기원하고 나쁜 액운을 멀리하려는 뜻으로 신도(神道)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도 있고 한편으로는 일본의 나라신(國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과 관련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시메카자리는 12월 말에 대문에 내달고 지역에 따라서 다르지만 대개 1월 7일 이후에 치우는 게 보통이다. 관서지방에서는 1월 15일에 치우고, 미에현(三重縣 伊勢志摩) 같은 지방에서는 1년 내내 장식하는 곳도 있는 등 곳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카도마츠”는 12월 13일에서 28일 사이에 집 앞이나 상가 앞에 세워두고 치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