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37) 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하느냐 내 죽거든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워라 혼이라도 바다를 떠돌면서 왜적이 망하고 조국이 광복되는 날을 지켜보리라 독립운동가 김동삼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경상북도호국보훈재단이 펴낸 이 책, 《독립운동가의 마음을 하나로 모은 김동삼》은 안동 내앞마을에서 분연히 조국의 독립을 위해 떨치고 일어난 김동삼의 생애를 담은 그림책이다. 한평생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만주의 호랑이’라 불릴 만큼 당당한 인물이었으나, 결국 서대문형무소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한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조국이 독립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옥사해 더욱 안타까운 인물이다. 안동은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으로, 나라를 일제에 빼앗기자, 독립운동에 나선 애국지사들이 유난히 많았다. 김동삼도 예외가 아니었다. 1878년, 안동에서 태어나 나라가 힘없이 망해가는 모습을 청년기 내내 지켜본 그는 29살이 되던 1907년, 동지들과 안동에 협동학교를 세워 4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협동학교가 설립된 가산서당에서 4년을 보낸 그는 33살이 되던 1911년, 만주로 떠나 유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제가 연애 이야기를 했으니까, 이제는 댁에서도 연애 이야기를 해야지요. 아마도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요. 뭐라고요? 은경 씨는 연애 경험이 없다고요? 결혼하기 전까지 연애 한 번 못 해보았다고요? 믿기지 않네요. 그걸 믿는 남자가 있을까요? 정말이라고요? 예쁜 꽃에는 벌과 나비들이 많이 모이지 않나요? 글쎄요... 왜 연애를 못 했는지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요? 뭐라고요? 요즘에 여드름이 난다고요? 그것참 이상하네요. 사춘기에도 나지 않던 여드름이 요즘 난다니 희한하네요. 사춘기가 왔으면 좋겠다고요? 은경 씨와 나는 4살 차이니까 우리는 같은 40대입니다. 우리 나이에는 사춘기라고 하지 않고 사추기(思秋期)라고 한답니다. 리조트 건물 10층에 사신다고 했죠? 거기에는 돈은 많고 힘은 없는 노인들만 왔다 갔다 하지 않나요? 그럴 거예요. 텅 빈 방이 많다고요? 분양은 실패했다는 소문이 돌던 데요. 저도 K리조트에서 자 본 적이 있어요. 매년 겨울 방학에 교수연찬회를 1박 2일로 거기서 하거든요. K리조트 10층에 살면 내려다보는 경치가 좋을 거예요. 남쪽으로 야트막한 야산과 넓은 논을 내려다보는 경치가 목가적이라고요? 그럴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박노해 시인이 이번에 일곱 번째 사진 에세이집 《산빛》을 펴냈습니다. 2019년에 첫 사진 에세이집 《하루》를 냈으니, 해마다 한 권씩의 사진 에세이집을 냈군요. 책 표지에는 제목 《산빛》 밑에 앙증맞게 산봉우리 두 개를 표시하고 그 밑에 이런 글귀가 보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산, 산이 있다. 산은 말이 없지만 그 침묵은 가장 오래된 위로이다. 산은 위대한 사랑의 수호자, 위대함은 ‘힘’이 아니라 ‘품’이다.” 품? 뭘 품는다는 것인가? 이에 대해 박 시인은 서문에서 좀 더 자세하게 말합니다. “산은 위대한 사랑의 수호자, 위대함은 ‘힘’이 아니라 ‘품’이다. 그 산의 품에서 모든 것이 자라나고 살려지고 주어진다. 산의 품에 깃들기만 하면, 그저 바라보고 그려보기만 하면, 생생지기(生生之氣)의 산빛은 나를 맑게 하고 치유하고 일깨우고 다시 일어서 나아가게 한다.” 그렇군요. 그래서 박 시인은 사람들 속에서 나를 잃어버린 것만 같은 날, 소란과 속도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날에는 높은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내 안의 가장 높은 산정으로 올라가 볼 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세상과 시대를 정면으로 내려다보면 마침내 새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세상은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마치 거대한 퍼즐 조각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복잡다단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종종 다른 이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오로지 나의 기준으로 상대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마치 착시 현상처럼, 우리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는 대신, 나의 기분과 감정, 그리고 사전에 형성된 고정관념을 통해 상대를 해석하려고 합니다. 상대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나의 주관적인 해석을 덧붙여 판단하니 때로는 오해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마치 빛의 굴절처럼,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렌즈를 통해 변형된 모습으로 인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잠시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저마다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왔고, 각자의 경험과 가치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누구를 섣불리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마치 다양한 색깔의 물감이 모여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듯이,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의 개성과 특징이 모여 만들어진 아름다운 조화니까요.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하고,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 1875년께의 한양으로 시공여행을 떠나 본다. 여행에 앞서 8년 전에 돌아가신 역사학자 강재언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근대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항상 유의해 온 기본 관점은 우리나라를 은둔의 나라, 정체의 나라로 보는 통속적이고 그릇된 사관을 타파하고, 거친 격랑 속에서 고투해 온 우리 선조들의 생동하는 숨결과 그 발자취를 밝혀서, 근대 민족운동사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민족의 얼은 만천하에 현창(顯彰)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파란노도의 시대를 꿋꿋하게 살아가면서 사고하고 행동한 한국 민중의 애환을 되새기면서 그 역사적 의미를 깊이 파헤쳐 보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확인해 두어야만 하는 것은 극히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것이지만, 한국 근대사는….. 근대 일본의 대한관계사(對韓關係史) 속에 해소되거나, 한국을 둘러싼 열강의 각축사 속에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헤쳐 나간 발전의 역사라는 점이다. “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들이 “한 조각의 자주성도 없는 괴뢰적 <친일파>인 양 결론 짓는” 일인 학자들의 주장을 강재언은 비판하면서 “한국사의 전과정을 일관하는 내재적 발전 법칙을 부정하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가지마다 새잎이 나온다고 신록의 봄을 좋아한 것이 엊그제인 것 같은데 어느새 나뭇잎들이 녹색보다 더욱 진하게 변해 마치 검은 느낌을 주는 계절이 되었군요. 7월이 지나고 8월입니다. 참으로 계절의 버뀜은 무섭다고나 할까요. 한여름 40도 가까운 뜨거운 열기가 날마다 힘들게 하는 나날이지만 저는 요즘 기다려지는 게 있어서 이 더위를 참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집의 어린 곤충학자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입니다. 멀리 떨어져 사는 그 어린 학자가 여름 방학이거든요. 지난 5월 어린이날은 부처님 오신 날까지 합해져 휴식기간이 길었는데 그때 어린 학자가 우리 집을 방문했습니다. 요즘 애들은 산에 가자고 하면 잘 안 따라오는데 손말틀(휴대전화)을 들고 성큼 따라오더라고요. 산책로를 조금 들어가는데 이 학자가 길옆에 주저앉으면서 땅 가까이에 있는 벌레를 보며 소리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와 자벌레다." 우리 어른들이야 벌레를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그런데 그 어린 학자는 자벌레를 보고는 환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습니다. 자벌레가 자처럼 몸을 써서 움직인다고 설명합니다. 이 자벌레가 커서는 이렇게 된다며 대뜸 휴대전화로 곤충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덧없음 세월이 흐르고 나는 서있네 (빛) 다리는 흐르고 물이 서있나 (돌) 서있다고 착각하는 게 인간 (심) 덧없음을 딛고 선 사랑이어 (달) ... 25. 7. 28. 불한시사 합작시 '덧없음'이라는 말에서 "덧"은 '때' '제' 또는 '짬' '쯤'처럼 시간을 나타내는 순수 우리말이다. 이런 '덧'은 현대어 '어느덧'에 살아있다. '덧없다'는 원래 '시간이 없다'라는 말인데, 점차 '헛되이 시간을 흘려보내, 남은 짬이 없다'라는 뜻으로 의미가 넓어지고, 마지막에는 '헛되이 지냈으니 보람없이 허망하다'라는 뜻으로 의미가 깊어졌다. 합작시의 시제는 사랑과 삶의 허망함을 노래한 프랑스 상징주의의 대표적인 시인인 아폴리네르가 쓴 유명한 시 '미라보의 다리'를 기려 띄운 것이다. 그의 시에 덧없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그것을 은유하는 유명한 후렴구가 있다. 프랑스어로,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우리말로 옮기면, 밤이 오고 시간이 흘러간다. 날들이 흘러가고 나는 남는다. 흘러간 사랑의 아픔을 안고 서 있는 외로움과 덧없음이 진하게 담긴 시구다.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들이 붓는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앞서 비가 많이 왔던 곳에 또 비가 많이 내려서 다시 물이 들기도 하고 무너진 곳도 있다고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니 더 가슴 아픕니다. 얼른 나날(일상)을 되찾으시길 빕니다. 오늘 알려드릴 토박이말은 '해사하다'입니다. 여러분은 '해사하다'라는 말을 보시고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해사하다'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뜻이 있다고 풀이를 하고 있으며, 비슷한 말로 '조촐하다', '말쑥하다', '해말갛다'가 있다고 알려줍니다. 1. 얼굴이 희고 곱다랗다. 해사한 얼굴 2. 표정, 웃음소리 따위가 맑고 깨끗하다. 해사하게 웃다. 3. 옷차림, 자태 따위가 말끔하고 깨끗하다. 만기는 서양 사람처럼 후리후리한 키와 알맞은 몸집에 귀공자다운 해사한 면모를 빛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보고 그저 '예쁘다', '잘생겼다'는 말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런 말이 조금 모자란다 싶을 만큼 맑고 깨끗한 느낌이 들 때 쓰면 좋을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얼굴을 비롯해서 낯빛(표정)과 웃음, 옷차림까지 아우르는 맑음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박경리 님의 소설 '토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시(詩)는 철학과 세계관을 고도로 농축한 글이다. 시를 잘 짓고 쓰는 사람을 보면, 사상이 정교하고 감각이 발달한 느낌이 든다. 그만큼 시는 여러 겹의 사유를 덧대어 만든 언어의 결정체다. 시인 고두현과 전(前) 동양시스템즈 대표 황태인이 함께 쓴 이 책, 《리더의 시, 리더의 격》은 좋은 시와, 그에 따른 깊은 통찰을 보여주는 책이다. ‘시인의 영감과 경영자의 촉이 만날 때’라는 머리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시 짓기와 경영은 영감과 직관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p.11) 시인과 경영자의 닮은 점도 많군요. 둘 다 무언가를 만들거나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사람입니다. 시가 ‘가장 짧은 문장으로 가장 긴 울림을 주는 것’이라면, 경영은 ‘가장 희박한 가능성에서 가장 풍성한 결실을 이루는 것’이지요. 시인이 하늘의 별을 우러러보면 경영자는 발밑의 땅을 고르고 이랑을 돋웁니다. 이럴 때 시인의 영감과 경영자의 촉수가 동시에 빛나지요. 책에 실린 많은 시 가운데 이근배가 쓴 《부작란-벼루에게》라는 시가 퍽 친숙하다. 추사 김정희가 1840년, 54살의 나이로 제주도 대정골에 유배되어 9년 동안 먹빛 바다를 보며 벼루가 바닥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연애 이야기란 남녀노소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인류의 영원한 흥미 거리이다. 미스 K는 운전하면서 중간중간에 소리 내어 웃기도 하고 “아 그래요?”라고 추임새를 넣기도 하면서 열심히 남의 연애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K 교수는 신이 나 과장법을 써가면서 대학 1학년 때 미팅 가서 만난 첫 번째 여자에게서 바람맞은 이야기까지 했다. K 교수는 소설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별것 아닌 이야기에다가 그럴듯하게 살을 붙이고 적당한 장면에서 반전을 만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얼마쯤 가다가 미스 K는 기름을 넣기 위하여 주유소에 차를 세웠다. 알바 청년이 주유하는 잠깐에 미스 K는 차에서 내렸다. 미스 K는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자판기로 가더니 커피 2잔을 뽑아 왔다. K 교수는 조수석에 앉아서 미스 K의 걸음걸이며 지폐를 넣고서 커피 나오기를 기다리는 모든 과정을 영화 보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동작 하나하나가 우아해 보였다. 머리에 오른손을 올려서 앞머리를 살짝 정돈하는 모습도 매력적이었다. 패션모델이 걷듯이 가볍게 사뿐사뿐 우아하게 걷는 모습은 물가를 걷는 학을 연상시켰다. “교수님, 커피 드시지요. 교수님이 재미있는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