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난 12일(금) 아침, 교토 시조 거리를 걷다가 만난 커다란 건물 벽에 설치된 꽃꽂이 앞에 발이 멈췄다. 보랏빛 서양란 몇 송이와 안개꽃 그리고 소나무로 꽃꽂이를 해둔 건물 외벽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발걸음을 멈추고 감상하기 바쁘다. 가히 꽃꽂이(이케바나)의 나라답다. 꽃꽂이 작품이 있는 곳에는 무라카미 겐지의 시 ‘생명은 빛난다’도 걸려 있었다. 초목이 자라나는 모습 / 거기에 비추는 / 다양한 생명의 소중함 /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에 마음을 기대어 / 인생의 만남을 즐긴다. 일본의 꽃꽂이를 이케바나(生け花) 또는 카도우(花道, 華道)라고 부르는데 카도우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한 꽃꽂이라기보다는 수행의 의미를 내포한다고도 한다. 차도(茶道)처럼 도 ‘道’자가 붙으면 아무래도 그런 느낌이 짙다. 일본의 꽃꽂이는 불교의 전래로부터 그 시작을 보는데 부처에세 꽃 공양을 한데서 유래한다는 게 정설이다. 일본인들의 꽃사랑은 헤이안시대(794-1185)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수필집인 마쿠라노 소우시(枕草子) 등의 문학작품에도 등장할 정도로 일본의 꽃꽂이 역사는 1천년 이상으로 길다. 카도우(花道, 華道)는 무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에서 1977년에 나온 책으로 《역사독본(歷史讀本)》이란 책이 있다. 1977년 봄호(春號)로 펴낸 이 책은 일본의 신인물왕래사(新人物往來社)에서 나온 것으로 표지에는 《역사독본》 창간2호라고 쓰여 있다. 이 책을 만난 것은 20여 년 전 우연찮게 도쿄 진보초의 고서점가에서다. 특별히 이 책에 관심이 갔던 것은 ‘역대천황124대’라는 부제가 눈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표지에는 122대 메이지왕(明治天皇)의 사진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 차 보인다. 일본고대문화사를 전공하는 필자는 일본왕(天皇)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 이 책을 곁에 두고 수시로 읽고 있다. 약 300쪽에 달하는 이 책은 역대 일왕가의 행적을 일목요연하게 기록한 책으로 일왕의 뿌리부터 일본근대화의 아버지라는 명치왕(1868~1912) 때까지 일본인들도 모르는 흥미진진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특별히 권두 특별기고문은 ‘일본역사와 천황(日本歷史と天皇)’라는 제목으로 도쿄대학 사카모토 타로우(坂本太郞권) 명예교수가 썼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의 집필자들은 와세다대학의 미즈노 유(水野祐), 도쿄대학의 야마나카 유타카(山中裕),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에서는 지금 새로운 일왕의 연호(年号)인 '레이와(令和)'가 발표되어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그제(1일) 오전 11시, 스가요시히데 관방장관의 새로운 연호 발표가 있었던 시각 NHK생중계는 19%의 높은 시청률을 보일 정도로 일본인들의 연호에 대한 관심은 지대했다. 이로써 일본은 지난 1989년에 시작된 '헤이세이(平成)'시대를 마감하고 레이와(令和)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번에 새로 쓰게 되는 연호는 서기 645년의 다이카(大化)로부터 시작해서 248번째에 해당하는 것으로 2019년은 레이와(令和) 1년이 된다. 새로운 연호인 레이와(令和)는 일본 고전인 《만엽집(萬葉集)》에서 인용해서 지은 것이다. 그동안은 대개 중국 고전에서 따다가 만들었는데 견주어 이번에는 일본 고대의 문학작품에서 만든 것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새 연호인 레이와(令和)의 뜻은, 《만엽집》의 “梅花の歌三十二首の序文”에서 인용한 것으로 ‘영월(令月, 축하하고 싶은 달)의 부드러운 바람과, 매화의 향기를 찬양하는 노래 구절’ 속에서 고른 것이다. 뜻이 무엇이든 간에 대대로 중국 고전에서 연호를 짓다가 올해는 자국의 문학작품 속에서 고른 낱말로 연호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조선총독부는 1911년부터 유물유적 조사를 시작하여 1915년까지 한반도 전체에 대한 1차 조사를 했다. 이 시기는 고적이나 유물에 대한 특별한 현지 보존 또는 관리 규칙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적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중요 보물들은 발견자가 사적으로 슬쩍 챙겨도 아무도 지적할 사람이 없었다. 누천년 동안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각종 문화재급 보물들은 일제침략기에 무법천지로 일본인들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런 보물급 유물들을 마구 가져간 일본인 가운데 한 사람이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 1870-1964)다. 오구라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사업에 관련이 큰 인물이다. 그는 골동상, 경매, 도굴 등 닥치는 대로 조선의 문화재를 게걸스럽게 수집했다. 오구라는 일본에서 도쿄제국대학 법학과를 나온 이래 한국으로 건너와 경부철도주식회사에 취직했다. 철도회사 취직을 계기로 그는 현지시찰과 사업구상을 하면서 자본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가 큰돈을 번 것은 전기사업권을 거머쥐면서 부터다. 생각지도 못한 사업이 성공을 거둬 주체할 수 없는 돈이 모이자 그는 한국의 고미술품에 눈을 돌린다. 1920년 무렵부터 그는 닥치는 대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난 연말 일이 있어 교토에 갔을 때 우에노 미야코 시인으로부터 책한 권을 받았다. 《한우를 사랑해요》라는 한글 제목의 책이었다. ‘한우를 사랑한다고?, 뭐하려고?, 먹으려고?’라는 궁금증에 돌아오자마자 책장을 넘겼다. 지은이는 농업 평론가이자 축산 학자인 마쓰마루 시마조(1907 ~ 1973) 씨로 도쿄대학 졸업 후 조선총독부 축산과장을 역임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귀가 솔깃했다. 경력으로로 보아 한국의 한우를 잘 아는 인물이다 싶었다. 책을 읽어 내려가자니 짐작대로 마쓰마루 씨는 ‘한우의 매력에 빠진 사람’ 이었다. “‘우리 고장에는 시커멓고 키 작은 소가 많아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또 다른 지방에서는 ‘이전에는 시커먼 소가 많았지만 지금은 다 누렁소만 길러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일본의 소는 꺼먼 소로 와규(和牛)라고 하지만 한국소는 누렁소로 한우라고 한다. 지금 일본에 있는 누렁소는 한국에서 건너온 소로 한우는 우수한 소질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소인데 일본인들이 잘 알지 못해 주어진 보물을 몰라보고 무심하게 지내왔다. 목축학자로서 풍부한 소질을 가진 한우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일본의 소년소녀들 그리고 모든 일본인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연금수첩, 장애자수첩, 학생수첩, 모자(母子)수첩, 선원수첩, 치료수첩, 당뇨수첩……. 그러고 보니 일본처럼 다양한 수첩을 쓰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일본어에서 수첩은 테쵸(手帳)라고 하며 한국에서 쓰는 수첩(手帖)이란 한자보다는 ‘테쵸(手帳)’쪽을 많이 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첩을 만들어 쓰는 나라이다 보니 직업이 수첩평론가도 있다. 수첩평론가인 다케가미 다츠히코(舘神 龍彦)가 쓴 책 《수첩과 일본인(手帳と日本人》)(2018, NHK출판)이라는 책만 봐도 일본인들의 수첩사랑을 느낄 수 있다. 일본인을 가리켜 ‘수첩에 구속되어 사는 사람들’ 이라는 말도 들린다. 수첩이란 일정을 관리하는 데 편리한 것으로 사업가에게 수첩은 필수이다. 일을 원만히 진행하기 위해서는 세밀한 스케줄을 짤 필요가 있고, 심지어는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도 일정 관리는 필수이다. 육아수첩의 경우는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예방주사 일정이라든지 키, 몸무게 등을 기록해두는 수첩이며, 연금수첩은 노후에 꼬박꼬박 타먹는 연금을 기록하는 수첩이다. 그러고 보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수첩’은 일본인에게 필수품 가운데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수첩이 쌓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은 신학기가 4월인지라 지금은 초중고등학교의 졸업식이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졸업식 모습이야 우리네 초중등학교 모습과 다르지 않지만 조금 색다른 졸업식으로 언론의 눈길을 끄는 곳도 있다. 기후현 다카야마시(岐阜県 高山市)의 한 중학교에서는 이른바 ‘졸업가마’가 등장하여 그동안 수고하신 선생님을 태워주는 행사를 해마다 열고 있다. 3월 5일 다카야마시의 히가시야마중학교에서는 졸업생이 만든 가마에 선생님을 태워 드리는 졸업식이 있었다. 신혼인 선생을 고려하여 웨딩드레스와 독특한 미소를 가마에 그린 학생들은 가마제작에 1달이 걸렸다고 한다. 가마를 탄 선생님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있었는데 “학생들이 나를 주제로 가마를 만들어 줘 기뻤다.”고 소감을 말했다. 가마를 만든 학생들 또한 “선배들이 이어온 전통대로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을 가마로 표현했다.”고 했다. 그런가하면 기후현 히다시의 가와이소학교에서는 800년 전부터 이어온 전통 일본 종이로 만든 ‘세계에서 하나 뿐인 졸업증서’로 졸업식을 했다. 이 학교에서는 6학년 학생들이 지역에 내려오는 전통종이(和紙, 일본종이)로 졸업장을 만들어 해마다 졸업증서로 쓰고 있다. 보통 졸업증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2월도 어느새 가고 머지않아 봄기운을 전하는 3월이다. ‘3월’ 하면 한국인들은 ‘독립운동’을 떠올리겠지만 일본인들은 ‘히나마츠리’를 떠올릴 것이다. 히나마츠리란 여자아이들을 위한 잔치지만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퇴색된 느낌이다. 일본에서는 딸아이가 태어나면 할머니들이 ‘건강하고 예쁘게 크라’는 뜻에서 히나 인형을 선물하는 것이 보통이다. 예부터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이 풍습을 “히나마츠리(ひな祭り)” 라고 한다. 히나마츠리는 혹시 딸에게 닥칠 나쁜 액운을 없애기 위해 시작한 인형 장식 풍습인데 이때 쓰는 인형이 “히나인형(ひな人形)”이다. 히나마츠리를 다른 말로 “모모노셋쿠(桃の節句)” 곧 “복숭아꽃 잔치”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복숭아꽃이 필 무렵의 행사를 뜻하는 것으로 예전에는 히나마츠리를 음력 3월 3일에 치렀지만 지금은 다른 명절처럼 양력으로 지낸다. 히나인형은 원래 3월 3일 이전에 집안에 장식해 두었다가 3월 3일을 넘기지 않고 치우는 게 보통이다. 3월 3일이 지나서 인형을 치우면 딸이 시집을 늦게 간다는 말도 있어서 그런지 인형 장식은 이 날을 넘기지 않고 상자에 잘 포장했다가 이듬해 꺼내서 장식하는 집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2월, 지금 일본은 곳곳에 활짝 핀 매화향기로 가득하다. 매화꽃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학문의 신으로 추앙 받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 845~903)가 그다. 동풍이 불거든 너의 향기를 보내다오. 매화여 ! 주인이 없다 하여 봄을 잊지 말아라. 매화를 지극히 사랑한 문인이자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의 관리였던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다섯 살에 와카(わか, 일본 고유의 시)를 짓고 열 살부터 한시를 척척 짓던 신동이다. 교토의 기타노텐만궁(北野天満宮)과 후쿠오카 다자이부 텐만궁(太宰府天満宮)에서 학문의 신이자 천신(天神)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그 조상이 신라계여서 더욱 우리의 관심을 끈다. 그 집안을 보면 신라왕자 천일창→ 일본 스모의 조상 노미네(野見宿禰)→하지(土師)→스가와라(菅原) 씨로 성을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본인들 사이에 학문의 신으로 추앙받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간케분소(管家文草)》, 《간케코슈(管家後集)》가 있으며 역사 편찬에도 참여해 《루이주코쿠시(類聚國史)》, 《일본삼대실록(日本三代實錄)》에도 관여하는 등 58살의 삶을 치열하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 오곡백화가 만발하게 피었고 종다리 높이 떠 지저귀는 곳 / 이 늙은 흑인의 고향이로다 내 상전 위하여 땀 흘려가며 / 그 누른 곡식을 거둬들였네 내 어릴 때 놀던 내 고향보다 / 더 정다운 곳 세상에 없도다. 이는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자주 불렀던 노래다. 2년 전 필자는 후쿠오카 형무소 담장에서 마나기 미키코 씨와 이 노래를 불렀다. 마나기 미키코 씨는 후쿠오카지역에서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모임인 <후쿠오카・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福岡・尹東柱の詩を読む会)>의 대표다. 철창 속에서 머나먼 북간도의 고향땅을 그리며 ‘고향으로 보내달라’고 절규했을 윤동주 시인이 모습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웠던 기억이다. 오는 2월 16일은 윤동주 시인이 27살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삶을 마감한 날이다. 한글로 시를 쓴다는 이유를 들어 제국주의 일본은 젊은 청년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나 앞날이 창창한 꿈 많던 청년의 죽음은 일본 땅 전역에서 서서히 부활하고 있다. 윤동주 시인이 숨져간 곳에 사는 사람들은 <후쿠오카・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福岡・尹東柱の詩を読む会)>를 통해 윤동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