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난 연말 일이 있어 교토에 갔을 때 우에노 미야코 시인으로부터 책한 권을 받았다. 《한우를 사랑해요》라는 한글 제목의 책이었다. ‘한우를 사랑한다고?, 뭐하려고?, 먹으려고?’라는 궁금증에 돌아오자마자 책장을 넘겼다. 지은이는 농업 평론가이자 축산 학자인 마쓰마루 시마조(1907 ~ 1973) 씨로 도쿄대학 졸업 후 조선총독부 축산과장을 역임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귀가 솔깃했다. 경력으로로 보아 한국의 한우를 잘 아는 인물이다 싶었다. 책을 읽어 내려가자니 짐작대로 마쓰마루 씨는 ‘한우의 매력에 빠진 사람’ 이었다. “‘우리 고장에는 시커멓고 키 작은 소가 많아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또 다른 지방에서는 ‘이전에는 시커먼 소가 많았지만 지금은 다 누렁소만 길러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일본의 소는 꺼먼 소로 와규(和牛)라고 하지만 한국소는 누렁소로 한우라고 한다. 지금 일본에 있는 누렁소는 한국에서 건너온 소로 한우는 우수한 소질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소인데 일본인들이 잘 알지 못해 주어진 보물을 몰라보고 무심하게 지내왔다. 목축학자로서 풍부한 소질을 가진 한우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일본의 소년소녀들 그리고 모든 일본인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연금수첩, 장애자수첩, 학생수첩, 모자(母子)수첩, 선원수첩, 치료수첩, 당뇨수첩……. 그러고 보니 일본처럼 다양한 수첩을 쓰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일본어에서 수첩은 테쵸(手帳)라고 하며 한국에서 쓰는 수첩(手帖)이란 한자보다는 ‘테쵸(手帳)’쪽을 많이 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첩을 만들어 쓰는 나라이다 보니 직업이 수첩평론가도 있다. 수첩평론가인 다케가미 다츠히코(舘神 龍彦)가 쓴 책 《수첩과 일본인(手帳と日本人》)(2018, NHK출판)이라는 책만 봐도 일본인들의 수첩사랑을 느낄 수 있다. 일본인을 가리켜 ‘수첩에 구속되어 사는 사람들’ 이라는 말도 들린다. 수첩이란 일정을 관리하는 데 편리한 것으로 사업가에게 수첩은 필수이다. 일을 원만히 진행하기 위해서는 세밀한 스케줄을 짤 필요가 있고, 심지어는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도 일정 관리는 필수이다. 육아수첩의 경우는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예방주사 일정이라든지 키, 몸무게 등을 기록해두는 수첩이며, 연금수첩은 노후에 꼬박꼬박 타먹는 연금을 기록하는 수첩이다. 그러고 보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수첩’은 일본인에게 필수품 가운데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수첩이 쌓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은 신학기가 4월인지라 지금은 초중고등학교의 졸업식이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졸업식 모습이야 우리네 초중등학교 모습과 다르지 않지만 조금 색다른 졸업식으로 언론의 눈길을 끄는 곳도 있다. 기후현 다카야마시(岐阜県 高山市)의 한 중학교에서는 이른바 ‘졸업가마’가 등장하여 그동안 수고하신 선생님을 태워주는 행사를 해마다 열고 있다. 3월 5일 다카야마시의 히가시야마중학교에서는 졸업생이 만든 가마에 선생님을 태워 드리는 졸업식이 있었다. 신혼인 선생을 고려하여 웨딩드레스와 독특한 미소를 가마에 그린 학생들은 가마제작에 1달이 걸렸다고 한다. 가마를 탄 선생님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있었는데 “학생들이 나를 주제로 가마를 만들어 줘 기뻤다.”고 소감을 말했다. 가마를 만든 학생들 또한 “선배들이 이어온 전통대로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을 가마로 표현했다.”고 했다. 그런가하면 기후현 히다시의 가와이소학교에서는 800년 전부터 이어온 전통 일본 종이로 만든 ‘세계에서 하나 뿐인 졸업증서’로 졸업식을 했다. 이 학교에서는 6학년 학생들이 지역에 내려오는 전통종이(和紙, 일본종이)로 졸업장을 만들어 해마다 졸업증서로 쓰고 있다. 보통 졸업증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2월도 어느새 가고 머지않아 봄기운을 전하는 3월이다. ‘3월’ 하면 한국인들은 ‘독립운동’을 떠올리겠지만 일본인들은 ‘히나마츠리’를 떠올릴 것이다. 히나마츠리란 여자아이들을 위한 잔치지만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퇴색된 느낌이다. 일본에서는 딸아이가 태어나면 할머니들이 ‘건강하고 예쁘게 크라’는 뜻에서 히나 인형을 선물하는 것이 보통이다. 예부터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이 풍습을 “히나마츠리(ひな祭り)” 라고 한다. 히나마츠리는 혹시 딸에게 닥칠 나쁜 액운을 없애기 위해 시작한 인형 장식 풍습인데 이때 쓰는 인형이 “히나인형(ひな人形)”이다. 히나마츠리를 다른 말로 “모모노셋쿠(桃の節句)” 곧 “복숭아꽃 잔치”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복숭아꽃이 필 무렵의 행사를 뜻하는 것으로 예전에는 히나마츠리를 음력 3월 3일에 치렀지만 지금은 다른 명절처럼 양력으로 지낸다. 히나인형은 원래 3월 3일 이전에 집안에 장식해 두었다가 3월 3일을 넘기지 않고 치우는 게 보통이다. 3월 3일이 지나서 인형을 치우면 딸이 시집을 늦게 간다는 말도 있어서 그런지 인형 장식은 이 날을 넘기지 않고 상자에 잘 포장했다가 이듬해 꺼내서 장식하는 집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2월, 지금 일본은 곳곳에 활짝 핀 매화향기로 가득하다. 매화꽃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학문의 신으로 추앙 받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 845~903)가 그다. 동풍이 불거든 너의 향기를 보내다오. 매화여 ! 주인이 없다 하여 봄을 잊지 말아라. 매화를 지극히 사랑한 문인이자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의 관리였던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다섯 살에 와카(わか, 일본 고유의 시)를 짓고 열 살부터 한시를 척척 짓던 신동이다. 교토의 기타노텐만궁(北野天満宮)과 후쿠오카 다자이부 텐만궁(太宰府天満宮)에서 학문의 신이자 천신(天神)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그 조상이 신라계여서 더욱 우리의 관심을 끈다. 그 집안을 보면 신라왕자 천일창→ 일본 스모의 조상 노미네(野見宿禰)→하지(土師)→스가와라(菅原) 씨로 성을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본인들 사이에 학문의 신으로 추앙받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간케분소(管家文草)》, 《간케코슈(管家後集)》가 있으며 역사 편찬에도 참여해 《루이주코쿠시(類聚國史)》, 《일본삼대실록(日本三代實錄)》에도 관여하는 등 58살의 삶을 치열하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 오곡백화가 만발하게 피었고 종다리 높이 떠 지저귀는 곳 / 이 늙은 흑인의 고향이로다 내 상전 위하여 땀 흘려가며 / 그 누른 곡식을 거둬들였네 내 어릴 때 놀던 내 고향보다 / 더 정다운 곳 세상에 없도다. 이는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자주 불렀던 노래다. 2년 전 필자는 후쿠오카 형무소 담장에서 마나기 미키코 씨와 이 노래를 불렀다. 마나기 미키코 씨는 후쿠오카지역에서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모임인 <후쿠오카・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福岡・尹東柱の詩を読む会)>의 대표다. 철창 속에서 머나먼 북간도의 고향땅을 그리며 ‘고향으로 보내달라’고 절규했을 윤동주 시인이 모습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웠던 기억이다. 오는 2월 16일은 윤동주 시인이 27살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삶을 마감한 날이다. 한글로 시를 쓴다는 이유를 들어 제국주의 일본은 젊은 청년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나 앞날이 창창한 꿈 많던 청년의 죽음은 일본 땅 전역에서 서서히 부활하고 있다. 윤동주 시인이 숨져간 곳에 사는 사람들은 <후쿠오카・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福岡・尹東柱の詩を読む会)>를 통해 윤동주 시인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그제(2월 4일)는 입춘이었지만 설날 연휴 중인 한국에서는 입춘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지나버린 느낌이다. 설날 연휴가 아니었더라도 특별한 입춘 행사가 없는 게 우리 풍습이긴 하지만 건양다경(建陽多慶)과 같은 입춘축을 붙이는 모습 정도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볼 수 있다. 일본은 어떠한가? 일본에서는 입춘에 대한 풍습이 남아있어 곳곳에서 입춘 행사를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입춘을 절분(세츠분, 節分)이라 해서 사악한 귀신을 몰아내기 위한 콩 뿌리기(마메마키) 행사를 전국의 절이나 신사(神社)에서 행한다. “복은 들어오고 귀신은 물러가라(후쿠와 우치, 오니와 소토, 福は內、鬼は外)”라고 하면서 콩을 뿌리고 볶은 콩을 자기 나이 수만큼 먹으면 한 해 동안 아프지 않고 감기도 안 걸리며 모든 악귀에서 보호 받는다는 믿음이 있다. 절분(세츠분, 節分)은 보통 입춘 전날을 말하는데 이때는 새로운 계절이 돌아와 추운 겨울이 끝나고 사람들이 활동하기도 좋지만 귀신도 슬슬 활동하기 좋은 때라고 여겨서인지 이날 사악한 귀신을 물리치기 위한 콩 뿌리기(마메마키) 행사를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는 것이다. 절분행사는 예전에 궁중에서 시작했는데 《연희식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옛날 히에이산에 있던 가난한 승려가 부처님의 계시를 꿈속에서라도 보기 위해 구라마사(鞍馬寺)에 기도하러 갔다. 그러나 7일간 정성껏 기도를 해도 답이 없자 다시 7일을 연장하고 또 다시 100일 동안 기도 정진에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원하던 부처님은 나타나지 않고 사자(使者)가 나타나 기요미즈사(淸水寺), 가모신사(賀茂神社) 등으로 자꾸 기도처를 옮기라고 해서 히에이산 승려는 기대를 걸고 사자의 지시를 따른다. 그러다 꿈에도 그리던 계시를 받는데(작품에서는 계시자가 부처라는 이야기는 없다) 승려에게 흰종이와 쌀을 내려주겠다는 소리를 들은 승려는 ‘그렇게 힘들게 기도를 했는데 고작 흰종이와 쌀이 무엇이냐 싶어 원망스런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 흰종이와 쌀은 생각과 달리 써도써도 줄어들지 않는 화수분이었다.” 이는 일본 중세의 설화집 《우지습유모노가타리(宇治拾遺物語)》, 제6권 제6화 ‘가모신으로부터 신전에 바치는 흰종이와 쌀 등을 받은 이야기’의 요약이다. 이야기 끝에는 ‘신과 부처에게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느긋하게 기도 정진해야 한다’는 교훈적인 말이 붙어 있다. 이와 같은 설화가 197화 수록되어 있는 일본 중세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우리들은 이 책을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 특히 차세대 여성들이 읽어주었으면 합니다. 젊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석을 달았으며, 책 끝에는 재일조선인, 피차별부락, 아이누, 오키나와, 아시아(필리핀, 스리랑카, 베트남)의 역사와 개인사를 하나의 연표로 정리해두었습니다. 이것은 기존의 일본사 연표와는 달리 일본사회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뿌리를 가진 ‘우리들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는 한 장의 흑백사진으로 재일(在日)의 역사를 말해주는 책 《가족사진을 둘러싼 우리들의 역사(家族写真をめぐる私たちの歴史:在日朝鮮人・被差別部落・アイヌ・沖縄・外国人女性2017, 도쿄출간)》에 나오는 머리말의 일부다. 이 책을 쓴 사람들은 모두 여성들로 24명이 집필자다. 집필자들은 황보경자, 김리화, 이전미와 같은 재일조선인과 일본인이면서 피차별부락 출신자들도 함께 이 책을 썼다. 피차별부락이란 과거 일본에서 ‘에타(エタ, 穢多)’라 불리는 천민, 전염병 보균자, 전쟁포로 등의 집단거주지를 얘기했으나 현재는 일본의 천민집단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나쁜 의미로 쓰이고 있다.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재일조선인여성 단체인 ‘미리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제 14일은 일본의 “성인의 날(成人の日)” 이었다. 20살을 맞이하는 젊은이들의 잔치인 성인의 날은 1999년까지는 1월 15일 이던 것이 2000년부터는 1월 둘째 주 월요일로 정해 성인의 날 행사를 하고 있다. 성인의 날의 사전적 뜻은 “새롭게 성인이 되는 미성년자들이 부모님과 주위의 어른들에게 의지하고 보호받던 시절을 마감하고 이제부터 자신이 어른이 되어 자립심을 갖도록 예복을 갖춰 입고 성인식을 치루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 여성들은 하레기(晴れ着)라고 해서 전통 기모노를 입고 털이 보슬한 흰 숄을 목에 두른다. 한편 남성들은 대개 신사복 차림이지만 더러 하카마(袴, 전통 옷)차림으로 성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다. 특히 여성의 경우는 이날 행사를 위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단장을 하는데 제법 돈이 든다. 화려한 전통 의상을 입고 성인식을 마친 여성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시내를 누비고 돌아다니는 모습은 외국인에게는 또 하나의 볼거리다. 일본의 “성인의 날”의 역사는 얼마나 되었을까? 성인의 날은 지금으로부터 73년 전인 1946년 11월 22일 사이타마현 와라비시(埼玉県蕨市)에서 실시한 ‘청년제’가 그 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