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김영조 기자] 능금 골 열아홉 처녀 / 사진 들고 떠난 하와이 / 물 설고 말 설은 이국땅서 / 받은 설움 물리치고 / 고난의 순간마다 / 태평양 넘어 / 광복의 빛 그리며 / 가시밭길 헤쳐 나온 / 임의 발자국 - 이윤옥 시인의 <태평양 넘은 광복의 빛 '이희경’> 가운데- 일제강점기, 한국 여성들의 독립의 함성은 멀리 하와이부터 드넓은 중국 땅과 일본에 이르기까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들려왔다. 이러한 항일여성독립운동가들은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로부터, 의병, 기생, 해녀, 학생, 의사, 교육가 등 직업의 귀천을 불문하고 독립운동에 온 몸을 바쳐 뛰었다.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 독립운동에 뛰어든 여성들에 대해 우리는 거의 알지 못하고 지내왔으며 올해 98주년을 맞이하는 3·1절에도 여전히 우리는 그들의 헌신과 희생의 삶에 대해 잘 모른다.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자 이윤옥 시인은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6권》을 통해 숭고한 삶을 살다간 여성독립운동가들을 널리 알려오고 있다. 이번에 제98주년 3・1절을 맞아 한국화가 이무성 화백은 이 이윤옥 시인의 시에 시화를 그린 작품 33점을 선보인다. 이번 시화전은 노동자 민족차별에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땅이 크고 사람이 많은 나라가 /큰 나라가 아니고/땅이 작고 사람이 적어도/위대한 인물이 많은 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는 남궁 억(1863~1939)선생이 1907년 4월 20일 종로 ymca 강당에서 한 「생존경쟁(生存競爭)」이라는 제목의 연설문의 한토막이다. 선생은 강원도 홍천 출신으로 1884년에 영어학교인 동문학(同文學)을 수료하고 서울 총해관(總海關)의 견습생으로 있다가 1886년에 내부 주사(主事)가 되고, 1887년에 전권대신 조민희(趙民熙)의 수행서기관으로 영국,러시아,독일의 순방 길에 올라 홍콩까지 갔으나 청국정부의 간섭과 방해로 2년간 홍콩에 체재하다가 소환되어 돌아왔다. 1889년에는 칠곡부사(漆谷府使)를 역임하였다. 1894년 갑오경장 내각이 수립되자 승진하여 1893년에 내부 토목국장으로 임명되어 종로와 정동 일대 및 육조(六曺) 앞 남대문 사이의 도로를 정비하는 동시에 파고다공원을 세웠다. 1896년 2월 아관파천(俄館播遷)이후에는 관직을 사임하고, 1896년 7월 서재필(徐載弼)?이상재(李商在) 등과 함께 독립협회(獨立協會)를 창립하여 중앙위원?서기?사법위원?평의원 등에 선출되었으며 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울시가 국가보훈처와 협력해 현 서대문구의회 자리에 국내 최초ㆍ유일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을 추진한다. '3ㆍ1운동 100주년'이자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인 오는 2019년 개관이 목표다. 서울시는 기념관을 중심으로 그 즈음 복원을 마치는 딜쿠샤를 비롯해 독립문, 구 서대문형무소 등 일대 명소를 연결하는 '독립운동 유적 단지'를 조성한다. 지하철 안국역은 프랑스 파리의 '기 모케(Guy Moquet)' 테마역처럼 독립운동 테마역사로 조성한다. 종로에서 북촌으로 이어지는 삼일대로는 3ㆍ1운동 대표가로로, 남산 예장자락은 일제의 남산 침탈 흔적을 알 수 있는 역사탐방로인 남산국치(南山國恥)의 길을 각각 조성한다. 독립운동을 한 자손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한다. 서울시립대 등록금 전액 면제 대상도 5대손까지(기존 2대손) 확대하고 후손이 없어 방치되어 있는 독립유공자 묘지를 발굴하여 지원한다. 아울러, 나라를 위해 헌신했지만 현재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국가유공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다. 매년 74억 원을 추가 투입해 생활보조수당을 신설하고 보훈단체에 대한 지원도 대폭 확대해 나간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여성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 어느 날, 저는 빛바랜 책 한권과 만났습니다. ‘여류독립운동가의 수기’로 안내된 책의 표지에는 『두 감나무 고목에 활짝 핀 무궁화』 제목이 굵은 글씨로 적혀 있었지요. 떨리는 손으로 첫 장을 펼치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시선이 고정되었지요. 그 때가 선생님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펼쳐든 첫 페이지의 인사말씀에는 선생님이 24살에 신사참배 문제로 교사생활을 그만두었던 내용과 25살 때부터 형무소를 전전하며 감내해야 했던 옥고 생활의 이야기가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선생님을 만날 목적으로 마산을 찾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산경남지역 여성독립운동가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부산 일신여학교에서 수학하며 신교육을 받았던 여성들의 다수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흔적을 쫓아가다보니 일신여학교 출신으로 마산의 신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했던 김두석 선생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은 신사참배를 강하게 거부했던 교사로 지역 학생들에게 의로움이 무엇인가를 각인시켰던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본경찰이 주시하는 자리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저는 올해 65살입니다만 솔직히 일본의 조선침략 역사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지인의 권유에 끌려 이번 강연에 참석했습니다만 오길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침략에 굴하지 않고 온몸으로 저항하며 조선의 독립을 위해 힘쓴 한국의 여성독립운동가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 사이타마현, 코바야시 레이코- “어느 정도 침략의 역사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만 일본의 역사교과서에서는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문제는 자라나는 학생들이지요. 그나마 고려박물관에서 조선침략에 관한 상설전시와 강연을 자주 열어 역사 공부겸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습니다. 이번 강연을 통해 항일여성독립운동가들의 활약을 상세히 알게되어 기쁩니다. 주변에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 가나카와현, 이토 노리코(61살)- 입추의 여지없이 강연장을 가득메운 청중들은 하나같이 “침략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존재를 알게 된 뜻 깊은 강연”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기자는 지난 1월 14일(토)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일본 도쿄 고려박물관에서 “침략에 저항한 불굴의 조선여성들”에 대한 특강을 했다. 이번이 2차 강연인 항일여성독립운동가 특강은 지난 1차 특강 때인 20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최재형 선생님, 선생님께서 낯선 땅 우수리스크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시다 일제의 무자비한 총탄에 세상을 떠나신지 어느덧 97년이 흘렀습니다. 선생님이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살아내신 일생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낯선 땅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동포들을 위해 선생님은 뜨거운 민족애로 한인들의 난로역할을 하셨습니다. 한인 자녀들에게 배움의 기틀을 마련하시어 학교를 세우시고, 후학들의 장래를 위해 일찍이 장학사업도 하셨지요. 낯선 러시아 땅에서 차별받는 한인들의 보호자가 되어주신 선생님을, 한인들은 최페치카라고 부르며 존경했습니다. 최재형 선생님, 선생님은 동양의 카네기라 할 정도로 막대한 부를 이루셨습니다. 선생님은 러일전쟁 후,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의 위기를 직시하시고 많은 재산을 털어 독립단체인 동의회를 조직하고 대한의군의 숙식과 무기를 제공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조국독립의 뜻을 둔 애국지사들의 손을 맞잡고 대한의군이 국내진공작전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셨습니다. 일본의 방해공작 탓에 위기도 여러 번 넘기셨지요. 하지만 선생님의 인격은 러시아인들도 감동시켜 일본의 모함임이 즉시 밝혀졌습니다. 일제는 드디어 대한의군의 무기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민선 6기 송기섭 진천군수의 역점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보재 이상설 선생 순국 100주년 기념사업이 순항 중이다. 진천군은 오는 4월 이상설 선생의 순국 100주년을 맞아 보재 이상설 선생이 우리나라 항일독립운동 역사 속에서 일궜던 위대한 업적과 다양한 학문적 성과들에 대해 재조명할 수 있는 여러가지 기념사업을 추진한다. 진천군에 따르면 19일 새해 첫 '이상설 선생 순국 100주년 기념사업 실무협의회'를 열었고 기념관 토목ㆍ건축설계 진행사항, 전시실 유품ㆍ유물 확보계획, 100주년 기념행사 추진상황 등을 집중 점검했다. 실무협의회에는 진천군 관계자 말고도 기념사업회, 국가 및 충북도 사업 관련 공무원, 설계사무소 관계자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오는 4월 21일부터 22일까지 이틀간 순국 100주년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추진 중이다. 22일 본행사에 5천 명 이상의 내ㆍ외빈을 초청, 선생이 걸어왔던 위대한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고귀한 유훈이었던 애국ㆍ애족 정신을 계승발전 시키기 위한 기념식이 개최된다. 21일부터는 ▲이상설 전국학술대회 ▲전국 한시지상 백일장대회 ▲전국 시낭송대회 ▲학생 미술대회 ▲이상설평전 출판기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권병덕(1868. 4. 25 ~ 1943. 7. 13) 선생은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충청북도 청주 사람이며, 천도교인이다.18세에 동학교도가 되고, 1894년(고종 31)의 동학혁명 때 손병희와 함께 6만명의 교도를 이끌고 호응했으나 관군에 의하여 진압 당한 후 전국 각처를 방랑하였다. 1908년(융희 2) 일본에서 귀국한 손병희가 천도교를 일으키자 이에 입교하여 전제관장(典制觀長)·이문관장대리(理文觀長代理)·금융관장(金融觀長)·보문관장(普文觀長) 등을 역임하였다. 1919년 2월 25일 무렵 천도교의 기도회 종료보고와 국장참배를 위해 상경한 그는 손병희·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 등을 만나, 3·1독립만세운동계획을 듣고 이에 찬동하여 민족대표로서 서명할 것을 동의하였다. 이 달 27일 최린(崔麟)·오세창·임예환(林禮煥)·나인협(羅仁協)·홍기조(洪基兆)·김완규(金完圭)·나용환(羅龍煥)·홍병기(洪秉箕)·박준승(朴準承)·양한묵(梁漢默) 등의 동지와 함께 김상규(金相奎)의 집에 모여서 독립선언서와 기타 문서의 초안을 검토하였으며, 이들과 함께 민족대표로서 성명을 열기하고 날인하였다. 3월 1일 오후 2시경 인사동에
[우리문화신문= 전수희 기자] 몽골의 슈바이처 이태준 [1883~1921] 선생은 의사(醫師)로 몽고(蒙古)수도 고륜(庫倫)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있던 중, 1918년 9월 김규식(金奎植)이 파리강화회의 참석에 필요한 여비를 마련키 위해 몽고로 오자 그에게 독립운동자금 2천원을 제공하여 활동을 도왔다. 에태준 선생은 1910년 비밀결사 신민회의 청년학우회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11년 세브란스의학교를 2회로 졸업하게 된다. 이후1914년 몽골에 건너가 동의의국을 설립하고몽골 황제의 어의로 눈부신활약을 한다. 1918년 김규식 지사에게파리강화회의 참석에 필요한 자금을 적극 제공하고 1921년에는 의열단에게 폭탄 제조 기술자를 소개하기도 하였다.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으며 2017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뽑혔다. <자료: 국가보훈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역사의 수레바퀴로 110년 전으로 되돌려봅니다. 안중근 장군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1907년입니다. 한반도는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합니다. 이미 일본이 우리나라와 강제조약을 체결하고 우리의 자주적인 외교권을 강제로 박탈한 뒤 2년이 지났습니다. 고종황제는 2년 전인 1905년 일제의 강압에 의해 강제로 체결된 조약이 부당하다는 것을 세계 여러 나라에 알리고자 몸부림을 쳤지만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나라는 없었습니다. 국제회의가 열리는 헤이그로 밀사를 보내 우리의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했지만 일본의 방해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일제는 헤이그로 밀사를 보냈다는 것을 트집 잡아 고종을 강제로 폐위 시킵니다. 그리고 곧바로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킵니다.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해산 되던 날 울분을 참지 못한 대한제국 장교군인이 자결을 하고 이 장면을 목격한 병사들이 긴급하게 무장하고 일본군대와 맞서면서 서울에서는 삽시간에 시가전이 벌어졌습니다. 안중근 장군께서는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고 서울에서 우리 군인들이 일본군에 대항하면서 총격전이 벌어진 그 현장을 똑똑하게 목격하고 연해주로 망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