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잠이 보약 이웃집 아저씨가 어느 날 마주치자 반가워하시며 “치과의사에게는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먹으면 된다’라고 하면 안 되고 한의사에게는 ‘잠이 보약’이라고 말하면 싫어한다고 하더라“라며 농담하셨다. 정말 ‘잠이 보약’인지 알아보자. 우리 인체의 활동에서 하루는 활동과 휴식(수면)으로 커다란 리듬을 이어간다. 곧 낮에는 활동을 통한 소비와 손상이 일어나고, 밤에는 휴식과 회복을 통하여 몸을 건강한 상태로 만들어 생명활동을 유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충분한 숙면을 이루지 못하면 피로가 누적되고 손상된 조직을 회복하지 못하여 누적된 부담으로 언젠가는 몸이 망가지는 순서를 밟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 하루의 삶은 활동과 수면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육체는 활동 중에 소모와 손상이 생기고 수면 중에 휴식과 회복이 이루어짐으로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기에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또한 두뇌는 활동 중에 정보획득, 휴식 중에 정보의 소화(정제) 과정을 거친다. 다시 말하면 인체는 왕성한 생명활동을 유지하기 위하여 활동에 비례하는 충분한 수면을 필요로 한다. 또한 수면 중에 확실하게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영감 찾아 떠돌아 본 팔도강산 넓더라 조강지처 버려두고 봄날이라 노류장화 환장할 작은 에미년 젖비린내 어떻던고 이 잡듯 문대 죽여도 시원찮을 년이로고 이 술 먹고 놀았으니 엎어져라 술상이야, 휫뜩 디비삘라, 비단 금침 덮었으니 가위질인들 왜 못하며, 찢어진 아가리 쫙 벌리고 오줌인들 못 먹이랴. 기필코 두 연놈을 코뚜레 멍에 씌워 동네 우사 시키리라. 등허리 가려울 땐 담뱃대 용써봐도 영감 손만 못하더라. 허깨비 영감일망정 없으니 아쉽더라 <해설> 조강지처는 집 나간 지 오래된 영감 자취 따라 이곳저곳 헤매었다. 소문 듣자니 어느 주막거리 옆에 첩살림을 차렸다는데, 내 오늘 가만두지 않으리라. 작은 에미 년과 살림을 차린 지도 꽤 오래되어 벌써 아이도 하나 낳았다는데, 얼마나 이쁜년인지 두고 볼 일이다. 슬쩍 주막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두 연놈이 놀고 마시던 술상이 보인다. 엎어져라 술상이야, 휫뜩 디비삐고 말아야지. 술상 엎고 통곡해 본들 늙은 여자라 누가 욕하지나 않을까. 마음만은 비단 금침에 조각조각 가위질하고, 찢어진 아가리 쫙 벌리고 오줌을 싸 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양반 피 타고난 여인으로서 어찌 그럴 수 있으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난 늦가을 강릉의 오죽헌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말은 많이 듣고, 그 앞을 지나간 적도 있지만 들어가 본 적은 없기에 사실상 처음 방문이다. 오죽헌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필자보다 더 잘 알 테니 설명은 그야말로 사족일 것이다. 그런데 그 안에 있는 기념관에 갔다가 깜짝 놀란 발견을 했다. 바로 황기로의 글씨가 전시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렇구나. 광초(狂草)로 알려진 황기로의 서예 필치를 여기 오죽헌에서 보다니. 과연 그의 필은 거침이 없다. 낙동강 물을 검게 물들이며 연습한 초서 아니던가? 이미 알려진 대로 황기로는 경북 선산 사람이고 그곳에 그의 유적이 있다. 곧 매학정이란 정자가 그것이다. 이 매학정의 사연이 꽤 가슴 아픈 얘기다. 선비들의 나라라 할 조선왕조의 역사에서 선비들이 가장 통탄하는 일은 조광조를 탄핵해서 죽음에 이르게 한 일일 것이다. 조선 중종에 의해 발탁된 조광조는 선비들의 이상인 도학정치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다가 급격한 개혁에 따른 훈구공신들의 반격으로 기묘사화를 당해 능주로 귀양 가고, 한 달 만에 사사되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조광조를 탄핵하는 데 가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여행 2일 차] (2일 차 이동 거리: 총 660km, 포장 250km 비포장 408km) 9월 19일 17시에 초이발산시를 출발하여 경치 좋은 산기슭에서 야영하려고 출발하였다. 한 시간쯤 달려왔는데. 저리거 씨가 차량에 기름을 가득 채운다는 것을 잊고 출발하여, 다시 초이발산시로 돌아와 기름을 채우고 할힌골 솜으로 출발하니 벌써 해가 진다. 초이발산시에서 자고 내일 가자고 하니 100km라도 더 가서 야영하자고 하여 야간 운행을 한다. 고도가 780m에서 600m로 내려가는 지형이 200여 킬로 이어지더니, 다시 780m로 고도가 올리는데 평원이 늪지대처럼 갈대류의 식생으로 빼곡히 자라 텐트 칠 자리가 없다. 할힌골 솜까지 비포장도로 340km인데, 강이 없는 평원이라 척박하여 할힌골 솜까지 마을이 없는 이유를 알겠다. 가는 길에 유전 펌프를 볼 수 있었다. 밤하늘의 화려한 별빛 쇼를 보면서 칠흑 같은 비포장도로를 달려 9월 20일 새벽 3시 할힌골 솜에 도착하였다. 10시간 동안 야간 운전으로 초원을 건너왔다. 실제 거리 340km인데 중간에 마을이나 도시가 하나도 없다. 중간에 여러 번 길을 헤매고 돌고 돌아가는 길이 무지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인간의 기본 모습은 동물, 겨울철에 더 푹 자야 건강하다.” 겨울철에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분들이 많아진다. 침대에 눕자마자 잠에 빠지던 사람도 조그마한 소리에 놀라 잠을 깨고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한편으론 자다가 코가 막히고 목이 말라 깨는 경우도 많아진다. 이런 증상은 낮아진 기온 및 일조량 변화와 관계가 깊으며 또한 난방을 시작하는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모든 동식물은 진화와 적응의 과정을 거쳐 생존과 건강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터득하고 발전시켜 왔다. 그 가운데 하나가 겨울철 ‘동면’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생리 구조에는 아직 원시인의 유전자가 있다고들 한다. 원시인들이 했던 생활이 몸에 고스란히 누적되어 유전자에 각인되어 전해진 것을 말한다. 계절 변화에 따른 수면양상을 볼 때, 원시인의 환경을 고려한다면 사람도 동물처럼 어둠과 더불어 잠을 자고, 추운 날씨에는 더 많이 자면서 생존해 왔으리란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이런 원시시대 생활을 바탕으로 한 우리 유전자들은 지금도 동면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 인간은 춥다고 동면을 취할 수도, 여름처럼 왕성하게 활동할 수도 없다. 겨울에 인간이 자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이쁜 것, 뻐드렁니도 요모조모 잘 앉았고 짝궁둥이 삐쭉빼쭉 삼삼하고 별미로다 술상에 권주가 한 절 없어서야 되것는가 사랑이야 내 사랑이야 이 술 한잔 잡으시오 풀국새 푸룩푸룩 산노루 어헝어헝 달 밝아서 한잔이요, 물봉선 사위질빵 바람에 꽃 진다고 애절하여 한잔이요. 장진주사 권주가도 소절소절 불러내어 헌헌장부 정철(鄭澈) 한잔, 그대 한잔, 나도 한잔. 이 한잔을 잡수시면 만수무강 천년복록, 또 한잔을 드시오면 만사형통 부귀영화, 이 술 한잔 사양이면 식욕부진에 소화불량, 또 한잔 사양이면 문전걸식에 노상객사. 이 술은 술이 아니라 술술술 넘어가는 선약이고 보약이니, 사랑에 취해 한잔이요, 사랑에 속아 또 한잔이라. 한 많고 사연 많아 주거니 받거니와 어려서 조실부모한 이년 한도 풀어 주오 <해설> 어느 주막인가 보다. 나으리 술상에 앉고 보니 여자 생각 간절하다. 하여, 술에 취해 게슴츠레바라 보니 시골 주막 아낙도 그런대로 눈에 들어온다. 어쩔까? 오늘은 이 여인네를 품어볼까. 권주가에 술잔도 주거니 받아보니 하룻밤 풋사랑도 정이 든다. 한여름 둔덕 오르다 보면 나무 성가시게 감고 오르며 꽃을 피운다. 어쩌면 혼자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심은(深隱) 이수(李隨, 1374년-공민왕 23~1430년-세종 12)는 세종이 어릴 적부터 곁에서 학문을 가르친 문신이다. 태종대에 공조정랑, 예조정랑을 거쳐 세종 때에 이르러 예문관제학을 거쳐 참찬의정부사, 이조판서 등을 지냈다. 생애 : 활동사항 · 태조 5년(1396) : 생원시에 1위로 합격하였으며, · 태조 10년 : 임금이 경학에 밝고 행실이 바른 사람을 구할 때, 대사성 유백순(柳伯淳)의 천거로 뽑혔으나 사퇴하였다. · 태종 11년: 지신사(知申事) 김여지(金汝知)가 임금의 명을 전하자 상경하여 여러 왕자의 교육을 맡아보았다. · 태종 12년 : 종묘서(宗廟署) 주부(主簿)를 지내고, · 태종 14년: 임금이 성균관에 행차하여 관리를 채용하기 위해 시험을 칠 때, 4위로 급제, 전사주부(典祀 主簿)ㆍ공조정랑ㆍ·예조정랑을 지내고, · 태종 17년: 전사소윤(典祀少尹, 제사를 담당하던 전사시의 종4품 벼슬)을 지냈다. 이듬해 세종이 즉위하자 사재감정(司宰監 正, 사재감에 두었던 정삼품 관직)ㆍ좌군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 삼군도총제부 벼슬)을 지냈다. · 세종 4년(1422) : 황해도관찰사를 거쳐, 고부부사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신기교를 건너면 거문리(巨文里)이다. 우리는 이제부터 (구)59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오대천은 길의 왼쪽으로 흐른다. 거문리의 어원을 조사해 보았다. 옛날에는 거문리를 거커리라고 하였는데, ‘큰 글’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마을에 모양이 마치 붓끝처럼 생긴 문필봉(文筆峰)이라는 산이 있어서 거커리라고 하였다. 학자를 많이 배출할 지형이라고 한다. 벼농사가 잘 되어 ‘일강릉 이거컬’이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거문리로 들어가는 입구에 둥근 돌탑 2개를 쌓아 놓았다. 돌탑이 있는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거문리 마을이 나온다. 거문리는 넓은 분지 형상인데, 농경지가 많고 초등학교가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마을이다. 우리는 거문리로 들어가지 않고 (구)59번 도로를 따라 걸어갔다. 날씨가 흐려지더니 비가 조금씩 뿌리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이번 구간의 종착지인 청심대까지는 멀지 않았다. 장마전선이 중부지방에 걸쳐 있다는데, 오늘은 비 때문에 고생하지 않았다. 청심대가 있는 곳의 지명은 마평리이다. 마평리는 진부면의 남쪽 방향에 있는 마을로 《조선지지》에 마평리(馬坪里)이고 현재도 마평리이다. 조선 시대 말먹이를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조상을 바로 모시고 그 유덕을 이어가는 것은 후손의 당연한 도리라고 들었습니다. 조상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는 숨어있는 역사를 찾아내고 유적을 복원해서 조상의 생각과 일생의 업적을 드러내야 합니다. 효경의 첫머리에 나오는 대로 "세상에 나아가 도를 행하고 이름을 후세에까지 날리면 그것이 곧 효의 마지막이다 立身行道揚名於後世 以顯父母孝之終也" 란 귀절이 있습니다만 꼭 자손이 출세해서 이름을 날리지 않더라도 적어도 조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후세에 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효도임을 부정하실 분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온계(溫溪) 이해(李瀣 1496~1550)의 자손입니다. 조선조 중종, 인종, 명종 때 대사헌, 황해감사, 청홍도(충청도)관찰사, 한성부 우윤 등을 지내시다 누명을 쓰고 돌아가신 분이지요. 올해가 선조 돌아가신 지 472년입니다. 그동안 선조에 견줘 선조를 알리는 일에는 후손들이 제대로 못 해 죄송스러웠습니다만 선조의 행적을 알리는 온계평전의 발간, 신도비각의 중수, 묘소 가토중수 등의 일을 올해까지 끝냄으로서 선조를 알릴 최소의 준비를 후손들이 다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에 그것을 기념해서 안동 도산면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인원: 안동립, 오문수, 저리거(안내), (이동 거리: 3,300km) 답사 일정: 2022년 9월 18일(일) ~ 9월 27일(화) [9박 10박] 고(옛)조선유적답사회는 2022년 가을 답사로 유목민의 나라 몽골(Mongolia)로 찾아갔다. 그곳에는 수만 년 대자연의 역사를 간직한 거칠고 황량한 땅, 고비사막이 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흙먼지 속에서도 거침없이 달리며, 광활한 대지와 자연의 감동, 별과 은하수가 쏟아지는 몽골의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만나러 동몽골로 떠났다. 그곳에서 답사자는 우리 민족의 기원 ‘코리 석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편집자 말> [1, 2일 차 20220918~19일] 1일 차 이동 거리 430km 지난 6월에 남고비 답사에 이어 9월 동몽골 보이르호 지역 답사하러 몽골에 왔다. 이번 여행이 몽골 9차 답사이다. 저리거 사장과 3개월 만에 만나니 반갑다. 11시 20분 칭기즈칸 공항에서 동몽골 가는 길로 접어드니 2차선 좁은 도로에 차량이 많아 약간 정체다. 도로 주변 가로수에 노란 물이 들기 시작하고 주변에 건물이 늘어나 답사 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