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이나미 기자] 지난 8윌 25일부터 9윌 1일까지 충청북도 충주시 탄금호에서는 세계85개국에서 2,500여명의 선수와 임윈이 참석한 가운데 국제조정선수권대회가 열렸다. 이 경기장에서 충주문화원 전찬덕 원장(서예작가)은 각국 선수들과 임원들에게 한글로 그들의 이름을 써주는 한글체험장을 열었는데 데 그야말로 북새통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 전찬덕 충주문화원장은 무려 1,000여명이 넘는 외국 선수와 임원들에게 기념부채 또는 족자 등에 한글로 이름을 써주느라 팔이 아플 정도였다고 한다. 스포츠 경기장을 활용해 한글과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 좋은 기회였다. 동시에 한글이 소리에일대일로 대응하는 글자이며, 11,172자를 표현할 수있 수 있는글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한글 전문가들은 말한다. 실제 글자 없는민족들이 최근한글로 자기네 말을 표기하려는 움직임이 부쩍 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자나 한자로는꿈도 꿀 수도 없는 일이다. 전찬덕 원장은 이렇게 큰 호응을 받을 줄 몰랐는데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팔이 아픈 후유증은 한글과 우리 문화를 알린 것에 견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역시 세계인들에게 한글과 우리
[그린경제=최미현 기자] 지금, 슬기전화(스마트폰)는 세상을 바꾸어 놓았고 우리나라가 그 슬기전화를 가장 많이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변화와 기회 속에서도 한글은 나라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했고 알파벳과 영문 쿼티 자판만 세계표준화가 되다시피 했다. 이에 KAIST 한글공학연구소(소장 신부용)와 국회 김재경 의원실은 어제 9월 4일 오전 9시 30분부터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제2회 한글 세계화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한글세계화 정책토론회 모습 ▲ 개회사를 하는 김재경 국회의원(왼쪽)과 축사를 하는 김종택 한글학회장 토론회가 시작되자 김재경 국회의원의 개회사와 김종택 한글학회장, 강성모 KAIST 총장(대독)의 축사가 있었다, 이어서 KAIST 한글공학연구소 신부용 소장은 한글 세계화의 필연성이란 제목으로 첫 주제발표를 했다. 신 소장은 한글은 세종대왕이 가장 큰 정성을 쏟아 만든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재로 그 가치는 무궁무진하여 마치 깊이 묻혀있는 노다지 같다. 그 가치 중 하나가 글자와 말의 일치이다. 늘 쓰는 말인데도 단어의 발음과 스펠링을 따로 배워야 쓸 수 있는 영어와는 크게 다르다. 영어는 글
[그린경제=반재원 소장] 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숭늉 맛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쌀이 보편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하던 삼국시대 이전에는 지금은 벼논의 잡초쯤으로 알고 있는 피를 재배하였으며 대부분의 백성이 피로 지은 피밥이나 피죽을 먹고 살았다. 서민들은 쌀밥을 한 그릇 대접받으면 대단한 영광으로 알았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손님으로 초대 받아가서 쌀밥과 끓인 숭늉 한 그릇 마시면 그 이상의 대접이 없을 정도였다. 벼의 재배역사를 보면 김포 가현리 유적에서 4,000~5,000년전의 볍씨가 발견되었다. 또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의 구석기 유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3,000년~14,800년 전의 벼가 보고되었다 그것은 현재의 볍씨와 가장 비슷한 것으로 세계학회에 보고 된 사례 중 가장 오래된 볍씨라고 한다. 중국 양자강 유역의 하모도(河姆島) 유적에서는 기원전 5,000년부터 벼농사를 지었으며 우리나라 한강 유역에서는 기원전 2,000년에 벼가 재배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수확량이 높아지는 이모작이 시작되는 모심기는 조선시대 중엽에 와서야 시작되었던 점으로 보아 일반 백성에게는 여전히 귀한 곡식이었다. 이렇듯 쌀이 매우 귀한 음식이었기
[그린경제=반재원 소장] 집이라는 개념이 없던 원시 시대에는 인간들이 주로 천연 동굴에서 기거하였다. 한 동굴(洞窟)에서 같이 생활하는 무리가 서로 단합하여 자신들의 주거지를 확보했으며 다른 동굴에 사는 무리와는 자연히 구분되었다. 지금의 동(洞)은 그때의 생활 주거지인 옛 동굴(洞窟)의 개념에 따라 동(洞)이라고 부르고 있다. 따라서 동(洞)은 자연 동굴이므로 지붕이 따로 필요 없었으나 가家는 땅을 파고 지붕을 덮은 모양이다. 지금도 중국 광서성에 있는 복파산의 환주동굴, 첩채산의 태극동굴과 바람동굴, 호남성에 있는 천자산(天子山)의 황룡동굴이나 관암산(冠岩山)의 관암동굴의 입구 현판에는 모두 동(洞)으로 새겨져 있다. 그 옛날로 말하자면 지금의 숭인동은 숭인동굴, 구라동은 구라동굴, 칠곡동은 칠곡동굴, 삼성동은 삼성동굴이 되는 셈이다. 또 동굴 중에서 특히 좋은 곳을 동천(洞天)이라고 하였으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기거하기 좋은 터를 동천이라고 하였다. 인산동천, 백운동천 등이 그 좋은 예이다. 그런데 중국은 행정 지명의 최소 단위를 동(洞)이 아닌 촌(村)을 사용하고 있는데 반하여 우리나라는 지금까지도 동(洞)을 그대로 쓰고 있다. 동구밖이라는 말도 동굴
[그린경제=반재원 소장] 묏밥은 같은 뜻인 뫼와 밥이 합성된 낱말이다. 뫼는 새나 닭의 모이 모시에서 나온 것으로 보기도 하며 가정에서 제사지낼 때 올리는 제사밥으로도 보며, 또 절에서 제사 올릴 때에나 부처님께 올리는 밥에서 연원 하였다고도 보고 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뫼 - 사람의 무덤. 묘(墓). 산소(山所). 묏-자리 - 뫼를 쓸 자리, 또는 쓴 자리. ~를 보러 다니다. 묘 - 뫼. ~를 쓰다 (이기문. 임홍빈. 두산동아. 참 국어사전) 뫼 - 높은 어른의 끼니 음식. 뫼 들이다(供飯). (신기철. 신용철. 삼성 출판사. 새 우리말 큰사전) 뫼 - 몯못모시모이뫼. 음식. 모시다 - 못(몯). 어른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일. 뫼 - 제사지낼 때 드리는 밥. (서정범. 보고사. 국어어원사전) 지금은 기제사를 모두 집에서 지내지만 원래는 산소에 가서 지냈다. 그것이 지금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을의 묘사(세일사) 때에만 조상의 산소에 가서 지내는 것으로 정착되었다. 뫼가 제사상에 올리는 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것은 삼황오제 시대에 종묘(사당)에 제사 지내는 역할을 맡았던 중부일계中父日
[그린경제=반재원 소장] 이 글은 우리 마누라 우리 남편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 큰어머니 작은 어머니등 가족의 호칭에 대한 상고사적인 측면에서 말밑 밝히기(어원 탐색)를 목적으로 한다. 이 낱말들은 일반적으로 청소년들이 친구 사이에 자신의 가족을 지칭하는 호칭이지만 일반 언중言衆들이 누구나 쓰고 있는 호칭이다. 그럼에도 우리에 대한 말밑 찾기가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다. 여기에 대한 올바른 말밑 찾기 결과는 정확한 뜻 전달과 수용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이들 말밑을 알게 됨으로써 우리 조상들의 가족 제도도 아울러 알게 될 것이다. ▲ 흔히 '우리마누라', '우리집사람' 한다. 왜 마누라가 우리라는 말로 공유가 될까?(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우리'의 말밑 찾기 우리 마누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 - 짐승을 가두어 기르는 곳. 돼지 ~ . ~에 갇힌 호랑이. 우리 - ․말하는 이가 자기와 자기 동아리를 함께 일컬을 때 쓰는 말. ~의 국군. ․말하는 이와 제 삼자만을 일컬음. ~는 당신 친구요. ․말하는 이와 말을 듣는 이만을 일컬음. ~손잡고 일해 봅시다. ․나의의
[그린경제=성제훈 기자] 거칠게 내리던 비가 어제 오후부터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고 하네요. 더는 큰 피해 없이 물러가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며칠 전에 애들과 같이 수원에 있는 서호를 돌다가 '탐조대'를 보고 애들이 저에게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새가 놀라지 않도록 숨어서 새를 보는 곳이라고 일러 줬더니, 어른들은 왜 그리 어려운 말을 쓰냐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소강상태에 접어들다'는 말도 저희 집 애들은 알아듣지 못할 것 같습니다. 소강(小康)은 병이 조금 나아진 기색이 있음 또는 소란이나 분란, 혼란 따위가 그치고 조금 잠잠함이라는 뜻입니다. 굳이 이렇게 어려운 한자말을 가져다 쓸 게 아니라, '세차게 내리던 비가 잠시 주춤했다'고 하면 어떨까요? '소강'은 모를 수 있어도 '주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한자가 글자에 뜻을 담고 있어 글자 수를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나 글자 수 줄이는 것보다 우리 얼을 제대로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5년 전 김재경 국희의원실은 KAIST 문화과학대학과 함께 한글 세계화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당시는 이미 30억대의 휴대폰이 쓰이고 있었고 한글 덕분에 한국은 세계에서 문자메시지를 가장 많이 쓰고 있었다. 문자 입력이 불편했던 미국에서는 알파벳 26자로 된 쿼티 자판의 똑똑전화(스마트폰)을 만들어 냈지만 우리는 오히려 불편하여 별 관심이 없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똑똑전화는 세상을 바꾸어 놓았고 우리나라가 그 똑똑전화를 가장 많이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변화와 기회 속에서도 한글은 나라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했고 알파벳과 영문 쿼티 자판만 세계표준화가 되다시피 했다. 따라서 다시 5년 전 정택토론회를 주도했던 KAIST 한글공학연구소 신부용 소장과 국회 김재경 의원실은 다시 손잡고 오는 9월 4일 오전 9시 30분 국회의원회관 2층 소회의실에서 제2회 한글 세계화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연다. 신부용 소장은 KT와 공동연구로 2010부터 3년간 4억5000만 원을 들여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훕스(HUPS)를 개발했다. 훕스는 Hangul-based Universal Pho
[그린경제=반재원 소장] 서방(書房)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서방 - 남편을 속되게 이르는 말. 지난날 벼슬이 없는 남자의 성 뒤에 붙여 일컫던 말. 김 ~ , 이 ~ . 손아래 친척 여자의 남편 성 뒤에 붙여 일컫던 말. *서방님 - 남편을 높여 일 컽는 말. 결혼한 시동생을 일컽는 말. 지난 날 상사람이 벼슬 없는 선비를 일컽는 말. *서방맞다 - 남편을 얻는 일. *서방맞이 - 남편을 맞는 일. *서방 맞히다 - 남편을 얻게 하는 일. *서방질 - 남편이 있는 여자가 새 서방을 보는 것. (이기문 감수. 동아출판사. ≪동아새국어사전≫) *서방(書房) - 고려 때 최이(崔怡)가 자기 집에 둔 임시 특별관청. 문신 및 유학자들을 교대로 숙직시키며 나랏일을 의논하였음. *서방 가다 - 장가가다(함경도). *서방 보내다 - 장가들이다(함경도). *서방재 - 신랑(함경도). (신기철, 신용철. 삼성출판사. ≪새우리말큰사전≫)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서방은 주로 벼슬 없는 남자의 성 뒤에 붙여 일컫는 말이거나 장인, 장모 등 처가 집의 윗사람이 사위를 부를 때 쓰이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또 서방님은 주로 남편을 높여 일컫는 말로 쓰였
[그린경제 반재원 소장] 요즘도 여전히 일본은 독도를 자니네 땅이라고 우긴다. 원래 독도는 독섬이었다. 독섬은 돌섬이란 뜻이다. 독새미 들은 독샘이 있는 들이라는 말이며 독샘은 돌샘의 옛말이다. 따라서 돌의 옛말이 독인데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홀로 독(獨) 섬 도(島)로 바뀌어 독도가 된 것이다. 독은 일본 발음으로 도꾸 다께가 되었고, 섬은 서미 시마로 변하여 독도를 다께시마(竹島)라 하고 있으니 이것은 바로 우리말 독도에 다름 아니다. ▲ 독도, 한국화가 강장원 또 그 이전에는 일본이 독도를 마쓰시마(松島)라고 하였는데 송도(松島)라는 이름은 홀로 외로이 떨어져 있어 홀섬(孤島)에서 비롯한 우리말이다. 그것이 구개음화 현상에 의하여 ㅎ이 ㅅ으로 변하여 홀이 솔로 변하여 솔섬이 되었는데 이것이 일본이 마쓰시마(松島)로 부르게 된 까닭이다. 따라서 말밑을 보더라도 독도가 바로 우리 땅이라는 반증이 되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소래포구는 폭이 좁은 포구라는 뜻이다. 소래는 솔에서 왔으며 이 경우는 솔이 좁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바지가랭이나 옷소매가 좁은 것을 소매가 솔다라고 표현한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3,000여종의 지도에는 독도는 물론 대마도까지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