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나라 찾은 날 여든 돌'이 지났습니다. 앞서 여섯 차례에 걸쳐서 아직 되찾지 못한 우리말의 여러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마침내 모든 문제의 뿌리이자 모든 풀수(해법)의 시작점이 될 마지막 물음 앞에 섰습니다. 이 모든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 참된 '언어 광복'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모든 문제의 시작과 끝은 한 곳을 향합니다. 바로 우리의 아이들이 말을 배우고 생각을 키우는 곳, '학교'입니다. 왜 학교일까요? 아무리 나라 이름을 바로 세우고, 법률 용어를 뜯어고치고, 땅이름을 되찾아도, 그것을 배우고 익혀 다음 세대로 이어갈 아이들이 없다면 모든 노력은 한낱 구호로 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과 글은 살아있는 숨탄것(생명체)이며, 그 숨을 이어가는 터전이 바로 교실이기 때문입니다. 국립국어원을 새롭게 하고 국어기본법을 고치는 것이 곪아 터진 곳을 도려내는 '외과적 수술'이라면, 교육은 그 수술을 마친 몸에 신선하고 건강한 피를 돌게 하여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염통(심장)'의 구실과 같습니다. 아무리 수술을 잘해도 염통이 제대로 뛰지 않으면 목숨을 이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번에 헌법재판소가 헌법재판관 전원일치로 탄핵을 인용하면서 휘청거리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극우의 반동이 당분간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정적으로 중심을 잡는 데에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번에 비겁한 엘리트들의 민낯을 보았습니다. 엘리트라면 사회적으로 혜택을 본 사람들인데, 어떻게 그렇게 비겁하고 뻔뻔할 수 있을까요? 극우의 준동을 보면서 ‘앞으로 이러한 극우나 뻔뻔한 엘리트를 근본적으로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는 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경쟁 위주의 교육에 치중했습니다. 신생국가가 하루빨리 선진국을 쫓아가려면 그런 교육이 필요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하여 이제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선 대한민국은 그 경쟁교육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경쟁 위주의 교육, 성공을 강조하는 교육에서는 아무래도 남을 배려하는 교육, 이웃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교육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그런 교육만 받다 보니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이 글에 앞서 서이초등학교 교사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학교 교보재 준비실에서 지난 7월 18일 아침 10시 30분 안타까운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였다.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은 또다시 날 선 대립을 하고 있다. 무너진 교권 앞에서, 앞으로 교육의 방향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 방황하고 있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지만, 현재 교단에 서기까지 18개월 아이들부터 88살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했던 사람으로서, 지난날 경험했던 여러 가지 일들이 떠오른다. 신입 강사 시절, 한 유명 사립유치원에서 단체 수업을 하고 있는데, 유난히 말썽꾸러기였던 아이가 문밖에서 계속 수업을 안 들어오겠다며 장난을 쳤다. 그 아이만 신경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한 필자는 수업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아이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다행히 아이는 교실에 들어와서 수업에 참여하였지만, 학부모 민원으로 이어져 호되게 혼이 난 적이 있다. 원장님은 그런 곤란한 상황에서는 다른 교사들이나 원장님께 도움을 청하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필자는 돌발상황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법을 알게 되어 하나를 더 배웠
[우리문화신문=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장] 서양말 ‘에듀케이션(education)’을 한국말로 뭐라 옮기면 좋을까? 대한민국 교육부에서 보듯이 ‘敎育’을 '교육'이라 읽고 쓰는데 이 말은 어디서 온 것일까? 흔히 맹자의 '得天下永才而敎育之(천하 영재를 모아 가르치고 기른다)'에서 유래했다지만 과연 그럴까? 일본은 오쿠보 도시미치, 후쿠자와 유키치, 모리 아리노리 세 사람이 ‘education’을 ‘敎育’으로 뒤쳤다.(번역) 모리 아리노리(森有禮-초대 일본 문부대신)가 활약한 메이로쿠사(明六社, 메이지 시대 초기에 설립된 일본 최초의 근대적 계몽 학술단체)에서 한 일이다. ‘교화’(敎化)를 내세운 오쿠보와 ‘발육’(發育)을 말한 후쿠자와 말을 듣고서 모리가 교화와 발육에서 한 자씩을 따 와 ‘교육(敎育)’이라 제안한 것이다. 일본인들이 새로 만든 ‘교육’은 조선에서 썼던 ‘학부(學部)’의 ‘학’과 견주어 볼 수 있다. 조선은 6부 가운데 하나였던 ‘예조(禮曹)’를 학부라 바꾸고 대한제국(1897~1910) ‘학부령’에서 보듯이 ‘배움(학)’을 써 왔으나 누에가 뽕을 먹듯 ‘학(부)’이란 말 대신 일본말 ‘교육’이 똬리를 틀었다. 교육강령이라고도 부르는 조서(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