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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우리의 상엿소리, 포레의 레퀴엠 듣듯

국립창극단, 창극 <심청가> 공연 열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어넘차 너화넘 어너 어허 너엄 어이 가리 넘차 너화넘 북망산천이 멀다더니 저 건너 안산이 북망이로구나. 어넘차 너화넘 인제 가면 언제나 올라요, 오시만 날을 일러 주오. 어넘차 너화넘 물가 가재는 뒷걸음치고 다람쥐 앉아서 밤을 줍는다. 원산 호랑이 술주정을 허네 그려. 어너 어너 어너 어너 어허 어이가리 넘차 너화넘. 아이고 마누라, 날 버리고 어디 가오.”

 

상여꾼들이 구슬프게 상엿소리를 부른다. 곽씨 부인이 죽어 상여가 나가는 것이다. 무대에서 상여꾼들이 부르는 소리건만 객석은 숨을 멈추고 소리 없이 오열한다. 마치 서양 클래식 포레의 ‘레퀴엠’이 울려 퍼지는 듯하다.

 

 

 

어제 9월 26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는 국립극장(극장장 박인건)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겸 단장 유은선)의 창극 <심청가>가 무대에 올려졌다. 2018년 초연과 2019년 재연 당시 격조 높은 판소리의 멋과 정제된 무대 미학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는 평을 받은 작품으로, 4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는데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손진책이 극본과 연출을, 대명창 안숙선이 작창을 맡았다.

 

거기에 독보적인 카리스마와 존재감으로 인정받는 국립창극단의 대표 중견 배우 김금미가 새로운 도창으로 나서 극을 이끌고, 민은경(어린심청)ㆍ이소연(황후심청)ㆍ유태평양(심봉사)ㆍ조유아(뺑덕)ㆍ김미진(곽씨부인) 등 으뜸 소리꾼들이 다시 무대에 올라 공력을 다한 소리로 감동을 울렸다.

 

‘창극’이란 창을 기본으로 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극이다. 다시 말하면 판소리가 소리꾼과 고수(鼓手) 두 사람이 소리를 중심으로 펼치는 음악 위주의 일인극 형태인데 견주어, 창극은 작품 속의 주인공들을 여러 소리꾼이 나누어 맡기 때문에 등장인물이 많고, 대사와 연기ㆍ무대장치 등이 더욱 사실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특히 판소리는 소리꾼 한 사람이 무대를 채웠다면 이날 창극은 6명의 중심 소리꾼 말고도 30여 명에 가까운 소리꾼들이 함께 등장하여 어떤 때는 상여꾼으로 어떤 때는 선원으로 어떤 때는 마을 사람들이 되어 우렁찬 소리 화음을 들려주고 있다.

 

이것이 어쩌면 판소리와는 다른 창극의 색다른 매력이리라. 어디 그뿐이랴 상엿소리가 무대를 채울 때는 무대 뒤 어슴푸레 보이는 가림막(샤막) 뒤에서 들리는 아쟁의 흐느끼는 소리가 더욱 슬픔을 더해 객석을 먹먹하게 흔드는 감동을 주고 있음도 큰 매력이었다.

 

 

 

범피중류 둥덩실 떠나간다.

망망한 창해이며 탕탕한 물결이로구나.

백빈주 갈매기는 홍요안으로 날어들고

삼강의 기러기는 한수로 돌아든다.

(가운데 줄임)

삼협의 잔나비는 자식 찾는 슬픈 소리

천객소인 눈물을 몇몇이나 뿌렸고,

 

그런가 하면 역시 창극에서도 판소리 심청가의 중심대목인 ‘범피중류’의 매력을 빼놓을 수 없다. 느린 진양조로 부르는 ‘범피중류’는 잔잔하지만, 청중들의 마음을 조용히 흔들어 놓는다. 저 깊은 심중에서 폭풍 눈물을 흘리고 있음이다.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심봉사 눈 뜨는 대목’에서는 10여 명의 맹인들이 등장하여 “가다 뜨고 오다 뜨고, 자다 깨다 뜨고, 울고 웃다 뜨고, 화내다 뜨고 떠보느라 뜨고, 앉어 뜨고 서서 뜨고, 무단히 뜨고 실없이 뜨고, 어이없이 뜨고 졸다 번뜻 뜨고, 눈을 끔적거리다 뜨고, 눈을 비벼보느라 뜨고”를 소리하며 여기저기서 눈을 뜨는 장면을 연출하니 장관이었다. 이도 역시 창극의 매력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창극 전체를 보면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소리꾼들의 매력을 익히 실감할 수 있게 되었지만, 특히 황후심청 역을 한 이소연 씨의 소리 내공에 아마도 많은 청중이 빠져들어 갔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창극과 함께 심청가의 초압에는 “삯바느질, 관대, 도복, 행의, 창의, 직령이며, 접수, 쾌자, 중치막과 남녀 의복의 잔누비질, 상침질, 꺾음질과 외울뜨기, 패담이며, 고두누비, 솔올리기, 망건 꿰매기, 갓끈접기, 배자, 토시, 버선, 행전, 포대, 허리띠, 대님, 중치, 쌈지, 약낭에 필낭, 휘양”처럼 한복 빚는 법과 온갖 한복 종류가 등장하는 것은 복식사와 국문학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다만 이런 훌륭한 창극에 약간의 흠을 잡자면 의상이다. 심청가 하면 그 시대 배경이 조선시대라고 알려졌다. 그런데 임금 역을 한 김준수 소리꾼이 조선시대 임금이 입던 대홍색 곤룡포가 아닌 청색옷을 입어 임금다운 느낌이 나지 않았다. 또 황후심청 역을 한 민은경 소리꾼이 입은 옷은 보통 왕비가 입는 봉황 무늬가 놓아진 것이 아니었다. 이런 큰 공연을 하면서 의상에 대한 시대적 배경 고민이 없었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이번 창극 <심청가>는 그 매력을 한껏 뽐내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판소리가 어렵다고 느낀 사람들이라면 창극에 먼저 문을 두드린다면 좋을 것이다. 서양에 오페라가 있다면 한국에는 창극이 있다.

 

10월 1일(일)까지 한가위 명절 동안 열릴 창극 <심청가>의 공연 시각은 수요일 저녁 7시 30분, 목ㆍ금ㆍ토ㆍ일 낮 3시다. 입장료는 R석 50,000원, S석 35,000원, A석 20,000원이며, 국립극장 누리집(https://www.ntok.go.kr/kr/Ticket/Performance/Details?performanceId=266451)에서 예매할 수 있다. 기타 공연에 관한 문의는 국립극장 전화(02-2280-4114)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