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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장엄구

- 푸름 속에 귀함을 담다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11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사리는 ‘몸’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사리라(sarira)’를 음역한 말입니다. 인도에서는 사리를 모신 탑을 예배 대상으로 여겨왔습니다. 불교가 한반도에 들어온 이래로 다양한 전각과 탑을 지어 부처를 모셨으며, 사리장엄구를 만들어 부처께 올리고 탑에 봉안했습니다. 한국은 ‘석탑의 나라’라 일컬을 만큼 석탑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석탑이 대다수지만, 벽돌을 쌓아 올린 전탑도 일부 확인되는데,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이 그 예입니다. 이 탑은 전탑이라는 특징 말고도 독특한 형태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어서 특히 눈길을 끕니다.

 

 

전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

 

석탑에 사리장엄구를 봉안하려면 석탑 부재의 한 부분을 파서 공간을 별도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벽돌을 쌓아 만드는 전탑은 석탑과 달리 별도 공간을 파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의 사리장엄구를 어떻게 탑 안에 모셨을까요?

 

1959년 탑을 해체, 수리하는 과정에서 이 비밀이 밝혀졌습니다. 2층 탑신 부분에서 거북 모양의 석함이 발견되었는데 그 안에 사리장엄구가 모셔져 있었습니다. 사리장엄구는 건물 형태의 금동제 사리기 안에 녹색 유리잔이, 그 안에 다시 녹색 유리병이 들어 있는 구성입니다. 전탑이기에 사리장엄구를 봉안하려면 별도의 장치가 필요했는데, 이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거북 모양 석함입니다.

 

건물을 닮은 사리기

 

거북 모양 석함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는 여러 용기로 이루어졌습니다. 가장 바깥의 금동제 사리기는 건물 형태로, 연꽃으로 장식한 대좌에 낮은 난간을 두르고, 네 구석에 기둥을 세워 지붕을 얹었으며, 지붕의 네 모서리에는 드리개가 늘어져 있습니다.

 

기둥을 중심으로 사방을 뚫어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들었는데,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사리장엄구와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등에서도 이러한 형태의 사리기가 확인됩니다. 건물 형태의 사리기는 기형과 장식이 화려하여 다른 형태의 사리기보다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 만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현재 전하는 수량 역시 다른 형태의 사리기보다 적은 편이지만 독특한 형태로 인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송림사 오층전탑에서 발견된 건물 형태의 사리기는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 사리기와 비슷한 형태지만 세부 장식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하지만 두 사리기 모두 부처를 상징하는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화려한 장식을 더한 점이 주목됩니다.

 

녹색 유리에 귀함을 담다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장엄구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녹색 유리잔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녹색 유리잔을 사리기로 사용한 사례는 이 작품이 유일합니다. 건물 형태 사리기의 연꽃 장식 위에 놓인 녹색 유리잔에는 표면에 12개의 유리 고리가 붙어 있습니다. 발견 당시 기록에 따르면, 각각의 고리 장식 가운데에 반투명한 유리알이 붙어 있고 주위에 작은 진주알이 장식되어 있었는데, 바깥 공기에 노출되는 순간 모두 떨어져 버렸다고 합니다.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유리잔과 비슷한 유리잔이 일본 나라현 쇼소인[正倉院]에 전하고 있어 주목됩니다. 쇼소인 소장 유리잔은 검은빛을 띤 남색(감색)으로 송림사 오층전탑 유리잔과 색은 다르지만, 잔 형태와 표면에 붙인 유리 고리 장식 등이 매우 비슷합니다.

 

 

이는 당시 서아시아에서 유행한 유리공예 기법으로, 국제적으로 사용되던 형태입니다. 이렇듯 송림사 오층전탑에서 발견된 녹색 유리잔은 통일신라시대에 활발한 국제 교류가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사리장엄구는 사리를 직접 안치하는 내부로 갈수록 귀한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남북국시대(통일신라시대)에는 금ㆍ은 같은 금속과 유리 등 다양한 재질로 제작되었는데, 이 중 유리제 사리병이 여럿 확인됩니다. 유리제 사리병은 삼국시대 신라 분황사 모전석탑과 백제 미륵사터 석탑에서 출토된 예가 있으며, 황룡사 구층목탑 찰주본기에도 유리제 사리병에 대한 기록이 있어 이른 시기부터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리를 담는 그릇으로 유리를 사용한 까닭은 불국 정토의 바닥은 유리로 되어 있다는 《묘법연화경》의 내용을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병 역시 당시 매우 귀한 재질 가운데 하나였던 유리로 만들어 사리를 모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장엄구는 전탑에서 발견되었다는 점 말고도 몇 없는 건물 형태의 사리기를 갖추었다는 점, 더불어 유리잔 사리기를 통해 통일신라시대 국제 교류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작품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김민송)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