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사리는 ‘몸’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사리라(sarira)’를 음역한 말입니다. 인도에서는 사리를 모신 탑을 예배 대상으로 여겨왔습니다. 불교가 한반도에 들어온 이래로 다양한 전각과 탑을 지어 부처를 모셨으며, 사리장엄구를 만들어 부처께 올리고 탑에 봉안했습니다. 한국은 ‘석탑의 나라’라 일컬을 만큼 석탑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석탑이 대다수지만, 벽돌을 쌓아 올린 전탑도 일부 확인되는데,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이 그 예입니다. 이 탑은 전탑이라는 특징 말고도 독특한 형태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어서 특히 눈길을 끕니다. 전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 석탑에 사리장엄구를 봉안하려면 석탑 부재의 한 부분을 파서 공간을 별도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벽돌을 쌓아 만드는 전탑은 석탑과 달리 별도 공간을 파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의 사리장엄구를 어떻게 탑 안에 모셨을까요? 1959년 탑을 해체, 수리하는 과정에서 이 비밀이 밝혀졌습니다. 2층 탑신 부분에서 거북 모양의 석함이 발견되었는데 그 안에 사리장엄구가 모셔져 있었습니다. 사리장엄구는 건물 형태의 금동제 사리기 안에 녹색 유리잔이, 그 안에 다시 녹색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965년 11월, 기우뚱 기울어져 무너질 위험에 처한 오층석탑의 수리가 시작되었습니다. 석탑을 완전히 해체하여 수리하는 과정에서 탑 안에 모셔진 사리장엄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바로 지금부터 살펴볼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입니다. ‘사리’를 담는 용기, 사리장엄구 ‘사리(舍利)’는 인도에서 몸이나 뼈, 유골 등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사리라(śarīra)’라는 말이 중국으로 전해질 때 소리 나는 대로 한자로 옮겨 적으면서 생긴 단어입니다. 처음에는 석가모니의 주검을 화장하고 남은 유골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점차 개념이 넓어져 고승의 유골이나 석가모니의 말씀까지도 포괄하게 되었습니다. 인도에서 불교를 처음 세운 석가모니가 돌아가신 뒤 그의 주검을 화장하고 나온 사리를 안치하려고 만든 건축물이 바로 ‘탑’의 시작입니다. 또한 성스러운 사리를 탑 안에 안치하기 위해 아름답게 장식해서 만든 용기가 바로 ‘사리장엄구’입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사리를 직접 담는 사리기뿐 아니라 사리를 공양하는 의식과 관련된 물건, 그리고 사리에 바치는 각종 공양품 등 많은 것을 포괄하는 말입니다. 왕궁에서 절로, 익산 왕궁리 유적 이야기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백제시대 공예품의 정수(精髓)라고 알려진 보물 「익산 미륵사터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를 국가지정문화재(국보)로 지정하고, 「대방광불화엄경소 권88」, 「손소 적개공신교서」, 「이봉창 의사 선서문」 등 고려․조선 시대 전적, 근대 등록문화재 6건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하였다. 국보 「익산 미륵사터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益山 彌勒寺址 西塔 出土 舍利莊嚴具)」는 2009년 익산 미륵사터 서탑 심주석(心柱石, 탑 구조의 중심을 이루는 기둥)의 사리공(舍利孔, 불탑 안에 사리를 넣을 크기로 뚫은 구멍)에서 나온 유물로서, 639년(백제 무왕 40년) 절대연대를 기록한 금제 사리봉영기(金製 舍利奉迎記)와 함께 금동사리외호(金銅舍利外壺)와 금제 사리내호(金製 舍利內壺), 각종 구슬과 공양품을 담았던 청동합(靑銅合)을 포함해 모두 9점이다. *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 사리를 불탑에 안치할 때 사용하는 용기나 함께 봉안되는 공양물(供養物) 등을 통틀어서 가리키는 말. 의식에 맞추어 사리를 봉안하는 데 필요한 기구(器具)를 빠짐없이 갖추어 둔 것이라는 뜻에서 ‘사리갖춤’이라고도 함 사리장엄구 가운데 금제 사리봉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