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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농제는 농업신인 신농(神農)과 후직(后稷)에게 풍년을 기원하며 드리던 국가 제례의식이다. 제사 뒤 임금이 동쪽 교외 적전(籍田 : 임금이 몸소 농민을 두고 농사를 짓던 논밭)에서 오추례(五推禮)를 시행하여 농사의 모범을 보이기 때문에 경적례(耕籍禮) 또는 적전례(籍田禮)라고도 부른다. 선농제 기록은 『삼국사기』에 선농과 중농, 후농의 제사 기록이 처음 나온다. 선농제는 유교 국가의 임금들이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실천적인 권농책(勸農策)으로 강조했기 때문에 한국과 중국에서 일찍부터 시행되었다.
선농제는 고려시대엔 음력 1월의 길해(吉亥: 길한 해일)에 지냈다. 그러나 조선시대는 1월엔 추워서 파종할 시기가 아니라며 경칩(驚蟄) 뒤의 길해로 그 시기를 바꾸었다. 조선시대 선농제는 태종 16년(1416)에 제단이 축조되면서 새 제도가 마련되었으며 세종 12년(1430)에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등재되었는데, 그 규모는 사방 2장 3척, 높이 2척 7촌으로 고려 때보다 규모가 축소되었다.
임금이 직접 주관하는 선농친제(先農親祭)는 성종대에 처음 행해졌으며 이후 중종, 명종, 인조, 숙종 등 역대 왕들이 직접 농사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선농제를 지내고 나서 임금을 비롯한 조정중신은 물론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함께 밭을 간 뒤 백성을 위로하려고 소를 잡아 국말이 밥과 술을 내렸다. 이 국밥을 선농단에서 내린 것이라 하여 선농단, 선농탕, 설롱(렁)탕으로 변한 것이 오늘날의 설렁탕 유래로 전해진다. 임금이 친히 지내던 선농제사가 사라지자 민간단체인 선농제향보존위원회서 그 뜻을 이어 선농제 제향을 지내고 있는데 올해도 2011년 4월 30일에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선농단에서 제향을 지낸 뒤 참가한 시민들이 설렁탕을 나눠 먹으며 선농제의 의미를 새겼다. * 독자 육철희 / 선비문화학회 사무국장, 신시민운동연합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