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6. 시골집 사립문이 그립지 않으세요? 우리는 시골에서 아름다운 사립문을 봅니다. 사립문은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가는 나뭇가지를 베어다 대충 엮어서 세운 문이지요. 사립, 사립짝문, 시문(柴門), 시비(柴扉)라고도 부릅니다. 이 사립문은 문이라 하기도 그렇지요. 그저 이 안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표시에 불과한 것이며, 도둑을 막거나 남을 경계한다는 뜻은 애초에 없습니다. 사립문은 안과 바깥 세계의 경계가 불분명한, 그래서 그 사립문 너머 그 집의 마루와 안방까지도 다 들여다 볼 수 있지요. 또 사립문은 헤어짐과 만남의 경계선으로 보내는 자와 떠나는 자가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 눈물을 서로 씻어주고 닦아줄 수 있는 거리일 뿐입니다. “그는 금방이라도 그의 집에서도 통곡 소리가 터져 나올 것만 같아 괜히 마음이 바짝 죄어들어 사립문 안으로 들어서기가 두려웠다." 문순태 작가는 ≪타오르는 강≫에서 사립문을 밀치고 들어가기가 두렵다고 했습니다. 밀치고 들어가면 그만인 게 문이지만 철대문과 달리 사립문은 또 다른 정서를 느끼게 해주는 정겨운 문입니다.
1615. "데이케어센터" 뭐하는 곳인지 아세요? 최근 서울시 노인복지과는 서울형노인복지 프로그램 중 "데이케어센터(아마도 영어로 DAY CARE CENTER인 것으로 짐작)"를 만들어 오는 7월 15일 여러 곳에서 개소식을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치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돌보는 사업을 하는 서울형 주간보호센터로 보이는데 기존의 '주간보호센터'와 차별화 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지요. 하지만, 영어 대신 토박이말로 “어르신 돌봄집”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우리나라는 한글을 사랑하는 이들의 반대에도 2007년 7월부터 동사무소를 “동주민센터‘로 바꾸었지만 중국은 센터라는 말을 쓰지 않고 꼭 자기네 한자를 써서 중심(中心)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English education center”를 우리는 영어교육센터쯤으로 하겠지만 중국은 꼭 “영어교육중심(英語敎育中心)’이라고 쓰지요. 누가 과연 슬기로운 것일까요? 서울 지하철 승강장 비상전화의 "EMERGENCY", 또는 "SOS INFORMATION"과 함께 비난받을 일이 아닐까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 어김없이 나오는 갓은 남자가 머리에 쓰던 옷차림의 하나입니다. 일반적으로 흑립(黑笠)을 갓이라고 하며, 벼슬아치들이 관청에 드나들 때 썼으나 후대에는 양반 신분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갓은 말갈기나 꼬리털인 말총으로 만듭니다. 대원군은 통영까지 사람을 보내 갓을 맞추어 쓴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특히 고종황제 국상에는 모든 백성이 흰 갓을 통영에서 맞추어 썼다고 합니다. 이때 통영갓은 하루에 300개 이상 불티나게 팔렸다고 하지요. 그래서 통영갓은 갓의 대명사처럼 되었습니다. 선비들의 의생활에서 필수품의 하나였던 갓을 만드는 “갓일”은 이제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로 보전되어 전승되고 있을 뿐입니다. 서양옷이 우리의 평상복이 되어버린 지금 갓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선비도 없고 갓도 쓰지 않는 시대지만 스스로 엄격하고, 올곧게 살아갔던 선비정신만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1613. 한국춤의 신명과 역동성이 녹아있는 진쇠춤 경기재인청을 이끈 이동안 선생의 진쇠춤을 그의 수제자인 운학전통춤 보존회 회장 이승희 선생이 풀어냅니다. 이승희 선생은 정중동의 절제미를 한껏 구사하며, 쉽게 볼 수 없는 춤의 세계를 펼칩니다. 그래서 이것이 진정 한국 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진쇠춤은 임금이 각 고을의 원님들을 불러 잔치를 하면서 그들에게 꽹과리를 치면서 춤을 추게 하였는데 그 뒤 진사들이 꽹과리 곧 쇠를 들고 추는 춤이라 해서 불린 이름이라고 합니다. 진쇠춤은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추었던 것으로 한국춤의 신명과 역동성이 녹아있는 독특한 우리 춤의 하나라고 하지요. 춤꾼은 무관복 차림에 목화를 신고 부드럽고 낮은 소리의 꽹과리를 두드립니다. 또 꽹과리는 신명을 잘 드러내는 악기로 오방색 끈을 달아 동적인 느낌을 표현합니다. 진쇠춤은 양반과 평민의 심정을 나타내는 양면성이 있는 춤이라고 하지요.
1612. 꿩바람꽃, 변산바람꽃을 보셨나요? 우리나라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에 눈을 뗄 수 없는 들꽃 곧 야생화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토박이말로 된 들꽃 이름도 참 예쁩니다. 그 들꽃 가운데 바람꽃들도 있습니다. 먼저 “꿩바람꽃”은 봉우리는 보통 오므려 있고 잎은 둘둘 말려 있어 영락없이 꿩 발 모양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요. 우리나라 바람꽃은 설악산에서 자라는 바람꽃, 한라산에서 자라는 세바람꽃, 흔히 볼 수 있는 꿩바람꽃 등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변산바람꽃”도 있습니다. 일찍 봄을 알리는 꽃으로 변산 지방에서 처음 발견되어 지은 이름의 이 꽃은 한국 특산종으로, 1993년 전북대 선병윤 교수가 변산반도에서 채집해 한국 특산종으로 발표하였기 때문에, 학명도 발견지인 변산과 그의 이름이 그대로 채택되었다고 하지요. 꽃이 매우 앙증맞고 예쁘장해 즐기려고 심기도 하는데, 꽃을 잘 볼 수가 없어 보존해야 할 꽃입니다.
1611. 피로회복·신경안정·숙취해소에 도움이 되는 수박 여름철 과일은 복숭아, 참외, 포도 등으로 다양하지만 푹푹 찌는 무더위와 갈증을 풀어주는 데는 수박만 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수박을 먹기 시작한 것은 고려 때부터로 추정되지요. 허균이 쓴 《도문대작(屠門大嚼)》을 보면 “고려를 배신하고 몽골에 귀화하여 고려 사람을 괴롭힌 홍다구(洪茶丘)가 처음으로 개성에다 수박을 심었다.”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또 신사임당의 그림 ‘수박과 들쥐’에 수박이 자세히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면 조선시대 초기엔 이미 수박 재배가 널리 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박은 맛이 달며 싱겁고 독이 없는데 피로회복과 신경안정, 숙취해소에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박은 찬 음식으로 배나 손발이 차거나 소화기능이 약한 사람, 또 설사가 잦은 사람은 많이 먹으면 해로울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체질에 맞지 않거나 지나치면 좋지 않다는 것을 입지 말아야 합니다.
1610. 2인칭 대명사 "이녁"을 아시나요? 우리말은 높임말이 아주 잘 발달해서 위, 아래로 예의를 갖추는 법이 아주 다양합니다. 그런데 그 호칭 가운데 2인칭 쓰기가 가장 어렵다고 하지요. 그 어렵다는 2인칭 중에 “이녁”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이녁”은 할아버지나 할머니들 사이에서 아직도 더러 쓰이는데 어감이 매우 친근하고 정겹지요. 자신과 비슷한 상대이면서도 “너나들이”가 아니어서 “너”라고 부르기는 어정쩡할 때 적절하게 쓸 수 있는 말이 바로 “이녁”입니다. 그리고 연인이나 가시버시(부부) 사이에 쓸 수도 있는 말이 아닐까요? 하지만, 지금은 거의 잊힌 말이 되었습니다. 이 “이녁”이란 말은 “내가 언제 이녁을 무시했다고 그러오? 그건 이녁이 잘못 생각한 것 같구려”처럼 씁니다. 참고로 마치 한몸 같이 친밀하고 가까운 사이는 “옴살”, 서로 겨우 낯을 아는 정도의 사이는 “풋낯”입니다. 참고 :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 박남일, 서해문집
1609. 푸줏간 앞을 지나며 입맛 다시기 홍길동전을 쓴 허균은 바닷가로 유배되었을 때에 밥상에 오르는 것이 상한 생선이나 감자ㆍ미나리 등이었고 그것도 끼니마다 먹지 못하여 굶주린 배로 밤을 지새우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예전 산해진미를 먹고 또 먹어 물릴 정도가 되던 때를 생각하고 침을 삼키곤 하였다고 실토합니다. 그는 그때 곧 1611년(광해군 3) 전국 8도의 음식과 명산지에 관하여 적은 ≪도문대작≫이란 책을 썼습니다. 허균은 책 이름을 《도문대작(屠門大嚼)》이라 한 뒤 “고기를 종류별로 나열해서 써놓고 가끔 보면서 한 점의 고기로 여기기로 하였다. 나는 먹는 것에 너무 사치하고 절약할 줄 모르는 세속의 출세한 사람들에게 부귀영화는 이처럼 무상할 뿐이라는 것을 경계하고자 한다.”라고 책을 쓴 뜻을 밝혔습니다. “도문대작”은 ”푸줏간 앞을 지나가면서 입맛을 다신다.”라는 뜻으로 이는 실제로 먹지는 못하고 먹고 싶어서 먹는 흉내만을 내는 것으로 스스로 만족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1608. 가사가 재미있는 서도민요들 “요놈의 종자야 네 올줄 알구 썩은 새끼로 문걸구 잤구나 / 울 넘어 밖에서 꼴 베는 총각아 눈치나 있거든 이 떡을 받아라.” 위는 평안도 용강지방 민요 “자진아리”의 일부입니다. 그런가 하면 “앞집 체네(처녀)가 시집을 가는데 뒷집에 총각은 목매러 간다.”라는 대목의 “사설난봉가”도 있습니다. 또 “구부러졌다 활나물이요 펄럭펄럭 나비나물“ 같은 나물타령(끔대타령)도 있지요. 이런 서도민요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렇게 가사가 참 재미있습니다. 서도민요(潟民謠)는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에서 불리는 민요로 이밖에 술비타령, 굼베타령, 풍구타령, 봉죽타령 따위도 있습니다. 최근엔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전수조교 유지숙 선생이 서도지방에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토대로 “항두계” 등의 토종 뮤지컬을 꾸며 공연하기도 합니다. 이는 민요를 외면하는 시대에 민요가 가진 정겨움을 한껏 살려 대중에게 좀 더 다가서고자 하는 작은 움직임이 아닐까요?
1607. 명당은 후손의 덕이 닿아야 기운이 나온다 우리는 예부터 “풍수지리” 속에서 살았습니다. 집터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의 양택풍수도 있지만 부모를 명당에 모셔야 후손이 복을 받는다는 음택풍수가 그 주입니다. 그런데 부모를 좋은 명당에 모시면 그 후손이 모두 다 잘될까요? 풍수이론에는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이란 것이 있습니다. 그 이론은 아무리 명당에 들었어도 덕을 쌓아 좋은 기운을 가진 사람이 들어야 하고, 그 후손도 기운이 올바르지 않으면 명당의 기운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각훈이 지은 ≪해동고승전≫ 유통 편에 보면 어떤 이가 원광법사 무덤 곁에 죽은 이를 묻으면 자손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여 야밤에 몰래 묻었는데 그날로 벼락이 쳐서 시체를 무덤 밖으로 던져버렸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남에게 덕을 베풂으로써 복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명당자리만 찾아다니며 복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경계한 말일 것입니다. 또 순천 선암사 뒷간은 명당으로 알려진 유명한 곳인데 그렇다고 해서 그 뒷간에서 뒤만 보고 오면 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